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얇지만 작가의 농도 짙은 비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은행 비밀주의는 스위스의 금융업에 대한 유명세와 신뢰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적으로 작용했지만, 검은 돈을 세탁하고 재활용하는 조세 피난처로서 기능하는 데 일조했다. 이 책에서의 ‘검은 돈’은 제 3세계의 부패한 독재자들의 도피성 자금과 마약 카르텔의 밀수를 통해 얻은 막대한 수익을 가리킨다. 작가는 검은 돈은 단순히 소수 기득권층의 배만 불리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다수를 핍박하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고 보았다. 이들의 부는 다름아닌 무고한 이들을 착복한 결과이므로 이러한 자금이 상당히 많이 모이는 스위스의 세법을 개정하고 시민의식의 봉기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한편 고객의 비밀은 그 어떤 것이라도 지키는 모습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어느 정도까지 용납할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법을 개정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은행들은 법망을 피해 어떻게든 허점을 파고들 것이고 소수 기득권층은 굳이 스위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조세 피난처를 찾아낼 것이다. 결국 검은 돈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 것이다. 작중 주로 다뤄지는 마약 밀수입의 폐해만 봐도 알 수 있듯(도피성 자금은 제외하고) 마약 자체가 애초에 불법화되거나 금지되었더라면 마약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없었을텐데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사회경제 분야 책이고 다소 어려운 용어도 등장하지만 예시가 많다. 또한 객관적으로 날카롭게 비판하여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