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두움 속에서도 삶의 환희를 찬양하는 시인이 쓰는 소설은 어떤 모습일까. <가벼운 마음>은 보뱅의 시적인 문장과 단어들이 가벼이 날아올라 춤추며 흐려진 영혼에 빛을 비추고, 우리 안에 오래 묻혀 잊혀졌던 것들을 깨워 다시 한번 삶의 환희로 우리를 초대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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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내용 요약
『가벼운 마음』(ISBN: 9791190533157)은 프랑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Christian Bobin)이 1995년 출간한 소설로, 2024년 1984Books에서 김도연 번역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된 약 160쪽 분량의 작품이다. 📖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크뢰조에서 태어나 2022년 세상을 떠난 보뱅은 『작은 파티 드레스』, 『환희의 인간』 등으로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는 고독한 삶 속에서 섬세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일상의 환희와 고통을 그렸다. 이
보뱅의 산문집 『환희의 인간』과 『작은 파티 드레스』의 좋음에 관해서는 스크롤을 휙휙 내리시면 발견하실 수 있다. 그 두 권의 책은 뭐랄까··· 세상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다는 걸 내게 알려주었다. 거기 실린 글들은 자신의 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조각을 품고 있었다. (···) 그리고 가을, 내게 도착한 보뱅의 소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기대는 여지없이 충족되었다.
보뱅을 읽을 때,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전부 중요하다는 마음을 별안간 먹으려고 한다. 보뱅은 세상을 그렇게 보니까. 어떤 사소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즉시 제 의미를 상실할 테니까. 마침 그가 이렇게 말한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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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자신의 유년부터 청년 시절까지를 기록한 회고록이다. 그는 당연하게도 보뱅의 눈을 가졌다. 인물은 언제나 그랬듯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하지만, 전작들과 다르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의 산문집을 읽는 일은 서로 다른 섬을 여행하는 것이라면, 이 책을 읽는 일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 인물이 "황금빛 눈"을 가지고 세상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주무르니 재미없을 수가 없지. 누구에게나 있는 역설과 모순의 공존이 그에게도 있어서 이야기는 이리로 저리로 흐르고.
그러다 내가 오래 머물렀던 장면들은. 그에게 쓴다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행위다.
"나는 흰 종이로 된 창문 하나를 성큼 뛰어넘는다. 밖으로 나가 내 늑대를 껴안은 후, 이 땅의 살아 있는 모든 이가 지닌 기본 권리, 사라지겠다고 말하지 않고 사라질 권리를 실행하고 돌아온다. 글쓰기는 이 권리를 행하는 다른 방식이다. 물론 조금은 수다스럽지만 아주 실용적이다." (32-33쪽)
그는 말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68쪽) 왜냐면,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말에서 해방"되어─"그런 건 너무나 충분히 가지고 있"(141쪽)다!─그저 침묵하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니까. 덜어내고 대뜸 사라지고 깎아내고 증발하고 기화하는 방식으로 종이 앞에 앉아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 사람. 자연에 생동하는 모든 존재가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기에, 오직 그것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 "더 완벽히 연주하기 위해 연주하지 않는 법"(135쪽)을 체득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탁자 위에 놓인 원고를 본다. 내게 결정 내릴 시간을 주고, 그 결정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 원고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결코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와 닮았을 다른 무언가에 다다를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하려는 일은 나와 많이 닮았다."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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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상은 이 책의 좋음을 반의반도 다 말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많이 밑줄 쳤는지···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으려나.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고. 거기서 마주한 풍경은 다름 아닌 나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