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작가 은유의 신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가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와 ‘사람’을 글쓰기의 두 축으로 삼는 저자가 그 교집합에 있는 존재, 한영, 한일, 한독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산문이다.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0
아직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게시물
1
이 책이 담긴 책장
아직 이 책이 담긴 책장이 없습니다.
요약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한국 시 번역가 인터뷰 산문) 내용 요약
이 책은 한국의 현대 시를 타국어로 옮기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번역가들의 삶과 철학을 담아낸 귀한 기록입니다. 저자인 은유 작가는 한국 문학의 정수인 ‘시’를 다른 언어의 옷으로 갈아입히는 번역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겪어온 고뇌와 기쁨, 그리고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관을 깊이 있게 파헤칩니다. 📝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기계적인 작업이 아닙니다. 번역가는 시인의 숨결을 이해하고 그 행간에 숨겨진 은유와 정서를 새로운 언어의 맥락
은유_시에 도착한 사람들
[아름다움이 없으면 삶은 쓸쓸해진다_최승자]
번역가와 소수성
8쪽_ 시 독해와 번역은 정답이 없다. 이러한 혼돈과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번역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 그들은 하나의 진리만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공기와 언어에 짓눌리지 않았다.
순수와 노동
11쪽_시는 낮은 곳을 살피는 언어이고, 르포는 가리어진 존재를 드러내고 인간의 고통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내겐 뿌리가 같은 일이다.
7명의 시 번역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은유 작가의 사유와 그들과 나눈 대화가 들어 있는 인터뷰 수록집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끌림이 있는 일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들여다 보였다. 아름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서 더 확연히 기억될 인터뷰 에세이.
호영_즐거운 오해_서점 리스본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는, 규칙을 깨도 돼!_메리 올리버]
즐거운 오해라는 소제목이 등장하면서 무슨 오해일까 궁금했다. 번역가 호영은 웹툰과 시를 동시에 번역하는 이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여성이 아닌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트랜지션을 위하 약물 치료 중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즐거운 오해라는 키워드가 처음에 등장한 것일까.
자신의 소수자성에 대해서 드러내면서 인터뷰가 흘러간다. 그리고 호영이 번역가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화적 두께라는 소제목의 장에서 어려워서 재미있고 해볼만한 게 재미있다는 사고와 행동을 하는 이. 그래서 번역하고 싶은 글을 만났을 때, 피가 돌고 약간 상기되는 기분을 느낀다니.
번역의 일을 클래식 음악을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하듯이 번역 역시 그런 분야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자신의 해석을 가지고 해 내는 일에 대한 자긍심이 전해졌다. 그리고 읽다 보니 고개가 끄덕거리게 된다. 쇼팽의 같은 곡을 피아니스트가 다른 버전의 음반을 모아둔 내 cd장이 보인다. 같은 맥락이라는 걸 이 대목에서 환기가 된다. 이른바 고전을 읽을 때도 읽는 내가 더 잘 집중되는 번역판본을 찾아 읽는 것과 같은 일임을.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 그것이 그를 번역하게 한다(46쪽)는 말처럼 문학은 다른 이가 되어 보고 싶은 욕망의 발현인가 보다. 글 쓰는 이들의 많은 말들 중 공통적으로 말하는 저 말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해석은 여러 버전과 의미가 있을 테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고 싶은 욕망은 쓰지 못한다면 읽게 되는 욕망으로 대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아 찾기 서사는 늘 나를 빠져들게 하고 나를 자유롭게 한다. 흔히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다’라고 말할 때 정신이나 직업 같은 것을 상상하는데 어떤 사람에겐 그게 몸일 수도 있는 것이다.
34쪽
호영은 올라운더다. 가장 독자가 많은 장르와 최소한의 독자를 가진 장르의 작품을 번역할 수 있는 실력과 감각을 가진 드문 존재다. 웹툰 번역을 하고 시 번역을 하는, 시 번역도 하고 웹툰 번역도 하는......
36쪽
“시는 이해에서 자유로워서 좋은 장르 같아요. 다 이해 못해도 나중에 또 와서 읽으면 뭐가 보이겠지. 약간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냥 어떤 느낌을 가져가면 되는 것 같아요.”
37쪽
입말과 글말의 언어유희를 탐닉하는 호영에게는 “언어의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쌍둥이 장르다. 무게중심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그의 삶에서 시와 웹툰은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없다는 점에서 공속적인 관계 같았다. 밤과 낮처럼, 순간과 영원처럼, 나와 너처럼.
43쪽∼44쪽
“너무 갈망하는 건데 실제로 해봤더니 아니네 그러면 또 다른 것도 해보면 되고. 그런데 그게 되게 별일이 되니까,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에게는 그 정체성밖에 없는 것처럼 되는 거예요. 저도 제가 호르몬 치료를 하면 생각도 엄청 바뀌고 몸도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중략)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닌가 보다, 그런 깨달음도 있고. 또 제가 좋아하는 루인 선생님이 한 강연에서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여성으로 성별이 지정되어서 소녀가 되고 젊은 여자가 되고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이런 서사가 너무 이상하다’라고 했어요. 단계별로 다 다를 수 있는데 이 서사만 있는 게 이상하다.”
안톤 허_하지만 저는 해요_위트앤 시니컬에서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_이성복]
그나마 이 책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던 번역가이다.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번역했고 그 작품으로 부커상 번역 후보에 올랐던 이로써 알고 있었다.
인터뷰의 글을 보면 그는 유쾌함이 스며든 사람 같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명확한 위치성과 확신도 느껴진다.
번역가 모임을 만들고 필드를 더 확장하면서도 ‘문학 권력’이 되려 하지 않고 각각의 모임들을 만들어서 다양한 장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도 권력에 도취되지 않는 멋지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은유 작가가 안톤 허의 성 정체성에 대한 태도를 전하면서 안톤처럼 내가 나임을 드러내면서 자기답게 살 수 있는 관계의 안전망이 구축되기도 한다는 문장이 다가온다. 우리 사회가 소수성에 대한 흐름의 바뀌고 있고 발화자들의 목소리도 많아지고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는 걸.
가장 그다은 말로 꼽은 “그 책을 보자마자 너무나도 번역을 하고 싶었어요.”라는 말에, 아주 신나하면서 번역에 대해서 말하는 모습을 본 은유 작가와 안톤 허의 인터뷰 장면이 그럼처럼 연상된다. 번역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여다본 그림에서 경이로움이나 아름다움을 느낄 때의 그 기운처럼 전해진다.
64쪽
“문학 번역을 그만두었을 때, 번역만 안 했지 책은 계속 봤죠. 그럼요, 죽을 때까지 저는 문학 소년은 아니고 문학 중년, 문학 노인, 문학인입니다.”
77쪽
“시를 많이 봐야죠, 한자가 중요한 것 같고요, 책을 많이 읽고요, 모든 걸 완벽하게 읽고 써야 된다는 강박을 안 가지려고 해요.”
81쪽
“저는 제 무의식의 비서예요. 무의식이 번역을 하죠. 창작도 그렇더라고요. 제가 실행해 본 결과 똑같아요. 둘 다 무의식에서 오는 창조 행위죠.”
소제_초과선언_종이잡지클럽에서
[나는 가능 속에 살아요_에밀리 디킨슨]
번역가 소제의 인터뷰는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것, 견해를 가지고 사유하고, 번역하고자 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소제라는 개인의 정체성과 젊은 세대들의 문이 트인 사고, 사유의 폭들이 보인다. 아이들이 자라면 저런 의식의 한 자락도 가지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소수자성에 대한 생각들을 듣다 보면, 문학은 언제나 소수자, 마이너한 감정들이 더 크게 작동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 소수자성을 표현하고 발화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인 글쓰기는 인문과 문학의 장르로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작가 버지니아 울프조차도 자신의 글에 대한 의심과 불안의 폭을 가졌다는 작가의 의식은 누구나 재능과 열망의 갈피 속에서 헤매는구나 하는, 그럼에도 그런 분투 속에서 끝내는 썼기 때문에 지금의 독자들이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더불어 든다.
98쪽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여성 차별, 성소수자 차별, 장애인 차별이 다 섞여 있으니까 스스로도 못 믿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소수자일 수 있나? 내가 지어내는 거 아닌가? 그럭저럭 살고 싶은 게 너무 큰 특권으로 느껴졌어요.”
109쪽
‘초과’는 원본을 손상하지 않는 한 다른 관점을 허용해요. 시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다, 그게 시의 목적이잖아요? 각 언어의 다층적 의미를 허용해요. 그렇지만 제 기준을 없앨 수는 없고, 같은 감정이라도 다르게 표현을 하죠. 이 번역은 ‘이런 단어 선택에서 과감하다’고 한다면 그 이유나 증거를 대줘요. 이 단어 선택을 다른 사람들의 단어 선택과 비교하고, 누가 제일 잘했다는 느낌을 없애려고 해요.
118쪽
소제가 생각하는 좋은 번역은 작가의 스타일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을 통해 자신을 과도하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창작을 따로 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번역한 작가들 목록이나 쌓이니까 고민이 생겼다.
승미_동화가 잘 되는 편_고요서사에서
[우리는 잃고, 잃는 속에서 얻습니다_엘렌 식수]
이 책에 소개된 인터뷰이 중 유일하게 기혼자이며 육아를 하는 소개가 기억에 남는다.
번역가 승미의 궤적을 들어보면, 당찬 듯하면서도 타인의 말에 잘 동화된다 자신의 말처럼 순응적으로 흘러온 듯하다. 3.11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변화된 것 같다는 글이 보인다.
참사 이후 사람들은 생각이 변한다.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든 없든 참사는 사회적 영향과 가치가 있다. 번역가 승미는 당시 현장에서 몸소 겪었던 체험자로서의 경험이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가치관의 변곡점인 것 같다.
139쪽
사사키 아타루는 ‘문학의 무력함’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다.
“‘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상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못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사상에 ‘권력’이 있다고. ‘힘이 있다’고 여긴 게 된다”고. 그런데 문학만이 아니리 과학도 지식도 애초에 모든 것이 무력하다. 책을 쓴다고 쓰나미로 죽은 사람이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문학은 무력하지만 그렇다고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파울첼린이 그랬던 것처럼) 가혹한 하루하루 속에서 무언가를 것은 가능하다며, 그는 이렇게 못 박는다. “무력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_은유 작가가 번역가 승미의 상황에 대해서 일본 작가의 문장을 가져와 해석하는 이 문장이 3인의 사유와 서사가 혼합되어 문학이 현실에서 갖는 의미, 문학이 주는 또는 힘이 되는 지표를 보여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서사들의 연결, 문장들은 읽어야 찾아낼 수 있는 보물 찾기 같은 것이다.
147쪽
그에게는 ‘나는 번역가’라는 자의식이 없다. 그냥 ‘자연의 나’로 산다. 좋은 작품을 읽고 남들과 공유하는 일은 하는 나. 번역을 하느라 깊게 읽는 시간이 주어지고 좋아하는 이를 하며 돈을 벌 수 있으니 흡족한 나. 번역의 행복을 말하는 승미에게 그거 말고 번역의 기쁨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단번에 말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_번역가로서의 자의식이 없다지만, 다른 언어로 내가 읽는 문장의 맛과 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을 하는 것의 밀도는 힘든 만큼의 쾌감이 큰 분야가 아닐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다른 자아가 될 수 있는 경험에 대한 기쁨으로 전해진다. 타인과 나의 분리와 독립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 발현될 수 있는 분야라는 게 매력이 아닐까!
152쪽
질병은 개인 탓이 아닌데도 수치심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고, 에이드리언 리치의 말대로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한 완고한 통념을 사뿐히 지르밟고 승미는 말했다.
나는 그가 ADHD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용기에 놀랐고, 질병과 함께 차질 없이 일하며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를 참조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와 노력에 감탄했다.
_선의의 관계에서 나누었던 사적 친밀함의 말이나 일들이, 관계가 틀어질 때 약점이나 비판의 지점으로 이용되어 상처가 되는 경험들로, 이른바 자신의 내밀한 약점이나 사실들에 대해서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사회다. 그런데 그런 통념에서 벗어나 누구를 참조해야 하는 아는 지혜와 노력이라는 태도를 읽어내는 은유 작가와 그런 지점에 이른 번역가 승미의 말들이 되새겨진다.
160쪽
승미의 역사는 타인의 역사다.
그렇게 그가 포착한 타인의 반짝이는 순간들은 별자리가 되어 그의 삶을 인도했다. 하나씩 하나씩 늦더라도 작은 열망을 현실로 피워냈다. 아름다운 퀼트 조각보처럼.
_번역가 승미편에서 은유 작가의 마지막 문장들이 곱씹어 읽힌다. 인터뷰의 문장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들이 스며들어 온다.
알차나_반짝반짝 한국어_어쩌다 산책에서
[나는 사랑하므로 나 자신이 된다._김혜순]
한국어를 사랑해서 10년 넘게 혼자 공부하고 2019년부터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알차나는 이과에서 문과로, 인도계 미국인이면서 한국어를, 과학에서 문학으로 여러 개의 정체성을 바꾼 어 온 이다.
알차나의 말과 은유 작가의 해석은 알차나가 세속적으로 안정과 성공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자신의 끌림과 깨달음으로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모습을 그려준다. 보통의 개인이 이런 세속의 가치들을 놓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생각을 해본다. 알차나가 6개 국어를 할 줄 알면서도 유독 한국어에 끌린 까닭은 그녀의 어머니가 말하는 전생설 때문이었을까!
여러 나라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의 멋짐이라고 해야 하나, 원하는 뉘앙스의 단어를 선택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알차나의 말에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노력해서 될 수 있는 부분인가 싶기도 하고, 생각들이 다채롭게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표현하고 싶은 언어로 말을 발화할 수 있는 능력과 감응력이 더없이 빛을 낸다.
169쪽
“다른 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걸 깨닫고, 다른 길을 걸어도 살 수 있다는 걸 믿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저를 믿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저를 믿었어요.”
173쪽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의 공부. 시험이나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앎 자체를 느긋하게 즐기는 공부. 알차나가 한국어를 익힌 방식은 목적도 방법도 따로 없다는 게 핵심이었다. 큰 목표가 없으니 큰 좌절도 없고 좌절이 없으니까 포기도 없는 것이다.
178쪽
“세상이 작아지는 느낌이에요. 많은 언어를 알면 여러 문화나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알 수 있죠. 한 나라의 사람보다 세계의 의사소통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데, 무엇보다 제가 저를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는데, 많은 언어를 알면 내가 원하는 뉘앙스의 단어를 선택할 수 있어요.
많은 언어를 할 줄 알면 뭔가 자유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186쪽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을 이해해 주고 싶어요.‘
191쪽
원래 ‘나’가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 글을 쓰고, 변방과 경계야말로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다.
새벽_엄마 이상 스피릿_진부책방에서
[결국 이야기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_가즈오 이시구로]
205∼206쪽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번역을 배워라. 번역을 하면 시의 구성을 배울 수가 있다.”
새벽은 속으로 쾌재를 불렸다. ‘난 한국어가 된다!’ 그리고 그에겐 엄마가 있었다. 문학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209쪽
새벽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로 구축하기 위한 여정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미주리주 버틀러로,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으로, 매사추세츠 보스턴으로, 그리고 다시 서울로.
_목동 키즈에서 미국으로 엄마와 이민 후 성장한 새벽이 시에 매료되고, 매료될 바탕이 있었던 엄마에 관한 이야기들이 흘러간다.
221쪽
언어를 장난감으로 생각하기. 언어를 가지고 소리로도 놀아보고 의미로도 놀아보고. 글쓰기는 어느 시점에서 문장구조를 훈련받잖아요. 이렇게 해야 좋은 문장이다. 나의 생각과 주장을 펼치는 법을 논술로 배우는데, 그 전에 말과 소리를 가지고 낄낄거리는 놀이를 유지하면 번역에 도움이 돼요.
224쪽
“혹시 나는 미국 사람인가 한국 사람인가 하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언제나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고민했는데 이젠 그냥 내가 두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계속 불안과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러한들 어떠하고 저러한들 어떠하라 식으로요. 양극적인 것들이 가끔 가다 느껴질 때 그것을 같이 감싸 안는 편이에요. 오히려 요즘은 양극을 가졌다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_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정체성은 어떨까 궁금했다. 번역가 정새벽은 그런 이중언어를 구사하면서 시를 쓰고, 번역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두 언어의 시를 읽고 번역하고, 두 언어로 시를 쓴다는 건 무척이나 경이로운 일로 느껴진다. 스스로가 양극을 가졌다는 건 축복이라고 말하는 그의 글을 보면 시는 그에게 삶의 기둥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227쪽
“작가로 살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읽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감수성을 유지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누구의 말일까.
_새벽의 인터뷰 글 마지막 문장이다.
번역가의 말이었을까 아니면 번역가의 어머니의 말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품고 문학을 사랑한다는 전제를 가지게끔 해 준 어머니의 영향으로 번역가는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시를 쓰고, 번역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동력은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박술_아름다움 교섭하기__부비프에서
[사실 철학은 시로만 쓰여야 한다_비트겐슈타인]
246쪽
“외국어로 소통하면 배려하는 공간이 넓어요. 특히 동아시아 언어는 조사 같은 게 민감해서 속마음이 다 드러나잖아요. 그게 없으니까 좋죠. 친구 사귈 때 제3언어로 하는 게 제일 편안해요. 중립국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평화지대. 그리고 그 언어가 옛날 말이면 더 좋아요. 예를 들어서 동아시아 친구들을 만나면 한자나 고전 문장에 대해서도 말할 수도 있잖아요. 되게 편안해요. 우리가 거기서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내 말이 아닌 공통된 것을 가지고 있으면 관계에서 편안하죠.”
256쪽
“내가 어떤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 아무것도 모르겠고 너무 신비롭고 비밀스러워서 매일매일 외워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아름다운 그 느낌이 그대로 있으면 좋겠어요.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알 수 없으면 알 수 없는 대로, 표현 불가능한 거는 표현 불가능하게 번역해야 하는데 보통 풀어버리거든요. 내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걸 최소화하기. 그게 번역에서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_마지막 번역가로 실린 박술은 깊이와 생각이 폭이 다채롭고 이곳저곳 튀어 오르는 공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태생적으로 문화배경이 좋다고, 이른바 유서 깊은 학문을 하는 집안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독일에서 공부하는 걸 받아들이는 성장사로 이어진다. 독일에서의 공부도, 언어에 대한 다층적인 세계관은 그가 번역하는 책들의 목록들을 보아도 범상치 않다는 느낌. 그냥 시도 어려운데, 철학을 번역한다니. 핑퐁핑퐁 튀어 오르면서도 자기의 세계와 깊이를 확실하게 만들어 가는 번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번역하고 있는 혹은 번역했다는 책들의 목록만 보아도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