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황정은. 황정은의 두번째 장편소설로, 불쾌하고 사랑스러운 여장 노숙인 앨리시어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이제까지 그의 소설에서 만나보기 어려웠던 황폐하고 처절한 폭력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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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장편소설) 내용 요약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여장 노숙인 앨리시어를 주인공으로 한 독특하고 강렬한 장편소설이다. 📖 이야기는 앨리시어가 사거리에서 불쾌하고 괴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는 짧은 치마 정장과 발에 맞지 않는 하이힐을 신고, 스타킹을 걸친 채로 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 그의 굵은 뼈대는 옷 속에서 어색하게 튀어나왔다 가라앉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피한다. 🌧️ 앨리시어는 이런 시선을 사랑스럽다고 느끼며, 불쾌함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대할때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한다. 귀찮고, 엮이면 번거롭고, 진실을 아는게 두렵기 때문이다. 모른척 외면해 버리면 안 일어난 일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는 가정폭력 이라는 우리가 대현하기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 불편함을 느껴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을 때마다 우리를 부르고 있다.
"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그대를 찾아 머리를 기울여본다."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모른척 하자.
"그대는 고모리를 기억하나."
속이 불편하다, 역겹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귀찮아 진다, 뒤돌아 서고 싶어진다.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외면하지 못하게 잘 따라 오는지 저만치 서서 고개를 빼고 서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아동 양육자 가운데 지난 1년간 아동을 학대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6%로 나타났다. 여가부는 지난해 8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9,060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 실태를 조사했다.
이번 조사에서 아동폭력 가해율은 3년 전 부모에 의한 자녀 학대율 조사 때 나온 수치인 27.6%와 같다. 아동 학대 경험이 있는 여성이 32.0%, 남성은 22.7%였다. 폭력 유형별로는 정서적 폭력 24.0%, 신체적 폭력 11.3%, 방임 2.0% 순으로 높았다. - 서울경제 (2020.3/26일) -
어릴적에 우리집 알람은 뒷집 아줌마의 고함 소리였다.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욕하며 고래고래 고함치는 소리, 빗자루 들고 아이를 쫒아 뛰쳐 나오는 소리에 잠은 자동으로 깰 수 밖에 없었다. 하루가 멀게 그야말로 아이들을 두들겨 팼다. 매일을 온 동네가 시끄럽게 난장을 쳐도 어느 집 하나 나서는 일은 없었다. 우리 엄마조차 교양머리 없다며 쯔쯔 혀를 차셨을 뿐이다. 그건 그집의 가정사에 간섭 했다간 큰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랬기에 그 정도가 학대 인지는 모르겠다.
이정도 가지고 이게 무슨 아동 학대야! 이정도는 누구나 다 맞고 자라. 버릇 고치기에는 매가 최고야. 흔히들 듣고 내뱉던 말들 이다.
학대 정도 까지야 아니더라도 폭력은 폭력 이다. 어른이야 주먹으로 콕 쥐어 박았을 뿐이지만, 조막 만한 아이 입장에서는 바윗덩이로 맞는 기분일 게다.
뉴스에서 종종, 계모, 계부,,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나온다. 관련 법이 강화되고, 엄격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을 한다고 떠들다가도 어느새 사그라져 버린다. 대중은 다른 이슈에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을 향해 짧게 나마 보냈던 위로를 거두어 들인다.
작가는 가벼운 위로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해결책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이야기를 들려줄 뿐 이다. 지속적으로 얘기 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듣게하고, 기억하게 하고, 따라 가게끔 만든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감독하게 만든다.
책 내용은 시종일관 무겁고 우중충하고 우울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타 동일 소재의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처음 첫 줄을 읽는데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 요소는 중간 중간에 더러 나타난다. 엘리시어라는 이름에서 부터 판타지 느낌 이다. 엘리시어가 앨리스가 되어 끝없는 토끼굴 속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을 묘사하는 장면은 그의 고통의 지속을 나타내고 있으며, 아동학대의 무한반복 됨을 의미 한다. 또한 여장 부랑자 엘리시어가 사거리에서, 주위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이 서있는 모습을 이야기 첫 부분과 끝 부분에 반복적으로 얘기 함으로 언제고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니 그때는 불쾌해 하거나 불편해 하지 말라고 말한다.
목숨은 모두 가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가치가 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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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간단하고도 명확한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 내에서도.
야만적일만큼 소름끼치는 이 현실적인 이야기는 우리를 늘 지나가고 언젠간 끝나겠지만 그 끝의 고통을 알기에, 우리는 기록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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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님의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가다 보면 약자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런 독자들이 모이면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가득했던 강렬한 첫인상에서 이 책은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책들과는 사뭇 다른 결의 책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독립출판물이 아닌 책에서 비속어와 은어가 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해볼 수 조차 없었던 나에게 이 책은 충격이고, 신선함이었고 불쾌함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등장하는 "존나게" 부터 시작하여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씨-발" 이라는 단어들을 눈으로 훑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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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말미에는
앨리시어의 실패와 패배의 기록이다.
라고 적으며
이제 그대의 차례가 되었다.
이것을 기록할 단 한 사람인 그대,
그대는 어디까지 왔나.
이것을 어디까지 들었나.
이것을 기록했나.
마침내 여기까지, 기록했나.
앨리시어가 그대를 기다린다.
그대가 옳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다시 한번 그대가 옳다.
그대와 나의 이야기는 언제고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그대와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로 마무리된다.
주변에 있는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사람들의 아픔을 못본척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이것은 앨리시어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이야기.
발이 땅에 닿지 못한 채 바닥없는 토끼굴에서 계속 떨어지고 있는 그 세 아이들의 이야기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한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 이야기를 써 나가야 한다고 절규하는 목소리로 작가는 말하고 있다.
고통스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모리의 세 아이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