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은 김호연 작가의 장편소설로, 2021년 4월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ISBN 9791161571188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268쪽에 걸쳐 서울 청파동의 작은 편의점 ‘ALWAYS’를 무대로, 다양한 삶의 무게를 지닌 이웃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40만 부 판매를 기념한 벚꽃 에디션은 반지수의 화사한 표지로 재탄생하며, 2022년 국립중앙도서관 올해의 책으로 선정
2022년을 보내며 읽은 소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리워질 즈음, 가슴 따뜻해지는 드라마 같은 소설 덕분에 따뜻한 연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느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중요성.
우리 곁에 있는 편의점에서의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마음에 와서 닿아 스며드는 작가의 글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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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야외 테이블은 확실히 동네의 쉼터이자 작은 여유가 있는 곳이다. 그녀가 수차례 민원과 직원들의 불평에도 이곳을 없애지 않은 이유 였다.
"서운하고 서러워야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지. 나가서 다른 곳 가봐야 여기가 그립지. 그리워야 고마움도 더해지고, 안 그러냐?"
"벌써 고맙거든요!”
독고 씨는 그동안 짜몽이란 녀석을 챙겨줬겠지. 그러기에 저 불량한 녀석이 두말 않고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고......
선숙 역시 미간이 뻐근하긴 하지만 좀처럼 누굴 봐주는 적이 없는 자신에게 생긴 변화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기분이 좋아졌다.
독고 씨가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돌아서 편의점을 나섰다. 딸랑. 종이 울린 순간 선숙은 자동 반사처럼 삼각김밥 밑에 둘 편지의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본 사내는 헛웃음을 한 번 짓더니 계산대 바닥을 통통 두드렸다. 경만은 코트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사내에게 목례를 한 뒤 지갑을 열어 카드를 집어넣었다.
지갑 속에서 딸들이 원 플러스 원으로 웃고 있었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 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 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독고. 노인은 자신을 독고라고 밝히며 기억해 달라고 했다. 젠장. 그는 독고가 이름인지 성인지 덧붙일 기력이 없었고 나 역시 물어볼 의욕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독고는 죽었고 나는 그를 기억하기 위해 독고가 되었다.
한마디로 사람 구실을 하게 됐고 냉동인간의 뇌처럼 얼어 있던 그곳에 열선이 깔리는 게 느껴졌다. 기억과 현실 사이에 놓인 빙벽이 녹아내리고 있었고, 서서히 빙하 속 매머드 같은 덩어리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의 시체들.
힘이 남았을 때 서울역을 떠나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큰 강의 다리 한 곳에서 뛰어내리겠다 마음먹었다. 이 겨울 이곳에서 나는 그 뛰어 내릴 힘을 벌어보겠다 다짐을 했다.
내 가족의 해체, 내 인생의 불행, 아내와 딸을 잃어야 했던 것은 내 무심함과 오만함 때문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짧게 친 머리 아래 브이자 눈썹과 작은 눈이 마스크와 한 쌍인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과 손소독제 의 알코올 향이, 라텍스 장갑의 익숙한 감촉과 자연스러운 느낌 이 과거의 나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의사였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 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
"손님한테... 친절하게 하시던데… 가족한테도... 손님 한테 하듯 하세요. 그럼... 될 겁니다."
"손님에게라... 그렇군. 여기서 접객을 더 배워야겠네."
사실 딱 한 번 한강에 간 적이 있었다. 다리에 올라 몸을 던지려 했다. 실패했다. 사실 올겨울을 편의점에서 보내고 나면 마포대교 혹은 원효대교에서 뛰어내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