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렘 입숨의 책

구병모 지음 | 안온북스 펴냄

로렘 입숨의 책 (구병모 미니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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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3.1.31

페이지

256쪽

상세 정보

구병모 미니픽션.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의 작품 열세 편을 모은 이번 책에서 작가는 그간 보여준 심미적인 색채를 더욱 강렬하게 내뱉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과 의식을 소설화해내는 능력을 여지없이 펼쳐 보인다.

모두 달라 보이는 열세 가지 색감은 소설을 다 읽고서야 도달하게 될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아야만 비로소 그 진면모를 알 수 있다. 마치 나스카의 지상화를 마주한 순간처럼 놀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은 살필수록 짧은 분량 안에 꼼꼼히 덧칠해 새겨 넣은 메시지(또는 메시지 없음)에 숨죽이게 한다.

‘로렘 입숨’은 뜻 없이 셰이프를 잡기 위해 흘려놓은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나, 그 뜻 없는 낯섦이 우리를 완벽하고 세련된 작품의 세계로 이끈다. 선악에 대한 관념이든, 언어나 예술에 대한 태도이든, 세대나 시대의 위기 감각이든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쉬이 발설하지 않고 소설화하여 그 구조로서 드러나게 한다.

이런 거대한 사고를 세밀하게 소설화하는 능력의 탁월함은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다양한 작품으로 그 빛을 발한다. 이것은 소설과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면밀한 대응이며, 비장한 다짐으로 읽힌다. 애써 소설의 존재 의무를 따져 묻는 일이 소설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여기에 모인 소설들과 함께 그 먼 고도에 가닿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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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언급한 게시물4

b_texthip님의 프로필 이미지

b_texthip

@b_texthip

열세편에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놓고 뜬금없는 sf가 아닌 현실 속에서 SF 요소가 첨가된 느낌이어서
오히려 색다르게 혹은 정겹게 읽은 것 같다

로렘 입숨의 책

구병모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4년 1월 13일
0
사는게버거운정도님의 프로필 이미지

사는게버거운정도

@s071bqhxwhsn

읽었을때 별다른 의지가 없다고하며 아무글자나 얹어놓은것은 아니다

로렘 입숨의 책

구병모 지음
안온북스 펴냄

2023년 6월 29일
0
이주연님의 프로필 이미지

이주연

@yijuyeonxm0c

📝
내 사람에게는 그런 분 세상에 없다고 칭송받지만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착취하지. 일관성 있게 선한 사람이라면 성직자와 갓 태어난 아기 정도 아닐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조금씩이라도 더럽고 악한 인간이며 나노 시드라는 거름망에 걸러지지 않는 사소한 악행 따위는 없다는 진실을 시민들에게 공개할 수 없었으므로, 명목을 확실히 밝히지 않은 채 별도의 예산의 집행하여 사악한 꽃들을 모두 뽑아내고 태운 다음 원래 자리에 선하고 아름다운 꽃들을 사다 심었다.
화장의 도시_ 화장(꽃의 장례)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지만 동음이의어를 활용해 본 소설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위트 있는 설정과 서사의 전개가 초단편소설이라는 형식에 불구하고 읽으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소적이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서사에 공감한다. 인간은 납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쓴웃음을 지으며 일깨운다.
꽃의 장례라는 주제로 죽은 이의 선함으로 선한 꽃이 핀다는 작가적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
신에게 무언가를 질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고 때론 원망하는 것은 천상에서는 모독이자 불온함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그렇다고 하여 적절하고 무게 있는 예의를 갖추지 않음이 곧 신에 대한 경애가 없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신인의 유배

처음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의 차용인가 싶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나스카 지상화의 이야기라는 걸 찾아보고 알았다. 페루에 있다던 세계 불가사의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 지상화에 대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전개된 이야기가 '신화'를 완성해 내는 또 다른 고전의 다른 해석을 읽었다.


📝
머리로만 생각할 때는 소박한 꿈들이었으나 그 가운데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로 젊은 날의 끝자락에 매달리고 보니 얼마나 원대한 꿈이었는지를 알게 됐는데, 이렇게 발설함으로써 몸 밖으로 찌꺼기처럼 배출해버리자 또다시 그 무게와 가치가 한없이 가벼워졌다.
영 원의 꿈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꿈을 잃어가는지, 현재에서 꿈을 꾸었던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매몽이라는 상황에서 마지막에는 꿈의 값이 없다는 매몽가의 말과 꿈을 파는 나의 이야기인 이 단편 역시 씁쓸한 웃음만이 나온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지 못한 개인의 삶은 단지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며 사회적 문제인지 꼼꼼히 되새기게 한다. 덧붙여 부모가 된 입장에서 내 아이가, 자녀가 경제적 독립을 해 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
그 자신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작가가 제각각 싸지르거나 게워낸 모든 글은 로렘 입숨의 무한 변주 반복에 불과할지도 몰랐고, 글을 쓰면 쓸수록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 아무거나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졌으며,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비로소 그 무엇도 쓰지 않음-세상에 어떤 글도 존재하지 않음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던 궁극의 글쓰기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적보다 완벽한 음악이 없듯이, 점 하나 찍지 않은 흰 도화지가 그림을 압도하듯이, 태어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삶이듯이.
동사를 가진 권리

작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난 단편으로 읽었다. 쓴다는 것에 대한 의식과 '동사'에 대한 권리는 모든 쓰는 사람, 혹은 쓰고자 하는 사람을 주목하게 만드는 품사이다. 이 단편집의 제목인 로렘입숨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로렘입숨이라는 무의미한 더미 텍스트조차도 완전한 무의미는 아니라는걸, 무의미한 글이라는 해설에도 최초의 로렘입숨의 뜻을 소개하는 글조차도 의미성을 갖는다는 작가들의 의식을 읽는다.


날아라, 오딘
개를 훈련시켜 전쟁에 투입하는 동물 훈련 교관인 '나'는 오딘이라는 자신의 개를 전쟁에 투입하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날 전쟁 투입되는 소년병에 대한 은유로 읽었는데, 작가의 글에서는 전쟁터에서 이용된 동물들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는 글에서 인간만이 전쟁의 당사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전쟁이란 결국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의 멸망을 향한 어리석고 참혹한 행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 번만, 다시 한번만 기회를 줘! 이건 억울하다고, 90초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90초는 한 사람의, 한 팀의 역량을 판단하기에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라고. 한 곡의 노래로 쳐도 아직 클라이맥스조차 나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너희가 우리의 무엇을 안다는 거야. 어떻게 역량을 평가한다는 거냐고. 무슨 자격을 가지고!
아름다움과 기분 좋음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진 이들이, 무엇을 도구 삼아 타인의 기량과 예술성을 판단한다는 말인가. 나에게는 열렬한 흠모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헌신짝 이하에 불과해 반대로 나에게 사악하거나 역겨운 것이 타인에게는 극상의 감미일텐데 말일세. 그러나 잊지 말도록 하게. 타인의 역량을 함부로 평가하고 난도질하여 누군가를 떨어뜨리고 누군가를 위로 올려주는 무대에 뛰어들기로 선택한 것은 본인들이라는 사실을.
예술은 닫힌 문

90초 만에 당락을 결정하는 이야기는 요즘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이라는 생각과 예술이라는 분야를 평가한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 또한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과 그 시스템의 양날의 검과 같은 대중들의 심리가, 특히나 대중예술이라는 분야의 속성과 제작자와 미디어의 위력이 느껴진다.


📝
사적 복수가 횡행하고 법률이나 도리 또한 처음부터 그런 것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만신창이가 된 오늘날, 합의에 의해 링 안팎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광기를 제어하고 유사시의 충돌과 유혈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역할을 하면서, 그 자신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지.

그럼에도 주체할 길 없는 분노를 연료로 삶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상대를 저승길에 동행 삼겠다는 결심과 함께 모든 물질과 지위와 관계를 망설임 없이 던져버리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존재하고,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 돕는 입회인으로 지금껏 후회 없이 살아왔다.
입회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미래 사회라는 설정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미디어에서 많이 등장하는 사적 복수라는 주제가 그만큼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인식이 크다는 전제가 느껴진다. 무전유죄라는 관용구 표현이 여전히 유용한 사회라는 건, 인간들의 사회는 분쟁이 늘 존재하고 그런 분쟁의 조정과 조율의 필요성에 의해 법이 발생하였지만 그 법의 공정성이 신뢰받지 못한 현상들이 보인다. 그런 까닭에 사적 복수라는 방법에 입회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빠로 지칭하는 입회인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은 여운이 짙다.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
이 이야기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의 전개가 연상되었다. '쥐가 있네요?'라는 대사 다음 사건에 대한 복선이자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쥐의 등장으로 다음에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긴장감의 고조라고 할까. 잘 알려진 아동 소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작가 자신이 경험과 지금의 아파트 거주의 주거문화와 엮어낸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게 했다. 쥐라는 존재를 아파트 주거 문화 속에서는 보기 드물지만 마주치는 그 순간 경악스럽다. 공포와 병균의 라이더이다!!!

📝
그 애는 어른이 되면 두 팔을 벌리고 선 나무가 될지도 몰랐다. 깜박 졸던 신의 실수로 식물의 유전자를 가진 무언가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처럼. 두 팔로 나무 그늘을 만들어주고, 머잖아 그것이 하늘까지 뻗어 올라갈지도.
중요한 것은 그 팔의 길이와 쓰임새가 아니라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가는지에 달려 있을 거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롱슬리브

학창 시절 팔이 유독 긴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우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선한 마음의 가닿음이 느껴졌다. 놀림의 존재나 기이한 존재로 취급될 친구가 걱정되었지만 그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후일 긴팔 옷을 만드는 옷가게 주인이 된 화자의 말들은 서툴지만 선한 마음의 본바탕이, 멀리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응원하는 마음, 그 마음이 전이되어서 나 또한 있었을 롱 슬리브 한 친구를 생각해 보게 했다.


📝
시간을 지우면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간다는 의미의 이동 또한 지워지며, 어떤 행위도 발생하지 않고 사람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조차 불가능한, 총체적 멈춤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공격성이 사라지면 약탈과 편취도 사라지며, 타인에 대해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인간의 지능이 제로에 수렴되고, 자신의 존속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도 제거된다.
그리하여 원은 공격이라는 말이 반드시 상대를 때리고 찌르는 게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도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된다.
어째서 언어는 서로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언어가 지시하는 사물이나 사태 또한 마찬가지로 연결되어 있는가. 어째서 하나를 없애면 다른 것이, 또 그와 비슷하거나 연관된 다른 것이, 다른 것과 이어진 다른 것이, 연쇄 다발로 소멸하는가, 결국은 모든 것이 자리에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
세상에 태어난 말들

신의 사전을 훔친 원이 하나씩 지워가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들이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연속되는 말들의 연결 고리로 이해했다. 작가의 말의 '뜻밖의 조우'가 문학을, 소설을 읽는 의미의 경험이란 걸 굉장히 사유적인 문장으로 말해준다.


누더기 얼굴
혐오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투명 얼굴이 투명 인간으로 그리고 제목처럼 누더기 얼굴이 되어가면서 게토화 시키고 선을 넣지 않는 한 안전할 것이라는 말들은 인종에 대한 성소수자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격리, 우리와 그들이라는 타자화 시키는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주었다.


지당하고도 그럴듯한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소재를 가지고 전개한 이 단편은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과 일반적 혹은 상식적이라는 고정 관념의 틀을 모든 이들이 갖고 있다. 이 단편에서 각주로 붙은 인물과 영화의 각주들을 읽으면서 고정관념의 무의식적 받아들임의 잘못을 본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인간은 훨씬 다층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인간은 미래를 엿보았다고 해서, 그곳에 편재한 추위와 절망과...... 총체적인 지옥을 목도했다고 해서, 그것을 바꾸기 위해 자신을 반성하거나 현재를 조율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요. 원인을 알아냈다고 하여 인간들이, 두 손아귀에 단단히 붙든 핸들을 다른 쪽으로 꺾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자기가 달려가는 종착지에 멸망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두가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고 모른 척한다는 것을요.
시간의 벽감

미래 시대의 재앙을 알고도 선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우리 세대가 지구 환경의 위기에 다다라 있으면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로렘 입숨의 책

구병모 지음
안온북스 펴냄

읽었어요
2023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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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구병모 미니픽션.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의 작품 열세 편을 모은 이번 책에서 작가는 그간 보여준 심미적인 색채를 더욱 강렬하게 내뱉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과 의식을 소설화해내는 능력을 여지없이 펼쳐 보인다.

모두 달라 보이는 열세 가지 색감은 소설을 다 읽고서야 도달하게 될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아야만 비로소 그 진면모를 알 수 있다. 마치 나스카의 지상화를 마주한 순간처럼 놀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은 살필수록 짧은 분량 안에 꼼꼼히 덧칠해 새겨 넣은 메시지(또는 메시지 없음)에 숨죽이게 한다.

‘로렘 입숨’은 뜻 없이 셰이프를 잡기 위해 흘려놓은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나, 그 뜻 없는 낯섦이 우리를 완벽하고 세련된 작품의 세계로 이끈다. 선악에 대한 관념이든, 언어나 예술에 대한 태도이든, 세대나 시대의 위기 감각이든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쉬이 발설하지 않고 소설화하여 그 구조로서 드러나게 한다.

이런 거대한 사고를 세밀하게 소설화하는 능력의 탁월함은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다양한 작품으로 그 빛을 발한다. 이것은 소설과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면밀한 대응이며, 비장한 다짐으로 읽힌다. 애써 소설의 존재 의무를 따져 묻는 일이 소설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여기에 모인 소설들과 함께 그 먼 고도에 가닿기를 기대한다.

출판사 책 소개

거대한 스케일, 세밀한 스케치
오직 구병모만이 구현 가능한
소설의 지상화地上畵


구병모 미니픽션 《로렘 입숨의 책》이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의 작품 열세 편을 모은 이번 책에서 작가는 그간 보여준 심미적인 색채를 더욱 강렬하게 내뱉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과 의식을 소설화해내는 능력을 여지없이 펼쳐 보인다. 모두 달라 보이는 열세 가지 색감은 소설을 다 읽고서야 도달하게 될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아야만 비로소 그 진면모를 알 수 있다. 마치 나스카의 지상화를 마주한 순간처럼 놀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은 살필수록 짧은 분량 안에 꼼꼼히 덧칠해 새겨 넣은 메시지(또는 메시지 없음)에 숨죽이게 한다. ‘로렘 입숨’은 뜻 없이 셰이프를 잡기 위해 흘려놓은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나, 그 뜻 없는 낯섦이 우리를 완벽하고 세련된 작품의 세계로 이끈다. 선악에 대한 관념이든, 언어나 예술에 대한 태도이든, 세대나 시대의 위기 감각이든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쉬이 발설하지 않고 소설화하여 그 구조로서 드러나게 한다. 이런 거대한 사고를 세밀하게 소설화하는 능력의 탁월함은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다양한 작품으로 그 빛을 발한다. 이것은 소설과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면밀한 대응이며, 비장한 다짐으로 읽힌다. 애써 소설의 존재 의무를 따져 묻는 일이 소설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여기에 모인 소설들과 함께 그 먼 고도에 가닿기를 기대한다.

구병모 소설의 너른 지평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재밌게 읽고 나서야 그 소설의 규모와 숨겨진 의도를 알고 감탄하게 하는 것은 여느 소설가들도 탐내는 구병모 작가의 장기일 것이다.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주제들은 언제나 작가의 몸을 통과해 이야기와 인물을 입고 그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첫 작품 〈화장花粧의 도시〉는 태어나자마자 몸에 심겨진 ‘나노 시드’가 그 사람이 죽은 이후 꽃으로 피어나면서 그 삶을 증명한다는 어느 도시의 장례 정책을 통해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양면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반드시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이 없듯이 선악을 가르는 일에는 또 다른 사회적 모순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레토릭을 구현한다. 〈신인神人의 유배〉는 나스카 지상화의 탄생에 대한 거대한 상상이다. 신비한 자연 현상에 숨겨진 절대자와 신인의 대척 국면이 한 편의 이야기를 쌓는다. 〈영 원의 꿈〉의 ‘나’는 도서관에서 뜻밖에 매몽買夢을 청하는 이를 만나 별다른 의미가 없는 꿈을 팔게 된다. 생활비로도 쓰고 집세로도 쓰면서 안락을 누릴 즈음 더는 간밤에 꾼 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허탕을 반복하던 중 또 다른 꿈, 자신이 꿈꾸었으나 펼치지 못한 꿈을 말하게 되고, 그 잃어버린 꿈에도 값을 매기는 이야기가 꿈처럼 펼쳐진다. 〈동사를 가질 권리〉는 이 책의 제목 ‘입숨 로렘의 책’의 힌트를 주는 작품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소설에 대한 도전, 정형화되지 않고 잡히지 않는 소설을 좇는 의지가 엿보인다.

〈날아라, 오딘〉의 ‘나’는 전쟁에 동원될 개를 훈련하며 그들에게 어떤 감정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잔인한 생체 실험용으로 쓰이거나 대전차 폭탄으로 쓰일 녀석들을 굳이 사랑할 필요는 없다는 다짐은 ‘오딘’의 출전을 앞두고 위기를 맞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이입하게 하는 생생한 소설적 전치술이 숨겨져 있다. 〈예술은 닫힌 문〉은 오늘날 미디어를 휩쓴 각종 오디션 예능의 비정함을 극대화시킨 소설이다. 현실의 오디션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의 오디션은 생과 사를 다투는 전장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90초. 게다가 예술적 성취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심사위원들과의 소설적 대치가 인상적이다. 〈입회인〉은 중세 시대의 결투 제도가 부활한 미래를 그린다. 절차가 복잡하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법 집행이 아닌 사적인 처벌을 원하고 행하는 사람들. ‘나’는 그러한 결투의 당사자만큼 중요한 역할을 행하는 ‘입회인’으로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는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24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밀착 묘사한다. 세입자인 ‘나’는 아이가 태어나 육아와 집안일을 온전히 맡게 되었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내놓은 지 한참 되었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고 한겨울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집에 찾아와 집에 쥐가 득시글하다고 주장한다. 실재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려 하는 관리는 여느 행정력 이면의 폭력성을 눈앞에 그려낸다.

〈롱슬리브〉는 남들보다 눈에 띄게 팔이 길어 놀림감이 되거나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특성을 가진 친구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이야기다. 잠시잠깐 신의 실수로 태어나게 된 것 같지만 그것은 두 팔로 큰 그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현현인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의 주인공 ‘원’은 “신의 사전을 훔쳐서 나온 천사”다. 원은 거대한 사전에서 어떤 단어를 지워버려 더 나은 세상을 인간에게 주고자 한다. 공격, 고독, 오염과 같은 단어를 신의 사전에서 지워내 그 단어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더 좋은 공동체가 될까를 생각하게 한다. 〈누더기 얼굴〉은 투명인간이다. 은유로서의 투명이 아닌 물리적 투명인간인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특성을 활용해 정의와 공익에 보탬이 되려고도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다. 나는 이제 남들과 같은 얼굴을 갖고 싶다. 하지만 본래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없으므로 가능하지 않다. 〈지당하고도 그럴듯한〉의 ‘나’는 소설가다. 출간 작업을 하며 소설을 고쳐나가는, 픽션이 분명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작가 구병모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당하고 그럴듯하다고 믿는 모든 것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 〈시간의 벽감壁龕〉은 시간을 통과하여 공간처럼 이동할 수 있는 펜던트가 개발되었고 100년 뒤의 참담을 목격하였지만, 인간은 미래의 절망을 엿보았다고 해서 자신의 현재를 반성하거나 조율하는 존재가 아님을 목도하게 한다.

이렇게 구병모 작가는 미니픽션이라는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규격에도 불구하고 영토와 시간, 인간과 신의 경계를 무참히 가로지르고 단숨에 제압해 소설 한 편의 완성도와 가능성은 규모로 결정할 수 없음을 증명해낸다. 그렇기에 짧은 소설이라고 해서 그 품이 덜 드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거대하고도 세밀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이 책에는 작품의 시작점과 쓰고 난 후의 소회 등을 담은 작가 노트가 작품마다 더해져 읽는 묘미를 더한다. 우리는 구병모 작가가 가진 소설적 역량을 이해하면서도 때론 오해했고 지당하고도 그럴듯하다고 믿는 근거로 부당한 요구를 더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작가 구병모의 너른 지평과 진수를 한 권에 담아낸 《로렘 입숨의 책》과 함께 짧음 위로 켜켜이 더해진 구병모만 깊이를 한껏 누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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