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 문예출판사 펴냄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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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페이지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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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계급에 따라 공장에서 제품처럼 생산되는 세계.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이자 문학비평가 올더스 헉슬리는 현대인이 당연시하며 자부하는 기계문명이 극한까지 발달하고 인간이 발명한 과학의 성과 앞에 스스로 노예로 전락해, 마침내 모든 인간 가치와 존엄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는 비극을 예언한다.

아기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고 시험관에서 생산되며, ‘어머니’가 욕설로 여겨지고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권장되며 수면과 세뇌 교육으로 모두가 정해진 계급과 운명에 순응하는 문명 세계.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인간은 고유의 가치와 존엄을 상실한 지 오래다. 어느 날 이 신세계와 격리된 원시 지역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야만인 존이 이곳을 방문하고, 베타 계급 여성 레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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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독서 <멋진 신셰계>

한자리에 앉아서 전부 읽었다. 재미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총통과의 대화가 이 소설의 액기스라 강력히 말할 수 있다.

유토피아란 무엇일까?
고통없는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vs.
그 고통을 겪지않아도 되는 완벽한 시스템 속의 우리.

정답을 다 떠나 이방인씨는 왜 굳이 나섰을까? 그냥 절이 싫으면 중만 떠나지 왜 다른 스님들까지 설득하는걸까? 굴러온 돌이 가만있을것이지 왜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까? 멋진 신세계에서 반란이 일어나 그 세계가 무서질까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멋진 신세계 속 세상을 원하는걸까?

멋진 신세계 속 세상은 4차산업혁명이 온 후 미래 인류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선택하고 책임지는 소수의 최상위층을 제외하고는, 편안하게 기계의 보살핌으로 살아갈 것. 특별히 갈등도 없고, 불만도 없고. 그저 살아가는삶. 어릴적부터 파블로프의 개 마냥 여러 상황들을 교육시켜 사회를 유지하는 삶. 모두가 알파로 이루어진 세상은 유지되지 않으므로 알파부터 입실론까지 유전자부터 다르게 만들어 운영되는 삶.

무엇이 유토피아일지. 옳고 그른지, 선인지 악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의 인생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등 생각하지 않으면 그게 인간일까?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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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인간이 계급에 따라 공장에서 제품처럼 생산되는 세계.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이자 문학비평가 올더스 헉슬리는 현대인이 당연시하며 자부하는 기계문명이 극한까지 발달하고 인간이 발명한 과학의 성과 앞에 스스로 노예로 전락해, 마침내 모든 인간 가치와 존엄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는 비극을 예언한다.

아기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고 시험관에서 생산되며, ‘어머니’가 욕설로 여겨지고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권장되며 수면과 세뇌 교육으로 모두가 정해진 계급과 운명에 순응하는 문명 세계.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인간은 고유의 가치와 존엄을 상실한 지 오래다. 어느 날 이 신세계와 격리된 원시 지역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야만인 존이 이곳을 방문하고, 베타 계급 여성 레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출판사 책 소개

기계문명 발달에 도취한 현대사회,
전체주의와 결탁한 과학의 진보가 미래에 가져올
비극을 경고한 20세기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


인간이 계급에 따라 공장에서 제품처럼 생산되는 세계.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이자 문학비평가 올더스 헉슬리는 현대인이 당연시하며 자부하는 기계문명이 극한까지 발달하고 인간이 발명한 과학의 성과 앞에 스스로 노예로 전락해, 마침내 모든 인간 가치와 존엄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는 비극을 예언한다.

아기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고 시험관에서 생산되며, ‘어머니’가 욕설로 여겨지고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권장되며 수면과 세뇌 교육으로 모두가 정해진 계급과 운명에 순응하는 문명 세계.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인간은 고유의 가치와 존엄을 상실한 지 오래다. 어느 날 이 신세계와 격리된 원시 지역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야만인 존이 이곳을 방문하고, 베타 계급 여성 레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헉슬리의 역사관과 문명관의 핵심을 이루는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 진보는 불가능하다’라는 주장은 기계문명 발달에 도취한 현대인을 통렬히 비판한다. 또한 이 작품의 풍자적인 과장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대문명의 심각한 위기를 실감하게 하고 척연히 성찰하게 한다. 이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틴의 《우리들》과 더불어 디스토피아 3대 명작으로 꼽힌다.

올더스 헉슬리는 젊은 영국 작가 중 단연 최고다. —마르셀 프루스트

그는 세련된 문체와 뛰어난 감성을 지녔다.—버지니아 울프

과학의 유토피아, 욕망의 디스토피아. —정여울

★ 미국대학위원회 SAT 추천 도서
★ 《뉴스위크》 선정 세계 최고의 책 100선
★ 《로고스》 선정 20세기를 만든 책 100선
★ 〈옵서버〉 선정 가장 위대한 소설 100선
★ 랜덤하우스 선정 20세기 영문 소설 100선
★ BBC 선정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100선
★ 피터 박스올 선정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권의 책

“오오, 멋진 신세계여!”
인간이 공장에서 생산되고 철저히 통제받는 세계,
사회는 진정 안정되고, 인간은 과연 행복한가?


아기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고 시험관에서 수정되어 ‘생산’된다. ‘어머니’가 욕설로 여겨지고 가족의 개념은 사라졌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다섯 계급의 인간은 필요에 따라 계획적으로 생산, 관리한다.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권장되며 수면과 세뇌 교육으로 모두가 정해진 계급과 운명에 순응하는 문명 세계.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인간은 고유의 가치와 존엄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러한 미래 사회에서는 제1의 목적이 사회의 안정이며, 사회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방안이 채택된다. 인간은 자기 계급에 기계적으로 적응할 소질까지 구비하고 태어나며 그 계급에 잘 적응하도록 심리학적 기술을 이용한 교육을 받는다. 주어진 환경에 절대 반항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명랑하게 지낼 수 있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세워진다. 또한 소마라는 약이 배급된다. 그 약을 삼키면 부작용도 없이 술과 종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마의 덕택으로 인간은 항상 무릉도원의 생활을 누린다. 이렇게 불안을 느낄 줄 모르며 안정된 인간들이 형성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불안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다. 한마디로 ‘바보들의 천국’이 실현된 것이다.
이러한 바보들의 천국에 어느 날 반역자가 나타난다. 제1의 반역자는 시험관에서 배양되던 중 혹시 알코올이 주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는, 상층계급에 속하면서 하층계급의 열등한 육체를 가진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청년이다. 상층계급으로서 지적인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이 청년은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고 언제나 고독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반사회적 사상을 품고 있다. 제2의 반역자는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 너무나 우월한 소질을 타고난 청년인데, 전체주의 정책에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헬름홀츠 왓슨이라는 청년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 체제 속에서 사는 반역자보다 훨씬 통렬하게 전체주의에 반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야만국에서 우연히 이 문명 세계를 방문한 존이라는 청년이다. 어느 날 신세계와 격리된 원시 지역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야만인 존이 문명국을 방문하고, 베타 계급 여성 레니나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존은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전원의 고독을 찾아 도망친다.

기계문명 발달에 도취한 현대사회,
전체주의와 결탁한 과학의 진보가 미래에 가져올
비극을 경고한 20세기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표작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이자 문학비평가 올더스 헉슬리는 현대인이 당연시하며 자부하는 기계문명이 극한까지 발달하고 인간이 발명한 과학의 성과 앞에 스스로 노예로 전락해, 마침내 모든 인간 가치와 존엄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는 비극을 예언한다.
《멋진 신세계》 가 우리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이 작품이 20세기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어느 작품에 못지않게 리얼함과 동시에 20세기를 상징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상향을 그렸다고는 하지만 조지 오웰의 《1984》 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낙원에 대한 동경이나 낙원의 설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종의 지옥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반이상향, 디스토피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작품의 의의는 세계는 어디로 나아가야 한다는 어떠한 논리적 귀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학기술의 진보, 기계문명의 발달이 전체주의 사상과 밀착된 유대를 가질 때 어떠한인간적 비극과 노예화가 초래될 것인가를 경고하고, 현대문명에는 자유냐 안정이냐 하는 이율배반적 모순이 내재하고 있어 기계문명의 발달이 이 모순의 해결책으로서 전체주의 체제를 촉진할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을 제시한 점에 있다. 또한 재치 있는 풍자와 희화를 통해 현대문명의 심각한 위험성을 과장하여 지적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문명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멋진 신세계》 라는 표제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물론 역설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진보와 발달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19세기에는 장밋빛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묘사할 수 있었지만, 그 확신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 현대에 와서는 공상소설이 철저하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런 부정적 전망은 헉슬리가 이 작품을 쓰고 발표하던 시점 더욱 호소력을 얻었다. 또한 헉슬리가 그려낸 이 잔혹한 미래상은 이제 공상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이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 그가 상상하고 경고한 악몽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디스토피아 3대 명작,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20세기 가장 뛰어난 예언적 소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발표하고 십몇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출간된 판본의 서문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여러 해가 지난 후 작가의 수정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멋진 신세계》를 집필할 때만 해도 헉슬리는 이 소설의 중요 인물인 문명국을 방문한 야만인 존에게 두 가지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하나는 문명국에서 행복을 누리는 미치광이로 설정할 것인가, 아니면 야만국으로 돌아와서 그 우매함과 추악함을 감수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가능성이었다. 어느 편도 구원은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헉슬리는 작품을 다시 쓰면 양자택일을 떠나서 야만족 주변에 문명국을 떠나온 망명자나 도망자들이 건설하는 ‘제3의 사회’를 설정하겠다고 술회했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거기에 적응시키는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안식일처럼 이용된다. 종교는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자각적 지적탐구가 되고 우주는 내재하는 ‘길〔道〕’ 또는 로고스, 초월적인 신, 즉 브라만의 조화적 지식이 된다.
헉슬리가 이 작품을 발표하고 십여 년이 지난 후 이러한 수정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파괴적 풍자가였던 헉슬리가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동서고금의 신비 사상에 몰입하여 신비주의적, 종교적 도덕가로서 변신했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후기의 작품 속에서 동양적인 무집착(non-attachment)의 덕을 지도원리로 추천한다. 그의 무집착이라는 것은 부나 명예나 지위에 집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학, 예술, 사상, 심지어 박애에도 집착하지 않는 무집착으로서 자아는 물론 현세의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무집착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집착의 상태는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미치지 못하고 종교적 천재나 천재적 철인만이 가능한 이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상을 사회문제 고찰에 적용하려 하는 도덕가 헉슬리는 풍자가 헉슬리보다 현실 도피적 색채를 띠었다고 말할 수 있다.
1949년 헉슬리는 제3차 세계대전 후 핵으로 파괴된 세계에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가공 소설 《원숭이와 본질》을 발표했다. 여기서 자유를 구하는 인물이 전술한 ‘제3의 사회’로 도피행을 감행하는 어떤 해결의 길이 암시된다. 그러나 해결의 길을 암시하는 《원숭이와 본질》은 완전히 부정적인 《멋진 신세계》보다 박력과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멋진 신세계》가 문학작품으로서 단연 박력과 중량감을 주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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