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즈덤하우스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이 드디어 100번째 책을 펴냈다. 위픽 시리즈 100권 출간을 기념하여, 시리즈의 첫 책이자 상징적 의미를 지닌 구병모 작가의 《파쇄》가 새옷을 갈아입고 독자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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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ISBN 9791168127012)는 한국 소설가 구병모의 단편소설로, 2023년 3월 8일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 위즈덤하우스의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WEFIC)’ 첫 번째 작품으로, 구병모의 대표작 『파과』(2018)의 외전인 이 소설은 96페이지에 걸쳐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 10대 시절 킬러로 훈련받는 과정을 강렬하고 압축적으로 그린다. 1976년 서울 태생의 구병모는 『위저드 베이커리』(2009)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 이후 『파과』, 『아가미』 등으로 오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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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한때 완전히 낯설었던 것조차 너무 빠르게 익혀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움직임이든, 두려움이든, 사고방식이든 충분히 반복하면 어느새 의식 아래로 가라앉고, 억지로 해내야 했던 것이 본능처럼 몸에 붙는다. 파쇄를 읽으면서는 신체의 적응이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점유처럼 느껴지는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배운 반응이 몸속 너무 깊은 곳까지 내려가, 우리가 여전히 그것을 선택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어느새 그것이 우리를 대신해 선택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 말이다.
류가 조각을 훈련시키는 방식은 생각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점점 줄여가는 데에 가까워 보였다. “늘 생각하되, 생각에서 행동까지 시간이 걸리면 안 돼. 생각은 매 순간 해야 하지만, 생각에 빠지면 죽어.”라는 말은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점차 조각이 자기 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규정하는 말이 된다. 조각은 “잔돌이 던져져도 동심원을 그릴 줄 모르는 수면”이 되어야 한다. 두려움이나 통증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표면까지 번져나가서는 안 된다.
구병모 작가님은 이 이미지를 재배의 언어로 이어간다. 류는 조각의 “존재 자체를 전지(剪枝)하여 죽음의 과수원을 가꿀 것이다.” 전지(剪枝)는 말 그대로 가지를 쳐내는 일이다. 누군가가 이미 앞으로의 모양을 정해놓고, 그 형태를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낸다는 점에서 이 표현이 특히 잔인하게 느껴졌다. 조각 역시 망설임과 취약함, 생존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반복해서 덜어내며 만들어진다. 이 원예적 이미지는 ‘파과’라는 제목도 더 풍부하게 보이게 했다. 전지(剪枝)가 성장의 초반에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破果는 그 끝에 놓인 망가지고 상한 과일을 떠올리게 한다. 또 破瓜가 여성의 성장과 성년의 문턱을 연상시킨다는 점도, 아직 어린 조각의 형성 과정을 다루는 파쇄와 묘하게 겹친다. 그 사이에서 조각의 삶은 하나의 과일이 지나가는 시간처럼 보였다. 소녀였던 조각이 가지를 쳐내듯 다듬어지고, 길러지고, 익어가며 한 여성이 되고, 결국에는 멍들고 상해간다.
이후 “세상은 불과 한 번의 총성으로 인해, 짓무른 과일처럼 간단히 부서진다.”라는 문장까지 생각하면, 과일이라는 이미지는 이미 그 안에 붕괴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파쇄가 과일이 길러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파과는 수십 년의 생존 끝에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준다. 조각은 어린 시절부터 살인의 세계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깎이고 다시 만들어진다.
류에게서 제일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그의 잔혹함과 돌봄을 딱 잘라 나눠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각도 결국 “그가 그동안 대부분 가혹하면서도 자주 조심스러웠음”을 떠올린다. 조각의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사람도 류이고, 진짜 위험해졌을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도 류다. 상처를 만드는 손과 그 상처를 돌보는 손이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게 묘하게 걸린다. 그래서인지 훼손과 죽음에 대한 그의 이야기조차 “바람과 나뭇잎의 탄주 사이로” 흘러와 “자장가처럼” 조각의 귓가에 내려앉고, “찢기어 원본의 형태를 잃은 꿈의 갈피 사이로” 스며든다. 끔찍한 것도 익숙한 목소리를 타고 오면 이상할 만큼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섬뜩했다. 반복은 폭력에까지 익숙함을 입힌다.
이 부분에서는 류와 조각의 관계가 훗날 파과의 조각과 투우의 관계와 조금 겹쳐 보였다. 상황은 분명 다르지만, 두 관계 모두 어린 쪽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연장자를 마음속 어딘가에 계속 품고 살아간다는 점이 닮아 있다. 류는 조각에게 두려움과 안도, 생존의 감각과 뒤엉킨 존재가 되고, 훗날 조각은 투우의 슬픔과 원망 속에 깊이 남은 존재가 된다.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애정이 끝까지 남아 있어서, 애착과 상처가 어디서부터 갈라지는지 점점 알기 어려워진다.
어린 조각은 이 모든 것 아래에서 여전히 어느 정도 연약하다. 그녀의 말하지 못한 감정은 “입 속에서 너울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묘사되는데, 살아 있고 연약해서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애써 가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에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찢긴 나비의 날개처럼 흩어져 있을” 것만 같아서, 감정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돌이킬 수 없고 어딘가 파괴적인 일처럼 보인다. 류가 조각의 몸을 더 단단하고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갈수록, 오히려 조각의 내면은 더 쉽게 상처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둘의 관계도 점점 흐릿해진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바로 그 사람이, 조각 안에서 아직 흔들릴 수 있는 부분에 가장 깊이 닿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점이 오래 남았다.
조각의 여정을 “파괴와 신생의 갈마듦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이 파쇄 속 조각의 변화를 이해하는 가장 분명한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훈련의 매 단계마다 무언가는 남고, 무언가는 떨어져 나간다. 류의 “목소리와 손”은 조각의 “몸짓에 리듬을 입히거나 동작의 선율을 바꾸”고, 결국 조각은 “그의 무기가 됨으로써 그의 몸과 하나가” 된다. 조각의 몸에는 류가 바로잡아온 흔적들이 겹겹이 쌓인다. 겉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수면처럼 고요하지만, 그 아래에는 반복된 충격과 압박, 억제가 남아 있다. 그녀의 몸은 일어난 일을 아무 데도 드러내지 않는 법을 배워간다.
그렇게 쌓인 파괴는 조각이 훈련의 끝에서 처음으로 실제 생명을 죽이는 순간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은 불과 한 번의 총성으로 인해, 짓무른 과일처럼 간단히 부서진다.” 그리고 그 과일 같은 세상은 “씨앗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다. 부서지는 일이 너무 부드럽고 간단하게 묘사되어서 오히려 더 잔인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틈도 없이 형태를 잃을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씨앗마저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다시 자라날 가능성도 사라진다.
몸 안에서 “구조 요청이나 항복 선언처럼” 깃발이 나부끼는 순간, 조각의 마음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끝을 몸이 먼저 알아챈 것처럼 보였다. 조각은 이미 앞으로 “수많은 시체의 산을 쌓아나갈 손”을 바라보고 있고, 아직 오지 않은 삶의 윤곽이 너무 일찍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그래서 파쇄라는 제목이 특히 섬뜩하게 느껴진다. 부서진 뒤에 남는 것은 공백뿐만이 아니다. 파편도 다시 모이고, 훈련되고, 날카롭게 다듬어져 결국 한 사람의 형태가 될 수 있다.
파쇄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몸 자체가 하나의 기록 보관소처럼 느껴진다. 류가 바로잡은 움직임, 상처, 반복해서 몸에 새긴 반사 행동이 모두 조각 안 어딘가에 남는다. 그래서 파과의 늙은 조각은 또 다른 의미로 슬프게 보인다. 평생 놀랄 만큼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훈련받은 몸이 이제는 천천히 느려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을 쓸모 있고, 효율적이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데에 사용했지만 결국 나이는 찾아온다.
작가의 말도 이 생각을 더 무겁게 했다. 구병모는 과거 파과의 주인공을 왜 노년 여성으로 설정했느냐는 질문에 “여성은 약자인데 노년에 접어들면 이중고의 약자가 돼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파쇄를 읽고 나면, 어린 조각의 몸이 견딜 수 있는 것과 해낼 수 있는 것으로 끊임없이 평가받는 모습과 이 말을 따로 생각하기 어렵다. 수십 년 뒤 파과에서는 그 몸의 쓸모가 세상의 눈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파쇄에서 그토록 오래 벼려진 만큼, 파과에서 무뎌져가는 모습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류는 조각의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와 손, 몸에 새겨놓은 움직임의 리듬은 산을 내려온 뒤에도 오래 남는다. 어떤 일은 끝난 장소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 아래에서 조용히 여진처럼 움직이다가, 아주 먼 훗날에서야 도착한다. “최소한 마지막 숨을 쉴 때 찾아오는 완전한 적막 안에서 자신의 탄착점을 찾으리라는 것을.”
✏️ 『파쇄』 독서노트 🐗🔫
* 『파과』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각은 본래 버리는 패였다. 그런데 먹이로 던져 준 쥐가 고양이를 물었다. 고작 부엌일을 조금 도울 수 있을 뿐인 군식구보다는 확실한 미끼가 필요했고, 그저 그런 미끼보다는 방역 조수가 쓸만했다. 류가 편리한 도구로 조각을 들였음은 자명하다. 처음에는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매번 죽을 길을 가리키는 사람에게 목매는 일이, 조각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가늘게 뜨도록 만들었다. 『파쇄』를 마저 읽고 나서야 조각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다는 개념에도 상대성이 있을까?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에 쥐면 터질까 안달복달하는 행위의 절댓값이 아니라, 스스로 돌보는 것보다 실낱만큼이라도 더 염려하는 마음이라면 류는 조각에게 조심스러웠다. 어린 조각은 자신을 물건 취급했다. 유용하면 쓰이고, 가치가 다하면 버려지는.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묻어둬야만 하는 감정이 새어나가면 곁에 머물 수 없기에 망가져도 상관없다고 말했고, 류는 조각을 사지로 떠밀지언정 적어도 스스로 보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선생이었다.
건강한 애정은커녕 짓무른 과육처럼 염증마저 느껴지는 관계임에도 조각이 류를 추억하는 이유는 의도된 공백일 것이다. 조각의 세계는 이어지지만, 류는 멈춰 버린 시간에 있다. 처음에는 이미 지켜야 할 세계가 있어서, 그것을 잃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지킬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류는 조각을 구하고 죽었다. 이제 그 이유는 누구의 입으로도 들을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은 조각의 안에 있는 류의 모습을 끊임없이 재구성했고, 이제는 사랑했던 한 남자가 아니라 일종의 행동 규범으로 남았다.
류는 조각에게 칼 쥐는 법, 피하는 법 하나까지 가르쳐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조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그 이상으로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별 의미 둘 것 없는 상투적인 표현인데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가 싫다고 억지를 부리던 류가 떠오른다. 누군가 ‘어머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누가 당신 어머니야’ 지적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조각은 분명 류를 닮았다.
여기까지 돌아보고 나니 60대 조각의 사연이 달리 보였다. ‘내게도 은퇴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할 자격이 있을까?’ 조각의 고민은 흔한 자격 강박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었다. 평생에 걸쳐 쓸모를 증명해야만 했던 삶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방역뿐인데, 그마저도 내려놓은 자신이 계속 살아가도 되는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들 눈에 어설프게 보일지언정 오색찬란하게 치장하고, 버릇없게 보여도 순수하게 기뻐할 줄 아는 아이를 보고 흐뭇해하기도 하는 일상의 사소한 페이지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조각은 류를 떠올리며 읊조린다, 아직은 당신에게 갈 시간이 아닌 모양이라고.
추천 음악: 이고도-Mouse 🐀
이 책은 『파과』의 주인공인 65세 여성 ‘조각’의 10대 시절 어느 훈련 장면을 다루고 있다. 진짜 위픽 시리즈의 첫 문을 정말 잘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파과』의 프리퀄? 이걸 안 읽을 수 없잖아? 별개로 『파과』를 읽지 않고도 충분히 매료될 수 있는 독자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살인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무자비한데 존중이 느껴지고, 가차 없지만 섬세하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소녀에게 그는 얼마나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까. 그렇게 그는 소녀에게 있어 당장은 죽이고 싶지만 동시에 가장 살리고 싶은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