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아무튼 시리즈로 나온 번역가가 쓴 책이라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번역가라는 직업 특성상 사전은 작업 도구일 거라는 유추는 했으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일화를 읽으면서는 작가가 번역가를 하지 않았더라도 글과 관련된 직업군에 들어설 확률이 높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작업이 끝이 나지 않는, 완결성이 있을 수 없는 그럼에도 묵묵히 해 나가는 사전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인생의 궤와도 맞닿는다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외국 사전의 수정 작업을 발표 연도가 계속 해서 밀리고, 새로운 단어들은 끊임없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언중의 단어들을 고르는 일, 용례들을 싣는 일들의 과정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라서 뭉클하게 다가온다. 알아주지 않지만, 이런 노력으로 우리가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들_ 종이 사전을 쓰다가 디지털 사전을 써 본 경험의 세대로서 작가가 말하는 이 부분에 사전 편집자와 출판사들의 역사들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사전의 변화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의 전환으로 더 편한 사용성이 주어졌지만, 모든 이들이 누리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다른 디지털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본다. 노인을 위한 사전을 만들고 싶다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는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래어, 이모티콘, 약어, 아이들의 새로운 언어들은 아직까지는 따라잡지만 어느 순간은 그 간극이 요원해지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사전에 대한 에세이로 작가의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의미있게,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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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그림자가 사전을 믿지 말라
사전의 의미의 닻일 뿐이다. 닻줄을 얼마나 길게 늘이느냐에 따라 배는 꽤 멀리, 때로 위험스러운 곳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사전을 닻으로 삼아 최대한 멀리 뻗어나가야 한다. 단어의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야 한다. 언어는 실제로 쓰이면서 의미가 증폭된다. 어떤 단어를 새로운 맥락에 갖다놓으면, '새로운 단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어의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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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부터 zyxt까지
사전은 엄밀하고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한편 구체성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사전은 마치 경전처럼 권위적으로 지시하지만, 사전이 담으려 하는 언어는 한시도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하면서 사전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사전 편찬의 두 원리인 규범주의와 기술주의는 지속적으로 모순을 일으킨다.
사전 편찬은 결코 완성되지 못하고 인간의 노력을 끝없이 요구하는 바벨탑과 같은 작업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일에 열정을, 삶을 바친다.
사실 번역가와 사전 편찬자는 그것 말고도 비슷한 점이 많다. 텍스트 뒤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게 최대한 존재를 감춰야 한다는 점도 그렇다. 아무리 애를 써도 완벽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도 번역과 사전 편찬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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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사전
내가 제아무리 열심히 단어를 모으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챙겨 보아야, 내가 잃어버리고 놓치는 단어의 수는 하루하루 점점 늘어난다. 내 사전은 점점 더 얇아지다가, 어느 날에는 수명을 다할 것이다. 각 단어에 얽힌 나의 기억, 경험, 감정, 느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껏 읽었던 아무튼 시리즈 중에 가장 흥미롭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집착하는 나란 사람은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마다 국어사전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최적의 단어를 찾곤 한다. 아무도 몰라주는 나만의 미련한 노력을 알아줄 만한 사람을 만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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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가 그 문장의 전체 뜻 혹은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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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사라지면 그 단어는 죽고 사전 속에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