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로서 '활자 유랑자'라고도 불리는 금정연의 택시 유랑 에세이. 보통의 작가들이 물건 값을 원고료 단위로 매길 때 금정연은 원고료를 택시비로 환산한다. 그는 자신이 쓰는 모든 원고의 10퍼센트는 택시를 위한 것이고, 가끔은 순전히 택시를 타기 위해 원고를 쓰기도 한다고 말한다.
오랜만에 재밌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이 아무튼 시리즈라는 건 놀랍지도 않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독토바 친구들과 아무튼 시리즈에 대해 알게 되었던 때를 떠올려본다. 온라인의 작은 서점에서 '아무튼, 스웨터'를 먼저 발견했다. 책 정보를 찾아보려다 아무튼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 '아무튼, 스릴러' '아무튼, 잡지' 등을 발견하였고, '아무튼, 택시'의 출판사 리뷰 속 체크리스트를 보며 넷이 깔깔 웃었더랬다.
TAXI LOVER CHECKLIST
코난북스 출판사 리뷰 on YES24
□ 택시가 있기 때문에 차를 사지 않는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닌다.
□ 차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를 맘껏 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단지 택시를 타기 위해 외출한 적이 있다.
□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택시를 탄 적이 있다.
□ 빈 택시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 택시를 탈 핑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집을 나선다.
□ 택시가 나오는 노래를 열 곡 이상 알고 있다(자이언티 [양화대교] 말고).
□ 택시가 나오는 영화를 열 편 이상 알고 있다(송강호 [택시운전사] 말고).
□ 택시가 나오는 책을 열 권 이상 알고 있다(홍세화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말고).
□ 지방에 내려가면 꼭 택시를 탄다.
□ 외국에 나가면 꼭 택시를 탄다.
□ 하루에 택시를 다섯 번 이상 탄 적이 있다.
□ 택시비로 한 번에 20만 원 넘게 낸 적이 있다.
□ 택시에 타고 있어도 택시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 가끔은 택시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 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궁금하기는 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택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독토바 친구들도 다들 그런 것 같아 보여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아무튼, 양말'을 선택했었지만 (which was the best choice! 아직도 독특한 양말이 너무 좋고, 생일 선물로 또 독토바 친구들이 양말을 다섯 켤레나 사서 보내주었다. 최고야. 사랑해, 내 바보들) 약간 약에 취한 것 같은 설명에 언젠가는 꼭 읽어봐야지 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구매를 하게 되는데..
그저 재밌었다. 말장난 포인트가 나랑 딱 맞아떨어진다. 두어 번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도 나오는데, 그거마저 웃기다. 가끔 쿵짝이 잘 맞는 친구와 깔깔 웃으면서 대화하다가 상대방이 이상한 소리 할 때 "뭔말인지 하나도모르겠엌ㅋㅋㅋㅋ"라면서 웃는 그럼 기분. 작가는 이 책에서 세 가지 일지에 대해 썰을 푼다. 수영 일지, 시나리오 일지, 그리고 택시 일지. 그 세 일지가 잘 짜인 추리소설처럼 어찌나 딱딱 맞아떨어지는지 툭툭 등장할 때마다 감탄이 터졌다. 어투나 사용하는 어휘를 보면 약간 대충 쓴 듯한 (현대인으로서 술술 잘 읽히는 문장이라는 뜻) 느낌인데, 사실은 그 어떤 기획 드라마보다도 탄탄한 구성이다.
난 택시 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더운 여름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기에 애매한 - 타기 전 혹은 내린 후에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 장소에 갈 때나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을 때 타는 것 외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택시를 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설명해준다. 아파트 단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힘드니 초입부에 차를 세워버린다든지, 카드로 결제할 때 짜증을 낸다든지, 아예 내가 타자마자 한숨을 푹 쉰다든지, 목적지를 주소로 말했더니 특정한 장소로 말하라고 화를 낸다든지. 다짜고짜 반말로 몇 살이냐 전공이 뭐냐 묻는 괴롭힘부터 본인 아들과 만나보라는 선자리 주선까지 내가 택시로부터 멀어진 계기는 충분하다. 물론 편안했던 (Talkless) 경험이 더 많지만, 구토 맛 : 평범한 맛이 5:5로 들어 있는 젤리는 그냥 먹지 않겠습니다.
서로가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바보짓만 골라 하는 친구와 노는 것만 같았던 책. 아직 아무튼 시리즈에서 최고는 '아무튼, 술'이지만 그다음으로 랭크될 정도로 재밌었다. 표지는 좀 흥미가 떨어지지만, 막상 읽어보면 매력 넘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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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예찬론,
그는 왜 택시를 타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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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오로지 우아함을 위해 존재한다면,
우아하게 그것을 하든지 아니면 하지 마라.
어떤 것이 엄숙한 척하기 위해 존재한다면,
엄숙하게 그것을 하든지, 아니면 하지 마라.
어정쩡하게 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거기엔 어떤 자유도 없다.
(p.28, 체스터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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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p.84, 줄리언 반즈의 어떤 소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