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쪽
여자는 사회경제적 존재로서의 입증 말고도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기를 쓰고 증명해 내야 한다.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더라도, 우선 자기 자신에게 '나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거야'하고 애써 납득시켜야 한다. 의미 있는 일이야, 중요한 일이야,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야. 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까 일을 하는 거라고.
📝161-162쪽
유대인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되기 전날 밤의 스산한 풍경을 그는 이렇게 썼다. 기도를 하거나, 술에 취하거나 욕정에 몸을 맡기는 등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하던 그 밤, 엄마들은 음식을 준비한다. 엄마들에게 '밥'이란 그런 것이다. 내일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멈출 수 없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 혹은 최대한의 것. 엄마들은 자신의 일을 한다. 살아 있는 내내.
📝175쪽-176쪽
엄마와 관련된 충격적인 욕들이 많지만, 나를 가장 서글프게 하는 욕은 '맘충'이다. 엄마와 벌레를 나란히 놓는 말. 사람을 벌레로 비유해 짓밟아서 슬픈 것이 아니라 엄마의 노동을 완전히 삭제하고 무시하는 조어이기 때문에 서글프다. 저 단어는 드러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들의 수고로운 시간은 애초에 없는 것인 양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더 나쁘다. 아이와 함께 집에 있으면 '노는 사람'이 되고, 우는 아이 달래려고 혹은 잠시 바람이라도 쐬려고 집에서 나오면 대뜸 '벌레'로 눈에 뜬다.
중략
맘충이라는 말이 모든 엄마를 욕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제 아이밖에 모르는 몰염치하고 이기적인 엄마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허름한 주장도 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눈에 띄지 않아야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시선은 서글프다.
📝177쪽
엄마를 '벌레'취급하는 이들은 정녕 잊어버린 것일까. 그들 역시 그 벌레의 몸속에서 열 달간 머물렀다는 것을. 그 벌레의 지극한 보살핌이 아니었다면 지금 숨 쉬고 살아 있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저자의 전작들 읽고 이번 책도 읽게 되었다.
저자의 의견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성'편에는 굉장히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여성의 몸에 대한 말들은 그래서 더 정직하게 여성의 목소리로 들린다. 외설적이거나 성적인 느낌이 아닌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말들로.
시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50대들이 바라보는 2030의 여성들의 삶도 녹록지는 않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지고 젠더 감수성이라는 게 인식되고 있지만, '욕'편에서의 내용들을 보면서는 여성형의 욕들이 더 부정적이고 모욕적으로 사용되는 문화가 더 강하다는 걸 그 많은 욕들의 서사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편 독-'혼자가 되는 집'에서 혼자 생각한 것은 인생 후반부에 다시 삶의 형태와 결을 정리하고 다듬는 여성의 마음이 느껴졌다. 저자의 제주 여행기 속에서 여성의 후반부 삶의 결을 되짚고 다독이는 마음의 상태들이 그 나이쯤 그런 인생의 과제들을 넘어서고 나면 공감하게 되리라는 미래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 전해졌다. 쓸쓸한 듯 그러나 꼭 필요한 순간들이 아닐까.
선명한 사고와 현실의 초점들과 더불어 나이 들어감에 정체성에 대한 자기 확신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