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글쓰기의 대가, 실천적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조지 오웰’과, 그런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법한 ‘장미’. 이 책은 실로 익숙한 두 단어의 낯선 조합을 통해 20세기 영미 문학의 독보적인 작가 오웰의 가장 새로운 초상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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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내용 요약
『오웰의 장미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 2022년 11월 25일 반비를 통해 최애리 번역으로 출간한 에세이로, 약 360쪽 분량의 책이다(ISBN: 9791192107974).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미국의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솔닛은 “위기의 시대에 기쁨과 아름다움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조지 오웰의 장미 사랑에서 출발해 인간의 저항과 희망을 탐구한다. 오웰의 『1984』와
# 워라밸 대신 빵장밸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뜻이다. 1970년대 영국에서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뜻은 뭔가 유연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업무와 그 외의 시간을 물과 기름처럼 이분법적으로 구분해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옆에 사람이 언제 출근하고 퇴근하는지만 안다면 워라밸이 어떤지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는 것은 평가하고 간섭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데 현실이 과연 그럴까? 현실은 모호하며 항상 섞여 있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워라밸 대신에 ‘빵장밸’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다. (Bread-rose balance)로 앞 음을 따서 ‘브로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빵장밸’이 더 입에 감긴다. 일단 ‘빵’과 ‘장미’가 무엇인지 정리해야겠다. 빵과 장미를 처음 얘기했던 도트는 빵을 ‘집과 안식처와 안전’이라고, 장미를 ‘음악과 교육과 자연과 책’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 더해 리베카 솔닛이 오웰의 글에 대해 의제 부분은 ‘빵’이고 심미적인 부분을 ‘장미’라고 표현했다. 이것을 조합해보면 빵은 육체를 위한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기도 하거니와 정신적으로는 논리적인 로고스적인 측면인 것 같다. 그리고 장미는 심미적이고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인 것 같다.
워라밸과 달리, 빵장밸은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다. 오웰의 글에 빵과 장미가 공존하듯이 말이다. 어떤 행위에 100%의 빵과 100%의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워라밸은 어떤 시간적 정의라면, 빵장밸은 추구와 관련이 있다. 만약 하나의 업무 시간을 놓고 보자면 워라밸 입장에서 그것은 ‘워’로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빵장밸로 보게되면 그것은 빵과 장미의 조화다. 거기서 장미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장미가 극히 작을 수 있으며, 자신이 의미 있고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일이라 생각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면, 장미가 많이 함유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빵장밸은 워라밸 보다 주관적이며, 당사자가 표현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친구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가 몇 달 동안 하루에 12시간씩 예술 작품을 써내려 간다고 생각해보자. 워라밸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워라밸이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빵장밸로 본다면 그는 자신의 ‘장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밸런스가 잘 맞을 수도 있으며, 만약에 그 작품이 잘 안 팔리거나 판매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빵’쪽이 너무 빈약할 수도 있다.
이렇듯 빵장밸이라는 용어적 도구를 얻은 나로서는, 앞으로 인생을 설계할 때 더 유연하게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행위들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으며, 어떤 행위든 어느 정도의 빵과 장미가 섞였는지에 따라서 전체적인 삶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저번 달 모임에 나온 ‘엄지용’님을 보면서 많이 느꼈다. 엄지용님은 누가 봐도 워라밸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것이다(엄지용 님은 모임이 끝난 날 밤 10시에 업무를 하러 가셨다). 그런데 엄지용은 전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만드시는 기술이 사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주말에도 이어지는 엄지용님의 빡빡한 업무 속에는 ‘장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누가 그에게 일을 많이 한다고 뭐라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의 목표는 이렇다.
- 나의 장미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다른 사람이 장미라고 부르는 것을 쫓아가지 않기
- 필요 이상의 빵에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기, 나머지 에너지는 장미를 누리는데 사용하기
(2023.04.13에 쓴 독후감)
장미로 시작된 오웰의 이야기가
여성의 참정권으로, 기후위기로, 노동착취로 이어지다니.
동물농장, 1984 책으로만 기억했지, 오웰은 잘 몰랐는데
이런 사람이었구나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러 고전들을 읽다 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는 문제들이 많은데
‘여전하구나’, ‘왜 아직도 이래?’라고 답답해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텍스트를 읽고 현재를 돌아보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것, 이런 행위 자체가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하는 방향이지 않을까. 이 작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