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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4.8.1
페이지
452쪽
상세 정보
'판타스틱 픽션 GOLD' 6권.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역사를 뛰어난 작가적 통찰력과 문학성으로 표현해온 거장 존 르 카레의 21번째 장편 소설. 어느 날 홀연히 함부르크에 나타는 이름도, 존재도 베일에 싸인 '지상 최대의 지명수배자'. 사내의 비밀을 밝히려는 정보국, 그를 지키려는 민권 변호사, 그리고 갈등하는 은행가의 이야기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기차역. 정부의 빈민 정책으로 낮 동안은 묵인되는 불법체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가 한꺼번에 난민 청소를 해버리는 새벽이다. 이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한 사내. 온몸에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고,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아 보이는 무슬림 청년 이사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받아들이고 돌봐주는 터키 출신 모자는 결국 민권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가 그들을 찾는다.
오래전, 자신의 판단착오로 고객이었던 한 불법체류자를 눈앞에서 정부기관에 빼앗긴 아나벨은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법을 빼앗아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져다주고자 한다. 하지만 정당한 신념을 위해 거대 조직과도 맞서고자 하는 아나벨은 이사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몰락한 러시아의 장성 카르포프의 아들이자 카르포프가 수십 년 전 독일의 한 개인은행에 숨겨둔 엄청난 금액의 검은 돈의 상속자인 이사. 그리고 선대부터 카르포프의 돈을 관리해왔으나 검은 돈의 실체를 뒤늦게 깨닫고 갈등하는 은행가 토미 브뤼. 여기에 전 유럽 정보기관의 지명수배 명단에 오른 이사를 이용하여 이슬람 테러 조직을 소탕하려는 독일 헌법수호부 요원 귄터 바흐만까지 합세하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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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ziha
@0ynkykiqczw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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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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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픽션 GOLD' 6권.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역사를 뛰어난 작가적 통찰력과 문학성으로 표현해온 거장 존 르 카레의 21번째 장편 소설. 어느 날 홀연히 함부르크에 나타는 이름도, 존재도 베일에 싸인 '지상 최대의 지명수배자'. 사내의 비밀을 밝히려는 정보국, 그를 지키려는 민권 변호사, 그리고 갈등하는 은행가의 이야기이다.
독일 함부르크의 기차역. 정부의 빈민 정책으로 낮 동안은 묵인되는 불법체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가 한꺼번에 난민 청소를 해버리는 새벽이다. 이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한 사내. 온몸에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고,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아 보이는 무슬림 청년 이사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받아들이고 돌봐주는 터키 출신 모자는 결국 민권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가 그들을 찾는다.
오래전, 자신의 판단착오로 고객이었던 한 불법체류자를 눈앞에서 정부기관에 빼앗긴 아나벨은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법을 빼앗아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져다주고자 한다. 하지만 정당한 신념을 위해 거대 조직과도 맞서고자 하는 아나벨은 이사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몰락한 러시아의 장성 카르포프의 아들이자 카르포프가 수십 년 전 독일의 한 개인은행에 숨겨둔 엄청난 금액의 검은 돈의 상속자인 이사. 그리고 선대부터 카르포프의 돈을 관리해왔으나 검은 돈의 실체를 뒤늦게 깨닫고 갈등하는 은행가 토미 브뤼. 여기에 전 유럽 정보기관의 지명수배 명단에 오른 이사를 이용하여 이슬람 테러 조직을 소탕하려는 독일 헌법수호부 요원 귄터 바흐만까지 합세하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진다.
출판사 책 소개
“아름다운 책이다. 르 카레와 같은 통찰력과 상상력을 지닌 작가는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_선데이 타임스
스파이 스릴러의 전설적 거장 존 르 카레의 21번째 장편 소설
안톤 코르빈 감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윌렘 데포 주연 동명 영화 개봉 예정
뉴욕 타임스, 아마존, 선데이 타임스, 가디언 베스트셀러 1위! 바로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픈 역사를 뛰어난 작가적 통찰력과 문학성으로 표현해온 거장 존 르 카레의 21번째 장편 소설
냉전 시대 스파이 소설의 절대적 고전이자, 세대를 뛰어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은 문학 작품으로서도 유명한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그리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스마일리의 사람들》을 위시한 일련의 ‘스마일리 시리즈’는 작가가 실제로 영국 정보국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스파이들의 세계를 사실적인 묘사와 작가적 통찰력을 담아 집필한 작품이다. 그 후 50여 년 동안 아픈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한편, 바로 현재 우리의 시선 밖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 국가의 부조리함을 묘사하는 작품을 써오며 ‘시대와 함께 진보하는 거장의 탁월한 의식’을 보여주었던 존 르 카레. ‘스마일리 시리즈’와 함께 르 카레의 가장 완벽한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1983년 작 《리틀 드러머 걸》에 이어 그의 2008년 작이자 21번째 장편 소설인 《모스트 원티드 맨》이 알에이치코리아 판타스틱 픽션 GOLD의 여섯 번째 작품으로 개정, 출간되었다.
어느 날 홀연히 함부르크에 나타는 이름도, 존재도 베일에 싸인 ‘지상 최대의 지명수배자’
사내의 비밀을 밝히려는 정보국, 그를 지키려는 민권 변호사, 그리고 갈등하는 은행가의 이야기
아시아 인, 아랍 인, 아프리카 인, 터키 인, 러시아 인 등 온갖 인종의 난민들이 범람하는 독일 함부르크의 기차역. 정부의 빈민 정책으로 낮 동안은 묵인되는 불법체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부가 한꺼번에 난민 청소를 해버리는 새벽이다. 이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한 사내. 온몸에 고문을 당한 흔적이 있고,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아 보이는 무슬림 청년 이사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받아들이고 돌봐주는 터키 출신 모자(母子)는 결국 민권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가 그들을 찾는다. 오래전, 자신의 판단착오로 고객이었던 한 불법체류자를 눈앞에서 정부기관에 빼앗긴 아나벨은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법을 빼앗아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져다주고자 한다. 하지만 정당한 신념을 위해 거대 조직과도 맞서고자 하는 아나벨은 이사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겁고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깨닫는다. 몰락한 러시아의 장성 카르포프의 아들이자 카르포프가 수십 년 전 독일의 한 개인은행에 숨겨둔 엄청난 금액의 검은 돈의 상속자인 이사. 그리고 선대부터 카르포프의 돈을 관리해왔으나 검은 돈의 실체를 뒤늦게 깨닫고 갈등하는 은행가 토미 브뤼. 여기에 전 유럽 정보기관의 지명수배 명단에 오른 이사를 이용하여 이슬람 테러 조직을 소탕하려는 독일 헌법수호부 요원 귄터 바흐만까지 합세하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진다.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과거의 명예에 사로잡히지 않고 시대와 함께 진보하는 거장 르 카레의 역작 《모스트 원티드 맨》
수많은 인물들과 복잡한 플롯, 그리고 민감한 시대의 현안이 뒤섞인 존 르 카레의 《모스트 원티드 맨》을 수월하게 읽어나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작가는 전통적 스릴러에 현실의 현안을 결합하고 여기에 휴머니티 가득한 캐릭터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구조, 그리고 올곧은 윤리적 견지를 덧입혀 묵직한 주제와 이야기적 재미가 완벽하게 결합된 작품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현대의 젊은 작가들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거장 존 르 카레의 가장 큰 힘은 작품 속에서 무슬림, 불법체류자, 정보 전쟁, 테러, 민권, 학대와 고문, 보수와 진보, 사회주의, 유럽의 현대사 등의 문제적 사안을 거침없이 풀어놓으면서도, 하나의 이념을 무조건적으로 설파하기보다는 디테일이 살아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작가가 설명하고자 하는 주제를 깨달아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유럽의 부자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함부르크에서 실속 없이 이제는 명예만 남은 개인은행을 운영하며 누군가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비루한 일상에서 구해주기를 바라는 중년의 토미 브뤼, 독일 최고의 법조계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자의 법을 갖지 못한 자에게 주고 싶어하지만 자꾸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변호사 아나벨 리히터, 허세나 부리는 어설픈 책상물림이 아닌 수십 년 동안 실전에서 통찰력과 정보력을 쌓은 독일 정보국의 귄터 바흐만, 그리고 유럽의 각국에서 온갖 고문과 협박을 당하면서도 하나의 일념을 위해 함부르크를 찾은 젊은 도망자 이사. 작품 속에서 이들은 모두가 완벽한 개성을 지닌 채,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진 각기 다른 일들을 해나간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바로 직업적 의무와 개인적 양심의 대립이다. 감성과 이성, 휴머니즘과 공공의 정의,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두 의식의 대립은 브뤼-이사, 아나벨-이사, 바흐만-이사, 아나벨-바흐만 등 주요등장인물의 관계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등장하며 고뇌와 갈등의 축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영국 해외정보국 MI6에서 일했던 존 르 카레의 경험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훌륭하게 녹아든다. 함부르크 헌법수호부의 작은 부속기관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 국제 정세와 테러 정보들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해외자산국, 좌파와 우파가 팽팽하게 대립하며 정보 전쟁을 벌이고 있는 합동조정위원회, 그리고 연방정부 시스템과는 다른 완전히 새롭고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될 정보 코디네이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 무엇보다 비밀의 사내 이사의 존재를 두고 독일, 영국, 미국 세 나라 정보원들이 벌이는 치밀하고 차가운 두뇌 싸움은 르 카레의 최고 장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러시아 하우스》, 《테일러 오브 파나마》, 《콘스탄트 가드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이어 르 카레의 작품 중 여섯 번째로 극장판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안톤 코르빈 감독,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귄터 바흐만 역), 윌렘 데포(토미 브뤼 역), 레이첼 맥아덤스(아나벨 리히터 역)가 주연을 맡아 2014년 7월말 미국에서 개봉하여 호평을 받았다. 한국 개봉은 2014년 8월 7일이다.
<뉴욕 타임스> 2014년 7월 17일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본다는 것
―존 르 카레,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말하다
출처: http://www.nytimes.com/2014/07/20/movies/john-le-carre-on-philip-seymour-hoffman.html?smid=tw-share&_r=0
생각해 보면 내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가까이 있었던 시간은 기껏해야 다섯 시간, 넉넉히 잡아도 여섯 시간뿐이었다. 그 시간을 빼면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의 촬영장에서 모니터를 통해 필립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그에게 연기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얘기해 주거나, 아니면 그저 속으로 훌륭하다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실은 그런 기회조차도 그리 자주 갖지는 못했다. 나는 다만 징그러운 수염을 달고 단역으로 등장하는 신 하나를 찍으려고 촬영장에 두어 번 들렀을 뿐이고, 하루 종일 촬영해서 얻은 것은 다행히 스스로도 못 알아볼 꾀죄죄한 몰골의 누군가였으니까. 내가 고생 끝에 얻은 교훈이 있다면 자기 책을 각색한 영화의 촬영장에서 어슬렁거리는 작가야말로 영화판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BBC에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드라마로 제작할 때, 알렉 기네스는 고맙게도 나를 촬영장에서 내쫓아 주었다. 나는 그저 존경심을 표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내 눈빛이 너무 뜨겁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필립도 똑같은 호의를 베푼 적이 있다. 2012년 겨울 함부르크에서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을 촬영하던 어느 날 오후, 우리와 함께 있던 어느 여성에게 말이다. 그녀는 필립한테서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서 사람들과 함께 벌벌 떨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거슬리는 구석이 있었던지, 호프만은 그녀에게 자리를 피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금은 으스스한, 초능력 같은 이야기이지만, 호프만의 직감은 적중했다. 그녀 역시 소설가였고, 따라서 누구보다 뜨거운 눈빛을 내뿜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프만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본능으로 눈치챘던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필립의 이런 일화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의 직관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지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많지만 필립은 진짜배기였다. 그와 손을 잡는 순간, 그가 굵직한 팔로 목을 끌어안고 뺨을 부비는 순간, 번득이는 예술적 재능과 박람강기를 겸비한 그의 지성은 한 쌍의 전조등처럼 달려와 상대를 꼼짝 못하게 옭아맸다. 어쩌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면 그는 통통한 남학생처럼 사람들을 부둥켜안고 환하게 웃으며 다들 즐거워하는지 확인하곤 했다.
필립은 늘 그렇게 모든 것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피곤한 일이었고, 아마도 그가 화를 당한 원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은 그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환한 곳이었다. 그는 스스로 눈을 찌르든가, 아니면 눈이 부셔서 죽을 운명이었다. 낭만주의의 선구자였던 시인 토머스 채터튼처럼 그는 너무나 위태로운 삶을 살면서도 번번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지만, 떠날 때 다시 돌아오겠다는 믿음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군가 독일의 시인 횔덜린을 가리키며 했던 이 말처럼 말이다. ‘그가 방을 나설 때마다 당신은 이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한다.’ 혹시 이 말이 사후약방문처럼 들린다면 착각이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과 같은 속도로 살면서, 또한 당신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황당할 정도로 거침없이 당신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아는 배우들 가운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필립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람은 일찍이 한 명도 없었다. 리처드 버턴도, 버트 랭카스터도, 심지어 알렉 기네스조차도 필립만큼은 아니었다. 필립은 마치 평생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나를 반겨 주었는데 내 생각에는 누구를 만나도 그랬을 듯싶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필립을 만나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가 <카포티>에서 보여 준 연기야말로 내가 본 영화 가운데 최고였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못했는데, 왜냐하면 배우들한테는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9년 전에 얼마나 멋졌는지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배우들은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필립에게 이 말 한마디만큼은 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미국 배우 중에 내 소설의 등장인물인 조지 스마일리 역을 맡을 사람은 오로지 당신뿐이라고. 맨 처음 만들어진 BBC 드라마에서는 알렉 기네스가, 최근에 만들어진 극장용 영화에서는 게리 올드먼이 스마일리 역을 맡았는데… 물론 신의를 아는 영국인답게 나는 게리 올드먼이 우리 나라 배우라고 우겼다.
어쩌면 그때 또 한 가지 사실, 즉 알렉 기네스가 그랬듯이 필립도 영화에서 러브신을 찍은 경우가 드물다는 기억이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영화에서는 그 점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물론 알렉 기네스와 다르게 필립은 여자를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 나와도 민망해서 얼굴을 돌릴 정도는 아니다. 그래 봐야 왠지 본인이 좋아서가 아니라 관객들한테 보여주려고 그런다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을 만든 사람들은 과연 필립의 베드신을 찍을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마침내 해결책을 들고 나왔을 때 필립과 상대 여배우 둘 다 손사래를 치며 내뺐던 것을 보면 얼마나 웃기는 생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아름다운 니나 호스가 필립의 상대역으로 정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실패한 사랑의 작은 기적이 자신들 눈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니나가 맡은 역은 분량이 급하게 늘어났는데, 그녀는 필립의 멋진 동료이자 충직한 조수이며 그로 인해 가슴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필립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역할이다. 그가 연기하는 귄터 바흐만은 경력이 내리막길을 걷는 중년의 독일 정보부 요원으로서, 꾸준한 연인 관계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는 인물이다. 필립은 촬영을 시작한 첫날 이미 어떻게 연기할지를 정한 다음,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하도 많이 읽어서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원작 《모스트 원티드 맨》의 페이퍼백을 들고 다니며 영화에 러브신을 더 넣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책을 들이밀었다(원작을 쓴 작가에게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영화 [모스트 원티드 맨]에는 레이철 맥아덤스와 윌렘 데포도 출연한다. 그 영화가 여러분이 사는 동네의 극장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니 아무쪼록 지금부터 영화표 값을 저금해 두시길 바란다. [모스트 원티드 맨]은 거의 모든 장면을 함부르크와 베를린에서 촬영했으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니나 호스(영화 [바바라]의 주연)와 다니엘 브륄([러시]의 주연) 말고도 독일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원작인 소설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 바흐만은 모든 것을 잃은 비밀 요원이다. 어찌 보면 필립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도 있다. 베이루트에서 활동하던 바흐만은 CIA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귀중한 정보망을 잃고 고국으로 송환된다. 그가 새로 발령을 받은 곳은 함부르크, 바로 9·11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의 본거지였던 도시이다. 이곳의 정보 당국과 많은 시민들은 지금도 당시의 황망한 심정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바흐만은 과거의 실패를 바로잡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납치나 물고문, 불법 암살 같은 수단이 아니다. 대신 스파이 특유의 세련된 침투 작전과 회유책, 또 적의 힘을 거꾸로 이용하는 작전을 통해 그는 이슬람 무장 투쟁 세력을 안에서부터 와해시키고자 한다.
제작진 및 주연 배우들과 근사한 저녁을 먹는 동안 바흐만의 실제 모습에 대해 필립과 많은 얘기를 나눈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두루뭉술한 주제에 관해, 그러니까 비밀 요원의 일상과 정보원을 다루는 기술에 관해 얘기했다. 나는 필립에게 협박 같은 수단은 잊어버리라고 충고했다. 마초처럼 허세를 부리지도 말라고 했다. 잠을 안 재우거나 상자에 가두는 고문도, 동료를 가짜로 처형하는 심문 기술 같은 것도 잊어버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고의 비밀 요원은 인내심과 이해력과 세심한 마음씀씀이를 갖추어야 한다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내가 늘어놓은 훈계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으면 좋으련만, 그때 필립은 내가 잘난 척하려고 꾸며낸 과장된 말투를 어떻게 써먹을 수 없을까 하고 궁리했던 것 같다.
미쳐 날뛰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필립이 어떻게 연기했는지, 또 자기가 맡은 인물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그가 어떻게 빚어냈는지 이제 와서 객관적으로 쓰기란 힘든 일이다. 물론 그에게는 감독이 있었다. 그리고 감독인 안톤 코르빈 역시 필립만큼 걸출한 팔방미인이다. 안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촬영감독이자 대중음악계의 거물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영화의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한 적도 있다. 그가 흑백으로 만든 첫 영화 <컨트롤>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지금 제임스 딘에 관한 영화를 찍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제쳐 놓고라도, 나는 그가 현장에서 발휘한 창조적 재능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생각에 그는 연극 출신 극작가, 그러니까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스타일의 연출가하고는 거리가 영 먼 것 같다. 그 덕분에 필립은 혼자 대사를 연구하는 끔찍한 고난을 겪으면서 이런 의문들과 씨름해야 했을 것이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이성의 끈을 놓아야 하는가? 아니,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는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다 알면서 왜 이 고생을 계속해야 하는가? 그러나 비극은 견인차의 불빛처럼 바흐만을 유혹했고, 이는 필립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억양이었다. 우리에게는 독일 억양으로 영어를 하는 훌륭한 독일 배우들이 있었다. 그리 지성적이지도 않은 집단 지성에 따라 필립 역시 같은 억양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맨 처음 그의 억양을 잠깐 듣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어이쿠’였다. 내가 아는 독일인 중에 영어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립은 쀼루퉁하게 입을 내밀고 우물우물 말했다. 말을 하는 대신 대사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그러다가 점차 가장 훌륭한 배우들만이 할 수 있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오로지 하나뿐인 진짜로, 비교할 대상이 없어 쓸쓸한 것으로, 세상의 많은 목소리들 가운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배우인 필립 본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목소리가 화면을 떠날 때마다 우리는 점점 불안해하고 또 안달하며 기다리게 된다. 그가, 그 목소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필립 같은 배우를 다시 만나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번역 @holy_pi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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