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가능한 그곳, 웰컴 투 엘리스 월드!
청소년들의 일상과 내면을 그려낸 소설 『엘리스 월드』. 뚱뚱한 열여섯 살 소녀 장은새와 '진정한 날라리'를 꿈꾸는 괴짜 소녀 엘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커다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자발적 왕따로 살아가던 은새. 어느 날 예쁘고 인기 많은 혜나가 은새에게...
"넌 진정한 날라리가 뭐라고 생각하니?"
나는 엘리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은 허공에 붕 떠 둥둥 떠나녔다. 얘는 왜 이렇게 농담을 진지하게 할까?
"나, 어젯밤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 진정한 날라리란 자신을 찾는 거 같아. 그저 껍데기만 날라리가 되어서 안돼."
엘리는 정말 진지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제법 오래 생각하고 하는 말 같았다.
"그래?"
내가 한 말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엘리는 내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날라리는, 날라리는...... 그런 게 아니야. 우리 반 걔네들은 영 아닌 것 같아."
"그런가?"
"나는 진정한 날라리가 되고 싶어. 굉장히 멋있고 막 자신감에 넘치는 그런 사람." p.62-63
정말 바보 같다. 나는 이럴 때 왜 모두 털어놓고 하소연할 수가 없는 걸까. 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는 걸까? 엄마? 엄마는 엄마대로 슬프다. 엄마에게 불만이 많은, 바람난 아빠 때문에 슬프다. 거기에 슬픔을 보탤 수는 없다. 혹자는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할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이런 일로 슬퍼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다 해도 내 손 베인 게 더 아픈게 사람인 법이다. 아프다. p.171
"그래 봤자 한두 살 차인데 중딩이나 고딩이나. 난 가끔 그런 생각 한다. 옛날 사람들이 달을 보면서 달력을 만들어냈잖아? 그런데 열두 달이 지나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게 참 이상해.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마다 노화나 기타 등등 성장이 다 다르지 않을까? 그걸 일 년, 열두 달로 딱 정해 놓는다는 게 마음에 안. 들. 어." p.191
그때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목을 쭉 빼고 바라보니 비보이들이 반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현란한 춤사위를 뿜으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문득 유연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인데 적어도 내 몸은 마음대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p.193
이제 와서가 아니다. 나는 여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단지 혜나가 돌변하여 나를 적처럼럼 대했던 일이 이 일과 어떤 연관을 가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보였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나는 그걸 완전히 무시했다. 그저 나를 경계하고 감시하는 혜나가 이상하게 보였을 뿐이다. p.229
"별거 아니라고? 너도 알잖아? 너도 별것도 아닌 엘리인지 엘리스인지로 괴로워했지? 연예인들이 사실도 아닌 루머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왜일 거라고 생각하니?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 당사자가 되어 보지 않고는 이해 못해." p.233
노을 져 길게 드리워진 혜나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니 내 눈앞에 영화처럼 그날 일이 펼쳐졌다. 예쁜 소녀가 교실에 혼자 있다. 소녀는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첫사랑에 살짝 들떠 있었으리라. 아름답고 장난기 어린 그들의 입맞춤. 하지만 그곳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눈. 재미있는 추억이 되어야 했던 그날이 누군가의 혀에 의해 엉망이 된다. 혀에는 혀가 쌓이고 그럴수록 추억은 변질되어 악몽이 되어 간다. 그리고 악몽은 소녀를....... p.234-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