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집 - 구본준
저자 구본준은 에서 대중문화팀장, 책지성팀장, 기동취재팀장, 기획취재팀장 등을 지내고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건축과 미술, 책, 만화 등을 두루 소개했다.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달동네집, 쪽방까지 한국 서민이 살아온 집을 보전하는 집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2014년 11월, 해외 연수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남은 가족이 그의 손때 묻은 노트북에서 주옥같은 원고들을 정리해 만든 것이다. 크게 종묘와 이세 신궁, 경복궁과 자금성의 네 건물을 살펴보면서 건축에 대한 다양한 상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전달해 주는 책이다.
기둥이라는 절대 디자인
건물을 길게 지으면 자연스럽게 건축에서 늘어나는 요소가 있다. ‘기둥’이다. 건물이 길수록 기둥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위대한 신성 건축물은 대부분 길쭉이 건물이고, 그렇다 보니 기둥이 많아졌다. 기둥이 줄지어 선 ‘줄기둥’, 건축에서 ‘열주’라고 불리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위대한 건축에서 기둥이 많아진 것은 집이 길어지면서 당연히 늘어난 것뿐이다.
그저 기둥을 줄지어 세운 것인데 그 어떤 디자인보다도 강력한 힘을 냈다. 긴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거의 소실점이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선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가장 단순한 방식이 가장 매력적인 디자인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인류는 아직까지도 이 줄기둥처럼 강력한 디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모든 위대하고 특별한 건축은 기둥을 줄지어 세우는 디자인을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이집트에 있는 핫셉수트의 장제전을 보겠다. 고대 이집트의 여자 황제, 곧 여자 파라오였던 핫셉수트 때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어떤 건축사학자는 핫셉수트의 장제전을 뛰어넘는 건물 디자인은 여전히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건물이란 얼마나 단순한가? 자세히 볼 필요조차 없다. 이 건물은 그저 네모난 돌기둥을 줄줄이 세웠을 뿐이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수직 기둥을 수평으로 늘어놓았다. 이런 줄기둥 디자인만으로 이뤄진 긴 건물을 한 층이 아니라 3층으로 쌓아 지은 것이 전부다.
그리고 핫셉수트의 장제전이 지어진 지 1,000년이 지난 2,500년 전, 드디어 또 다른 건물이 등장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다. 단언컨대 이 건물처럼 인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건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건축사에서 건물을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파르테논 신전을 꼽게 될 거다. 이 건물이 서양 건축 전체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이후 2,0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양 건축은 파르테논 신전을 계속 변주하며 반복했다. 부분적으로는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디자인은 늘 이어졌다. 그 비례를 조금씩 변형하더라도 언제나 파르테논의 모습을 되풀이했다. 고전을 다시 조명할 때면 신고전주의라는 이름으로 늘 그 시대의 파르테논이 유럽에 들어섰다.
그러다가 새로운 줄기둥이 등장한다. 줄기둥 디자인의 변형이자 정점이 될 또 하나의 놀라운 디자인이었다. 로마의 상징, 가톨릭교회의 본산,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앞 광장이다. 그런데 디자인이 달랐다. 긴 직선으로 이뤄진 익숙한 줄기둥이 아니라, 중간에 반원형 곡선으로 휘어 돌아가는 줄기둥이었다. 베르니니는 단조로운 줄기둥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양쪽 대칭으로 둥근 원을 그리며 펼쳐지는 줄기둥 건물은 광장 전체를 감싸 안았다. 좌우의 너비는 무려 240미터. 이 광장 끝에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있다. 이 반원형 줄기둥 건물은 실제로는 아무런 실용적 기능이 없다. 오로지 줄기둥의 압도감을 보여주기 위한 거대한 장식이다. 그리고 그 힘은 실로 강력하다. 이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광장을 만들어낸 가톨릭과 교황의 힘, 나아가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인 여호와의 권능에 감탄하고 절로 존경심을 갖게 된다. 건축이 곧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면 산 피에트로 광장은 두 팔이 공간을 감싸는 모습이다. 그 팔은 당연히 위대한 신, 또는 기독교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팔과도 같다. 이 공간에 들어오는 신자는 신의 품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인상을 줄기둥 건물로 디자인했다. 그의 디자인은 크게 히트를 쳤다.
종묘, 이토록 장엄한 공간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긴 줄기둥 건물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신성한 건물을 짓는 것은 인류 공통의 습성이고, 우리도 이런 건축물을 지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건물, 한국 건축 문화의 간판스타로 꼽히는 건물, 종묘의 ‘정전’이다. 아마 한국의 건축가들에게 가장 위대한 우리 건축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종묘, 정확히는 종묘의 정전이라고 대답할 거다. 그만큼 종묘는 특별하다.
종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적 상징 건축물의 공통점인 ‘길이’와 ‘기둥’의 특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 디자인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일 수 없었다. 종묘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그중에 왕을 모시는 중요 건물로 정전과 영녕전이 있다. 둘 중에서도 핵심은 정전이다. 그래서 종묘라고 하면 종묘 정전을 말하기도 한다. 이 종묘의 정전이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길쭉이 건물이다.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로, 길이가 101미터에 이른다.
종묘는 유교 문화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유교 건축의 핵심이다. 조선 왕조가 왕궁보다도 종묘를 먼저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교 국가의 틀을 이루는 제사, 그것도 국가 제사 가운데 최고 행사를 치르는 종묘 건축은 당연히 특별해야 했다. 그 제사가 벌어지는 종묘는 당연히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물이어야 했다. 종묘의 디자인은 오로지 최고의 격식과 장엄만을 추구했다. 종묘 건축, 종묘 제사 모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서 최고의 숭고함, 최고의 신성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갖췄다.
그래서 종묘 건물들은 다른 궁궐 건물과 달리 최대한 절제된 모양으로 극도의 엄격성을 추구해 지었다. 현세를 초월하는 극한의 단순함과 웅장함이 종묘의 미학이다. 보는 사람을 빨아들이듯 사로잡는 종묘의 매력은 이렇게 다른 건물과는 달리 철저하게 치장을 배제한 단순함, 그리고 다른 건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길이에서 나온다.
그런데 종묘에는 국가적인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길이를 강조한 동서양의 유명 건축물과 비교되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뜻밖에도 원래부터 긴 건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종묘는 조금씩, 계속해서 길어진 건물이다. 마치 생물처럼 건물이 자라나 계속 커졌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건물이 성장했다. 건물이 길어진 것은 왕조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왕의 숫자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왕의 위패를 모시는 신실이 더 필요해 여러 차례 증축했기 때문이디.
이 특별한 건축 방식 말고도 조선 종묘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특별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종묘 정전 앞에는 정전처럼 길지는 않지만 역시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어렵게 긴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 이 건물의 이름은 ‘공신당’이다. 공신당이란 뭘까?
이름 그대로 ‘공신’을 모시는 집이다. 공신은 훌륭한 신하를 부르는 말이다. ‘개국공신’이라고 할 때 그 공신이다. 조선에서 공신은 일반 국민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자리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공인 최고 신하’를 뽑는 제도가 있었다. 그게 공신이다. 각 임금 재위 기간 동안 가장 뛰어난 신하 3~5명 정도를 정해 공신 칭호를 준다. 이 공신이 특히 영예로운 것은 조선 최고의 공간인 종묘에 임금과 함께 모셔지기 때문이다.
종묘를 두는 유교권 국가에서 공신당을 종묘에 함께 지은 나라는 조선이 유일하다. 조선 공신당에 들어가게 된 공신들은 주군인 임금과 함께 신주가 모셔지니 사회적으로 이보다 더 높은 인정은 없었다. 공신이 되면 국가에서 자손에게도 특권을 준 만큼 공신이 된 이들은 집안 사당에서도 불천위가 되어 영원히 떠받드는 존재가 되었다.
조선 왕조는 군인 이성계가 지식인 그룹인 신진사대부와 힘을 합쳐 세운 나라이므로 태조 이성계로선 왕이 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들을 대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신당은 종묘 정전과 함께 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건축이었다. 극동아시아 공통 문화인 공신제를 조선이 갈고 다듬어 발상지에도 없는 새로운 건축 공간으로 승화시킨 셈이다.
일본의 독창적인 신성 건축, 이세 신궁
이세 신궁은 한국의 종묘처럼 일본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성한 건물이다.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수많은 신을 지성으로 받드는 일본 사람들은 신을 모시는 집 ‘신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신을 모시는 가장 중요한 집으로 이세 신궁을 건축했다. 다른 유교 국가에 있는 종묘가 일본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세 신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세 신궁이 종묘처럼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 모신 신이 특별한 신이기 때문이다. 이세 신궁은 일본 신화에서 최고 여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내궁과 농경의 여신인 도요우케 오카미(豊受大神)를 모시는 외궁으로 이뤄져 있다. 두 신 중에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일본 토착 종교인 신토(神道)에서 가장 높은 신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태양신이자, 일본 황실의 조상신이라고 일본인들은 믿고 있다. 그러니 이 최고의 신을 모신 이세 신궁이 일본에서 가장 신성한 건축일 수밖에 없다.
일본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해마다 600만~800만 명이 이세 신궁을 찾는다. 일본 총리는 연초가 되면 해마다 이세 신궁을 찾아 참배하는 것이 전통일 정도로 중요한 성지이다.
20년마다 새로 짓는 언제나 새 건물
최고의 성지이고 최고로 신성한 건축이니 이세 신궁이 건축적으로도 특별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 이세 신궁은 그리 거대하지 않다. 일반 건물보다야 훨씬 신경 써 지었으니 특별해 보이지만 일본의 다른 중요 건물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하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거의 원시 건축으로 보일 정도로 형태가 간단하다.
이 건물이 진정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동서양 건축 역사에서 이세 신궁은 유례가 없는 정말 특별하고 유일한 건물이다. 이세 신궁이 언제나 새 건물이란 점이 그렇다. 이세 신궁은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짓는다. 이세 신궁은 20년마다 새로 짓는다. 또한 새로 짓는 방식이 아주 독특하다. 우선 땅을 두 필지로 나란히 마련한다. 그리고 그중 한 땅에 건물을 짓는다. 20년이 지나면 옆 빈 땅에 새 건물을 짓고, 20년 된 건물은 헐고 땅을 비워놓는다. 다시 20년 뒤에는 그 빈 땅에 또 새 건물을 짓고 원래 건물을 헐고, 이런 식으로 영원히 반복해가며 건물을 짓는다. 그래서 ‘언제나 새 건물’이다.
이렇게 연도를 정해놓고 건물을 옮겨 짓는 것을 ‘식년천궁(式年遷宮)’이라고 한다. 일본 신사나 신궁 중에서 이런 식년천궁제로 건물 옮겨 짓기를 하는 곳은 이세 신궁을 비롯해 극소수이다. 가장 신성한 곳에 적용되는 건축 방식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세 신궁처럼 20년마다 새로 지으면 언제나 목수들이 방법을 확실히 전수할 수 있다. 후배 목수가 선배와 함께 건물을 지으면서 따라 배우고, 다시 20년 뒤에는 후배가 선배가 되어 새로운 후배에게 방법을 전수한다. 바로 옆에 원래 건물이 있으므로 더욱 확실하게 늘 똑같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이세 신궁은 주기적으로 되풀이해 지으면서 1,500년 전 목조 기법을 전수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신성한 건물의 영원해야 할 디자인이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한국의 종묘, 일본의 이세 신궁은 모두 새로운 발상을 담아낸 건축이다. 진정 위대한 건물은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번에 시간을 뛰어넘는 건물을 짓지 않고 건물 안에 시간을 담아 시간과 공존하는 건물이 되었다는 점, 종묘와 이세 신궁은 놀라운 문화재이자 인류 전체의 건축 유산일 거다.
서양 건축의 두 축, 고전주의와 바로크
서양 문화사는 고전주의와 바로크라는 두 축이 중심을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 고전주의와 바로크는 성질이 정반대인 경향이다. 서양 문화사 전체를 보면 고전주의와 바로크가 서로 엇갈리듯 시대를 이끌며 교대하는 흐름을 보인다. 우선 고전주의는 서양 문화의 기본이 된 중심축이다. 고전주의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중심으로 하면서 엄격하고 정제된, 그래서 세련되고 우아한 것을 추구한다. 아름다운 비례를 중시하면서 인간의 이성을 드러내는 것이 고전주의의 철학이다.
반면 바로크는 감성을 중시한다. 세련되고 우아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비정형적인 것을,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환상성을 추구한다. 고전주의 건축이 절대기하학적 형태인 직선, 원 등을 중시하고 절제된 표현을 강조한다면 바로크는 곡선, 유동성, 꿈틀거림, 장식 등을 거침없이 활용한다. 자연스럽게 바로크는 볼거리에 치중하는 양식이 되었고, 바로크의 가장 큰 특징은 ‘극장성’이 되었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시각적 효과가 특징이므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화려한 무대 같은 건축, 그런 연출 기법이 바로크의 특성이 된 것이다.
고전주의는 품위 있어 보이는 대신 지루하다는 약점이 있다. 우아한 척하는 것이 멋져 보이기는 해도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해방감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억압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고전주의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그 지루함에 질린 사람들은 좀 더 감정에 충실하고 거리낌 없이 환상을 추구하는 반대 방향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바로크는 고전주의의 반대 짝패가 되어 고전주의에 지겨워진 사람들의 환상과 재미를 충족시키며 등장한다.
하지만 바로크 역시 오래 보면 고전주의보다 더 빨리 지겨워지는 속성이 있다. 화려한 것도 어느 순간에만 즐거울 뿐, 과잉된 것들이 주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감성적인 바로크에서 이성적인 고전주의로 돌아간다. 그 이전 고전주의와는 그래도 조금 달라지기 때문에 신고전주의가 되는 식이다.
신고전주의가 지속되면 다시 사람들은 엄격함 대신 분방함을 찾아 바로크식 흐름으로 되돌아가고, 그러면 바로크에서 조금 바뀐 로코코가 되는 식으로 변형된 바로크풍이 돌아온다. 서양 문화는 이렇게 두 흐름 사이를 오가면서 이어졌다.
화려한 권력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절대왕정 국가의 황제에게 이러한 바로크는 딱 맞아떨어졌다. 베르사유 궁전의 건물 자체는 고전주의풍입지만 실내장식은 모두 바로크와 로코코라고 할 수 있다.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이 엄청난 장식의 세계 속에서 황제는 자기 존재를 절대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베르사유 궁전이 남긴 가장 큰 부작용은 황실과 백성이 완전히 동떨어지게 만든 것이었다. 파리 시내 루브르 궁전에 있을 때에는 그래도 백성과 황실이 물리적으로 가까워 세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최소한이나마 인식할 수 있었는데, 베르사유라는 신도시를 지어 궁전을 옮기면서 황실은 백성과 완벽하게 따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들만의 차단된 세상에서 귀족들과 흥청망청 권력놀이를 즐기는 사이 프랑스 국민들의 삶은 처참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만다. 백성들이 굶어 죽고 부정부패에 신음하는 사실을 황실은 전혀 몰랐으니,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느냐.”고 했다는 것은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결국 참다못한 국민이 혁명을 일으키며 황제는 목이 잘린다.
문화를 이용한 독재자 히틀러
히틀러는 잔인한 독재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 문화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화를 정치에 가장 잘 써먹은 정치인이다. 정치적 혼란기에 아슬아슬하게 독일의 지도자가 된 히틀러가 단숨에 전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된 요인 중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문화’였다. 히틀러는 위대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꾸미는 데 문화 전문가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히틀러를 신적인 존재로 끌어올려 독일 국민이 광신도처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만든 것은 문화인둘이었다.
사상 최대의 권력 이벤트, 빛의 대성전
슈페어는 히틀러가 추구한 권위와 규모를 충실하게 앞세우는 건축의 전문가였다. 슈페어의 아이디어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놀라웠다. 그는 대공 서치라이트 130개를 가져다가 밤하늘에 수직으로 조명을 쏘아 올려 ‘빛의 줄기둥’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름도 ‘빛의 대성전’이 되고, 지금까지도 슈페어가 보여준 가장 뛰어난 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수십만 군중 속에 히틀러가 등장하고, 그 순간 거대한 빛기둥이 지상에서 하늘로 까마득하게 치솟는다. 대공 서치라이트의 조명은 실로 강력해서 몇 킬로미터 위까지 빛이 이를 정도였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장관에 사람들은 열광을 넘어 경외심을 가질 정도였고, 이 모든 광경 속에서 홀로 빛나는 히틀러는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존재로 각인되었다.
종묘와 이세 신궁, 경복궁과 자금성의 네 건물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네 건물 모두 절로 손을 대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동시에 그 안에 내재된 특별한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어루만지는 특별한 집들이다. 네 건물은 아시아만의 건물이지만, 세계 건축 모두에 적용되는 공통분모를 아주 잘 보여주기도 한다.
건축이란 결국 우리의 생각을 담는 것, 그래서 후대의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 문화가 되고 문화를 이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건축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진정한 건축은 우리를 생각으로 잡아당겨 서로 어루만지게 한다. 촉감과 시각과 이야기로 만지게 되는 집, 그런 집들이 많아질 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을 쉽게 설명해주고 그 외에도 다양한 건축 관련 상식이 풍부하게 담긴 좋은 책이다.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네 삶은 가만 들여다보면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집이 있는 건물에서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일터가 있는 건물로 출근하고, 식당이나 카페가 있는 건물로 점심 저녁을 먹으러 가고, 다시 집이라는 건물로 돌아와 잠이 든다.
이를 공간의 이동이라고 보는 게 조금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공간은 내가 주체가 되어 건축을 보는 시점이라 한다면 건물은 내가 하나의 객체가 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내 위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게 더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여겨지는 건가.
공간의 개념이 아닌 건물, 건축의 개념, 즉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수백 수천년을 그 자리에 버티고 섰는 건물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잠시 한 순간 머물다 가는 객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집이 그러하고, 일터가 그러하다.
여행을 가면 자연에 머무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대개 어떤 건물을 구경하러 간다. 파르테논신전을 보러가고, 피렌체성당응 구경하러 가고, 자금성을 보러 간다. 그럴 때마다 그 웅장함과 색다름, 아름다움 등 색다른 느낌에 사로잡혀 건물 앞에서 혹은 그 안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본디 건물 구경을 하러 갔으나 나의 초라함과 수십년에서 길게는 수천년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섰는 건물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고 온다.
이는 내가 느끼는 건물의 의미고, 이 책에서는 보다 다채롭고 전문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