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비시의 <바다>. 1939년 여름 발레르에서 였다.
내 나이 열네 살. 나는 캐나다 산의 작은 카누 하나
를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호두껍질 같은 작은
배였다.
나는 매일 그 배를 타고 한계선을 넘어서 해변이
그저 가느다란 한 개의 노란 선으로 변해 보일 때
까지 멀리 나아갔다.
배가 뒤집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는 절대로
헤엄을 쳐서 해변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늘 혼자였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몸숨을 거는 짓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이렇게 물결 위를 흘러다닌 끝에
기슭으로 돌아오면 온통 뒤집어 쓴 물보라가
햇빛에 말라붙어서 나의 온 몸은 하얀 소금에
뒤덮여 있었다.
드뷔시의 음악이 내 귀에 추체험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바다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다.
찬란한 여름, 주변에는 온통 죽음이 에워싸고
있고, 지평선 저쪽에는 번개를 가득 실은 검은
구름을 일으키고 있는 임박한 전쟁.
나는 소금기로 얼룩덜룩해진 벌거벗은 몸으로
파도의 푸른 등 위를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나는 무서우면서도 행복하다.
외면일기 / 미셸투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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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데. 갑자기 책장을 튕겨나와 공기중에
동동 떠다니며, 반짝반짝 빛나는 택스트를 만날
때가 있죠. 그러면 참 기분이 좋아지죠.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
그리고 또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상과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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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해의 시작을 구실 삼아
그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몇몇 친구들에게
내 모습을 드러낸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그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외면일기 / 미셸 투르니에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 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
journal intime'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거의 반세기 동안 시골에서 살아온 나는 자신들의
내면적 상태 같은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수공업자들과 농사꾼들의 사회 속에 묻혀 지내는
터이다.
이 ‘외면일기’는 지난날의 소박한 시골 귀족들이
추수, 아이들의 출생, 결혼, 초상, 날씨의 급변 등을
적어두곤 했던 ‘출납부’와 비슷한 것이다.
외면일기 / 미셸 투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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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느낌은 몹시 불편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산문집을
가장한 철학책.
음식으로 말하면, 햇볕에 잘 말린 씨레기로 요리한
까칠한 음식. (무한 반복으로 씹어여 소화할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먹고 나면, 삶에 대한 통찰
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였네요.
혹시 이 불편했던 책이, 인생책이 되지 않을까하는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