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계간 「실천문학」에 분재한 후, 2000년 가을에 장편소설로 출간한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개정판. 박완서 소설의 오랜 축은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 속에 숨겨진 허위와 위선을 꼬집어냈던 그는 이 소설에서 돈과 결탁한 권력과 눈가림, 그 속에서 불거지는 상처와 고통을 더욱 극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특유의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수십년 세월을 무색케 하는 순간이 있다. 종합병원 내과 교수로 오십을 바라보는 영빈에게도 불쑥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현금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하고는 만나본 적 없던 그 계집애가 진료실 문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빈은 너무 놀라 네가 나를 기다렸다니 하고 말했다. 현금이는 내가 너를 왜 기다리냐며 깔깔 웃어댔다. 심 교수로 통하던 그에게 야 영빈아 하는 것이 꼭 그대로 현금이었다.
현금은 이혼녀였다. 적잖은 재산을 받아 나온 현금은 혼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었다. 영빈은 제 자리를 찾아가듯 현금의 곁으로 간다. 수십년 만의 재회가 얼마나 뜨겁고 열렬했던지 그들의 만남을 따르는 내내 나는 나보다도 영빈과 현금이, 그리고 이를 적어내려간 박완서가 훨씬 더 젊다고 느껴졌다.
일흔이 되어 이 장면을 쓴 박완서는 대체 얼마나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작가인지 나는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소설은 위선과 허영, 천박함에 대한 풍자로 이어진다. 재벌가 며느리가 겪는 고난이나 아내를 속이며 애인과 밀회를 즐기는 성공한 의사의 태도, 또 그 주변 사람들의 내밀한 사정따위가 하나하나 드러나며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까발려진다.
그 가운데는 우리네 삶 가운데서 크고 작게 겪어봄직한 이야기가 없지 않고, 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면 어디서나 입방아찧어지고 조리돌림 당할 만한 것이어서 박완서의 솜씨가 아니었더라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만한 것이다. 때문에 이 이야기에 대하여 <아주 오래된 농담>이란 제목이 붙은 데도 아주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수많은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주된 주제를 꼽자면 역시 허위의식에 대한 게 아닐까 싶다. 환자에게 병을 숨기는 것이나 아내에게 제 마음을 숨기는 것, 가정의 불안을 외면하는 것, 몰래 딸을 지우고 아들을 낳으려 하는 것, 죽음 앞에 돈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것 등은 모두 허울만 좇다 본질을 놓치고 심지어 적극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쾌락이며 이익만 좇으면서도 겉으로는 품위 있는 척 하는 인간들의 보잘 것 없음을 낱낱이 까발리는 이 소설의 솜씨는 과연 오늘의 현실을 향하여서도 오래된 농담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우리는 돌아볼 밖에 없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실한가를, 우리는 정말로 얼마만큼 인간다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