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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민음사
 펴냄
13,000 원
1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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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쪽 | 2009-09-04
분량 두꺼운책 | 난이도 보통인책
상세 정보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소설이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BR> <BR> 스테판 공작이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운 사건 때문에 부부 사이에 불황가 생기자, 그의 여동생 안나 카레니나는 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온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고위 관리의 아내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하게 살던 안나는 이곳에서 만난 브론스키 백작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브론스키는 스테판의 처제 키티에서 구애하던 중이었으나 그 역시 안나에게 빠져든다. <BR> <BR> 키티는 브론스키의 청혼을 기다리며 점잖은 귀족 레빈의 청혼도 거절했지만, 안나가 브론스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절망한다. 레빈 역시 키티에서 거절당한후 낙담하여 시골로 돌아간다. 한편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그들 가족은 물론 러시아 사교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둘은 사회에서 싸늘하게 외면당한 채 외국으로 떠난다.<BR> <BR>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 자신의 신념, 종교나 농민 문제 등에 대한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나있는 소설이다. 특히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농민과 토지에 대해 고민하는 레빈에게 작가의 모습이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톨스토이는 문학뿐 아니라, 철학과 종교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 준 사상가로 평가받는데, 그의 이런 사유가 이 소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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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6부
7부
8부

작품 해설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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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828년 남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가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유년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이후 원시 기독교에 복귀하여 러시아 정교회와 사유재산제도에 비판을 가하며 종교적 인도주의, 이른바 ‘톨스토이즘’을 일으켰다. 직접 농사를 짓고 금주와 금연 등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빈민구제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1899년에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종무원으로부터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아스타포보 역(현재 톨스토이 역)에서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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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긴 글 3
송도둘리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1달 전
'안나 카레니나' 완독은 2020년 새해 목표였는데, 2021년 3월이 돼서야 끝났다. 굳이 변명하자면, 1권에서 폭주하던 전개가 2권에서 갑자기 느려지더니 3권에서는 급기야 정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의 갈등은 곪고 곪아 어떤 식으로든 파국을 기다리고 있었고, 각종 모임에서 전개되는 여러 논쟁들은 당시 러시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몰입하기 힘들었다. 레빈의 고민과 번민은 또 어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왜 사는지에 대한 그의 끝없는 고민에 한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재촉하게 되는 답답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3권을 읽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결말이 담긴 '7부'로 끝이 날 만도 한데, 톨스토이는 8부로 끝을 맺는다. 심지어 안나의 죽음에 대한 브론스키나 카레닌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안나의 죽음 뒤에도 그저 자연스럽고 마땅히 흘러가는 세상사와 레빈의 머릿속을(또!) 보여줄 뿐이다. 오히려 동생의 죽음에도 예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은 스티바를 보며 - 가족의 죽음 뒤에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므로 이해가 되면서도 - '으휴 인간아….'라는 낮은 탄성을 뱉게 된다.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안나는 죽음을 선택하고, 그 죽음을 통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톨스토이가 굳이 8부를 붙인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사실 안나 자체가 권선징악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긴 하지만, 브론스키나 카레닌 또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7부로 끝나는 것은 '불륜한 자, 벌 받을지어다' 러는 권선징악의 가르침이 될 뿐인데, 그렇게 결론 지을 만큼 삶은 단순하지 않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하느님이 우리의 영혼에 그것을 불어넣었잖아.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_ 126쪽(돌리의 생각) 8부 전체를 거쳐 보여주는 레빈의 사색 속에 톨스토이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압축된 것 같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삶과 체험으로 얻은 것만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다는 발견' 말이다. 그 발견 또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그 내면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조언이다. 그렇게 결심하더라도 또 실수하고 번민하고 좌충우돌할 거라고 한 발 빼면서도, 그래도 그런 삶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_ 560쪽 끝으로,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이해, 감정의 묘사는 정말 탁월한 것 같다. 출산 후 아내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아빠의 감정에 대해 이토록 적확한 묘사가 있을까. 안나와 브론스키의 갈등, 숱하게 묘사되는 부부싸움에 대한 묘사도 압권이다. 사소한 일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화해에 대한 시도, 하지만 질 수 없다는 의지, 불가피한(!) 양보, 그리고 이어지는 왠지 진 것 같다는 억울함, 자연스럽게 싸늘해지는 태도, 다시 이어지는 갈등, 이 모든 감정이 순서 없이 얽히고설키는 그 지난한 과정을 어쩜 이렇게 잘 그려냈을까. 이 책이 당대에도 그렇지만 후대에도 높이 평가받는 데는 감정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만나면 반갑다고 뺨 때리고, 매회 고음 발성 없이는 전개되지 않는 어느 드라마와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지금, 그는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 있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토록 절망적으로 울어 대는 존재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사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키티는 살아 있고 고통은 끝났다. 그리고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고 그것으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왔으며,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 생각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아기는 그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로, 지나친 과잉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아기에게 익숙해질 수 없었다. _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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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나라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1년 전
안나카레니나/톨스토이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 은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라고 격찬했으며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완벽한 작품으로, 현대 유럽 문학 중에서 이 작품에 비견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저는 책장을 다 덮고서 한 줄 독서평을 쓴다면 이 작품은 '한국판 사랑과 전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쓰고 싶었습니다. 이 책 속에는 사람에 대한 위선, 잘못된 신념, 권력에 대한 욕망, 불타는 사랑 등 사랑과 전쟁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 있으며 종교관, 결혼관, 계급사회에 대한 사회구조 등 사람이 살아가는데 겪는 모든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얼핏 보면 막장드라마 같은 이 작품이 세계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 위대한 문학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인물을 통해 그 모든 문제를 제시하고 사랑의 본질과 인간존재의 문제를 독자 자신들의 속마음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처음과 끝, 그리고 두꺼운 책의 내용 속의 의미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문장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첫 문장의 의미를 통해 이미 안나의 행복이 어떤 불행으로 이어질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시작되어 공교롭게 열차에 몸을 던짐으로써 그 불행이 끝납니다. ​ 전편에 흐르는 내용을 보면 불륜을 저지른 한 여인의 운명적 사랑과 그 사랑이 식어버렸을 때 그 여인이 받았을 충격은 어떤 비극적 결말을 향해 가는지 잘 보여주는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가정교사와 바람난 오빠를 화해시키기 위해 모스크바로 왔다가 오히려 자신이 무도회장에서 만난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바람이 나게 되고 원래 불꽃같은 사랑은 활활 타올랐다가 불씨가 되는 사랑이 줄어들자 금방 사그라들게 마련이죠. ​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브론스키의 사랑만 간절히 원한 안나는 결국 사회적 냉대와 브론스키와의 사소한 다툼 등으로 고뇌하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용서 빌며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 안나가 생각한 행복한 가정은 브론스키와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사랑, 그 사랑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브론스키와 불행이 시작되고 파멸의 길을 앞에 두고선 수만 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화하려 합니다. ​ 안나가 생각한 불행은 스무 살이나 많은 남편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한 것부터 시작합니다. 다른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자 8년 동안이나 부부로서 잘 살아왔던 그녀의 남편은 흉측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무엇이든지 마음에 들지 않아 합니다. ​ 사랑하는 사람에겐 뭐든 좋게 보이지만 한 번 미워지기 시작하면 모든 게 싫은 거랑 같은 거겠죠. 연애를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거에요. ​ 여기서부터 불륜의 자기 합리화가 시작됩니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내 잘 못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의 무관심과 사랑 없는 결혼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 그녀가 브론스키를 떠올린 그 순간, 그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해 아주 따뜻해 타버릴 듯 뜨거워' 무도회에서 처음 마주한 브론스키를 생각하며 안나는 한 번의 만남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껴버립니다. 자신 스스로가 도덕적 순수함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은 첫 만남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립니다. ​ 브본스키는 안나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남편의 근엄한 모습을 보면서 '루저의식'을 느끼며 젊은 수컷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그래,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랑할 수 없겠지' 말하며 혼자 상상해버립니다. '그녀의 감정은 그녀의 양심에 달린 것, 그리고 내 영역 밖의 일.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해진다' ​ 안나의 남편은 안나가 브론스키와 만남을 의심하면서 안나에게 어떻게 이 상황을 말할지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소심한 남자의 전형인가요, 아님 아내에 대한 배려일까요. ​ 안나의 남편은 불안과 걱정이 앞서면서도 아내의 사생활과 아내에 대한 믿음으로 질투와 의심은 아내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 그는 질투가 대단히 수치스러운 감정이며 아내를 믿는 것이 그가 해야 될 일이라며 감정을 자제합니다. 이 친구 착해도 너무 착한 것 같습니다. 부인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네요. '저 사람은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니야. 오로지 사교계 사람들의 눈이 무서운 거지. 그래서 극도로 흥분한 거지' 어렵게 안나에게 꺼낸 한마디가 오히려 안나에게 오해를 사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린 거네요. ​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안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고 오히려 남편에게 뒤집에 쒸웁니다. '어쩔 수 없어.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 ​ 안나의 마음은 이미 다른 남자에게 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사랑한다고 말하자 '사랑? 사랑? 그가 사랑을 알기나 알까? 마음속에 경멸을 담아 내뱉은 말을 보면 안나의 불타는 마음속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브론스키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러시아 사교계의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 브론스키 어머니는 아들의 불륜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기뻐했다. 그녀의 생각에 매력적인 청년으로 전성기를 맞는 일은 사교계에 불륜을 낳는 것밖에 없었다 '경멸 받아 마땅한 여자가 죄를 지은 것으로 내가 불행해질 수는 없지. 나는 그녀가 내게 넘긴 이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출구를 찾아내는 일만 하면 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이 자식 완전 쓰레기 같은 놈이었군요. 처음엔 불륜을 의심하고도 가정을 지키려는 멋진 남자인 줄 알았더니 자신의 미래가 안나로 인해 걸림돌이 되자 이제 나 몰라라 하는군요. 결국 이 자식은 자신의 위신과 사회적 평판이 더 중요했던 거군요. 사랑은 개뿔 '난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 그녀나, 그도 결코 행복해지면 안 되지' 이젠 남 주기는 더 아깝다는 심보 같은데요. 그래서 이혼도 못해주고 별거로 지내기로 한 건가 봐요. 정말 무서운 남자인 것 같습니다.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안나와 결혼해서 그동안 지내왔던 8년의 세월은 위선과 자신의 안위 때문에 살아왔다는 걸 안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 생활은 지옥과도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은 파멸시키고자 하는 사람을 먼저 미치게 한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신이 원하던 직위 임용 소식의 편지를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익숙해질 수 없는 환경이란 없다. 레닌은 아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말도 안 되는 우정을 나누고 타락한 여자의 집에 찾아가서 아내를 슬프게 하는 이런 상황들로 목적 없는 삶에 대해 많은 회의감을 느끼게 됩니다. ​ 안나는 브론스키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사랑에 쏠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 생각에 브론스키는 이제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있으며 사랑의 일부가 다른 여성에게 옮겨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안나는 브론스키가 만나는 모든 여성에 대해 질투하기 시작하고 그에게 분노하게 됩니다. 안나는 자신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브론스키의 행동에서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 물론 그것은 브론스키가 원인이 아니라 안나 자신이 선택한 불안과 초조와 분노가 뒤섞인 감정들이었습니다. '난 오직 사랑만을 원해. 그런데 그 사랑이 없어졌어. 그러니 모든 게 끝난 것과 마찬가지야' 아마 브론스키도 자신에 대한 안나의 이러한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많이 부담되었을 것입니다. 안나는 육체의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 지배를 통해서 주변의 시선을 통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 젊은 브론스키는 처음엔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점점 자신에게만 너무 의존하는 안나를 보면서 사랑보단 집착과 애욕의 감정을 더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 이 소설은 사랑과 쾌락에 대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은 평생 온전한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랑 이외에도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친인척뿐만 아니라 직장, 친구, 육아와 경제적 여건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사랑만으로 살 수 있다고요?' 행복한 결혼생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랑이라는 특징적인 것이 아닌 여러 구성요소들이 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아이의 순진한 미소가 버텨주고 아이가 자라 부모 곁을 떠나면 '살아온 정'이라는 감성의 추억으로, 어느 한 가지 부족하면 나머지 부족분을 채워가는 부부생활이 되어야 그 결혼생활은 오래 유지될 것입니다. ​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안나와 브론스키, 키티, 레빈의 개인 심리 묘사를 감정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나가 보여준 의식의 흐름은 인간이 과연 진정한 사랑은 무엇을 갈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 가정을 버린 대가로 모든 원죄를 품에 안고 떠난 안나, 시대의 사회 규범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사랑을 찾고 싶어 감정에 충실한 안나, 우리는 안나의 도덕성과 불륜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인간과 사회적 비난과 냉대보다는 이해와 믿음으로 성숙한 사랑을 지향할 수 있는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통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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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제님이 이 책을 읽었어요
5년 전
사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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