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 시인선' 80권, 기형도 시집.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이 시집에서 기형도는 일상 속에 내재하는 폭압과 공포의 심리 구조를 추억의 형식을 통해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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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시인선 80) 내용 요약
『입 속의 검은 잎』은 시인 기형도의 유일한 시집으로, 그가 1989년 29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유고 시집이다. 이 책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80번째 작품으로, 총 60편의 시를 담고 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등단한 기형도는 짧은 생애 동안 깊은 내면의 흔적을 시로 남겼다. 그의 시는 우울한 유년 시절, 사랑의 상실, 도시 생활의 고독, 그리고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를 독특한 이미지
(우리는) 놀라움에 떨며 그를 읽었다
기형도 화자들의 몽타주를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중절모를 쓴, 코트를 동여맨,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고개 숙여 거리를 걷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기형도가 떠오를 것이다. 그 뒤를 따라가,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기형도의 시가 아닐까. 등단작인 「안개」가 이 시집의 포문 또한 열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는 문장을 제시하며 시작하는 이 시는, 나와 시집 사이에도 안개를 흩뿌린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안개가 차츰 사라질 때쯤, 나는 거리를 본다. 앞서 뒤를 쫓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거리마다 기형도의 시가 가득한 것을 본다. 선후 관계를 따지고 들 수 없이 끈끈하게 묶여 있는 기형도의 시와, 거리. 그 거리에서 주운 몇 개의 문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조치원」이 좋았던 이유는 나 역시도 사내처럼 서울에서 타향살이하고 있으며 고향에 내려갈 때 열차를 타기 때문이다. 집에 가기 위해 무겁게 짐을 꾸리는 마음을 알고, 그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메고 역으로 향하는 기분을 알며, 플랫폼에 들어오는 열차를 바라보며 이 열차가 나를 데려다줄 곳을 떠올리는 순간을 나는 안다. 가닿는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어떤 결의를 애써 감출 때 그렇듯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 어느 눈 내리는 밤, 그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스산함으로 가득한 거리로의 도착. 「조치원」을 읽으면서 나는 고향에 존재했다.
요즘은 시간에 대한 말들을 수집하고 있다. 박솔뫼 때문이기도 하고, 박봉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고, 그것을 어떻게 더 잘 말할 수 있는지 역시도 나의 관심사다.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 나는 존재하는 것" 「오래된 서적」의 한 문장도 오려 놓았다. “미래가 나의 과거”라는 말을 내뱉기 위해, “미래가 나의 과거”라는 사실과 자신의 실존을 연결 짓기 위해 기형도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을지 모르겠다. 시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과거는 휘황찬란하다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도처에 존재했던 불행과 불능을 끊임없이 반추하게 하는 매개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미래를 그것과 잇는 작업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삶이라는 것이 결국 나의 무지함과 무능함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해도 말이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오후 4시의 희망」을 읽으면서는 우리 인생이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느꼈다. 일전에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서도 느꼈던 감정이다. 혼돈(chaos)의 상황 속에서도, 사실 그 모든 파괴와 폭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의 질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데, 나의 마음은 고요해서 마치 내가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순간. 생각만 해도 너무 아프다. 그러나 어떤 아픔은 사무치도록 연습해야 한다. 기형도의 이 시가 우리에게 좋은 교재가 되어 줄 것이다.
앞서 내가 떠올린 기형도의 화자들은 두터운 외투를 입고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는다. 기형도 시의 계절이 늦가을에서 겨울일 것 같다는 생각에 그런 옷을 입힌 것이다. 이맘때 읽기 좋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10월」이라는 시를 보자.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 아무런 잘못도 없다" 얼마 살지는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그리워지는 것들이 많고, 그런 그리움은 보통 가을과 동시에 찾아온다. 9월에서 10월이 되고, 10월에서 11월이 되고,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거리를 나뒹구는 낙엽이 되면 그리움이 스멀스멀 낙향한다. 내 마음속에 도착한다. 그리움이 얼마나 죽음에 맞닿아 있는 감정인지 나도 잘 안다. 너무 잘 알아서 이 시를 읽으면서 아팠다. 기형도는 그러나 10월 탓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리움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리움을 느끼는 나의 탓을 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닐까.
이 시를 보면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겨울 판화 1」의 이 문장은 나를 너무 아프게 한다. 기형도의 시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시가 바로 「엄마 걱정」인데, 교과서에서 마주한 이후로도 종종 찾아서 읊는 시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가 마침내 도착하여, 잠자리에 누워 '나'에게 해주는 말. 다시 한번 읊어볼까.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목소리로 울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시간을 견디는 것. 그러나 울면서 견디는 것. 작은 목소리로. 울 수 있을 때, 꼭 그만큼의 몫의 울음을 수행하기.
연속적으로 한 시인에 대한 시집을 읽다보면 그의 인생사를 저절로 느끼게 된다. 한 시집을 끝으로 삶도 마무리 한 기형도 시인. ‘입 속의 검은잎’이라는 시집 한권으로 그를 설명하는 게 말이 되는건가 싶다가도 시집 전체를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기형도를 찾는지 알 게 된다.
그의 우울과 무력함을 읽다보면 그리고 그 안에서 놓지않는 희망을 읽다보면 우리는 모두 무너지고 다시 조립되는 자기 자신의 삶을 빗댈 수 있다. 살아있으라, 누구든 살아있으라.
시집과 친해지기 이전에 어떻게 구입하게 되어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강의로 인해 책을 펼쳤지만 뭐든 때가 있다고, 구입할 당시에 읽었다면 읽어내지 못했을 그의 삶.
그의 삶으로 우리는 다시 자신의 삶을 정립할 수 있고 용기를 내어 나아갈 수 있다.
나를 울렸던 많은 문장 중 하나를 적으며,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 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서점에 가서 고르기 힘든 게 인문학서적과 시집이다. 자주 접하지 않는 경우겠지만 기형도시인은 오래전 아는 분이 추천해서 사게 됐다. 뭐랄까~ 슬픔이 묻어있는 시어들이 슬펐다. 기형도시인의 가난과 누이의 죽음과 너무도 일찍 생을 마감해 버린 시인이 가끔 그가 지금도 살아서 시를 쓰고 있다면, 그가 써내려가는 시어들이 조금은 덜 슬퍼졌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바람이다.
# 엄마 걱정 p134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서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위험한 가계 p84
1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 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
2
~~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
~~
3
~~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
작은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4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
~~
5
~~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가계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오르는 저 동지의 불빛 불빛 불빛.
#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사위어 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던 밤,~
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 시집을 다 읽고 나면 엄마 걱정과 위험한 가계의 시 두 편에서 왠지 기형도시인의 삶이 압축되어진 느낌을 가지게 된다. 시인의 사랑 고뇌 고독 허무 분노 절망 희망 등이 담고 있는 한 시인의 슬픈 시어들이 지면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듯 하다.
기형도는 천재임이 분명한 것 같다. 상처, 절망, 슬픔, 고통, 체념..세상의 모든 비극이 이 시집 안에 있다. 단단한 언어로,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인 표현으로(전직이 기자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묘사하는 형용사는 거의 안 쓰면서도 이 시인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몹시 감정적으로 뒤흔들어 놓는다. 심장이 진짜 아픈 느낌이다.
'10월'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어둠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인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