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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14.6.30
페이지
304쪽
상세 정보
종교평화학자 이찬수 교수의 새로운 신학 강의. 이 책에서 저자는 성서를 근거로 배타적 유일신론을 견지하는 이들에게 다시 성서를 근거로 그런 신관의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제기하면서, 22세기에도 통할 대안적 신관을 찾는다. 기존의 ‘유일신론’적 신에 대한 이해에서 ‘범재신론’적 신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성서적 기초를 놓아보려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적 배타성의 근간처럼 여겨지는 성서의 쟁점들을 현대적 감수성을 반영하며 차분하게 해설하되, 가능한 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평이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궁극적 실재의 다른 이름인 신(神)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도모한다. 그렇게 신 이해의 보편성을 확보함으로써, 인류의 상생과 평화에 일말이나마 공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행간 곳곳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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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dl8mysw5gyux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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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평화학자 이찬수 교수의 새로운 신학 강의. 이 책에서 저자는 성서를 근거로 배타적 유일신론을 견지하는 이들에게 다시 성서를 근거로 그런 신관의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제기하면서, 22세기에도 통할 대안적 신관을 찾는다. 기존의 ‘유일신론’적 신에 대한 이해에서 ‘범재신론’적 신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성서적 기초를 놓아보려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적 배타성의 근간처럼 여겨지는 성서의 쟁점들을 현대적 감수성을 반영하며 차분하게 해설하되, 가능한 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평이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궁극적 실재의 다른 이름인 신(神)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도모한다. 그렇게 신 이해의 보편성을 확보함으로써, 인류의 상생과 평화에 일말이나마 공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행간 곳곳에 담았다.
출판사 책 소개
종교평화학자 이찬수 교수의 새로운 신학 강의
새로운 종교개혁을 위해, 성서의 쟁점들로 풀어낸 범재신론
우리 시대 종교화해와 종교평화를 위해 앞장서서 연구하며 활동하는 이찬수 교수가 한국 기독교의 병폐로 불리는 여러 이론적 쟁점들에 대해 새로운 담론을 전개한다. 종교평화에 걸림돌로 작용해 온 ‘유일신론’, ‘구원관’, ‘우상 숭배’, ‘종교다원주의’, ‘내세관’ 등에 대해 말 걸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범재신론’ 또는 ‘만유(내)재신론’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종교개혁을 꿈꾸며, 배타주의와 독선주의, 근본주의에 물들고 교조화와 세속화 굴레에 빠져 있는 한국 교회에 신학적 대안을 제시한다.
범재신론은 범신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영어로는 Panentheism이며, 어원인 그리스어로 Pan은 ‘모든 것’이라는 뜻이고, en은 ‘안’이라는 뜻이고, theos는 ‘신’이라는 뜻이다. 즉 ‘모든 것은 신의 안에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범신론과는 달리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서구 사상가로는 화이트헤드와 샤르뎅, 맥페이그를 대표로 꼽으며,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이 한국신학계에서 최근 가장 회자되는 범재신론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미 낡은 유물이 되어 곳곳에서 부식하고 있는 유일신론 개념을 폐기하고, 이제는 범재신론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개신교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다. 종교 간 조화와 관용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겠다”며,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불상에 절을 했던 신학자다. 그 이유로 재직하고 있던 대학교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했으나 결국 “학교 측의 재임용 거부는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고 복직하는 등 종교화해를 위해 강단에 머물지 않고 전방위로 애써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일신론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그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안타까워하며 유일신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도모한다. 새로운 종교개혁이 요청되는 시대, 신에 대한 범재신론적 인식과 이해에 기초할 때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종교개혁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행간 곳곳에 담았다. 유려한 글쓰기와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그의 글은, 신학자이면서도 화엄철학과 선(禪)불교를 공부하면서 ‘종교적 전환’을 경험했다는 자신의 ‘전환’ 경험으로 독자들을 이끌 것이다. 또한 범재신론에 대한 안내서가 없는 한국신학계의 상황에서 귀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22세기에도 통할 대안적 신관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 신을 믿는다는 말이나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낯설어한다. 그렇게 된 원인을 설명하기는 간단치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신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종교인들 탓이 제일 크다. 특히 유일신론 종교 전통에 속한 이들 상당수가 급변하는 사회에서 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인식하고 서술해야 하는지 진지한 성찰 없이, 수백 년 전 수직적 신분사회에서 형성된 언어만 고집해온 데서 기인한다. 신에 대한 자기중심적 이해가 신의 모든 것인 양 여기고 ‘그들만의 세상’에 머물면서 현대 지성인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탓이다. 현대인들은 현대인들대로 종교적 배타주의나 근본주의의 몰지각함에게서 크든 작든 정신적 상처를 받은 탓이기도 한다. 상황이 그러니 오늘의 시대를 사는 이들이 신을 믿지 않는 것도, 그런 신이 어디 있느냐며 반문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한 현상의 기초에는 종교인들의 왜곡된 신 이해가 놓여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서를 근거로 배타적 유일신론을 견지하는 이들에게 다시 성서를 근거로 그런 신관의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제기하면서, 22세기에도 통할 대안적 신관을 찾는다. 기존의 ‘유일신론’적 신에 대한 이해에서 ‘범재신론’적 신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는 성서적 기초를 놓아보려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적 배타성의 근간처럼 여겨지는 성서의 쟁점들을 현대적 감수성을 반영하며 차분하게 해설하되, 가능한 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평이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궁극적 실재의 다른 이름인 신(神)에 대한 현대적 이해를 도모한다. 그렇게 신 이해의 보편성을 확보함으로써, 인류의 상생과 평화에 일말이나마 공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행간 곳곳에 담았다. 나아가 신이라는 것은 생명을 살리고 평화가 구체화되는 곳에 생명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서를 근거로 밝혀보고자 한다.
차라리 유일신론을 폐기하라!
이 책에서 말하는 유일신론의 재해석의 핵심은 ‘하나’의 개념이다. ‘신이 하나’라고 할 때의 ‘하나’는 사실상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신이 하나라는 말은 신이 모든 곳에 있다는 말과 같다. 바꾸어 말해 모든 것은 신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신은 자연법칙과 유사하다. 우주에, 적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살 수밖에 없고, 그 자연법칙 안에서 움직인다. 자연법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는 있지만, 신은 기본적으로 자연법칙과 거의 같다. 자연법칙을 관찰하는 눈도 자연법칙에 따르듯이, 신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든 것이 신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이가 범재신론자다. 범재신론적으로 보건대 신이 없는 곳이 없다. 이른바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전체이다.
신이 전체라는 말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 및 만물의 기원과 목적 등에 대해 성찰할 때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기도 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해 두루 상상하다보면 신은 만물을 만물되게 해주는 근원적 원리나 힘으로 해석될 만한 것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특별히 유일신론적 종교전통 안에 있는 이들에게 좀 더 친숙할 표현이겠으나, 알라, 불성(佛性), 브라흐만이라 해도 상관없는 광활한 세계이다. 천(天), 리(理), 도(道) 등 모든 것을 감싸 안는 보편의 세계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이 없는 곳이 없다. 신이 없다는 주장마저 가능하게 해주는 세계가 범재신론적 신이다.
이런 세계관을 지닌다면 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갈등과 폭력이 얼마나 지독한 모순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신을 믿는 이들은 무신론자마저 신의 이름으로 긍정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포용 속에서 신의 본질이 드러나고, 인류의 이상인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하나하나 밝히려는 내용의 요지다.
신이 하나라는 주장, 이른바 유일신론은 제대로만 해석한다면 범재신론과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유일신론과 범재신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는 사실상 ‘전체’이자 ‘근원’을 나타내주기 위한 수학적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범재신론은 유일신론의 폐기이자 재해석이고, 그런 의미의 유일신론의 완성이다.
범재신론적 신은 기독교적 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만물을 만물되게 해주는 근원적 원리나 힘으로 해석될 만한 것에 붙여진 기독교적 이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범재신론은 기독교적 틀을 넘어 다양한 종교적 세계관에 두루 통하는 신론적 기초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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