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더카머>로 독자들의 사랑과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은 윤경희의 두 번째 저서 <그림자와 새벽>이 출간되었다. ‘말들의 흐름’ 시리즈 아홉 번째 책으로, ‘그림자’와 ‘새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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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새벽 내용 요약
그림자와 새벽은 윤경희 작가가 2022년 12월 시간의흐름에서 출간한 에세이로, ISBN 9791190999113을 통해 약 200쪽 분량으로 펴내졌다. 📖 윤경희는 첫 책 분더카머로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독창적 문체와 사유로 주목받은 작가다. 시간의흐름 ‘말들의 흐름’ 시리즈 아홉 번째 책인 이 작품은 ‘그림자’와 ‘새벽’이라는 두 단어를 축으로, 기억, 감각, 이미지의 겹겹이 쌓인 시간을 섬세히 탐구한다. 일곱 편의 에세이—「그림자와 새벽」, 「물의 문장들」, 「빈 방」, 「어느
『분더카머』(문학과지성사, 2021)가 윤경희 박물관의 상설전시라면, 이번 책은 기획전시 혹은 특별전시. 시각 혹은 청각 매체와 함께 글을 읽어 나가는 작업은 잘 준비된 전시를 관람하는 일. 여기, 『그림자와 새벽』에서는 언제든 길을 잃을 수 있어요. 윤경희 박물관 특별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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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A) 읽는 사람의 숙명은, 오독하는 일. 문장으로 만들어진 성채를 가차 없이 부순 후 내 몸에 쌓는다. 윤경희의 글을 읽으며 그걸 부수고 싶은 순간이 여러 차례였고··· (미치도록 좋았다는 말이다) 파괴 이후 내게 잔존할 말의 조각들은 중요도에 따라 선별되는 어떤 기계적 과정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방식대로, 무엇인지 중요한지 선별하지 않은 채로, 깎이고 뜯겨나가다가 일순간, 멈춰!―거기서부터 나의 글쓰기가 시작될 것이다.
(side B) 읽기는 강력하게 파괴적인 행위다.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파괴이기도,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파괴이기도. 왜냐면 사포의 시가 적힌 기록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괴됐으니까. 용케 살아남은 쪼가리들을 이어볼까, 다른 단어 아닌 바로 이 단어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며. 그렇게 ‘지금-여기’에서 사포의 시를 독해하는 일은 그것을 다시 파괴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저어할 이유가 무엇인지? 다만 남은 것들을 가지고, 파괴되어 헐벗은 성곽 위에 서서, 솥에 넣고 국자로 휘저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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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의 재료가 '실제'로서의 (마카판스갓의) 조약돌과 '실감'으로서의 조약돌 둘 다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돌멩이이든 도끼이든 간에 일단 솥단지에 넣고 국자로 휘휘 젓는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낱말을 내뱉을 때, 낱말이 내뱉어질 때, 시작이 시작되고, 글이 탄생할 거야. 나의 것 하나를 꺼내놓는 순간으로부터 무한히 창발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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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1) 왜인지 이 책에 실린 윤경희의 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단 한 번 읽기 시작한다면, 저들끼리의 소용돌이에 발을 내딛기만 한다면, 이 크고도 작은 미로 속에서 원하는 만큼 거닐 수 있을 것이다···
(단상 2) 읽고 쓰는 일(거칠게 말하자면, 예술)과 관련 없어 보이는 이야기에서 기어코 읽고 쓰는 일의 메타포를 추출하는 윤경희의 글은 읽고 쓰는 일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뭐랄까··· 말도 안 나오게 좋다.
(단상 3) 이동 이외에는 인간이라는 맥락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사물(매뉴포트)에, 자칫 사변적일 수 있는 통찰과 상상을 부여하며, 맥락을 복원하는 고고학. 윤경희의 글과 너무도 잘 조응하는 접근 방식을 지닌 학문.
(단상 4) 윤경희가 글을 이 지점까지 끌고 나갈 때, 그러니까 특이한 생김새를 지닌 혜성으로부터 시작해, 한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지나, 더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커지는 것도 아닌, 그저 작고 아무것도 아닌 돌들에 관해 다시금 말하기 시작할 때, 읽는 사람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글이 가진 무한한 발산성, 그렇지만 그 모든 발산이 내재하고 있는 내적 통일성은, 이 글로부터 창발될 수많은 글을 상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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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꾼다. 실현 불가능할 것 같아서 일단 꿈이라고 말해본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수없이 구글링했다. 뜻을 잘 모르겠는 낱말들이 있어 사전도 뒤적거렸고. 더 시급했던 건 이미지들. 시각적 정보를 주해하는 문장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니까. 조에트로프. 안구의 구조.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비야 셀민스의 작업들. <이미지를 기억에 고정하다>. <예언자 안나>. <음화의 손>.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노랑턱멧새. 색상환. 이 모든 이미지와 작품이 전시실의 벽에 윤경희의 글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공간을 걸어 다니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이런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