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락원/와타나베 준이치
'실락원'은 오십 대 중반의 샐러리맨 구키 쇼이치로와 정숙한 의사 부인인 삼십 대 후반의 마츠바라 린코의 결코 허락받을 수 없는 절대적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근원적인 성애의 사랑 그리고 불륜과의 관계에서 외부와 단절한 채 둘만의 성애적 사랑을 섬세하게 두 남녀의 성적 가치관과 원초적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락원은 불륜에 빠진 두 남녀가 영원불멸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정신적, 육체적 쾌락을 탐미하다 결국은 벌거벗은 채 부둥켜안고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충격적 에로소설입니다.
'우리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자. 정념을 불살라 그 대가로 지옥으로 떨어지리라'
주인공은 임원 인사에서 누락되고 한직으로 인사이동 됨으로서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고 임원승진의 기회를 잃은 이상 그의 인생관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가자. 아무리 애써봤자 어차피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 것을'
그리고 격무에 벗어나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모두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었을 뿐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의 기억이 없음을 알고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우연히 린코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의 삶에 눈을 뜨게 됩니다.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면 파탄을 가져온다. 이대로 멈추지 않는다면 조사에서도 버림받고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래서는 정말 안 된다는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일어나지만 현실은 나락으로 젖어가는 감각에 익숙해지고 그 타락하는 상쾌한 느낌에 몸도 마음도 도취되어 버린다.
위험해...
그러나 입안에서만 맴돌 뿐 두 사람은 또다시 욕정이 다할 때까지 서로를 탐하며 열락의 화원 속으로 아득히 떨어져 간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음과 양, 빛과 어둠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존엄함 이면에는 음탕함, 세상의 고요하고 태평함 속에 감춰진 추악함. 도덕의 그늘에 쉬고 있는 부도덕성은 빛에 저항하는 어둠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그런 어둠의 쾌락을 추구하고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서로 자신들의 육체적 쾌락 행위가 끝없는 행복의 낙원과 다름없는 쾌락의 극한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는 변태와 퇴폐적인 음탕한 성적 행위라고 보일지 모르지만 정작 두 사람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복의 순간이라 느낍니다.
'살아 있는 한 변치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어'
'그렇다면 우리도 죽는 수밖에 없겠네요. 지금 가장 행복한 때 죽는 수밖에 없잖아요'
아무리 둘만의 죽고 못 사는 사랑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한 걸음만 물러서 바라보면 그들의 사랑은 그저 불륜에 불과하며 도덕적으로 우리 상식에 벗어난 부도덕한 행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사회성의 공유나 집단적 가치관은 모두 부정한 채 오직 열정적 사랑만이 전부였던 그들, 모든 것을 접어 두고 사랑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 책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성애적 사랑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완전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파멸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알면서 부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두 주인공을 보며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게 됩니다.
주인공들은 둘만의 순수한 사랑과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약속하지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난 후 처음 느꼈던 설렘이 권태로 바뀌고 땡땡한 피부는 갈라지고 주름지고 윤기로 번쩍이던 머릿결은 푸석해질 때쯤 그때도 지금의 감정을 누릴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말자고 굳게 맹세한 사랑일지라도 세월이라는 부식작용으로 조금씩 무너져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마 주인공도 처음 아내와 남편을 만났을 때 지금의 그런 풋풋한 감정과 설렘으로 연애를 했을 것이고 영원한 동반자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결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가장 행복한 지금 서로 동반자살하여 영원한 합일의 극치를 이루려고 합니다. 죽고 나면 뜨거운 사랑도, 그들이 약속했던 영원한 낙원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았으면 두 주인공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등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동반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의 무개념 가치관도 그렇지만 엽기적 성애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천으로 포장한 작가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살짝 아쉬움이 남는 책인 것 같습니다.
따듯한 남쪽나라 통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