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처녀작.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가지 인간성을 연애와 결혼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고찰한 소설이다. 19세기 초 영국 중산층의 일상을 배경으로 한 풍속희극으로, 인물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펼쳐내는 솜씨가 빼어나다. <오만과 편견>을 번역한 윤지관 교수가 우리 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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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내용 요약
이성과 감성는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이 1811년에 출간하고, 2006년 3월 25일 민음사에서 윤지관 번역으로 출간된 소설로(ISBN: 978893746132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번이다. 📖 약 519쪽 분량의 이 책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행복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19세기 초 영국 젠트리 계급의 대시우드 자매(엘리너와 메리앤)가 사랑과 결혼을 통해 물질주의와 계급의 제약 속에서 성장하며 인간 본성과 도덕적 균형을 탐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성과 감성을 오만과 편견보다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사랑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를 정면으로 해부하기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이 두 사람이 서로를 오해했다가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소설은 애초에 감정이라는 걸 어떻게 다뤄야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성적인 엘리너와 감정적인 매리앤, 정반대의 두 자매를 통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찾아나간다.
엘리너는 이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흔들릴 때, 그녀는 자기 슬픔을 드러내는 대신 어머니와 동생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떠맡는다. 에드워드라는 사람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가 이미 다른 여자와 몰래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조차 그녀는 그 고통을 몇 달 동안 혼자 삼킨다. 심지어 그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연적이었는데도, 그 사실을 동생 매리앤에게조차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좀 숨이 막혔다. 엘리너가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깊이 아파하면서도, 자기가 무너지면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 알기에 그 아픔을 계속 안으로 눌러 담는다.
반대로 매리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윌러비라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자, 그녀는 주변의 시선이나 당시의 예법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감정에 완전히 몸을 맡긴다. 약혼도 하지 않은 사이에 편지를 주고받고, 감정을 숨기는 법 없이 사람들 앞에서도 대놓고 그를 향한 마음을 드러낸다. 근데 그렇게 온몸으로 쏟아부었던 사랑은 결국 배신으로 돌아오고, 매리앤은 그 충격으로 몸져눕는다. 열병을 앓으며 생사를 오가는 동안 그녀 곁을 지킨 건 정작 화려했던 윌러비가 아니라, 나이도 많고 과묵해서 처음엔 시시하게만 여겨졌던 브랜든 대령이었다.
나는 이 대목이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거 같다. 매리앤이 그토록 갈망했던 건 강렬하고 극적인 감정이었는데, 정작 그녀를 살려낸 건 그런 화려함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곁을 지키는 묵묵함이었다. 열정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면, 묵묵함은 그 사람이 쓰러졌을 때 붙잡아주는 힘이었다. 처음 매리앤의 눈에 브랜든 대령은 그저 무료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그 변하지 않는 자리였다. 화려한 사랑은 사람을 설레게 하지만, 결국 사람을 버티게 하는 건 그 반대편에 있는 마음일 때가 많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하게 됐다.
엘리너와 매리앤, 이 두 자매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 계속 생각했던 건, 이성과 감성 둘 중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결국 둘 다 필요하다는 거였다. 엘리너처럼 다 참고 눌러 담기만 하면 그 슬픔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냥 안에서 곪아간다. 매리앤처럼 다 쏟아내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를 위험한 곳까지 몰고 간다. 소설이 끝날 때쯤 매리앤은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던 태도를 조금씩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엘리너는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조금은 드러내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다. 둘 다 서로에게서 반대편의 미덕을 배우면서 조금씩 가운데 지점으로 움직여가는 거였다.
이 지점에서 오스틴이 하려던 말이 좀 더 선명해졌다. 제목처럼 이성과 감성을 서로 대립하는 가치로 세워놓고 어느 한쪽 편을 들려던 게 아니라, 결국 이 둘이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이성만 있으면 삶이 메마르고, 감성만 있으면 삶이 쉽게 무너진다. 엘리너와 매리앤이라는 두 사람으로 나눠 그려지긴 했지만, 사실 그건 한 인간 안에서 늘 부딪히고 다투는 두 가지 얼굴이었던 셈이다. 어느 한쪽을 완전히 버리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 균형을 조금씩 옮겨가며 맞추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게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가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인지 생각해보게 됐다. 감정이 크게 흔들릴 때, 나는 대체로 엘리너 쪽에 가깝다. 평소에도 감정을 잘 묻어두고 꺼내지 않는 편인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태도가 더 굳어지는 것 같다. 일이 먼저고, 해야 할 것부터 처리하고, 주변 사람들을 먼저 챙기다 보면 정작 내 감정은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게 어른스럽고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믿어왔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것도 결국 균형을 잃은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계속 눌러 담기만 하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조차 나중엔 흐릿해질 때가 있다. 엘리너가 소설 마지막에 가서야 참아왔던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을 보면서, 그 눈물이 나약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얼마나 단단히 버텨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성으로 감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무조건 눌러 참거나 반대로 무작정 쏟아내기보다는, 우선 내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중에서 흘려보낼 건 흘려보내줘야 한다는 것. 나도 앞으로는 힘든 일이 있을 때 일단 참고 넘기기보다, 가끔은 매리앤처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사회적으로나 계급적으로 제가 세워둔 외연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답답하다. 그녀의 집요한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능력에도 불구하고 노동과 생산이 제거된 세계에선 시골마을 파티나 돌며 처녀들을 농락하는 싸구려 한량 말고 괜찮은 남자들이 등장하긴 어려운 것이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막혀 있는 시대상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라고 모두가 이렇게 수동적인 삶을 산 것도 아니어서 오스틴의 세계가 지나치게 좁단 것만 깨닫게 될 뿐이다. 더구나 그녀의 관심은 시골마을의 상류계층에 매여 있고 결말은 늘 황급한 해피엔딩에 머무르기에 이야기의 다채로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불과 20여년 뒤 찰스 디킨스와 빅토르 위고, 마크 트웨인과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문호들이 쏟아졌단 걸 생각해보면 시골 귀족들의 시시콜콜한 연애담만 써댔던 오스틴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그녀에겐 다른 모든 작가 만큼이나 모험이 필요했다.
3부로 가면서 극에 많은 반전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해 진다.
내가 알고 있는 영국특유의 고전이었다. 옛날 영국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묘사와 내용이었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제인오스틴만의 감성과 묘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었다.
문학소녀가 아니기에 감정과 성격을 묘사하는데 엄청 훌륭하다는 것을 전문적으로는 모르지만 위대한 개츠비에 비해서는 확실히 유려한 글이라고는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