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쉐얼이 저녁에 자신과 함께해주는 게 있다고 말하자 단단히 놀란 슈냥이 재빨리 물었다. 누가 함께 해주는데? 안쉐얼이 말했다. “밤에 달과 별이 있잖아. 그것들은 발이 길어 창문을 넘어올 수 있어. 넘어와서는 나랑 같이 베개를 베고 잠자는 내 곁에 있어준다니까. 만약 달과 별이 없는 밤이면 어쨌든 바람은 있잖아.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가 바로 나와 말하는 소리야.” 슈냥이 물었다. “바람이 없으면?” 안쉐얼이 말했다. “내 마음속에는 많고 많은 바람이 담겨 있어. 바람을 토해내 나자신과 대화하는 거지.” 슈냥은 할 말을 잃었다. p.46
탕한청이 보기에 자원 파괴를 대가로 한 발전은 추운 겨울을 버티려고 자신의 다리를 베어 그것을 장작 삼아 사르는 것과 같아 평생 장애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p.71
안위순은 결국 결혼 문제를 운명에 맡겼다. 기다려보지 뭐, 언젠가는 오겠지,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캄캄한 밤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결국 그 품 안으로 쏙 들어가는 달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위순에게도 기다리던 좋은 달이 쏙 들어왔다. p.106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세계는 어쨌든 흩어져 사라졌으니 당연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의 세계는 도리어 안다잉에게 소리 없는 힘을 주었다. p.199
목숨을 건진 그 좁디좁은 창문은 그들 운명의 상사목이었다. 상사목은 한 아가씨는 생의 차안으로 보내고, 한 남자의 우람한 몸집은 옭아매 죽음의 피안에 남겨두어 심연 속 물고기가 되게 했다. p.212
신치짜는 신신라이의 유골을 신카이류 무덤 옆 숲속에 뿌렸다. 신신라이의 새하얀 유골과 새하얀 눈이 하나로 녹아들었다. 신치짜는 유골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날리는 눈이라 여겼다. 그 눈은 세상 풍진의 숨결을 지니고 있어 영원히 녹지 않을 터였다. p.442
거뤄강은 여전히 힘차게 흐르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나비들을 녹이고 있었다. 산 정상은 고요했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안쉐얼은 구주소나무가 발산하는 시들지 않은 푸르름을 보았다. 이렇게 새하얀 눈과 푸른빛의 솔가지를 소유한 산 정상은 겨울이면서 역시 봄이었다. p.459
사실 삶이란 하늘의 시편이 아니라 범속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눈물인데 말이다. p.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