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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인 책
출간일
2025.3.20
페이지
392쪽
상세 정보
2020년 한국어판 초판이 출간된 『관광객의 철학』의 증보판이다. 다방면에 걸쳐 이어 온 지은이의 작업을 종합하고 새로운 전개를 선언한 책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 세계상과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해의 맥락을 보충한 글들이 덧대어졌다. 또 『정정 가능성의 철학』 등 후속 작업과의 연결성을 보강하는 글들을 추가해, 발전과 생성의 도상에 있는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대표작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관광객의 철학』 초판은 세계 시민의 이상이 흔들리고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던 2010년대 후반에 쓰였다. 이 위기를 타개할 단서를 타국과 자국을 오가며 우연한 만남을 발생시키는 ‘관광객’에서 찾는 정치 철학의 제기가 처음에는 사뭇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19년 말부터 수년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사건은 이 책이 경고한 내셔널리즘의 반동과 세계화의 위기를 절실한 현실 문제로 만들며 책에 새로운 의미 차원을 더했다.
추가로 수록된 글들 가운데 특히 ‘보론’은 현대 정보 기술 사회가 던지고 있는 시급한 철학적 문제를 그려 내며 책의 문맥을 확장한다. 9장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는 터치 패널과 인터페이스의 보급이 만들어 낸 ‘촉시적 평면’의 시대가 인간 주체와 인문 지식의 존재 방식에 초래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본다. 10장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는 지은이가 30년 지적 이력 동안 천착해 온 확률적 불안의 문제를 불러와, 정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대두한 ‘알고리즘 통치성’이라는 과제를 명료화한다. 이렇듯 독창성과 현재성을 더한 『관광객의 철학』 증보판은 앞으로 더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갈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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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돌이
@syudolyi
관광객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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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어판 초판이 출간된 『관광객의 철학』의 증보판이다. 다방면에 걸쳐 이어 온 지은이의 작업을 종합하고 새로운 전개를 선언한 책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 세계상과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해의 맥락을 보충한 글들이 덧대어졌다. 또 『정정 가능성의 철학』 등 후속 작업과의 연결성을 보강하는 글들을 추가해, 발전과 생성의 도상에 있는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대표작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관광객의 철학』 초판은 세계 시민의 이상이 흔들리고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던 2010년대 후반에 쓰였다. 이 위기를 타개할 단서를 타국과 자국을 오가며 우연한 만남을 발생시키는 ‘관광객’에서 찾는 정치 철학의 제기가 처음에는 사뭇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19년 말부터 수년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사건은 이 책이 경고한 내셔널리즘의 반동과 세계화의 위기를 절실한 현실 문제로 만들며 책에 새로운 의미 차원을 더했다.
추가로 수록된 글들 가운데 특히 ‘보론’은 현대 정보 기술 사회가 던지고 있는 시급한 철학적 문제를 그려 내며 책의 문맥을 확장한다. 9장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는 터치 패널과 인터페이스의 보급이 만들어 낸 ‘촉시적 평면’의 시대가 인간 주체와 인문 지식의 존재 방식에 초래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본다. 10장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는 지은이가 30년 지적 이력 동안 천착해 온 확률적 불안의 문제를 불러와, 정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대두한 ‘알고리즘 통치성’이라는 과제를 명료화한다. 이렇듯 독창성과 현재성을 더한 『관광객의 철학』 증보판은 앞으로 더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갈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예견했던 아즈마 히로키
20년의 활동을 결산하며 새로운 길을 선언하다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착종된 세계에서
다시 한번 보편적 세계 시민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
검색으로는 알 수 없는 우연한 앎을 향해 열린 관광객의 길
[증보판 책소개]
2017년 일본에서 출간된 『관광객의 철학』 초판은 2020년 한국어, 2022년에는 영어로 번역되며 폭넓은 독자층을 얻었다. 타국과 자국을 오가며 우연한 만남(‘오배’)을 발생시키는 느슨한 존재 ‘관광객’을 현대 정치 철학의 새로운 주체상으로 제시한 것이 사뭇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19년 말부터 수년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사건은 이 책이 경고한 내셔널리즘의 반동과 세계화의 위기를 절실한 현실 문제로 만들며 책에 새로운 의미 차원을 더했다. ‘관광객’과 더불어 이 책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가족’이다. 물론 이 가족 개념은 일상 용법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팬데믹 이후 각각 개방과 폐쇄에 대응하는 두 단어의 존재감은 극적으로 엇갈렸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두 개념의 대립이 그리 명백한 것이 아닐뿐더러 상보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즈마 히로키는 2000년대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쓴 대중 문화 연구자이자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한마디로 슬라보예 지젝의 축소판 같은 저자”로 수용되었다고 씁쓸하게 회고하기도 하는데, 『관광객의 철학』은 그런 화석화된 상을 허물고 고유한 철학을 선언하는 교두보로서 의의를 가진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철학이라는 신념을 반영하는 서술 스타일은 기존 인문서의 어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 냈고, 철학의 실천적 무대인 기업 ‘겐론’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증보판은 후속 저술과 활동을 통해 확장하고 있는 아즈마 히로키의 철학 세계를 한층 든든히 지탱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증보판에는 새로운 「들어가며」, 중국어 번체자판(2021)과 영어판(2022)을 위한 「들어가며」가 추가로 수록되어 그간의 경과 속에서 이 책이 생명력을 더한 과정을 살필 수 있게 했다. 또한 ‘보론’으로 두 개의 장(「촉시적 평면에 대하여」,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을 더해 속편인 『정정 가능성의 철학』과의 연결 고리를 보강했다. 이번 한국어 증보판에도 이 글들을 번역해 실었고, 그 외에 본문 번역과 디자인을 소폭 손질했다.
증보판에 추가된 9장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는 관광객적 주체와 정보 기술의 관계를 고찰한다. 일상 세계를 뒤덮고 있는 터치 패널(흔히 ‘터치스크린’이라 부르지만 이 장에서는 출력 전용 평면인 스크린과의 구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명칭을 채택한다)과 인터페이스(특히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만들어 낸 ‘촉시적 평면’의 시대가 인간 주체와 인문 지식의 존재 방식에 초래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본다.
단방향으로 출력만 하는 스크린을 전제로 구축된 기존 영상론과 미디어론의 패러다임은, 만지는 것만으로 프로그램을 기동시키고 즉각적인 피드백으로 화면을 변화시키는 ‘촉시적’觸視的 경험의 일반화와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가짜(그림자)와 진짜(실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립을 중심으로 논리를 구성해 온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 전통 자체에 미친다. 표시 화면이라는 ‘가짜’를 만지는 것이 데이터라는 ‘진짜’를 변경시키는 촉시적 평면의 시대. 이제 “우리는 촉시적 평면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촉시적 평면을 통해 세계에 관여한다.” 이것이 새롭고도 시급한 철학적 문제라는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 2기가 상징하는 음모론과 대안 현실의 팽창이 이러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 촉발된 사태라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촉시적 평면 시대에는 ‘보이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것’의 우위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지식인은 과거처럼 ‘눈에 보이는 거짓을 넘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밝히는’ 논리로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촉시적 평면의 현실을 읽어 내고 언어화해야 하는 것일까. 이 글은 이러한 철학적 위기를 앞으로의 과제로서 그려 낸다.
10장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는 ‘관광객’의 다른 이름인 ‘우편적 다중’이 처한 현재적 문제로서 ‘알고리즘적 통치성’의 부상을 다룬다. 발신한 메시지가 의도대로 도착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이 ‘우편적 불안’이다. 그것은 ‘~일지도 모른다’의 불안이며 더 정확하게는 (존재론적 불안과 구분되는) 확률적 불안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30년 지적 이력 동안 이 확률적 불안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그의 평론 데뷔작인 「솔제니친 시론: 확률의 감촉」(1993)은 개인의 고유성을 박탈하고 수치로 환원해 처리하는 스탈린주의 관료제의 냉담함에서 현대성의 특질을 발견하는 글이었다. 이 장은 그 주제 의식이 『관광객의 철학』을 거쳐 코로나 팬데믹을 통과하며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 준다.
나치즘하 홀로코스트 유대인이 ‘분명히 죽을 것이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면, 스탈린주의하에서 체포당한 사람은 왜 체포당했는지도 모르고 죽을지 죽지 않을지 여부도 모른다는 불안에 처했다. 체제의 과학이 산출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체포당하고 죽임당하기 때문에 그 대상이 나일 필연성도 없는 것이다. 이 ‘~일지도 모른다’의 확률적 불안은 온갖 개인 정보를 수집해 알고리즘으로 처리하는 현대 사회의 불안과 다르지 않다. 개인의 삶을 통계적으로 교환 가능한 샘플로 취급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팬데믹은 이 현실의 확산을 가속했다)에, 아즈마 히로키는 푸코의 생명 권력론을 참조해 ‘알고리즘적 통치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알고리즘적 통치성은 우편적 불안의 확산을 타고 우편적 다중에 작용한다. 반면 관광객의 철학은 우편적 불안을 뒤집어 의도하지 않은 생성을 가져오는 ‘오배’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실행 주체로서 관광객을 호명한다. 관광객의 철학은 앞으로 알고리즘적 통치성과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 증보판은 이렇듯 독창성과 현재성을 더해 현대 세계의 분열을 다시 꿰매어 연결할 정치적 주체로서 관광객의 가능성을 음미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갈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입문서 역할 역시 톡톡히 할 것이다.
[초판 책소개]
“20세기가 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관광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전 지구적 코로나 대유행의 현실에서 자못 도발적으로 들리는 명제다. 그러나 이 책 『관광객의 철학』이 처음 발표된 2017년의 시점에는 오히려 범상한 예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이 명제는 단순히 관광 산업의 확산을 예상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관광이란 실재하는 현상인 관광에서 출발하되 오늘날에 필요한 정치철학을 논의하기 위한 키워드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철학』은 지금과 같은 전염병의 유행을 예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글로벌 자본주의의 확산과 그것이 불러올 내셔널리즘의 반동을, 점점 더 심화될 세계의 단절을 전망했다. 그리고 이 단절을 넘어설 새로운 정치철학의 주체로 관광객이라는 존재를 제시했다. 따라서 팬데믹이 가속시킨 전 지구적 소통 단절의 위기 속에서 ‘관광객의 철학’은 더욱 절실한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한국에는 특히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오타쿠 문화의 의미를 선구적으로 짚은 비평가로 알려진 아즈마 히로키가 오랜만에 펴낸 철학서다. 1999년 자크 데리다를 다룬 철학서 『존재론적, 우편적』을 발표하며 일본 신세대를 대표하는 비평가로 주목받으며 등장했던 그는, 특히 2001년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007년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2011년 『일반 의지 2.0』 등의 저작을 잇달아 발표하며 정보 사회에 관한 독창적인 논점을 제기해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일반 의지 2.0』 출간으로부터 얼마지 않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본을 덮쳤고, 이 일은 그의 지적 행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그는 사고 이후 후쿠시마를 둘러싼 여론의 변화와 이에 정보 기술이 미친 영향을 숙고하게 되었다. 요컨대 인터넷이 사용자의 앎을 확장시키기보다는 원하는 정보만을 수집해 줌으로써 의견이 다른 사람들 간의 단절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터넷만으로는 현실의 다채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터넷 시대의 대중은 어떻게 다시 현실과 만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그는 학계를 떠나 언론 기업 ‘겐론’을 설립하고 독자적인 비평가=기업가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비평지 『겐론』을 비롯한 출판 활동만이 아니라 체르노빌 투어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관광객의 철학』은 그런 그가 현재 시점에서 지난 20여 년의 작업을 결산하고 새로운 전개를 선언하는 책이다. 포스트모던 철학을 전공한 비평가가 정보 사회에 대한 탐구를 거쳐 관광의 실천으로 나아갔다. 이 행로를 결산하는 철학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관광객, 세계 곳곳을 기웃거리는 불손한 산책자
관광 그리고 관광객은 근대와 함께 태동했다. 19세기 대중 소비 사회의 형성은 노동자 계급에 여가를 가져다주었고, 이에 따라 근대 이전의 여행과는 구분되는 관광이 출현했다. 대중 관광 사업의 시초인 토머스 쿡은 계몽과 사회 개량의 신념을 갖고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여행을 대중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당연히 많은 반발이 뒤따랐는데, 관광을 경박한 행위로 여기는 시각 또한 그 영향이 남긴 결과라 볼 수 있다(중국 등 신흥 강국의 단체 관광객을 향한 따가운 시선도 그 현대적 예가 될 수 있다).
오늘날까지 관광객을 긍정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 초판이 간행된 이래 관광 연구의 대표 저작으로 자리매김해 온 『관광객의 시선』(존 어리·요나스 라르센 지음)조차 2011년 3판에서는 관광 산업의 확산이 가져올 생태계 파괴와 테러 위협 등에 대한 경고로 논의를 마쳤다. 이런 시각에서 보는 한 관광객이란 글로벌리즘의 이면에 무지하고 탈정치적인 ‘들뜬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은이는 관광객의 출현을 발터 벤야민이 말한 산책자의 출현과 병행하는 현상으로 포착하며, 관광객이 함유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벤야민은 쇼핑몰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파사주를 목적 없이 걸어 다니는 사람을 산책자라 불렀는데, 지구화의 진전으로 전 세계가 쇼핑몰을 닮아 가고 있는 오늘날에는 산책자의 다른 이름이 관광객인 셈이다. 그리고 관광객=산책자는 세계를 ‘우연적 시선’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갈 필요 없는 장소에 가 볼 필요 없는 것을 보고 만날 필요 없는 사람을 만나는” 존재, 우연을 촉발하는 존재다.
포스트모던 철학의 유산
타자의 철학을 관광객의 철학으로 갱신하다
이 책은 들뜬 존재로서 관광객의 정치적 가능성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카를 슈미트, 알렉상드르 코제브, 한나 아렌트 등의 ‘진지한’ 정치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이들이 공유한 ‘개인이 한 국가의 시민이자 국민이 된 후 세계 시민으로 나아간다’라는 성숙의 신화가 가진 맹점을 짚는다(이런 신화의 뿌리는 헤겔 철학에서 찾아진다). 세계 시민이 되기를 거부하는 테러리스트(나아가서는 ‘불량배 국가’) 같은 미성숙한 존재들을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서 원천 배제하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배제가 가져올 악순환을 우려한다.
20세기 말의 포스트모던 철학(대표적으로 지은이가 연구했던 자크 데리다 등)은 이런 근대 정치철학의 맹점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타자의 철학을 탐구했으나 정치적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채 퇴조했다. 지은이는 관광객의 철학이 이 타자의 철학을 갱신하려는 시도임을 감추지 않는다. 특히 일본 비평의 앞선 세대를 대표하는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그는 『윤리 21』, 『트랜스크리틱』 등에서 타자의 철학을 역설했다)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 “타자를 소중히 하라는 말은 지겹다”고 말하는 이들을 진보적 명제(‘타자를 소중히 하라’)로 돌려보내기 위한 “뒷문”으로서 관광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검색 알고리즘이 우연을 몰아낸 세계
21세기의 최선설을 비판하다
현대 세계는 우연을 배제한다. 인터넷이 일상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오늘날, 우리는 알고 싶은 사실이 있으면 관련 검색어를 검색 포털에 입력하는 것만으로 무수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IT 대기업이 운용하는 검색 알고리즘은 검색어와 연관성이 높고 사용자 평가가 좋은 웹페이지를 우선적으로 찾아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필요한 정보를 찾아 도서관이나 현장을 헤맬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러한 헤맴의 과정이 종종 우리에게 알고자 했던 정보 이외의 생생한 지식을 전해 주곤 했다. 검색 알고리즘은 이런 우연의 생산을 소거한 셈이다.
이러한 현실은 극도의 합목적성이 만드는 오류 없는 세계라는 점에서 철학적으로는 라이프니츠의 최선설을 연상시킨다. 기술 발전과 지구화는 세계에 풍요와 건강을 확산시켰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같은 저작이 보여 주듯 글로벌리즘의 성과는 오늘날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동기를 규정하기 어려운 무차별 테러나 배외주의의 확산 같은 부정적 경향성을 목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관광객의 철학』 일본어판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영국의 브렉시트가 결정된 지 얼마지 않아 출간되었다). 지은이는 이런 상반되는 두 방향의 현상이 공존하는 원인을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이 동거하는 세계의 ‘2층 구조’에서 찾는다. 그리고 과거 볼테르가 『캉디드』를 통해 라이프니츠의 최선설을 반박했듯 관광객의 철학을 통해 이 현실의 타개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을 왕복하며
세계에 오배를 발생시키는 ‘우편적 다중’
2000년대 정치철학 가운데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 『다중』 등 공동 작업이 글로벌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이론으로서 각광받았다. 이들은 글로벌리즘의 확산과 내셔널리즘(국민 국가)의 쇠퇴가 만들어 낼 세계 질서를 ‘제국’이라 명명하고 이런 흐름을 저항적으로 전유하는 전망을 제시했다. 또한 인터넷이나 미디어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경을 넘나들며 제국과 대결하는 새로운 정치 주체로서 ‘다중’을 호명했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의 예상과 달리 실제로 내셔널리즘은 쇠퇴하기는커녕(그럼으로써 누구나가 세계 시민으로 직행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기는커녕) 글로벌리즘의 확산에 반발하듯 오히려 기세를 높이고 있다. 더불어 실천 주체인 다중의 정의도 지나치게 모호했다. 낭만적인 수사와 구호를 걷어 내면 이론을 실천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전략의 부재가 드러난다. 냉전 이후 이념의 시대가 저물면서 급진 정치철학은 기묘한 ‘부정신학’적 논리에 빠져들었다. 부정신학은 신의 존재를 ‘신은 ~이 아니다’라는 부정의 중첩을 통해 증명하려는 신학 논리를 뜻한다. 지은이는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이 적극적 규정을 기피함으로써 내용이 비워진 개념이라는 의미에서 ‘부정신학적 다중’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글로벌리즘이 가능하게 한 글로벌리즘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다중은 관광객에 선행하는 기획이었다. 따라서 관광객이 새로운 저항의 철학으로서 실효성을 가지려면 다중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먼저 자크 데리다 철학에서 추출한 ‘우편’ 개념을 제시한다. 관광객은 말하자면 ‘우편적 다중’이라는 것이다. 우편은 간단히 말해 언제나 배송 사고 즉 ‘오배’의 가능성을 함축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관광객은 자기 국경 안에 머물 때는 국민이지만 다른 나라에 체류할 때는 세계 시민의 체험을 한다. 관광은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을 왕복하는 운동이다. 관광객의 목적 없는 발길은 종종 우연한 마주침을 가져오고, 이들은 그 우연의 경험을 갖고서 다시 국민의 경계 안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런 경험의 누적이 사회관계가 고착화되어 가는 현실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러한 철학적 논의에 실질성을 더하기 위해 현대 네트워크 이론의 성과(라슬로 바라바시와 레카 앨버트의 ‘무척도’, 던컨 와츠와 스티븐 스트로가츠의 ‘스몰 월드’ 개념 등)를 도입해 관광객 개념을 뒷받침한다.
관광객의 철학에서 가족의 철학으로
배외주의와 테러리즘의 시대를 넘어
연민의 전파로 맺어지는 ‘우연한 가족’의 확산을 꿈꾸다
철학서로서 이 책의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는 철학 텍스트에 대한 독해 못지않은 비중과 중요도로 문학을 다룬다는 점이다. 라이프니츠의 최선설을 비판한 볼테르의 『캉디드』, 헤겔 패러다임을 냉소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기술 유토피아의 악몽을 예견한 필립 K. 딕의 『발리스』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특히 『관광객의 철학』이 제시하는 정치적 전망과 관련해 도스토옙스키는 큰 무게를 가진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악령』을 거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르는 그의 작품 세계는 고독한 테러리스트의 내면에서 출발해 연민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연대성에 이르는 변증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경유해 『관광객의 철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연대성’이란 무엇일까. 우선 지은이는 관광객의 철학이 공리공론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튼튼한 정체성의 토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공산주의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체성의 중요성을 간파하고서 계급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론이 형해화된 것은 다중에 이렇다 할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기존 정치 이론들에서 나아가 에마뉘엘 토드 등의 인류학적 논의까지 검토한 끝에 “개인도 국가도 아니면서 자유 의지로 변경할 수 없고 정치적 연대에 활용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갖춘 개념”으로서 ‘가족’을 말한다. 관광객의 철학이 말하는 새로운 연대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가족(의 철학)이다. 부정신학적 다중은 고독한 개인들의 결실 없는 단발적 연대를 거듭할 뿐이지만 우편적 다중은 우연한 마주침을 가족의 형성으로 이어 간다.
여기서 가족은 관광객이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은유였던 것처럼 도래해야 할 정체성의 은유로 이해될 수 있다. 오늘날 가족을 말하면 혈연이라는 불변의 요소에 기반한 집단으로서 가족을 중시하는 보수 이데올로기의 옹호자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러나 지은이는 오히려 (일본의) 진보 진영이 원래는 중립적 단어였을 ‘가족’을 되찾아 오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판한다. 엄밀히 따졌을 때 가족은 언제나 우연의 산물이다. 도스토옙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가족은 언제나 우연한 가족”이다.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본질적인 요인은 결코 혈연이 아니라 우연한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연민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은 혈연, 성별만이 아니라 때로는 종의 벽까지 넘어선다. 즉 가족의 철학은 연민에서 시작해 주워 온 길고양이와 만들어 나가는 관계까지 가족으로 포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관계를 적극적으로 가족이라 부르자고 제안한다.
우연을 향해 자신을 열어젖히는 관광객이 되어라. 우연은 때로 섬뜩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 수도 있다. 마치 신생아의 얼굴처럼. 그 만남에서 연민을 느끼고 책임을 배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나가라. 책 마지막 부분에서 지은이는 ‘나’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필연을 중심으로 구축된 (그럼으로써 나치즘과도 가까워졌던) 하이데거 철학을 비판한다. 하이데거 철학에는 가족이 없었고 부모됨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그를 전율케 한 ‘나’의 죽음은 끝까지 아이로 머물려 한 고독한 존재의 죽음이다. “아이로 죽는 데 그치지 말고 부모로서도 살아가라.” 그리고 “세계는 아이들이 바꿀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을 거쳐 이른 가족의 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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