융합은 지식의 경계를 가로질러 넘어가는 지적 작업이다. 정희진은 융합을 다양한 지식이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에서 새로운 앎이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다섯 번째 책에서는 기존의 지식과 경계를 넘나들며 질적인 변화로 나아가는 ‘횡단의 정치’로서 융합을 논한다.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0
아직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게시물
1
이 책이 담긴 책장
요약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내용 요약 ✍️
정희진의 저서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는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기술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언어'를 재구성함으로써 비로소 자유로운 사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철학적 성찰입니다. 저자는 기존의 관습적인 언어와 타성에 젖은 글쓰기에서 벗어나,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를 통해 고정관념을 해체할 것을 주문합니다. 🌍
관심 있는 저자로 찾아 읽고 있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관점과 의견을 논리를 제시하면서 하는 말들이 들어보게 한다. 이해나 수용의 폭이 다 되는 것은 아니나 저자의 책들이나 의견에 관심이 간다. 이 책은 시리즈로 기획된 것 같은데 각 장이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사고나 논리의 변이 쉽지는 않으나 더 읽어보고 생각해 봐야겠다는 의지를 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개인의, 나만의 관점과 생각의 흐름들을 쌓고 싶게 한다.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지금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또 들여다보게 한다.
융합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사고의 확장을 불러온다. 기존의 개념에서 벗어난,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쉽지는 않다. 살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읽거나 볼 수 있는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공부'라는 생각의 활동들을 계속해서 필요한 까닭이다.
📝혼자란 무엇인가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인간은 섬이 아니며, 모든 사람은 바다에 떠 있는 연결된 대륙의 일부라는 말이 위로를 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소외감, 고립감, 심심함, 마음의 허기는 팬데믹 시대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혼자임과 외로움이 글로벌 경제와 기후 위기에 따라 좌우되는 시대의 ‘대안’은 자신을 잊는 몰아(沒我)밖에 없다. 쉽지 않다.
📝융합은 관점이다
융합이 ‘가성비’가 높은 공부인 이유는, 융합을 공부하려면 기존의 지식은 물론이고 그 지식과 융합할 수 있는 자기 가치관을 확립하는 공부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점을 확립하고 응용하려면 연습(practice)과 현실 개입적 실천(praxis)이 모두 필요하다.
📝공부는 쓰기다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 있는데, 이는 거기서 멈추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신호이다. 이럴 때는 글쓰기를 정지하고 모든 것을 재점검해야 한다. 쓰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최초의 문제의식과 다른 내용을 쓰고 있거나,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사유 틀(‘이론’)을 찾지 못해 ‘이론을 창시하는 고통’을 겪고 있거나, 사례가 적절하지 않거나, 애초에 문제의식 자체가 틀렸다거나… ….
이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을 깨닫고 쓰기를 반복해야 한다. 겪어야만 깨달을 수 있고, 이때 새로운 지식이 생산된다. 과학자는 실험을 반복하고, 글쓴이는 쓰기를 반복한다.
📝주류 언어가 나를 삼킬 때
주류 언어가 나의 삶을 삼켜버릴 때, 현실이 교착 상태에 빠져 공동체가 고통받을 때 새로운 말을 찾는 과정이 융합이다. 융합은 창의적 사고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소통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차이의 교차로에 놓여 있다. 융합은 차이들을 재배치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사유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기존 인식과 갈등 상황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다른 목소리가 유리하다. 이것이 뉴 노멀이다. 뉴 노멀은 특정 시기에만 요구되는 기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하는 생명의 본성이다. 인생무상이다. 삶에는 정상(正常), 노멀(normal)한 상태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