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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4.12.8
페이지
340쪽
상세 정보
아마존 역사 분야 1위, 60주 연속 베스트셀러. 이미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종교화된 예수를 그리지 않는다. 저자들은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예수 당대의 역사를 섬세하게 복원해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고대 유대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유대 사회의 갈등과 모순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역사도 함께 그려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교리의 동굴에 가둔 아주 얌전하고 점잖은 예수를 세상을 선전하고 있다. 그것은 뇌관을 제거한 예수다. 그들은 예수가 기존질서에 온몸을 던져 충돌하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 침묵한다. 그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예수를 죽인 세력들에 대한 변호가 되고 만다. 예수의 삶과 희생을 무(無)로 돌리는 행위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통쾌한 역설이 된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두 저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의 헌신과 저항, 그리고 그 이름이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 경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뜨겁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언급한 게시물2
realstar2
@ads8i3kmrysc
예수는 왜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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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Hyeok Kim
@7wygusdktfyd
예수는 왜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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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아마존 역사 분야 1위, 60주 연속 베스트셀러. 이미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종교화된 예수를 그리지 않는다. 저자들은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예수 당대의 역사를 섬세하게 복원해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고대 유대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유대 사회의 갈등과 모순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역사도 함께 그려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교리의 동굴에 가둔 아주 얌전하고 점잖은 예수를 세상을 선전하고 있다. 그것은 뇌관을 제거한 예수다. 그들은 예수가 기존질서에 온몸을 던져 충돌하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 침묵한다. 그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예수를 죽인 세력들에 대한 변호가 되고 만다. 예수의 삶과 희생을 무(無)로 돌리는 행위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통쾌한 역설이 된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두 저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의 헌신과 저항, 그리고 그 이름이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 경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뜨겁게 밝히고 있다.
출판사 책 소개
아마존 역사 분야 1위, 60주 연속 베스트셀러
예수의 삶과 죽음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책!!
이 책은 이미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종교화된 예수를 그리지 않는다. 저자들은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예수 당대의 역사를 섬세하게 복원해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고대 유대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유대 사회의 갈등과 모순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역사도 함께 그려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교리의 동굴에 가둔 아주 얌전하고 점잖은 예수를 세상을 선전하고 있다. 그것은 뇌관을 제거한 예수다. 그들은 예수가 기존질서에 온몸을 던져 충돌하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 대해 침묵한다. 그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예수를 죽인 세력들에 대한 변호가 되고 만다. 예수의 삶과 희생을 무(無)로 돌리는 행위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통쾌한 역설이 된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두 저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의 헌신과 저항, 그리고 그 이름이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 경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뜨겁게 밝히고 있다.
예수를 죽인 사건에서 예수의 시신은 사라지고 없다. 복음서는 이것을 ‘부활’로 증언하고 있다. 당대의 역사에서 예수를 죽인 자들은 승리자였고, 예수는 패배자였다. 그러나 역사에 과연 누구의 이름이 남아 있는가? 진정한 승리는 처형당한 사형수 예수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예수를 죽이는 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새롭게 일깨워 주는 이 책은 우리가 새로운 희망을 갖기 위해 필요한 뇌관이다.
_김민웅(성공회대 교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순간,
인류사의 가장 강력한 신화가 창조된다.
그 신화와 믿음 이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예수는 왜, 어떻게 죽었는가?
예수의 삶과 죽음으로 세상은 바뀌었다!
인류사를 통틀어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인간 중에서 지금의 세상을, 지금의 세상의 모습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꼽을 것이다. 2,000여 년 전 로마제국의 변방에서 평화와 사랑의 철학을 설파하다가 십자가형을 받아 참혹하게 죽은 사람 말이다. 갤럽 여론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2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고, 그를 신으로 믿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 전체 인구의 77퍼센트도 포함된다.”
예수의 삶과 그가 설파한 철학을 다룬, 그를 신으로 다룬 복음서는 수없이 많다. 또한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 예수의 삶에 대해 얘기하는 책 역시 많다. 그 시작에는 우리가 4복음서라 부르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요한복음」이 있다. 예수를 다룬 모든 책들은 바로 이 4복음서에 대한 해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4복음서는 서술 내용이 종종 서로 어긋나 있고, 예수의 일대기를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이라기보다는 종교적 관점에서 쓴 것”이다. 그리고 이 4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그것이 아니라 ‘부활’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많은 이들이 이 ‘부활’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인류사의 가장 강력한 신화가 창조되기 시작한다.
두 마리아는 무덤으로 다가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동굴 같은 무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조심조심 무덤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예수의 몸에 발라둔 몰약과 침향의 향내가 코를 찔렀다. 시신을 동여맸던 아마포도 분명히 보였다. 그런데 시신은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나사렛 사람 예수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21장’에서)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된다. 4복음서는 예수의 시신은 도둑맞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아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시신이 사라진 후 예수는 40일 동안 지상에서 12번 모습을 드러냈다고 복음서들은 적고 있다. 출현 형태를 보면 한 사람에게 나타난 것에서부터 여러 사람에게 나타난 것까지 다양하다. 갈릴리의 어느 산에서는 500명 넘는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군중 가운데 일부는 상당 기간 살아남아 예수 출현 사건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25년 후 사도 바울은 코린트인들에게 보낸 편지(「고린도서」)에서 예수가 갈릴리 산에 나타난 사건을 언급했다.
예수의 부활을 사실이라고 믿느냐에 관계없이 그의 삶과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는 십자가형으로 생을 마감한 뒤로 훨씬 더 큰 영향을 발휘했다. 예수는 단순히 예수 또는 나사렛 사람 예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역사에 기록된다.(‘책을 마치며’에서)
하지만 이전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만든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예수가 신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만들어진 신화 이전의 역사와 “나사렛 사람 예수”에 대해서 말이다.
로마인들은 당대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꼼꼼한 기록을 남겼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몇몇 유대인 역사가들도 당시 사건들을 기록했다. 문제는 그 짧은 생애에서 죽음을 몇 달 앞둔 시점까지 예수가 주류 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예수는 혹독한 사회에서 힘겹게 삶을 꾸려가는 일개 유대인에 불과했다. 예수가 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그의 친구들뿐이었다.(‘책을 시작하며’에서)
“예수가 어떤 일을 성취했고, 그 때문에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한다. 빌 오라일리와 마틴 두가드 두 저자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 새로이 찾아낸 이야기들을 통해 서구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로마제국의 변방 유대 지역에서 살다 죽은 한 인물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이 책은 종교서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메시아(구세주)로 칭하지 않는다. 그저 로마제국의 변방을 뜨겁게 달군 한 사람, 평화와 사랑의 철학을 설파함으로써 대단히 강력한 적을 무수히 만든 한 인간으로 본다. 실제로 예수에 대한 증오와, 그 증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접하게 되면, 독자는 간혹 크나큰 당혹감에 빠진다. 이 책은 유대Judea와 로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폭력으로 얼룩진 이야기이다. (중략)
예수는 처형당했다. 그러나 선과 악 사이에 벌어진 처절한 싸움 뒤에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를 우리는 아직 다 말하지 못했다. 예수가 죽은 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책을 시작하며’에서)
예수의 적은 누구였는가?
예수를 죽이고 싶어한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예수를 신으로 믿는 신자이든 아니든 우리는 예수의 이야기에 대해, 누가 먼저 예수를 죽이려 했는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 예수의 탄생과 그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 있었고 그 예언을 실현할 아기가 태어날 것임을 알게 된 유대의 왕 헤롯이 병사들을 보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게 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그 위협을 피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달아났고 아기의 목숨을 구했다. 매년 성탄절에는 모든 교회와 예배당에서 이 이야기를 말과 극으로, 혹은 장식으로 전한다.
하지만 예수가 태어나고 활동하던 시대는, 헤롯과 그의 뒤를 이은 유대 왕들의 시대가 아니었다. 로마제국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로마제국의 변방 유대에도 로마제국에서 미친 충격파가 끊임없이 밀려왔고 그 힘은 유대인의 삶을 좌우했다. “예수가 활동하던 시대는 로마가 서구 세계를 지배하면서 다른 의견은 일절 용납하지 않는 시대였다. 사람 목숨은 하찮은 것이었다. 평균 수명은 마흔이 채 안 됐다.”
빌 오라일리와 마틴 두가드 두 저자들은, 예수를 죽음으로 이끈 힘의 중심에 있는 로마제국과 유대 사회의 지배층 사이의 균열과 새로운 균형이 시작된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이고, 그의 죽음으로부터 로마는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 체제로 바뀌게 되며 카이사르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이어 티베리우스 황제로 이어지는 동안 로마제국 기강의 문란과 타락은 시작된다.
카이사르 피살 사건은 발생한 지 2년이나 지났건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혼란이 계속됐고, 이집트도 상황이 비슷했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남동생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대에도 사건의 충격파가 서서히 밀려들었다.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갈릴리 지방도 곧 충격파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당시 갈릴리의 나사렛 마을에서는 야곱이라는 이름의 목수가 요셉이라는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중략)
나사렛도 오랜 세월에 걸쳐 그리스, 아랍,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2,000년 전 아브라함이 이 땅에 발을 디딘 후로 야곱의 선조들은 변함없이 하나뿐인 진정한 신을 모셔왔다.
위대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조차도 유대교 전통을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계산이 빠른 통치자 카이사르는 베누스 신을 믿고 기도보다는 동물의 내장으로 점을 치는 일을 즐겼지만 놀랍게도 유대 지역과 유대인들의 생활양식은 존중해줬다. 물론 유대가 시리아와 이집트의 천연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는 계산이 있었다. 카이사르는 2,000년 뒤 나치 독일이 그런 것처럼 정복지 원주민 지도자들에게 통치권의 일부를 허여하는 것이 제국을 탈 없이 유지하는 방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카이사르의 죽음은 변방 유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비쳤다. 물론 그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몰랐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필리피 전투는 카이사르의 죽음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비치게 된다. 필리피 전투가 끝난 후 유대인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된다.(‘3장’에서)
기원전 4년 3월, 헤롯이 죽자 격렬한 폭동이 일어나 무정부 상태가 됐다. 예루살렘 시민들은 헤롯의 후계자는 아버지와 판박이이지만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헤롯의 뒤를 이은 새 왕 아켈라오는 강력한 반격을 가함으로써 헤롯 대왕만큼 잔혹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학살극은 유월절에 일어났다. (중략)
로마는 곧 유대 내정內政에 적극 개입했다. 기원후 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아켈라오가 통치에 부적합하다고 보고 그를 갈리아로 추방해버렸다. 유대는 이제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이 다스리는 로마 속주가 되었다. 물론 헤롯이 다스리던 왕국의 상당 부분을 관할하는 유대인 지배자들은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으며, 칭호도 왕이 아니라 사분영주였다. 사분영주란 특정 지역을 넷으로 나눠 관장한다는 의미로 로마제국에 예속된 현지 지배자를 말한다.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유대 지역은 그의 사후 아들들에게 이양됐다. 장남 아켈라오가 4분의 2를 차지하고 헤롯 안타파스와 빌립이 각각 4분의 1을 차지했다. 로마는 기원후 6년 아켈라오는 추방한 뒤 총독을 파견해 유대인들의 땅을 감시하게 했다.
예루살렘은 현지 귀족들과 예루살렘 성전 담당 대제사장들이 관할했다. 이들은 산헤드린Sanhedrin이라는 기구를 통해 법과 질서를 유지했다. 재판권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은 유대교 율법을 집행하는 전권을 가졌지만 사형 처분의 경우에는 로마 총독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이런 식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유대교 신앙을 욕보이지 않으면서 로마제국의 통치권을 적절히 행사했다. 그러나 자신의 권위에 대해서는 절대 복종을 요구했다. 유대인들로서는 감내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모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반란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유대는,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한편으로 파르티아 사막을 넘고 지중해 연안 전체를 장악한 막강 로마제국 판도에서 그 어떤 지역보다 봉기가 많이 일어난 곳이었다.(‘4장’에서)
암살 음모에 대한 걱정이 없는 외딴섬 높은 산꼭대기에서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주변에는 기분 내키는 대로 죽일 수 있는 자들밖에 없었다―풍속과 법률에 관한 명령을 내렸고, 이는 수많은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로마 관리들에게는 반드시 준수해야 할 명령이었다.
새로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본디오 빌라도는 자신의 미래가 타락한 티베리우스를 얼마나 흡족하게 해주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티베리우스는 로마식 다신교를 믿었지만 유대인의 종교적인 생활양식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보면서 유대 민족은 로마제국에서 가장 경건한 신민臣民이라고 생각했다. 티베리우스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유대인을 다루는 지침을 내렸다. “관습으로 정착된 것은 절대 바꾸지 말라. 유대인들과 그들의 율법 모두 해하지 말고 잘 보살펴라. 그것이 질서 유지에 이롭다.”
본디오 빌라도는 황제의 명을 좀더 확실히 지키기 위해 유대교의 우두머리이자 예루살렘 최고의 권력자인 대제사장 가야바와 일종의 동맹을 맺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명령에 따르면 빌라도는 유대교 율법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되었다.
빌라도는 이 명령을 나중에도 절대 잊지 않았다.(‘7장’에서)
이제 쉰 살이 다 된 헤롯 안티파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잘 보이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안티파스는 유대 농민들에게는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로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다. 그는 티베리우스 황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부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로마 지배에 대한 유대인들의 환멸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안티파스는 티베리우스가 두려워 유대 민족에게 도움이 되는 개혁 조치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냈다. 안티파스는 그저 입 꼭 다물고 재물만 열심히 챙기는 것으로 만족했다.(‘7장’에서)
로마제국은 광대했다. 그러나 로마 군단이 건설한 그 모든 도로와, 본국과 수많은 전초기지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뱃길들은 소문이 빨리 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집안일을 하는 노예들이 쑤군거리면서 티베리우스의 잔인하고 기이한 일탈행위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 사람을 마음대로 죽이고, 조금만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온 가족을 몰살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주 어린아이를 강간하기도 했다.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여자는 귀족 집안 유부녀라도 하인들을 시켜 범하게 하는 식으로 보복을 했다.
그러나 안티파스는 티베리우스가 아니었다. 갈릴리의 지배자는 허영과 개인적인 약점을 비롯해 결함이 많았지만 로마 황제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의 부도덕한 일탈행위는 로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 변방까지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점점 기강이 무너지고 정의가 흐려졌다. 황제는 유대 땅에 와본 적도 없고 나사렛 예수와 얼굴을 마주하거나 매년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유월절 순례자들을 본 적도 없지만, 신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티베리우스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안티파스도 마찬가지였다. 갈릴리 호숫가에 건설한 호화롭기 이를 데 없는 신도시를 전능한 황제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은 그렇게 파멸을 향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배계급에게는 정의나 고귀함 같은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 농민들은 예언자들이 약속한 구세주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 구세주가 세례자 요한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었다.
이제 세례자 요한보다 훨씬 권능이 큰 새로운 구세주가 올 거라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떠돌았다.(‘7장’에서)
이렇듯 로마제국의 타락이 시작되고, 타락한 황제의 비위와 그가 내린 지침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유대 지방의 총독과 영주와 종교 지도자들 곧 지배자들이 결탁을 하고 자신의 보신만을 위해 움직이던 이 시점이 나사렛 예수가 제자들을 모와 그들과 함께 전도활동을 시작하려던 때이다. 그리고 예수가 전도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점점 더 많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권력에 결탁한 자들의 음모는 시작된다. 예수 죽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 음모의 피라미드 맨 위에 있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가 카프리 섬의 빌라 요비스에서 일탈행위를 즐기고 있었고, 황제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본디오 빌라도가 새로운 유대 총독으로 부임해 있었으며, 헤롯 대왕 이후 사분영주로 임명된 헤롯 안티파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로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대사제장인 가야바를 필두로 한 유대교 종교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흔드는 예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감시망을 조여들어오고 있었다.
예수는 유명세를 단단히 치르게 됐다. 날이 갈수록 그의 목숨은 위태로워졌다. 많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지상의 왕으로서 로마인들을 타도하고 유대인의 왕이 되어 자기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이었다. 다윗 왕이 천년 전에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로마 당국은 더더욱 예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왕을 자처하는 자는 황제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십자가형에 처해질 수 있는 대역죄였다. 이를 잘 아는 예수는 더 이상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다.
갈릴리 지방 유대인을 관할하는 최고 행정 책임자 헤롯 안티파스는 나사렛 사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보지는 않았지만 세례자 요한의 환생이라고 믿었다. 안티파스는 죽은 예언자의 혼령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데 대한 징벌 같았다. 안티파스는 예수가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드러내놓고 우려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세례자 요한에 이어 또다시 예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 안티파스가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예수의 행적을 보면 그는 아주 평화로운 인물이었다. 딱 한 번, 예루살렘 성전에서 환전상들을 내쫓은 사건을 제외하면 예수가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두 사람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예수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로마에 반기를 들라고 한 적도 없다. 수많은 청중에게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유대 지역 로마 총독과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 최고 행정관은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멀리서 지켜보는 정도로 만족했다.
종교당국자는 그러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전 대제사장 가야바를 우두머리로 한 유대교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했다. 가야바는 성전세로 부와 권력을 일구었다. 환전상들에게 취하는 이문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양에 대한 독점권도 큰 이권이었다. 가야바 가문은 또 예루살렘 외곽에 보유한 많은 농토를 소작을 주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여차하면 그가 잃을 수 있는 것은 종교적 권위만이 아니었다.
무장한 혁명가가 로마에게 군사적 위협이라면 예수의 전도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예루살렘 성전 교사 및 율법학자 같은 기성 종교 집단에 대한 위협이었다. 하느님을 진실로 잘 모신다는 이런 자들이 나사렛 사람 예수를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방법은 소리 소문 없이 체포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을 냉혹하게 죽일 경우 이를 주도한 종교 지도자들은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예수를 죽이기도, 자는 사이에 목 졸라 죽이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바리새파는 전통적인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이는 예수가 분명하게 율법을 어긴 혐의를 잡아서 그것을 빌미로 죽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혐의를 잡기 위해 바리새파와 율법학자 들로 구성된 특별팀이 예루살렘을 출발했다. 갈릴리로 가 예수의 행태를 직접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성경에 정통했다. 나사렛 사람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었다.(‘10장’에서)
가야바 이전의 대제사장들은 로마의 꼭두각시였다. 조금이라도 순종하지 않는 기미를 보이면 바로 교체됐다. 그러나 사두개파의 일원인 가야바는 권력을 유지하는 간단하면서도 탁월한 기술을 체득했다. 로마가 하는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로마도 대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전자가 빌라도가 총독 직무를 잘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 후자는 가야바의 권력을 키워주었다.
두 사람 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상부상조하는 관계에 만족했다. 이렇게 해서 가야바의 전임자 네 명이 대제사장직을 고작 1년밖에 유지하지 못하고 쫓겨난 반면 가야바는 벌써 12년째 재임중이었다. 쫓겨날 기미도 전혀 없었다. 가야바가 대제사장직에 발탁된 뒤로 로마와 예루살렘 성전의 결탁 관계는 정점 강고해졌다. 반면 대제사장과 노동하는 유대인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중략)
빌라도나 가야바가 그야말로 원치 않는 것은 메시아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등장하면 용의주도하게 유지하고 있는 세력의 균형을 깰 것이기 때문이다. 가야바와 종교 당국이 예수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로 체포할 계획을 세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갈릴리에 갔다가 돌아온 바리새파 성직자들은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했다. 나사렛 사람이 율법을 어긴 내역이 기다랗게 나열됐다.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시작된 것이다.(‘11장’에서)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예수는 예수 벤 아나니아스처럼 혼자 떠드는 자가 아니라 혁명가였다. 제자가 많았고, 추종자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분노를 폭발시킨 행동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일종의 공격이었다. 그것은 성전이 언젠가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소극적 예언이 아니었다. 이제 예수는 본격적으로 성전 당국에 대해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야바는 정치적 봉기가 성전 뜰에서 일어날 경우 어떤 결과가 되는지 보아왔고, 헤롯 사망 이후 성전 주랑이 불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거짓 예언자라고 봤다. 오늘의 법석도 예수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위협 요소는 싹부터 잘라야 한다. 성전 대제사장이자 유대 사회 최고의 권력자로서 가야바는 율법에 따라 예수에 대해 극단적인 조치를 즉각 취해야 했다. “예언자라는 사람이나 꿈으로 점친다는 자가 너희 가운데 나타나 표징과 기적을 해 보이겠다고 장담한다면, 그런 예언자나 꿈으로 점치는 사람은 죽여야 한다. 너희 하느님에게 등을 돌리도록 유혹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신명기」의 한 구절이다.
가야바는 예수가 군중을 방패막이로 삼아 노련하게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게임의 승자는 가야바여야 했다. 그러나 부정을 타지 않으려면 금요일 저녁 해가 지고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했다.
지금이 가야바에게는 올해의 가장 중요한 주간이었다. 대제사장으로서 유월절 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로마가 본디오 빌라도의 눈을 통해 그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이 최대의 축제 기간에 가야바 쪽에 일말의 잘못이라도 있다면 대제사장직에서 쫓겨날 것이다.(‘13장’에서)
이 책은, 나사렛 사람 예수를 죽이고 싶어한 이들이 누구인지, 그들은 왜 그를 죽이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을 통해 죽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유대인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유월절 기간에 어떻게 숨 막히게 전개되어 가는지를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선명하게 그려낸다. 또한 예수가 누구의 손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당시로선 비상식적인 것인지도 드러난다. 우리가 몰랐던 예수의 죽음의 실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예수에 대한 신문 절차는 모든 면에서 율법에 어긋났다. 우선 신문이 밤에 이루어졌다. 예수는 변호인 하나 없이 스스로 유죄를 인정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안나스도 형을 선고할 권한이 없는 인물이었다. 피고인이 로마군 병영 유치장이 아니라 대제사장 사저에 끌려나온 것도 대단히 비상식적이다.
물론 예수의 범죄 혐의는 심각하다. 환전상들의 탁자를 뒤집어엎음으로써 성전에서 로마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의 흐름을 끊었다. 이는 안나스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였다. 이윤 취득을 가로막는 자는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예수든 그의 제자든 예외가 될 수 없다. 안나스는 예수 심문을 성전 당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본때를 보이는 계기로 삼고자 작심했을 것이다. (중략)
안나스는 전임 대제사장이기 때문에 사법적 권한이 없었다. 그는 형을 선고할 권한이 없었다. 특히 예수 문제는 선동 내지는 반란에 관련된 사안이고, 이는 전적으로 로마가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중략)
율법에 따르면 산헤드린 의원은 형을 선고할 때 각자 투표를 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표결 절차도 없었다. 판결은 막연한 찬성 표시로 내려졌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밝힌 사람은 니고데모와, ‘아리마대의 요셉’이라고 하는 부유한 사두개파 사람뿐이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예수는 신성모독 혐의가 확정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다음 단계는 총독 본디오 빌라도를 잘 설득해 로마군 집행관들로 하여금 사형을 집행하게 하는 것이었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중략)
빌라도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분명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풀어주라고 명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간섭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로마 총독이 그러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당부한 바 있다.(‘17장’에서)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가 앞으로 나왔다. 머리에는 여전히 가시관을 쓰고 있었다. 예수를 보면서 그들은 불과 사흘 전 성전에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모욕을 당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예수가 지금 바로 눈앞에서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있지만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예수는 죽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오전 9시. 빌라도가 다시 높다란 재판관석에 앉았다. 이 자리에서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풀어주려고 시도했다.
“자, 여기 너희 왕이 있다.”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과 그 제자들의 무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지금쯤 성전 뜰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새끼양 희생의식이 곧 거행되기 때문이다.
“죽이시오.”
종교 지도자들이 합창을 하듯이 외쳤다.
“죽이시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오!”
빌라도는 이제 이들과 말싸움을 하는 데 지쳤다. 로마 총독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직책이 아니었다. 빌라도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예수의 운명은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더러 너희의 왕을 십자가형에 처하란 말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최종 확인을 구한 것이다.
“우리의 왕은 카이사르밖에 없습니다.”
한 고위급 제사장이 답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단에 해당하는 언사였다. 로마 이교도들의 신을 편들고 유대인의 하느님을 거부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헤드린 세력은 상황이 이처럼 말이 안 되는 지경까지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자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빌라도가 다시 고함치듯이 물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군중의 대답이었다.
빌라도는 물 한 사발을 예수에게 갖다주라고 명했다. 그러고는 두 손을 사발에 담가 다들 보라는 듯이 깨끗이 씻었다. 무슨 의식을 집행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자의 피에 대해 책임이 없다.”
빌라도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말했다.
“이 사안은 너희의 책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안은 빌라도 책임이었다. 로마 총독만이 이우스 글라디ius gladii, 즉 ‘칼의 권한’이라는 생사여탈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처형 여부는 로마 총독 권한이었다.
결국 빌라도는 사형 집행조에게 예수를 데려가라고 말했다.(‘18장’에서)
추천인의 말처럼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의 헌신과 저항, 그리고 그 이름이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 경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뜨겁게 밝히고” 있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과연 예수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며, 그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인류에게 가져다주려 했던 약속은 실현된 것인가? 만약 실현되지 않았다면, 2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믿고 있는 지금, 과연 그 믿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그 약속이, 그의 평화와 사랑의 철학이 과연 누구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가? 누가 그의 적인가? 누가 지금도 그를 죽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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