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소시올로지 29권.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비견할 이데올로기로서 미국이 내세운 ‘근대화론’의 이면을 살피며, 세상을 개혁하겠다는 희망과 신념이 어떻게 폭력과 억압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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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 내용 요약
마이클 레이섬이 저술한 『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쳤던 ‘근대화 이론’이 단순한 학문적 담론을 넘어, 어떻게 강력한 정치적·문화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 책입니다. 🏛️ 저자는 근대화가 단순히 경제적 성장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과정이 아니라, 미국식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모델을 전 세계에 이식하려는 전략적 도구였다고 주장합니다.
책의 핵심은 미국이 냉전 시대에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세운 '개발'이라는 명분이,
1960-70년대 한국에서의 ‘근대화’는 하나의 거대한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악의 일소를 내세우면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그리고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은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신념에 근거해 협동조합주의적 ‘근대화’ 정책을 여러 수행했다. 비단 박정희 행정부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 역시 이에 동조하였고, 박정희 행정부가 제시한 ‘근대화’라는 이정표는 자신들을 더 나은 내일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대화’는 단순히 박정희 행정부의 의지만이 아니라 주변 세계의 정세, 냉전이라고 하는 국제적 상황에 의한 미국의 이데올로기 중 하나였다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트루먼 행정부에서 시작해 신생국가와 제3세계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근대화론’을 핵심으로 삼은 케네디 행정부까지 ‘근대화론’이 어떻게 사회과학계와 밀월을 맺으며 대외 정책의 한 기조로써 삼을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많은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학계가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다. 이는 사회과학이라는 자신들의 학문에 ‘과학’이라는 위상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인했으며, 미국 행정부의 입장에서도 이미 1950년, NSC-68로 알려진 문건에서 미국을 스스로 공산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투쟁에 개입하는 중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를 위한 시도로써 사회과학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렇게 서로 맞아떨어진 입장 속에서 미국 행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과거 1930-40년대 각각 뉴딜(New Deal)과 페어딜(Fair Deal)의 경험, 그리고 마셜 플랜이라고 하는 거대한 전후 유럽 재건 사업을 토대로 1950년대와 60년대의 신생국가 탄생, 그리고 제3세계에 정책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 과거 유럽의 식민주의가 지배했던 제3세계를 끌어들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회과학계 역시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유럽은 이미 산업사회에 대한 합리와 희망을 양차의 세계대전으로 모두 잃었던 반면, 대서양 너머 미국은 상대적으로 전장이 아니었다는 점과 1920년대의 ‘경제적 광란’ 혹은 ‘경제적 부흥’을 통해 학문기관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이 전환 과정에서 ‘근대화론’이 등장하였고, 특히 ‘시카고 학파’로 불리는 이들이 사회과학을 ‘과학’의 영역으로 올려놓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였다. 매리언 레비, 대니얼 러너, 폴 로즌스타인 로단, 월트 로스트와 같은 인물들이 수행한 사회과학의 연구 방법에서 사용한 수치화, 통계화의 사례를 이 책에서 서술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결론이 주관적 산물이 아니며, ‘근대화’는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근대화가 곧 개인과 사회에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그러나 사회과학계가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매카시즘이 휩쓸던 시기 정부와 협업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사회과학을 연구하면서 사용한 엄격한 ‘객관성’ 수립이 사회전복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과 ‘비애국’이라는 포화와 하원에서 벌어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와 같은 공산주의자 색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사회과학자들이 냉전의 ‘오른쪽’에 위치했고, 미국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은 과연 당대 미국의 사회과학이 진정으로 ‘객관성’을 지녔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낳게 만든다. 많은 사회과학자가 미국의 냉전에 기여할 기회를 추구했다는 점, 미국 외교정책의 입안자들이 자신들의 열렬한 청중이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에서 그들이 추구한 ‘객관성’이 참된 의미로써의 ‘객관성’인지 되묻자는 것이다. 또, 사회과학자만이 아니라 정책의 입안자들 역시 자신들이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신념 속에서 비서구의 ‘전통사회’가 자신들의 청사진을 충실히 따른다면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봤다. 입안자들도 포드 재단과 록펠러 재단을 통해 사회과학자를 후원하고, CIA의 지원 아래에 근대화를 장려하여 이들을 자신과 같은 방향으로 이행시키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게 할 수 있는지 연구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만든 ‘근대화론’이란 사회과학은 태생부터 ‘객관적’일 수 없었다.
이러한 ‘객관성’ 속에서 다른 세계에 자신들의 ‘객관성’을 이식하려는 시도는 강압적일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폭력과 전쟁이 수반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박정희 행정부와의 관계였으며, 일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과 日美안보조약이었으며, 베트남에서는 공산주의 게릴라에 맞서 세운 전략촌이었다. 전략촌은 베트콩에 대비하기 위해 세워진 전진기지였다.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미국이 오히려 전략촌 주민들을 상대로 억압적이고, 감시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그려냈다. ‘자유’의 수호자이자 세계의 ‘경찰’이라 부르는 미국의 ‘근대화’라는 ‘보편성’은 제국주의가 무너져내린 지역과 세계에 ‘제국주의’의 모습을 개조한 억압이자 폭력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미국의 ‘근대화론’에 대한 수사법에서 식민주의적 내용을 담진 않았지만, 유럽 식민제국의 붕괴로 변화된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유럽의 식민제국과 닮았다. 결국, 근대화론은 제국주의가 가진 과거에 의존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기인한 ‘근대화론’과 미국의 제3세계 정책은 남베트남이 아니라 1953년에는 이란에서, 1954년에서는 과테말라에서, 1958년에는 레바논에서 자신들의 ‘객관성’을 이식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성’ 이식을 위해 1980년대부터 커크패트릭과 같은 네오콘들이 때로는 우익독재체제를 지원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남베트남만이 아니라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군이 주둔하고,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식하려 했지만, 미군의 철수와 함께 무너진 것을 보면서 말이다.
미국이 내세우는 ‘경찰’의 역할은 때로는 사회를 지탱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보전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경찰력’이라고 하는 힘(力)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봐서 미국을 “세계의 경찰”이라는 묘사하는 표현은 참으로 미국의 지위와 미국이 내세우는 ‘보편성’을 잘 묘사하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