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사람
1명
나의 별점
읽고싶어요
책장에 담기
게시물 작성
문장 남기기
분량
두꺼운 책
출간일
2012.7.27
페이지
420쪽
상세 정보
우리나라 최초, '소금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사. 역사는 물론 민속학과 문화사 전반을 사유하는 저자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한국 소금의 역사문화사'를 담은 책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짠 기氣가 그리워질 때면 여장을 꾸려서 바닷가로 훌쩍 떠나는 역사민속학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영광 댁인 외할머니가 가져다 준 짭짤한 굴비를 먹으면서 자라나 젓갈장사를 했던 어머니 품에서 나는 '짠 향기'를 맡으면서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깨달았다고 한다. 소금에 대한 화두가 커질 무렵 다산 정약용이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이라고 했던 낙동강 하구의 염전을 조사하여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아, 저자는 스스로를 '소금박사'라 부른다.
소금과 묶여진 질긴 인연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10년 이상을 소금의 역사문화와 동고동락했다. 소금과 제염업에 대한 천착의 결과로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서를 썼지만 누구 말처럼 여전히 배가 고팠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소금의 역사, 소금의 문화가 너무 많아서일까. 그는 이를 올곧이 복원하여 세상에 내놓아야 '소금 박사'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에 녹아들어 있다. '짜게 본 역사, 간을 친 문화'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소금을 통해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상세정보
우리나라 최초, '소금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사. 역사는 물론 민속학과 문화사 전반을 사유하는 저자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한국 소금의 역사문화사'를 담은 책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짠 기氣가 그리워질 때면 여장을 꾸려서 바닷가로 훌쩍 떠나는 역사민속학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영광 댁인 외할머니가 가져다 준 짭짤한 굴비를 먹으면서 자라나 젓갈장사를 했던 어머니 품에서 나는 '짠 향기'를 맡으면서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깨달았다고 한다. 소금에 대한 화두가 커질 무렵 다산 정약용이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이라고 했던 낙동강 하구의 염전을 조사하여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아, 저자는 스스로를 '소금박사'라 부른다.
소금과 묶여진 질긴 인연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10년 이상을 소금의 역사문화와 동고동락했다. 소금과 제염업에 대한 천착의 결과로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서를 썼지만 누구 말처럼 여전히 배가 고팠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소금의 역사, 소금의 문화가 너무 많아서일까. 그는 이를 올곧이 복원하여 세상에 내놓아야 '소금 박사'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에 녹아들어 있다. '짜게 본 역사, 간을 친 문화'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소금을 통해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출판사 책 소개
소금, 그 짭짤한 역사문화의 진미!
―우리나라 최초, ‘소금의 눈’으로 본 한국 문화사
“염분 과다 땐 칼슘 고갈 … 골다공증 · 신장결석 유발”, “짜게 먹으면 ‘위암’ 발병 위험 높아”…… 우리는 소금이 과잉될 뿐만 아니라 만병의 원인으로 천대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금이 주었던 그 짭짤한 역사문화의 진미까지 잊어버렸다. 하지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가를 지탱했던 경제 원동력은 소금과 철이 아니던가. 고대의 제염업은 현대의 IT산업보다도 훨씬 유망한 업종이었다. 소금은 절대자의 권위와 힘까지 상징했다. 소금 염鹽 자를 풀어헤치면, 신하臣가 소금 결정[鹵]을 소금그릇[皿]에 두고 지키는 뜻이라 한다. 서양도 동양과 다르지 않다. 잘 알려졌듯이 샐러리salary의 어원은 소금salt이며, 로마 병사는 월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중세 이후에도 소금 그릇은 금으로 칠했고, 근대의 사람들도 소금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을 치던 그런 때가 있었다.
역사는 물론 민속학과 문화사 전반을 사유하는 저자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이 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한국 소금의 역사문화사’를 담은 책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을 세상에 내놓았다. 저자는 짠 기氣가 그리워질 때면 여장을 꾸려서 바닷가로 훌쩍 떠나는 역사민속학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영광 댁인 외할머니가 가져다 준 짭짤한 굴비를 먹으면서 자라나 젓갈장사를 했던 어머니 품에서 나는 ‘짠 향기’를 맡으면서 세상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깨달았다고 한다. 소금에 대한 화두가 커질 무렵 다산 정약용이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이라고 했던 낙동강 하구의 염전을 조사하여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아, 저자는 스스로를 ‘소금박사’라 부른다.
소금이 내게 어떤 존재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성母性이라 답한다. 소금은 내게 어머니이고 외할머니였다. 나는 외할머니가 선사해 준 짭짤하면서 따뜻한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절임 생선을 좋아한다. 굴비의 고장에서 태어나 ‘영광댁’이라 불리는 외할머니는 항상 우리 집에 굴비와 박대 등의 건어물을 가지고 오셨다. 방금 구운 그 따뜻한 영광 굴비를 게걸스럽게 해치우면서 어느새 나는 밥도둑이 되었다. 이제, 굴비 속에 고르게 녹아든 그 오묘한 소금 맛은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머리말” 중에서
소금과 묶여진 질긴 인연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10년 이상을 소금의 역사문화와 동고동락했다. 소금과 제염업에 대한 천착의 결과로서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서를 썼지만 누구 말처럼 여전히 배가 고팠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소금의 역사, 소금의 문화가 너무 많아서일까. 그는 이를 올곧이 복원하여 세상에 내놓아야 ‘소금 박사’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은 성과가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에 녹아들어 있다. ‘짜게 본 역사, 간을 친 문화’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소금을 통해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소금에 절인 한국사, 그 짜디짠 맛
이 책은 소금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나라 최초의 소금 문화사’로 1부는 ‘짜게 본 역사’, 2부는 ‘간을 친 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짜게 본 역사’ 우리나라의 소금사를 통시대적으로 살펴보면서 특히 중요하게 결정된 역사의 테마를 고무래로 거두어보았다. 이렇게 해서 길어 올린 결정체가 ‘최고의 소금 교통로였던 강, 최초의 소금 전매제인 고려의 각염법, 세종이 혁파한 의염색, 임진왜란 시 류성룡이 주장한 염철사 제도, 다산 정약용의 백성을 위한 염법, 구한말 이완용의 인천 방문, 일제 강점기 서대문 소금 사기단, 해방과 한국전쟁기의 소금 생산 장려’ 등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소금이 우리나라의 한국사와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소금의 알갱이는 비록 작지만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아 결국은 ‘작지만 큰 한국사’를 결정시켰다.
역사를 짜게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소금을 둘러싼 역사를 살펴보고, 소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국가의 입장에서 소금은 세수를 늘리고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그리하여 국가는 항상 소금을 두고 ‘짜게’ 대응한 것이다. 시대별로 수위는 달랐지만 국가는 언제나 소금세를 통해서 재정을 확보하려고 했고, 이에 따라 염민鹽民에 대한 착취가 동반되었다. 염업사를 보건대, 백성이야말로 국가의 ‘짜디짠 소금 정책’으로 고통을 받는 존재였다.
조선 정부의 소금 정책은 중앙과 지방의 갈등 사이에서, 권세가와 아전들의 침탈 속에서 언제나 본질이 흐려졌다. 이에, 다산 정약용은 백성을 위한 염법, 즉 평미레 개혁안과 ‘소금세를 줄여서 소금세’를 늘이는 역발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혜안은 조선 후기 내내 실현되지 못했고, 열강의 힘에 의한 개항과 일제의 침략을 맞게 되었다. 영악한 일제는 천일염을 화두로 식민지 조선의 염업을 재편했고, 전통적인 소금인 자염은 쇠멸의 운명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 북한지역에 천일염전을 많이 건설한 탓에 해방 이후의 남한은 혹독한 ‘소금 빈곤’을 감내해야 했다. ‘민족 분단’ 만큼이나 고통스러웠던(?) ‘염전과 소금의 분단’을 타개하기 위하여 한국정부는 대대적인 천일염전의 증설에 나섰다. 하지만 곧 ‘소금 과잉’이라는 후폭풍을 맞게 되었고, 이제는 늘렸던 염전을 대규모로 줄여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우연과 필연이 버무려진 ‘짠 역사’의 파고에 적절히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염세규정이 제정된 그 해부터 염민들의 대규모 항거가 일어났다. 1907년 함경남도 함경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곳에 파견된 세무관 김귀현은 탁지부 장정章程(조목으로 나눈 규정)보다 더 많은 소금세를 걷으려 하였다. 지방의 아전들과 다름없이 소금세를 중간 착복하려 한 것이다. 염민들이 반발하고 세금을 내지 않자 김귀현은 당장 일본 순사를 보냈다. 일본 순사가 염민 몇 명을 잡으려 하자 염민들이 크게 분개하여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에 놀란 일본 순사들이 다시 칼과 총을 무장한 채로 떼 지어 몰려왔다. 순사들의 총칼 앞에서 많은 염민들이 죽고 다쳤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에는 일본 병사 오륙십 명이 들이닥쳐 총질을 하였다. 염민들은 사방으로 도망쳤고, 35명의 백성들이 감옥에 갇혔다.
―“구한말 이완용이 인천의 주안을 찾은 까닭은” 중에서
자연과 염부가 빚어낸 ‘소금’, 한국 소금 문화의 모든 것!
소금은 역사의 결정체이자 문화의 알맹이였다. 이 책의 2부에서는 ‘간을 친 문화’를 살펴보는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내용들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짠맛의 시대성과 지역성에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창출되었다. 이것이 바로 ‘간을 친 문화’이다. 문화에 간을 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짜게 먹기는 쉬워도 간을 적당히 치기는 어려운 법이다. 간은 음식의 맛을 결정할 뿐더러 사람과 가풍, 지역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2부 ‘간을 친 문화’에서는 소금을 쳐서 탄생한 우리 문화를 간보자는 것이니 문화의 다양성이 전제된 분야다.
2부에서는 소금이 창출한 다양한 문화들의 짭짤한 맛을 볼 수 있다. ‘프롤로그인 짠맛에 대한 명상, 흉측한 정력가인 설화 속 소금장수, 우리나라의 전통적 소금인 자염의 생산비법, 뿌리는 소금의 주술적 힘, 친환경의 바람을 탄 천일염, 소금 생산자인 염부’ 등 소금으로 간을 쳐 탄생한 문화의 진미들을 맛볼 수 있다. 소금은 먹는 조미료이자, 문화의 상징이었다. 뿌리는 소금은 귀신을 잡는 주물이며, 아울러 성욕을 강화시키고, 다산을 불러일으키는 ‘생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런 소금의 상징체계야말로 우리 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는 시금석이 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소금을 천일염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수천 년간 이어온 자염의 생산 비법을 소개했다. 짠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의 비법에는 우리나라의 귀한 생태자원인 갯벌의 수수께끼가 묻혀 있었다. 아쉽게도 이런 자염이 사라지게 된 배경에는 막대한 연료비가 작용했다. 세계사적으로 무한정의 연료가 드는 자염은 태양과 바람에서 발생한 천연 에너지를 이용하는 천일염에 소금 왕좌를 넘겨주었다. 구한말에 도입된 천일염전은 뼈아픈 식민지의 정책 속에서 탄생했지만 백 년 동안 한국적 천일염으로 거듭나면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을 넘어 세계적 주목을 받는 소금밭이 되었다. 이제, 한국의 천일염은‘ 식문화의 가치’를 지닌 소금이자 ‘생태와 환경의 가치’를 지닌 소금으로 발전했으니 ‘소금 문화’의 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쓰일 소금의 역사를 위해
‘짠맛’이라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아마도 한국의 전통음식들이 떠올려질 것 같다. 우리의 음식문화에서‘ 짠맛’은‘ 간’으로 통한다. 우리는 밥상 위 음식들을 한 숟갈 뜨면서 먼저 간을 본다. “음, 간이 잘 맞는군”, “ 아니, 간을 못 맞추네” 이처럼 간을 본다는 것은 음식에 대한 품평을 한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야 ‘간’은 ‘음식물의 짠 정도’, 즉 ‘소금기’에 불과하지만 우리 식생활에서 음식의 간은 맛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음식의 맛을 조절하는 것이 소금, 간장, 된장 등 소금기가 있는 조미료였기 때문이다. 식생활문화에서 이러한 위상을 지닌 ‘짠맛’을 맞추기 위해 여성들은 그야말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짠맛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단 맛’과 ‘매운 맛’의 시대가 도래했다. 단맛과 매운맛은 외식문화와 함께 우리 먹거리의 맛을 주도하고 있다. 짠맛을 피하는 경향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모두들 짠 음식보다는 싱거운 음식을 찾는 편이며, 음식의 간도 낮추려고 노력한다. 밥과 국을 중심으로 하는 식단 자체가 변화한 탓도 있지만 짠 음식과 소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금기는 음식의 맛을 상징했던 자리에서 물러나 현대인의 질병의 원인으로서 전방위의 공격을 받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소금을 불필요하게 짜게 만들어 건강을 해치게 만든 장본인은 인간과 문명이었다. 자연은 사람의 건강에 좋은 소금을 선물해 주었으나 인간은 스스로 건강을 위협하는 짠 소금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소금을 공격하는 태도는 적반하장 격이 아닐 수 없다. 웰빙 시대를 맞은 지금, 다시 미네랄이 풍부한 소금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정말 짠맛의 시대성은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하고 있다.
―“짠맛에 대한 명상” 중에서
이제 우리나라의 천일염은 화려했던 과거의 소금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단순히 먹는 조미료일 뿐만 아니라 ‘친환경과 생태의 철학’이 된 천일염은 빠른 자본주의를 향하여 ‘느림의 미학’으로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이 또한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자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이 책을 상재했지만 저자는 다시 주말이면 소금의 고장을 찾아 떠난다. 싱거운 세상에 짠물로 도전하기 위해서 소금의 짠 기를 여전히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짠 역사·문화의 여행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페이지로 ‘우리나라 소금의 고장’을 직접 답사하여 적었던 글을 수록했다. ‘검단선사가 소금 제조법을 가르쳐준 전북 곰소만, 나라의 경비를 마련할 수 있는 충남 태안,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인 낙동강 하구, 근대 짠물의 발상지 인천, 최대의 소금산지 천사의 신안군’ 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염전의 고향’이다. 우리나라 제염업사를 좌지우지했던 이러한 염전의 답사기를 통하여 독자들은 소금의 역사를 현장감 있게, 피부로 느껴볼 수 있다.
현재 25만명이 게시글을
작성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