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경 지음 | 뿔(웅진) 펴냄

꾼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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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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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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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화경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자유를 얻고, 사랑을 얻고자 했던 한 사내의 뜨겁고도 아름다웠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이야기 하나로 신분과 경계를 뛰어넘어 조선 팔도를 제 세상으로 취해 보려던, 그래서 조선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꿈꾼 한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관한 장편 서사이다.

어떤 것에도 젖지 않고 매이지도 않으면서 '물 위를 활주하는 소금쟁이'처럼 조선의 땅 위를 재재거리며 걸어가고 싶었던 김흑. 그는 길 위에서 만난 여러 인생들의 구구절절한 진짜 사연들이야말로 책에 없는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길 위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세상에 팔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패관소품이라 규정한 조선시대 정조의 문체반정 역사 속에서 조선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했던 아름다운 사내 김흑의 신명 나는 이야기가 저잣거리와 사대부가를 뒤흔들어 놓고, 나라님의 침소에까지 몰아친다. 이야기에 미쳐 권력을 저당 잡히고, 명예를 잡아먹고,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전 생애와 목숨을 바친, '꾼'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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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이화경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자유를 얻고, 사랑을 얻고자 했던 한 사내의 뜨겁고도 아름다웠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더불어 이야기 하나로 신분과 경계를 뛰어넘어 조선 팔도를 제 세상으로 취해 보려던, 그래서 조선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꿈꾼 한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관한 장편 서사이다.

어떤 것에도 젖지 않고 매이지도 않으면서 '물 위를 활주하는 소금쟁이'처럼 조선의 땅 위를 재재거리며 걸어가고 싶었던 김흑. 그는 길 위에서 만난 여러 인생들의 구구절절한 진짜 사연들이야말로 책에 없는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길 위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세상에 팔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패관소품이라 규정한 조선시대 정조의 문체반정 역사 속에서 조선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했던 아름다운 사내 김흑의 신명 나는 이야기가 저잣거리와 사대부가를 뒤흔들어 놓고, 나라님의 침소에까지 몰아친다. 이야기에 미쳐 권력을 저당 잡히고, 명예를 잡아먹고,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전 생애와 목숨을 바친, '꾼'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출판사 책 소개

“이 시대 최고 이야기꾼이 탄생했다.
뒤늦게 발견한 한국 문학의 축복이다!”
― 소설가 구효서


▣ 최명희의 『혼불』의 품격이 부활한 듯한 고아한 역사소설


이화경 장편역사소설 『꾼』(부제: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이 문학에디션 뿔에서 출간되었다. 1997년에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꾼』은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자유를 얻고, 사랑을 얻고자 했던 한 사내의 뜨겁고도 아름다웠던 시절에 관한 가슴 절절한 이야기이자, 이야기 하나로 신분과 경계를 뛰어넘어 조선 팔도를 제 세상으로 취해 보려던, 그래서 조선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꿈꾼 한 인간의 본질적 욕망에 관한 장편 서사이다.
조선 정조 시대를 무대로 펼쳐진 『꾼』은 작가의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인간 욕망과 자유의 본질에 대한 섬세한 문학적 탐구를 통해 그 시대 언어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육화해 냈으며, 흔들리기 쉬운 가녀린 인간 내면의 본질을 세밀하게 꿰뚫는다.
우리네 삶이 보여 주는 다채로운 빛깔의 풍경을 진지한 관찰과 예리한 인식 안에서 ‘혀’ 하나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현실 안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세상 밖의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시대 아름다운 청년 ‘김흑’의 고뇌와 방황이 톱니바퀴가 물리듯 작가의 치열한 세계 인식과 함께 형형색색의 지도를 그려나간다.

♣ 정조시대의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傳奇?) 이야기는 ‘메타픽션’이라는 역사소설의 새로운 개성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작품은 근대부터 현대를 관통하는 문학의 존재 가치를 탐구하고 반성하는 문제적 좌표를 제시한다. 근대의 풍속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그것을 육화해 내는 이화경의 고아(古雅)한 문체는 최명희의 『혼불』을 계승할 만한 역사소설의 품격을 성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 이경호(문학평론가)

♣ 문체가 이념을, 사회를, 체제를 전복시킨다? 조선 후기 문학 작품들에 부쩍 많아진 것 중 하나가 소소한 일상에 대한 묘사들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되묻고 싶을 만큼 ‘경박하고, 섬약하고, 경솔하고, 감상적이고, 시시콜콜한’ 묘사들로 점철된 글들이 그 시대를 풍미했다.
나라님이 그토록 싫어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은 바로 그 글 때문에 세상과 단절되고도, 분노와 좌절과 자기비하와 연민과 외로움을 붙잡은 채, 여전히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써댔다. 그들의 꿈과 욕망은 광대들의 그림자놀이, 수많은 연인들의 그림자 사랑처럼 덧없다.
덧없어서 아프고, 덧없으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의 욕망은 각자의 생을 끌고 가는 동인으로 연결된다. 작가 이화경은 이루고 싶은 세상을 꿈꾸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는 인물들을 소설 속에서 촘촘하고도 끈덕지게 엮어내고 형상화한다. - 정순희(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조선의 왕과 조선 최고 이야기꾼 사내의 세상을 건 한판!

돈을 꾸어다 마시는 술을 좋아했고, 아무도 없는 객점의 빈방에서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정 거리를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절름발이와 귀머거리를 좋아했다.
포도와 벼룩과 거미를 좋아했고,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노래를 좋아했고, 거칠고 사나운 욕설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말과 화려한 불빛을 좋아했고, 가물거리는 불빛 아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슬픔을 좋아했고, 서러움을 좋아했고, 고독을 좋아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좋아했고, 슬픈 시를 좋아했고, 무엇보다 불행하게도 소설을 좋아했다. 차와 술에 빠졌고, 책 속에 파묻히는 것을 좋아하였고, 시 짓는 일과 소설 쓰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공(公)은 부귀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빈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도 있고, 바보 같은 책벌레라 할 수도 있다. (P.10)

작품의 배경은 조선의 가을, 정조가 정학(正學)을 널리 독려하고,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명예를 복권하고자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던 시절이었다. 정조의 문체반정 역사 속에서 당시 유례없이 널리 읽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마저도 패관소품이 되어버렸고, 조선 팔도의 백성들이 남 몰래 탐독하기 시작한 언문소설(이야기책)들을 경박하고 감상적이며 시시콜콜한 글일 뿐이라며, 그러한 소설체를 쓰는 선비들과 백성들, 관료들을 교화하고 단속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때에 성균관 계집종의 아비 없는 아들로 태어나, 성균관에서 잔신부름을 하며 성장한 김흑은 바꿀 수 없는 신분의 귀천에서 해방되어 조선 팔도에서, 세상 밖에서 자유롭고자, 흰 손을 가진 남자들이 주인인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강한 놈이 되어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자신을 해치지 못하는 센 사내가 되리라는 꿈을 지니고 혈혈단신 어머니 곁을 떠난다.
어느새 길 위에서 청년이 된 김흑은, 반듯한 이마에 코뼈가 우뚝하고 무성한 숲처럼 검게 자란 수염을 비집고 나온 입술은 빨갛고 치아는 상아처럼 튼튼하고 고운 데다가, 얼음처럼 투명하고 하얀 낯빛과 머루처럼 까맣고 구슬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깊게 빛나, 계집은 물론이거니와 웬만한 사내들의 마음도 녹일 듯 수려한 용모의 사내가 되었다.
어린 시절 성균관에서 유독 자신을 귀여워해 준 이결 선생이 밤늦게까지 들려주던, 마음을 흔들어놓던 옛이야기들을 가슴에 품은 채, 어떤 것에도 젖지 않고 매이지도 않으면서 “물 위를 활주하는 소금쟁이”처럼 조선의 땅 위를 재재거리며 걸어가고 싶었던 김흑은, 길 위에서 만난 여러 인생들의 구구절절한 진짜 사연들이야말로 책에 없는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며, 길 위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세상에 팔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세상에 사연 없는 인생은 없었다. 인생의 사연 속에는 너무도 기이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고단한 길 위에서, 주막에서, 그 인생들은 휘황찬란한 글속은 없어도 절절한 사연들을 맛나게도 풀어냈다. 쓰고 달고 시고 짠 인생의 맛이 그들의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때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마른 볼을 적시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풀어내는 인생들의 사연들을 들으면서 김흑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PP.53~54)

장돌뱅이들 사이에서 소문난 술막에 묵게 된 김흑은 왕년에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소문난 주모에게 자신의 밥값으로 이야기를 해준다며 내기를 건다.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재미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걸치고 있는 것을 하나씩 벗는 거예요.
만약에 다 들었는데도 제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제가 옷을 다 벗을게요.”

겨울밤, 김흑이 술막 주모에게 들려준 중국 금릉 땅의 곱디곱던 기생의 사랑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주모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마음을 위무해 준다. 삶은 한바탕 꿈이라던 그녀의 마음에 소리 없이 첫눈이 내리고 김흑과 주모는 하룻밤 서로의 체온을 뜨겁게 나눈다.
저잣거리의 장꾼들 사이에서부터 사대부가 마님들의 마음과 치맛속을 뒤흔들어 놓으며, 나라님의 침소에까지 김흑의 상서로운 외모와 그 외모만큼 아름답고 두려운 이야기를 짓는 재주에 대해 무성한 소문이 휘몰아치며, 사람 마음 빼앗는 ‘불온한 놈’에 대하여 나라님께 상소가 올라오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자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항간에는 검은 놈으로 불린다고 하옵니다. (중략) 외출할 때마다 소매 가득 여러 빛깔의 수염을 넣고 다니면서 몇 발자국 뗄 때마다 바꿔 다는 게 꼬리 아홉 달린 여우를 능가하는 놈이라 하옵니다. 말이 쇠못을 씹듯이 패관잡기 한 글자도 백 번 갈아 연마하여 놈의 이야기를 들으면 첫눈에 넋이 나간다고 하옵니다. 창기와 벗하기를 일삼고, 권문세가의 부녀를 희롱하길 즐기고, 성적 노략질을 감행하는데도 놈이 떠나면 연인과 이별하듯이 두레박줄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린다 하옵니다. 놈의 변화가 너무도 화려하고 비상하여 혹세무민할까 두렵사옵니다.” 말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놈을 당장 치도곤을 낼 것처럼 불불거렸지만 대신의 말투는 마치 천변만화하는 놈에 도취된 듯했다. (PP. 314~316)


▣ 장엄한 조선의 가을을 살다간 뭇 이야기꾼들의 절절하고 뜨거운 이야기
조선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했던 김흑의 불꽃같은 삶과 사랑

『꾼』에는 김흑이 이야기꾼으로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뜨겁고 절절한 이야기꾼들의 삶으로 다시 이야기를 전한다. 삶은 취생몽사라던 이결 선비가 겪은 불운한 글쟁이로서의 삶을 다룬 이야기, 산속에 틀어박힌 채 언문소설에 빠져 사는 땔나무꾼이 들려주는 만백성이 평등하고 존귀한 ‘이루어야 할 세상’에 대한 이야기, 영웅소설을 듣다 임경업 장군의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이 전기수를 낫으로 찔러 죽인 청중의 이야기, 고자 남편 덕에 평생 목석처럼 늙어야 했던 양반가 아낙이 털어놓는 남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 발을 딛고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불구의 몸을 가진 처녀가 책을 통해 세상 밖을 꿈꾸다 이야기꾼 김흑과 사랑에 빠진 슬픈 사랑 이야기…….
이야기에 미쳐 권력을 저당 잡히고, 이야기에 미쳐 명예를 팔아먹고, 이야기에 미쳐 사람을 죽이고, 이야기에 미쳐 자신의 전 생애와 목숨을 바친, ‘꾼’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보자기가 걷히는 순간에 처녀의 버들 같은 눈과 김흑의 별 같은 눈동자 넷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엉겼다.”

한편 나라님의 화성 행차 때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의정의 딸 ‘유리’에게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김흑. 이후 김흑은 “하루 종일 굶은 개처럼 하늘에 개밥바라기별이 뜨기를 기다렸다가 어둠이 이슥해지면 처녀의 집 담장을 넘고 새벽 별이 스러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마침내 세상과 격리된 채 스스로의 생을 “내밀한 고요”로 가득 채우고 사는 유리 아씨와 마주 보고 그녀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끼기 위해 방물장수로 여장하고 철통같은 벌열 가문의 문지방을 유유히 ‘걸어’ 넘어 그녀와 대면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떤 소설보다도 소설 같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하여 나라님(정조)에게 “의리”를 밝혀야 한다며 상소가 올라오고, 정조가 조정 대신들에게 승부수를 던져야 할 수밖에 없는 억겁의 나락 속에서 통곡과 혈루의 눈물을 쏟아내는 와중에, 권문세가의 아씨를 사랑하게 된, 그리하여 신분을 뛰어넘어 혼례도 치루지 않은 채 “꽃잠”을 자고 만 김흑과 유리의 운명은 조선의 장엄한 칼바람 속에서 비극을 예고하게 되는데…….


▣ 시공간을 초월하여 꿈틀대는 욕망과의 조우, 서로의 삶에 말을 거는 수작(酬酌)


즉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금등 편을 잊지 않았다. 아니, 아버님이 비운에 돌아가시고 난 뒤에 피눈물을 쏟으며 언젠가는 이 고사를 인용해서 아들인 사도 세자가 아버님이신 선왕을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밝히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수천 번을 짓고 허물었던 모년의 사건에 대한 그의 이야기 구조 안의 핵심이 금등지사에 있었다. (중략) 아들이 모든 죄과를 뒤집어쓰고 죽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동기와 절대적인 목적, 죽여야만 했던 아버지의 슬픔과 천추의 한이 함께 표현되어야만 하는 이야기,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그는 이 자리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것이다. (P.215)

한갓 고전에 나오는 이야기 한 조각(금등지사)으로 뒤주에 갇힌 패역의 죄인(사도 세자)이, 아버지(영조)를 대신하여 “생때같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효자로 탄생하게 만든 정조의 역사적 정치 행보는 왕권을 신격화하고 절대화하여 왕의 제국을 이루려 했던 정조의 지선(至善)과 울분에 찬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연출해 낸 소름 돋는 ‘소설’ 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라면 끔찍하게 싫어했던 정조가 대신들이 보기엔 저잣거리에 떠도는 패설보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설 한 편을 짓고 있는 것과도 같았을 것이다. 정학을 크게 밝혀 근본을 돌이키는 데 평생을 바쳤던 조선의 왕마저도 ‘이야기’에 의지하여 ‘이야기’로 자신의 뜻을 이룬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듯 이화경 장편 역사소설 『꾼』은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어 세상을 뒤엎고자 했던 김흑의 이야기이자, 별별 인생을 살다간 이야기꾼들의 삶의 이야기를 고소하고 차진 목소리와 고아한 필치로 그려놓았다. 귀하디귀한 나라님도 한 사람의 이야기꾼이었고, 천하디천한 계집종년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상황을 벌인 “꾼”인 세상.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이가 “꾼”인 나라가 바로 이화경의 작품 속 세상이다.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짓고 주먹을 불끈 쥐다가도 손뼉 치며 호탕한 웃음을 웃거나 허허롭게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 내쉬고 아련한 추억에 취해 버려 헤어 나오기 위해 몇날 며칠 잠 못 들었던 건, 모두 이야기의 “감염력”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의 힘이고, 이야기의 본질이자, 이야기의 생명력일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와 이야기를 잉태시킨 인간 욕망의 본질은 여전히 세상에서 꿈틀거린다. 이러한 작가적 문제의식은 조선 시대를 무대 삼아 심혈을 기울인 역사적 고증과 더불어 소설에 대한 숙명적 탐구를 동시에 이룩해 내고 있다.

이야기는 허공에 의지해 그림자를 잡는 짓이고, 현실에 의지한 거울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야기는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붙드는 것이고, 거북에게 털을 구하고 토끼에게서 뿔을 찾는 것이자 먼지에 글을 새기고 그림자를 입으로 불어 흔들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한마디로 뒤웅박을 차고 바람을 잡는 것이었다. (P.199)

주인공 김흑이 꿈꾸었던 “나라님에게도 팔아먹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세상, 나라님 몰래 이야기꾼들이 내밀하게 수작 거는 세상, 이러한 세상 안에서 우리네 인생들이 씨줄 날줄로 촘촘히 엮이며 살맛 나는 삶의 풍경을 자아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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