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569권.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시어로 주목받아온 김선오 시의 두번째 시집. 부재하는 ‘너’를 통해 사랑의 영원성을 길어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시집에서 김선오는 타자를 향한 인식의 전환을 도모한다.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0
아직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게시물
1
이 책이 담긴 책장
요약
세트장 (김선오 시집) 내용 요약 🎬
김선오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세트장』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계가 견고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세트장’과 같다는 독특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시인은 우리 삶을 관통하는 불안과 허무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위태로운 현장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갑니다. 이 시집에서 ‘세트장’은 가짜이자 허구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연기해야만 하는 유일한 무대이기도 합니다. 🏠
9월 말에 읽은 시집이지만 타이밍을 놓쳐 10월 말에 감상을 쓴다. 사실 쓰기 싫다. 이 시집 참 좋았지만, 시집에 관해 감상을 쓰는 일이 내게 어렵기에 그렇다. 왜 어렵지? 한 권의 시집에는 너무 많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게 당연하긴 하다.) 소설집은 많아봤자 아홉 편 정도의 단편이 실리고 아홉 편이라면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다 느끼는데 시집은··· 일단 다 읽고 나면 뭐가 있었고 뭐가 없었는지 기억도 안 나서. 완전히 기억하려면 여러 번 읽어야 하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서(라고 일단 쳐두자).
고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은··· 가장 좋았던 시 한 편에 관해서 쓰기! 이 얼마나··· 효과적인 방법인지···
*
「범세계종」. "버려진 놀이공원"에 사진을 찍으러 온 '나'와 당신. '나'는 회전목마를 타고, 당신은 나무에 기대어 "두 개의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두 개의 미래"도 함께 들리는데, "필름은 내장된 미래"니까.
'나'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상이 입혀진 필름은 새것보다 무거울까 / 훼손되어 더 가벼울까" 묻고. 필름에 상이 맺히는 것이 더하는 방식인지 빼는 방식인지, 그러니까 양각인지 음각인지. 그러다 갑자기 아홉 살 때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 속 이야기. 운동장을 바라보다 안경테가 부러졌고 때마침 축구공이 얼굴에 날아왔다는. 다시, 축구하는 형들을 보고 있었고, 그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안경테가 부러졌고, 안경테가 축구공을 불러들인 것처럼 공에 맞았다는.
이 이야기를 말하고 나서 목마는 멈추고 목마가 멈추면 이 시는 끝나는데. 나는 이 이야기 앞에 한참 서서 이게 무슨 말이지?─보다 정확하게는 나는 이걸 어떤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원하지? 물었다. 어차피 전부 알 수는 없을 테니. 나 좋을 대로 읽어버리면─언제나 최선은 다해야 한다─그만.
이 시에서 '보는 행위'는 중요하다. '나'를 찍는 '당신'은 '나'를 보고 있고, 마찬가지로 '나'도 서 있는 '당신'을 본다. 그전에 이들은 놀이동산에 도착해 둘러'보며' 어디서 사진을 찍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아홉 살 때 '나'는 축구하는 사람을 보았고 그도 '나'를 보았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는 행위 사이에는 보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보이지 않는 보는 행위를 가시화하는 사물들. 안경테는 부러지고, '나'의 눈은 공에 맞고, 카메라는 무언갈 포착하고, 거기 담긴 필름은 드러낼 준비를 한다. 이 모든 사물은 우리가 우리를 볼 때, 그 사이에서 무엇이 주고받아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영원이 되어버릴 수 있는지···
"난시가 심"한 '나'에게 부러진 안경테는 무수하게 많아 보이고 그만큼의 공이 그에게 날아올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눈이 '당신'을 너무 많이 구성하고 있어 때로 '당신'이 카메라라고 느낀다. 너무 큰 렌즈를 달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물체가 동시에 보이는 사람을 피사체로 찍을 때, 그들을 둘러싼 음악(청각)과 추위(촉각)와 피딱지 같은 꽃(후각)이 평면의 필름에 시각 이미지로 고인다···
마지막 연. 카메라를 내리자 당신의 두 눈이 드러나는 장면은··· 너무 당연한 일이면서도 왜 이리 소름 끼치는지. 당연해서 소름 끼치고 소름 끼쳐서 좋고 소름 끼치게 좋다. 보는 행위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무엇이다 말한다기보다는 우리가 우리를 보는 그 영원 같은 한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골똘하게 천착하는 사고 실험 같아서. 아무튼 이 시집 추천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