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로서 자신을 닦는 일[수기]과 백성을 다스리는 일[치인]의 조화를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율곡의 사상을 통해 오늘날의 유교 폄하를 넘어 유교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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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문답 (東湖問答) 내용 요약
『동호문답 (東湖問答)』(ISBN: 9788970135205)은 조선 중기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李珥)가 1568년(선조 2년), 34세에 지은 정치철학서로, 2005년 5월 책세상에서 안외순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 약 238쪽에 걸친 이 책은 ‘동호(東湖)’라는 한강변 독서당에서 학자들과의 문답 형식을 빌려, 조선의 정치적 병폐와 개혁 방안을 제시한 보고서다. 율곡은 주자학을 기반으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상을 구현하며, 부패한 조선 사회를 민생 안정과 백성 교화를 통해
율곡 이이가 서른넷 되던 해 사가독서를 받고 동호독서당에 들어가 지은 글이다. 수기치인 입지무실(修己治人 立志務實)의 뜻을 문답형식으로 서술하여 선조에게 올렸는데 이이가 품은 왕도정치에의 포부와 시대에의 통찰이 잘 녹아든 명문이다.
이제까지 이이에 대해서는 이기일원론의 성리학적 성정론을 주장하고 백만양병설을 비롯한 개혁론을 내세워 후대 실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껍데기만 암기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이이가 열망한 이상사회와 그를 실현하기 위해 제시한 성학론, 수기론, 경세론의 요체를 접할 수 있어 무척 의미있는 독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유가적 확신 아래 왕도정치 실현에의 열망을 품은 청년 정치가로서 이이는 조선 뿐 아니라 이 땅에 존재했던 어느 정치인과도 구별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유가적 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정치인은 종종 있었으나 이이만큼 순수하게 왕도정치를 열망하고 그 가능성을 신뢰한 인물은 없었기 때문이다.
기묘년과 을사년의 사화를 계기로 유림의 정신이 크게 훼손된 이래 조선의 유학은 공자의 유학과는 그 방향을 달리하였다. 누구도 정명을 통한 대동사회의 구현을 꿈꾸지 않았고 유가의 껍데기만을 취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거짓 유학자들만 넘쳐났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몇몇 인물이 있어 혼탁해진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으나 껍데기만 남겨진 조선이란 좁은 나라에서 대개는 반역의 무리로 몰려 죽거나 이상을 접은 채 현실정치의 논리에 이리저리 치여야만 했다.
어쩌면 이이는 조선을 되살릴 수 있었던 마지막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아직 온전히 흐려지지 않은 유림의 정기를 되살리고 개혁의 여지가 남아 있었던 민생을 돌보며 왕도정치에의 열망을 실현해나갈 수 있었던 그런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찌질이 선조가 아닌 다른 군주를 만났다면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정명으로부터 시작하여 폐법을 개혁하고 왕도정치의 이상에 이르려는 이이의 꿈은 조선을 넘어 21세기 현실정치에도 유효한 듯하다. 기묘년과 을사년의 사화, 더 거슬러 올라가 세조의 왕위찬탈을 후대의 임금들이 바로 세우지 않아 나라의 정기가 왜곡되고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일제와 군부독재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의 정기를 온건히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공자가 말했듯 정명해야 말이 바로 서고 말이 바로 서야 행동이 바로 서며 행동이 바로 서야 백성이 발을 편히 둘 수 있는 것이다. 이이가 이루려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기에 <동호문답>은 당대를 초월하여 현재의 우리에게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저술이라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그 이상이 드높고 통찰이 대단하였지만 군주와 진유의 존재를 극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한정시킨 부분이 적지않게 안타까웠다. 사회적으로 교육제도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군자와 진유의 존재는 교육체계와 연관시키지 않고 동떨어진 듯이 이야기하는 것은 왕정체제의 한계 때문인가, 아니면 특권의식 때문인가. 성군과 진유를 길러내는 시스템의 수립을 이야기 하지 않고 성군과 진유가 만나야 한다는 당위만을 주장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이뿐 아니라 비유교국가인 삼국과 고려의 역사를 평가절하한 부분도 못마땅했다. 아무리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었던 조선시대라지만 유교가 아닌 다른 사상들을 거짓부렁으로 매도하고 오직 유가의 가르침만을 항구불변한 진리로 삼는 것은 깨어 있는 학자다운 태도가 아닐 것이다. 이이가 왕도정치의 항구적 유지를 꿈꾸었던 포부 큰 학자였기에 이 점이 더욱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이상 수기치인 입지무실의 뜻을 표명한 율곡 이이의 글을 읽고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