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쓴다. 5·18은 국가가 자행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자, 동시에 중대한 인권침해에 저항한 시민들의 직접행동임을 명시하고 인권의 관점에서 5·18의 집단트라우마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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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다시 쓰기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집단트라우마와 사회적 치유) 내용 요약
이 책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단순히 과거의 역사로 박제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권과 심리적 치유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합니다. 김명희를 비롯한 여덟 명의 저자들은 5·18 민주화운동이 남긴 깊은 상흔이 개인의 고통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집단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합니다. 국가 폭력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무력했던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인문학 수업하면서, 개인적으로 어렵다고 느껴지는 장소는 단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정치 이념과 관련 있기에, 수업할 때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은 아직도 정치적 소모 거리로 이용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나 먼저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봤자, 다큐멘터리 보고 책을 읽는 게 다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읽게 된 '5.18 다시 쓰기'!
이 책은 5.18 민주화운동이 1980년 5월 열흘 동안 광주 지역에서 발생한 한시적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그 사건을 꼬리표처럼 함께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내가 미쳐 생각하지도 못했던 유가족, 일선 대응인, 목격자, 사후 노출자의 트라우마도 서술된다.
처음 역사를 접했을 땐, '역사 속 영웅'을 찾는 것에 급급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영웅'이 아닌 '사건'에 집중하게 되면서, 그 사건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아픔에 더 마음이 간다. 이 책 역시 '민주화의 영웅'이 아닌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누추한 독자(저요🙋)에게 찾아와준 귀한 책.
1980년 발생한 5.18이라는 사건 이후 그 사건과 함께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생애사적으로 접근하여 바라본다. 이제까지 국가가 규정하고 인정해온 협소한 피해자 범주에서 벗어나 광의의 집단적 시민 피해자 범주를 조명한 시도가 인상적이다. 저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개념을 차용하는 의학적 접근만으로는 국가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진실규명 은폐와 지속적인 인권침해에 직면해 피해자들이 겪게 되는 고통의 연속성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임을 강조하며 그 대안으로 복합적 집단트라우마(CCT)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이에 다가설 연구방법론과 새로운 진단기준을 마련하고자 했다. 나아가 책 전반에 서로 별개의 것으로 이해되어왔던 인권 의제와 트라우마 의제를 통합하여 인권에 기반한 사회적 치유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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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업은 항상 내게 재밌으면서도 버거웠다. 열심히는 했지만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고 해야 할까. 주요사건 년도와 그 많은 문화재를 무턱대고 외우려 들다 보니 흥미가 떨어졌고, 그나마 흥미 있던 현대사는 교과서 앞부분 진도를 나가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 학기 말에나 훑듯이 지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부끄럽지만 5.18에 대해 깊게 알지 못했다. 졸업을 하고 시간이 흐르자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영상물의 화면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은 듯 아닌 듯 했다. 그런 때에 플라이북 서평단으로 받게 된 오월의 봄 출판사의 <5.18 다시 쓰기>는 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채감을 해소하고 5.18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다.
<5.18 다시 쓰기>는 상당한 근간으로 1980년 5.18과 2014년 4.16 참사,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에서 공통점을 찾으며 시작한다. 해당 사건들의 사건성이 부인되고 우연한 사고의 문제로 치환될 때 피해자의 존재와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 또한 은폐되거나 축소되었다. 그럼으로써 인권침해를 야기한 가해자의 책임은 실종되고 거꾸로 피해자가 충분히 보상을 받은 특권 세력으로 만들어지고 만다. 집필진 중 한 명인 김명희씨는 오히려 피해자가 사회공동체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소외되는 이러한 패턴은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탈진실 정치', '부인(denial)의 정치'의 풍경들이며 이 결과는 50명에 이르는 5.18 자살자 문제로 나타났다고 역설한다. 이 문단을 읽으며 이태원 참사 생존자가 끝내 생을 비관했다는 기사를 본 것이 생각이 났다. 국가의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일어난 위 사건들이 해소되는 과정에는 부정하지 못할 유사성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목은 '인권의 관점에서 본 5.18 집단트라우마와 사회적 치유'로, 기존의 사건사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5.18을 생애사적 사건으로 바라본다. 책을 크게 두 장으로 나누었을 때, 1부는 연구설계의 과정을 담고 있고 2부는 각 피해자 유형에 대한 사례연구 결과를 서술하였다. 2부에서는 5.18 직접적 피해자, 유가족, 일선대응인, 목격자, 사후노출자 순으로 5.18 집단트라우마의 작동 방식을 살펴본다. 이 책은 피해자의 범위를 직접적 피해 당사자나 그 유가족에게 한정했던 기존의 조사 관행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시민 피해자 유형을 포함하여 집단트라우마의 실상에 맞는 피해자 유형학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직접적 피해자 중심의 협의의 피해자 담론에서 벗어나 좀 더 광의의 집단적 시민 피해자 범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저자들의 노고는 텍스트를 통해 고스란히 마음에 와닿는다.
책을 읽는 내내 사건 당시 대한민국의 군부가 광주 시민들에게 행사한 폭력과 이후로도 이어진 피해자들의 삶의 여파에 가슴을 엔 듯하였다. 피해자들이 구술한 내용의 대부분이 그러했으나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사건 이후로 십여 년 이후까지도 직접적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당시 안기부, 그리고 정보과 형사 등에게 감시와 사찰을 일상적으로 당했다는 것이었다. 한 유족은 직업상 자동차를 잘 다루었는데, 그런 그가 돌발행동을 할 것을 염려하여 안기부는 전두환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이 광주에 방문할 때면 3일 전부터 그를 데리고 전라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어떤 날에는 광주 공원 인근 지하 벙커에 가게 되었는데 그날 경험한 공포가 아직도 선명하다는 그의 회고에 정말 마음이 아팠다. 비상식이 일상이 되는 경험은 인간의 생애를 송두리째 바꿔놓았을 것이기에 잃어버린 그들의 과거가 안타깝고 화가 났다.
얼마 전 사회과 교과과정의 학습요소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언급이 삭제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교육부는 5.18을 겨냥한 삭제가 아니고 의도한 게 아니라며 논란을 일축했지만, 지금이라도 해당 부분을 보완‧보충하겠다는 후속 보도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책을 전부 읽고 나니 이전에 들은 소식이 더욱 놀랍고 참담하여 피해자들이 느낄 좌절감과 무력감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녕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은 5.18에 대해 알고, 배우고, 기억할 권리를 잃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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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p.
이 개념을 제안한 논자들에 따르면 복합적 집단트라우마는 집단적 외상과 복합적 외상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자기 자신, 가족, 공동체, 문화 등 다양한 생태계 수준의 상호작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항상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 특히 이들은 집단트라우마의 복잡성을 가중시키는 요소로서 트라우마가 수십 년에 걸쳐 “가정에서” 누적적으로 (재)발생하고 재생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75p-76p.
다수의 인터뷰이는 5.18을 만나 사회와 정치에 눈을 떴다. 학생운동에 참여해왔던 한 명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소시민’적 일상을 살아가던 이들로 우연히 5.18의 국가폭력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자비한 계엄군의 폭력에 대한 분노와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시위에 동참했다. 사회와 정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이들이 계엄군에 맞서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광주 시민들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당시 광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 참여자들을 숨겨주었으며, 스스로 치안을 유지하면서 이상적인 도덕적 공동체를 구현했다. 당시 희생당하거나, 부상, 구금된 사람을 넘어 광주 시민 전체가 ‘피해자’이자 ‘유공자’라는 인식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 근거했다.
90-91p.
피해회복은 원상회복, 금전 배상, 재활, 만족, 재발 방지의 보증 등을 포괄하는 개념임에도 일회적 금전 중심의 보상이 이뤄짐에 따라 피해회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생성되기 시작됐다. 나아가 물적 토대는 인간 생존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보상은 사회적 인정이란 인식 속에서 작동했다는 점에서 왜곡된 보상 절차와 기준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회복을 북돋기보다는 사회적 불인정을 확인하는 기제로 기능하면서 오히려 피해자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강화하는 요소로 작동했다.
113p.
민주화의 순풍이 불었던 시기에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특별법 제정 등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들 가족의 죽음과 5.18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 태도는 달라졌으며, 이러한 변화는 지난 수십 년간 되풀이되었다. 가족의 죽음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정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지위가 불안정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정권과 사회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주었고, 정권의 태도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유가족은 다시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141p.
5.18은 국가폭력의 박물관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국가폭력의 모든 형태를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폭력의 형태 중 매우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유가족에 대한 공안 기관의 감시와 인권침해다. 신군부는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생길 것을 우려해 유가족들을 통제하고자 했다. 정부 기관에서는 유가족들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여러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했다.
154p-155p.
그러나 5.18을 ‘사회적 재난’ 측면에서 이해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관련자와 그의 유족뿐만 아니라 사건 현장을 마주한 소방관과 경찰, 의사와 간호사, 기자 등도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로 포함시킬 수 있다. 통상적으로 이들을 ‘일선대응인’이라고 부르는데,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거나 충격이 큰 외상사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정신건강이 취약한 직업군으로 분류된다.
175p.
따라서 과거에 겪은 정신적 사건이 현재의 행동을 지배하는 현상을 ‘트라우마’라고 한다면, 일선대응인은 5.18 집단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학살이 진행되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일선대응인은 말하기와 회피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특히 말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일선대응인은 증언의 반복적 수행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했으나 불충분한 과거청산 때문에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고 밝혔다.
181p.
통상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다루어지는 제반 과정에서 ‘목격자’라는 범주는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목격자는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이자, 외상적 사건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목격한 사건에 대해 진술할 수 있는 잠재적인 증언자로서의 위상을 지니기 때문이다. … 특히 국가범죄 목격자는 국가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와 정치적 폭력의 유산을 극복해가는 이행기 정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목격자의 증언은 진실규명과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정치 참여의 형식일 뿐만 아니라 이들 목격자가 직접적 피해자의 지지자가 되는가 방관자가 되는가에 따라 이행기 정의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83p.
5.18 목격자의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통찰은 ‘5월 증후군’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연구팀이 제안한 ‘복합적 집단트라우마’의 양상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하지만 이 개념은 현상을 포착할 “의학적, 심리학적 소견” 및 “과학성을 획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발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보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PTSD 개념에 의존해 수행한 여러 심리조사 작업은 배상 또는 입증의 정치 속에셔 의료전문가의 권력이 강화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었다. … 하지만 국가범죄 목격자의 트라우마를 PTSD라는 개념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는 이들의 고통을 드러내고 실체화하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인권침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의료화하고 탈정치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231p.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5.18로부터 한 발 물러나 있었지만 적어도 먼 거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보낸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사후노출자들은 외상적 물질과의 접촉을 통해 5.18을 사후적으로 목격한 목격자가 되었다가 공감적 청중으로 변모했으며, 이러한 공감적 청중으로서 사후노출자는 적절한 계기를 만나 그것에 조응하면서 5.18의 전달자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5.18 피해 생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진실을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잠재적으로 ‘예비’했던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260p.
오해해서는 안 될 점은 이것이 피해자의 범주를 무차별적으로 확장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직접적 피해 집단의 당사자성만을 고집하게 되는 것은 5.18의 국가폭력이 지닌 지속성과 확장성을 부정하고, 5.18을 직접적 피해 집단만의 문제로 만들어 오히려 그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사후노출자의 경우 5.18의 과거청산을 위해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진실을 전달하고 부인에 맞서 싸워왔다는 점에서도 직접적 피해 집단만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은 이들의 노고와 상처를 부정하면서 자칫 연대의 끈을 느슨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지지 동력을 상실하게 할 우려가 있다. 고립과 사회적 지지의 약화는 결국 5.18 부인을 용이하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피해생존자와 (유)가족 그리고 5.18의 과거청산을 희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재차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게 함으로써 트라우마의 늪에 더욱 깊숙이 빠지게 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1980년, 국가권력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민중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21세기에도 5.18은 아직도 여러 형태의 ‘폭력’에 다치고, 상처받고 있다. 2010년대에는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의해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확산했고, 심지어 일부 방송사마저 이들의 주장을 닮은 방송을 버젓이 송출했었다. 유족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그들에게서 오는 ‘폭력’에 대해 자신의 ‘피해자’다움을 내세워야만 했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평소에 역사를 좋아했던 나는 어느덧 사학과에 진학했다. 학교가 있는 자리 특성상 광주 시내를 지나가는 일이 매우 잦은 나에게 특히, 5월이 다가올수록 나와는 ‘시간적’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광주 시내의 모습이 1980년 그때의 모습을 점점 나에게 비춰줬다. 특히 전야제와 같은 행사에 한 번씩이라도 구경해볼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 현장을 애써 외면했고, 피했다. 설령 아버님께서 날 데려가도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5.18의 진실을 위한 걸음은 진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시간 동안 제창하지 못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도 다시 부를 수 있었고, 5.18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도 구성됐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 아니 심지어 억울하게 죽어있는 이에게 향한 ‘폭력’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있었다. 다시 ‘남은 자’들은 폭도가 아니고, 빨갱이가 아님을 억울한 심정 속에서 증명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적는 데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5.18이란 숫자만 봐도 좋은 먹잇감이라도 되는 마냥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일부로 관련된 이야기를 피했고, 이 글 역시 마찬가지가 되는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혹여라도 누가 물어봐도 정말 내가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아닌 이상 잘 모르는 척,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척했다. 나와 1980년 5월의 광주는 시간적 괴리가 상당한 존재지만 나의 배경이 되고 삶이 되는 가족이라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그런 시간적 괴리와 ‘회피’는 하등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5.18을 안고 태어났고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운명’이라는 우연 앞에서 가해지는 ‘남은 자’들에 대한 폭력을 스스로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력하게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모두 글을 쓰고 있는 스스로 돌이켜보면 ‘트라우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이런 감정과 생각은 5.18을 인권적 측면에서 트라우마를 분석하고, 5.18의 피해자를 80년 광주의 희생자와 부상자들과 같은 직접적 피해자에게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2세대, 목격자들에게도 그 범주를 확대하는 광의적 분석을 통해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한 연구한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책을 받아보고 천천히 읽어가면서 등장하는 여러 구술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그 구술의 소리를 듣고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다. 특히, 5.18 이후의 경험에 대해 은둔하고, 비판하고, 좌절하는 점을 가지게 되었다는 분석에 나의 부모님이 그대로 비춰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5.18에 언급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어머님은 어디 가서 5.18의 “5”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누가 알면 또 이상한 소리 꺼낸다고 하면서. 이러한 점은 책에서도 잘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트라우마의 분석에서 끝맺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5.18과 관련된 피해자, 가족, 목격자 등의 구술을 통해 이들이 가진 트라우마를 파악하고 지금도 현재진행인 ‘남은 자’들에 대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을 위한 것임을 서론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비단 5.18만이 아니라 4.3, 10.19, 한국전쟁기의 양민학살, 오늘날의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와 ‘남은 자’들에 대한 폭력의 재생산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5.18 다시쓰기>는 국가폭력이라는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와 희생에 대해 ‘남은 자’들에 대한 단순한 금전적 차원에서의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닌 그간 우리가 도외시한 인권적 측면에서의 ‘남은 자’들에 대한 치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남은 자’의 가족이자 2세대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등장인물인 “영수”는 다음의 말을 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지기만 했다.”
더 이상 오월이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윤상원 열사의 말씀대로 승자의 역사로 남기를 바라며 글을 남긴다.
《이 글은 도서출판 ‘오월의봄’에게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살었던 나는 모를 현실
마주할 수 없었던 그날의 불편한 진실
매체를 통해 접하지만 그냥 안타까운 마음뿐
선거의 한쪽으로 쏠림현상이 나오는 진실
이런류의 사실들로만 막연하게 접해서 궁금하지만 접하기 무서운 진실들에 대해 주관적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트라우마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 5•18 다시쓰기.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듣기 중심의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그 분들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내용들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했다. 사람의 기억이란건 자기 편리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많이 비어있는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라우마 관점에서 본다면 그로인해 기억의 유실 혹은 변형의 의심은 없는건지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연구가 잘못되었다거나 틀리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러한 연구가 더 나은 미래와 인류를 위해 가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국가폭력의 사태와 진실 속에 가해자는 방관하고 피해자가 증명해 나가야 하는 이런 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매우 불편할 뿐이다.
그분들이 복합적으로 느낀 상실감, 고립감, 결핍, 외로움
두려움, 억울함, 분노 등의 감정을 우리가 전부 이해하기라는 어렵지만, 이를 통해 국가 발벗고 나서서 개선해야 되지 않을까.
경제적 이득이 없는 이 책을 출판한 오월의봄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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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518은 인권의 문제로 직관적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p75
광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 참여자들을 숨겨주었으며, 스스로 치안을 유지하면서 이상적인 도덕적 공동체를 구현했다.
당시 희생 당하거나 부상, 구금된 사람을 넘어 광주 시민 전체가 '피해자' 이자 '유공자' 라는 인식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 근거했다.
p121
부모의 부재는 '상실'이라기 보다는 '결핍'에 가까웠다.
이 책은 플라이북 서평단 참여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