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열림원은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인선 시-LIM을 선보인다. ‘시-LIM 시인선’의 첫 번째 시집은 고선경 시인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이다. 날카로운 유머와 재미, 솔직한 고백 속에서 빛나는 진심, 용기와 사랑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한층 더 깊어진 마음을 전한다.
고선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은 2025년 열림원에서 출간된 ‘시-LIM 시인선’의 첫 번째 작품으로,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의 깊어진 감성과 성숙한 시 세계를 담고 있다. 🍅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가 청량하고 발랄한 에너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이 신작은 겨울의 추위를 견딘 토마토처럼 단단하고 진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년 운세’로 시작해 ‘팬레터-12월 31일’로 마
부적 하나 쥐여주며 곁에서 걸어가는 듯했는데
불안과 상실, 그리고 사랑이 느껴졌다
부적이라는 건 사실 단단한 내 마음이지 않을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라고
마음 굳게 먹으라고
나를 살리는 건 결국 나라고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씹고 베어버리면 쉽게 조각나버리는
어쩌면 누구보다 여릴 수도 있다
내 마음은 물렁한 토마토일까 단단한 토마토일까 방울 토마토일까
다 됐고 웃을 일이 있으면 웃고
슬퍼할 일 있으면 오래 슬퍼하지 말고
다시 할 일을 하는 것
세상 미쳤고 나도 미쳤지만
그래도 사랑을 사랑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 끓인 뱅쇼처럼
잔향이 남았다
견디는 마음이 단단한 부적이구나
싱그럽고 톡톡 튀어 오를 것 같던 시인이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팬레터에 대하여
다친 것 하나 없어 보였던 사람이 숨겨왔던 상처를 말하기로 작정했다. 그 상처는 죽음이다. 죽음을 시간과 엮어서 풀어낸 시인은 미래를 자주 언급한다. 내가 없을 미래, 네가 없을 미래를 상상하던 시인은 결국 하나의 고백에서 끝이 난다. "너의 팬이야" 팬이라는 말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자주 쓰인다.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티스트가 올리는 SNS 하나에 가슴 설레어하고, 노래가 나오면 하루를 모두 던져버릴 만큼 사랑한다. 아티스트에 의해 내 기분과 하루가 좌우되는 일. 아티스트에 의해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는 사실 팬에게 모든 마음이 달렸다.
근래 흥미롭게 본 영상은 <탈덕 브이로그>다. 영상 시청 내내 마음이 떠나버려 이별 통보하기 직전 연인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보인다. 시원하기도 헛헛하기도 한 감정. 전과 다르지 않게 아티스트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유튜버는 앵콜을 수없이 외친 관객이었지만, 이제는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무대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나온다. 이 영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가 누구의 결정권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말이다.
어떤 관계에 있어 죽음은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의 몫이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도 살아있는 자, 죽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살아있는 자이다. 팬이 되는 것도 살아있는 자, 팬이 되지 않는 것도 살아있는 자. 시인이 당돌하게 말하는 "너의 팬이야"라는 말은 맹목적으로 응원하겠다는 다짐과 마음 한편에 너의 자리를 비워두겠다는 말이다.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나의 엄마도, 아빠도 누군가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듯이, 나의 아티스트를 다시 기억할 수 있다는 과정은 아름답다. 아티스트를 보자마자 다시 팬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엄마와 아빠처럼 화자는 '너'를 보자마자 앞으로도 팬의 마음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