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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08.5.13
페이지
390쪽
상세 정보
예술적 자아를 가진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 ‘저주받은 끼’를 지니고 태어난 옛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을 하는 여성의 생각과 삶의 조건을 그려나간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사대부가의 여자아이 항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 삶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인물. 항아의 동시대 친구로 등장하는 가연과 초롱에게서 허난설헌이나 황진이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항아는 신사임당과 다른 허구적 인물이라고 밝혔다. 항아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감 여자아이. 그녀의 이름 ‘항아’는 아들을 낳고 싶은 부모의 염원을 담은 이름 ‘개남(開男)’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이름이다.
항아는 꽃과 나무와 벌레마저 사랑해 언제나 이들을 화폭에 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저주받은 끼와 같았고.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쳐내고자 가위로 손등을 찍어 누르는 찰나의 광기를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도 여느 조선의 부모와 조금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항아.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항아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예술혼과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자신을 다스린다. 그러나 그러한 균형을 깨뜨리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의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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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예술적 자아를 가진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 ‘저주받은 끼’를 지니고 태어난 옛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을 하는 여성의 생각과 삶의 조건을 그려나간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사대부가의 여자아이 항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 삶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인물. 항아의 동시대 친구로 등장하는 가연과 초롱에게서 허난설헌이나 황진이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항아는 신사임당과 다른 허구적 인물이라고 밝혔다. 항아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감 여자아이. 그녀의 이름 ‘항아’는 아들을 낳고 싶은 부모의 염원을 담은 이름 ‘개남(開男)’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든 이름이다.
항아는 꽃과 나무와 벌레마저 사랑해 언제나 이들을 화폭에 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은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저주받은 끼와 같았고.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쳐내고자 가위로 손등을 찍어 누르는 찰나의 광기를 보이기도 한다.
다행히도 여느 조선의 부모와 조금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항아.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항아는 자유롭고 열정적인 예술혼과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자신을 다스린다. 그러나 그러한 균형을 깨뜨리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의 열정이다.
출판사 책 소개
2002년 ‘이상문학상’, 200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권지예 장편소설
결국,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나는 삶을 껴안기 위해 구부러졌다.
그림은, 글씨는, 내 상처를 먹고 자랐다. 상처가 아플수록 나는 그림을 욕망했다.
그것들은 나의 정인(情人)이었다. 정인이 있어 더욱 반듯하게 살아낼 수 있었다.
모순이었다. 모순을 껴안지 않으면 삶이 아니지. 후회는 없다.
권지예 소설의 새로운 이정표, 예술가 소설의 한 전형을 직조해낸 소설
나는 나, 내 마음의 주인은 나…….
삶을 조롱하든 숭배하든,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사내의 사랑도, 부모에 대한 정도 종당에는 변하기 마련인 것을.
“나로서는 이번 소설의 의미가 깊다. 옛 여인들을 소재로 소설을 써본 낯선 모험을 했다.” 모던으로도 부족해 늘 포스트모던 한 것에 목말라 있었다고 말하는 소설가 권지예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한다. ‘저주받은 끼’를 지니고 태어난 옛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가로서 예술을 하는 여성으로서, 삶과 예술의 길항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예술가에게 또는 여성 예술가에게 있어서 삶의 조건은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권지예의 새로운 도전이 그의 예술가적 자리매김의 한 장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작가는 작품 안에 조선시대의 대표적 여성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외면적 생의 조건들을 주요 모티프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소설 속 여주인공 항아는 작가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전혀 다른 영혼임을 밝히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독자는 소설 속에서 동시대 친구로 등장하는 가연과 초롱에게서 허난설헌이나 황진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들도 모두 가공한 소설적 캐릭터로 허구적 인물임을 강조한다.
“언제부터인가 예술적 자아를 가진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현대소설에 넘치고 넘치는 예술가의 전형은 이미 클리셰(clich?)가 된 지 오래다. 폭풍 같은 열정과 광기, 그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사는 여성예술가들. 그러나 그들은 예술가로서의 자각을 이미 안고 삶을 사는 ‘직업적 예술가’가 대부분이다. 나는 여성예술가라는 현대적 이름이 있기 전부터 이미 드리워진 그림자 같은 운명적 존재로서의 예술가를 그려내고 싶었다. ‘나’ 또는 ‘자아’라는 개념조차 용인되지 않았던 유교사회인 중세 조선시대에 ‘끼’를 가지고 태어난 자아가 강한 여성들. 그 예술적 ‘끼’는 현대에 와서야 ‘재능’이란 이름을 부여받았을 터. 그 시대 여성들에게는 이런 현대적 의미의 예술가로서의 의식이나 있었을까. 그저 한낱 기생의 재주나 사대부가 여인네의 교양 정도로만 용인되었을 것이다. 도를 지나친 예술혼은 오히려 도화살이나 화냥기 같은 위험한 ‘끼’로 여겨져 스스로도 일종의 재앙처럼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런 존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 자신의 본 모습을 죽이며 생을 보낸 알려지지 않은 여성예술가들도 많았으리라. 나는 그런 ‘저주받은 영혼’에 대해 쓰고 싶었다. …… 예술가스러운 예술가와 좋은 예술가에 대한 견해는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화려한 삶이나 비극적인 삶으로 예술가적 아우라를 담보하는 것이 아닌 반(反) 클리셰적인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 지독히 현실적이면서도 성찰적이고, 분열적이고도 타협적인, 영악하면서도 인간적인 그런 예술가를 그려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주로 ‘여성’을 둘러싼 현대사회의 세태를 통찰해왔던 작가 권지예가 시대를 거슬러 ‘조선’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으며 선택한 인물 항아(恒我). ‘항아’는 현모양처의 길을 걸어야 하는, 현모양처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외적 조건을 지닌 사대부가의 여자아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지어준 ‘개남’이라는 이름 대신 ‘항아’라는 이름을 불러달라고 고집하는 되바라진 계집아이이기도 하다. 작가는 왜 조선시대 전형적인 현모양처감 여자아이에게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불어넣었을까.
‘항아(恒我)’ 나는 참으로 발칙한 계집아이였겠다!
아들을 낳고 싶은 부모의 염원을 담은 이름 ‘개남(開男)’을 거부하고 스스로 ‘항아’라 이름 지은 발칙한 계집아이. 항상 ‘恒’ 자와 나 ‘我’ 자, 스스로 완벽한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항아. 동년배가 가진 뛰어난 재능에 질투심을 느끼는 범상치 않은 소녀, 꽃과 나무와 벌레마저 사랑해서 언제나 이들을 화폭에 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나, 이 욕망을 쳐내고자 가위로 손등을 찍어 누르는 찰나의 광기를 보이는 소녀. 이 아이의 앞날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부모는 여느 조선의 부모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특별한 분들이었다. “네가 아들 같으면야 무슨 걱정이겠냐. 내 딸이라 그런 게 아니라, 계집으로 태어나 좁은 세계에 살다가는 것이 가련하기도 하다. 여자도 사람인데 너한테만은 세상 구경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나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기란 너나없이 어려운 법, 그들 부모의 특별함은 딱 여기까지였다. “학식과 견문이 넓으면 오히려 여자의 팔자가 기구하다고 한다만 여자도 여자 나름, 그릇이 커서 다 포용할 수 있으면 그런 것들이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후대 자손들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어찌 보면 아녀자의 인생은 단지 한 생으로 끝나는 건 아니야. 어머니가 훌륭해야 자손이 훌륭한 법.”
자유롭고 열정적인 예술혼과 차갑고 냉철한 이성의 균형을 위해 부단히 자신을 담금질하는 항아였지만, 그녀의 그런 마음자리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녀에게 사랑의 열정이 찾아온 것이다. 유년 시절 자신도 모르게 찾아왔던 그 사랑은 그녀가 결혼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의 뇌리에서 살아 숨 쉰다.
“준서의 목소리뿐 아니라 마치 그가 귓속에 속삭이는 것처럼 귀 속까지 뜨겁고 간지러웠다. 그리움이 가슴을 저미고, 저 아래 빈 곳, 허전한 곳을 조금씩 밀어올리며 준서의 목소리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아아, 이제 환청까지 들리다니. 게다가 환청은 나의 내부에서도 울려 나왔다. 막힌 가슴속에서는 광녀가 문을 내달라고, 창을 내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이대로 어찌 평생을 산단 말인가. 이 꽉 막힌 수틀이 웬 말이고, 고상연한 그림은 다 무어고, 금수 같은 마음으로 글은 읽어 무엇 하나. 그것들을 하면 내가 행복하다고? 진정 마음을 도려낸 채 그 텅 빈 예(藝)는 무엇이고, 가증스런 예(禮)와 학문은 또 무엇인가. 모두 부질없다. 차라리 짐승처럼 살 거야.”
그들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꿈꾸는 것은 애시 당초 무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항아는 결코 현실을 외면하지 못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의 재주’를 가슴 한편에 담고 치열하게 현실을 존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것이다.
“그래. 약속의 족쇄를 끊고 인연의 사슬을 끊자. 인생 일장춘몽이라 했지. 한바탕 나쁜 꿈을 꾼 거야. 부모의 뜻을 받들자. 그게 뭐 어려운 일인가. 그래. 혼인, 할 수 있다. 사내에 대해 이제 더 이상 마음을 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사내의 지어미로서의 삶, 개의치 않겠다. 아니 여인으로서 살아내야 할 삶, 보란 듯이 잘 살아내겠다. 아내든 어머니든 며느리든 딸이든. 그게 우주의 원리고 이치라면 따르리라. 또한 하늘의 뜻이라면. 누구보다 완벽하게 살아내주리라. 하지만 내 마음을 거기에다 묶어두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든 내 마음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내 마음은 내 것이다. 나는 나, 내 마음의 주인은 나다. 온갖 생명 가진 존재들 중에서 인간만이 으뜸가는 지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우주 안에 혼자이다. 그러니 이 우주 안에서 홀로 자유로이 노닐 것이다. 삶을 조롱하든 숭배하든.”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현실적 삶에 대한 존중을 버릴 수 없었던 항아는 사랑의 열정을 예술로 전화한다.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것은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유교적인 이념을 숭앙하면서도 끝없이 남편이 아닌 정인(情人)을 그리워하는 이중적인 항아의 삶. 이는 표면적으로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열적인 예(藝)의 추구’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항아의 정인은 ‘남성’이기 이전에 ‘예술혼’이었던 것이다.
“나는 붓을 잡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 사내의 사랑도 부모의 정도 종당엔 변화하기 마련. 우주의 모든 것은 사계절처럼 변하고, 어차피 모든 존재는 홀로인 것이다. 홀로 우주를 사는 것이다. 붓은 홀로 우주를 주유할 수 있게 하는 날렵한 한 필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그녀에게도 갈등이 없을 수는 없었다. 다음과 같은 그녀의 고백은 자유롭고 존엄한 인간이기를 꿈꾸는 그녀의 고민을 여과 없이 드러내준다.
“저는 열녀도 아니고 효부도 아닙니다. 다만 제 앞에 놓여 있는 저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삶에 진정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언지……. 저의 삶이 저의 의지와는 달리 저를 기만한다면, 저는 그 삶에 어떻게 경배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습니까? 인생무상이고 제행무상이니 그냥 한평생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허랑허랑 살다가 죽으라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우주의 주인이 되고 싶어요. 아니 주인이지요. 하물며 개미나 벌과 같은 그런 미물도 자연의 이치와 기미를 파악하고 삽니다. 제 인생에서 저도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면, 그 미세한 기미조차 감지하지 못했다면, 제가 제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달픈 세상에서 글씨와 그림은 마음을 달래준 정인(情人)이요, 벗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항아는 훌륭한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로서의 외피보다는 예술가로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는 여인이었다. 반면에 현실과 열정의 균형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냉철한 여성이기도 하다.
“나는 두 가지의 기쁨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지 간혹 생각했다. 나 자신만을 기쁘게 하여 지극한 충일감을 느끼는 것. 나를 둘러싼 존재들의 기쁨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하는 것. 사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내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들이 알고 있고 기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타고난 재주에 속도 깊고 남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며 집안의 아들 노릇을 할 든든한 딸자식.”
그녀에게 예술과 삶은 어떤 무게로 그녀를 압박해왔을까. 그것은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칼을 다룰 줄 아는 신묘한 진리를 터득한 여인이었을까. 피 흘리며 자신을 다스리는 한없이 강하고도 약한 여인이었을까. 어머니의 재주를 그대로 물려받은 그녀의 딸 묘진의 의문은 우리 모두의 의문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셨다면 다시 묻고 싶었다. 재주를 타고난 아녀자로서, 어머니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할지, 그렇지 않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일개 양반가의 한 아녀자로 생을 사는 게 좋을지. 묘진은 어머니가 두 가지의 삶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에겐 양날의 칼로 가슴을 저미는 고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답은 묘진의 다음과 같은 진술 속에 숨겨져 있다.
“그 붉은 비단보 안의 그림을 볼 때면 묘진은 한없이 자유로움을 느꼈다. 비록 여인으로서 삶이 갇혀 있더라도 화폭에서는 한없이 자신의 삶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위안과 희망이었다. 양식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경을 그린 것도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
항아에게 고달픈 세상에서 글씨와 그림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준 정인(情人)이요, 벗이었다. 항아는 이에 만족한다. “그러면 되었지, 무얼 더 바라겠는가.”
남편을 바른 길로 이끌고 자녀를 충실히 길러내는 현모양처의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여성. 하지만 그녀는 붉은 비단보 안에 정인의 ‘모든 것’을 간직해두고 있었다. 그 누가 마음속의 다른 사내, 다른 욕망을 품고 겉으로는 양반가의 음전한 현모양처로 산 항아의 삶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현실을 끌어안으면서도 타고난 예술혼으로 열정을 표현하며 산 그녀야말로 당당히 ‘여성 예술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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