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독일 리베라투르 상 수상 작가, 오정희의 작품집 5종을 리뉴얼했다. <새>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남매의 짙은 상실감과 방황을 정갈한 언어로 형상화한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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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작가의 소설 『새』는 열세 살 소녀의 시선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이 어떻게 세상을 마주하고 치유의 과정을 거쳐 나가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나'는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가 새로운 여자를 데려오면서, 평온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파괴된 후, 주인공은 철저히 방치된 채 외로움이라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듭니다.
소설 속에서 소녀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으며 점점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인류는 여러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 내며 인류 죄악의 시초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불행의 순환을 만드는 고질적인 삶의 굴레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야 명쾌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첨단으로 나아가는 현대에 불치의 인과론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을 듯이 끙끙 앓아대는 사람도 병명만 알면 기적같이 살아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아직 과학만능론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인 것 같다. 우리의 정신은 눈, 코, 입, 귀,피부 등 여러 감각 기관을 통해 총체적인 반응을 실시간으로 집합시키고 관리한다. 또 반응을 교합시켜 상황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반발 작용'을 만들어 낸다. 즉, 우리는 반응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여 교감 활동의 기반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은 우리가 의식상에서 모두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복잡다단하여 사실상 제어가 불가능하다. 생물병리적인 부분은 환경의 제어를 통해 원인을 발색하고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러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사회적 하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형식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기 다른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과는 별개로 비춰진다. 일례로 화물 운전사인 이씨 아저씨는 우미와 우일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동시에 개에게 물린 일우를 치료하기 위해 새끼를 벤 개에게 매타작을 날리거나, 장마철 숨을 쉬기 위해 땅 위로 나온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리는 등, 악의 없는 폭력을 일삼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미와 우일은 폭력성에 젖어들게 된다.
'어느 날 우일이 침쟁이 정씨네 개에게 손을 물린다. 이씨 아저씨는 사람을 문 개는 잡아먹어야 사람이 미치지 않는다고 귀뜸한다. 우미는 이씨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침쟁이 정씨에게 우일 문 개를 내놓으라고 강경하게 나선다. 침쟁이 정씨는 개가 새끼를 베고 있어서 그런 것이며 우일이 광견병 주사를 맞았으니 괜찮아질 것이라며 만류하지만 우미는 물러서지 않는다. 결국 우미의 고집에 진 정씨는 개를 내주게 된다. 개는 셋집 사람들에게 건네진다. 이씨와 정씨가 몽둥이로 두들겨 잡은 개가 보신탕이 되어 우미와 우일에게 건네지고 '개'를 먹은 남매는 자신들이 먹은 '개'와 동일시 되어진다. '
이 웃지못할 단막극 안에서 죄를 지은 자는 누구인가. 개는 자신이 벤 자식들을 위해, 이씨 아저씨와 우미는 우일을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 더 나아지지 못하고 '개'가 되게 하는 길이었다.
카뮈는 인간이 제 소임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실존한다고 하였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명제에는 '나'는 무엇으로 실존하고, 따라서 무엇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사회적 하위층의 사람들은 영원히 하위 계층의 문화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넘어가는 만연한 폭력들은 방치되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애가 커서 된 게 어른'이라던 상담 어머니의 말이 와닿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폭력이 죄악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폭력과 직접 맞닿아 있는 자보다 폭력을 관망하는 것이 더 익숙한 자들에게만 이해되는 것이다. 폭력의 전래로 인한 죄악의 굴레는 의도적으로 끊어내지 않는 이상 그들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