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황시운 외 7명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월급사실주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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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1

페이지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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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으로 이어졌고,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이 동인이 내놓는 세번째 앤솔러지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특별한 가입 절차나 정기적인 모임을 갖지 않는다. 동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그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앤솔러지에 참여하면 이 동인의 구성원이 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라는 이름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창작 집단이라기보다는 한국 문단의 변화를 도모하는 운동성 자체에 부여된 셈이다.

2025년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황시운이다. 2025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며 지금 이 시대의 질문에 가장 발 빠르게 응답하고 있음을 증명해낸 예소연, 주물공장에서 십 년 넘게 일하다 전업 소설가가 되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동식,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리안 티처』로 작가로서 첫 행보를 뗀 서수진의 신작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2관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에도 회사원으로서 생업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윤치규와 2022년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12년 차 다큐멘터리 PD 이은규가 그려내는 생생한 노동 현장 역시 기대할 만하다. 그간 SF소설을 쓰며 꾀해온 미래에의 상상을 하이퍼리얼리즘소설에서 다시 한번 구현해낸 황모과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황시운의 작품은 문학이 동시대의 거울이어야 하는 이유를 몸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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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과 대책은 모르지만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문학의 힘이란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책을 읽는거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책을 읽다가 생각해봤는데 요즘은 보람과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저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버티고 애쓰며 살아가야하다니.
그래서 한편 한편이 다 눈물겨웠던 것 같다.
어떻게 할 수 없기에 그렇게 오늘도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를 되뇌이며 또 살아야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황시운 외 7명 지음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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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으로 이어졌고,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이 동인이 내놓는 세번째 앤솔러지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특별한 가입 절차나 정기적인 모임을 갖지 않는다. 동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그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앤솔러지에 참여하면 이 동인의 구성원이 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라는 이름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창작 집단이라기보다는 한국 문단의 변화를 도모하는 운동성 자체에 부여된 셈이다.

2025년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황시운이다. 2025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며 지금 이 시대의 질문에 가장 발 빠르게 응답하고 있음을 증명해낸 예소연, 주물공장에서 십 년 넘게 일하다 전업 소설가가 되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동식,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리안 티처』로 작가로서 첫 행보를 뗀 서수진의 신작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2관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에도 회사원으로서 생업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윤치규와 2022년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12년 차 다큐멘터리 PD 이은규가 그려내는 생생한 노동 현장 역시 기대할 만하다. 그간 SF소설을 쓰며 꾀해온 미래에의 상상을 하이퍼리얼리즘소설에서 다시 한번 구현해낸 황모과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황시운의 작품은 문학이 동시대의 거울이어야 하는 이유를 몸소 증명한다.

출판사 책 소개

당신은 지금 원하는 모습으로 일하고 있나요?
일다운 일을 꿈꾸는 그 벅찬 소망 앞에서
넘어지고 버티고 돌파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존 노동기

떳떳하게 출근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하여
온 힘으로 지켜내는 오늘의 마음

※ 2025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발행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며 결성된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단편소설 앤솔러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월급사실주의 2025』가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는 우리 시대의 노동 현장을 담은 소설이 더 많이 발표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한국소설의 새로운 흐름이다. 소설가 장강명에 의해 촉발된 이 움직임은 2023년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24년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으로 이어졌고,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이 동인이 내놓는 세번째 앤솔러지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특별한 가입 절차나 정기적인 모임을 갖지 않는다. 동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그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앤솔러지에 참여하면 이 동인의 구성원이 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라는 이름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창작 집단이라기보다는 한국 문단의 변화를 도모하는 운동성 자체에 부여된 셈이다.
올해 새롭게 월급사실주의 동인으로 합류한 작가는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황시운이다. 2025 이상문학상 대상을 거머쥐며 지금 이 시대의 질문에 가장 발 빠르게 응답하고 있음을 증명해낸 예소연, 주물공장에서 십 년 넘게 일하다 전업 소설가가 되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동식,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리안 티처』로 작가로서 첫 행보를 뗀 서수진의 신작 단편소설을 만날 수 있다. 신춘문예 2관왕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에도 회사원으로서 생업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윤치규와 2022년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12년 차 다큐멘터리 PD 이은규가 그려내는 생생한 노동 현장 역시 기대할 만하다. 그간 SF소설을 쓰며 꾀해온 미래에의 상상을 하이퍼리얼리즘소설에서 다시 한번 구현해낸 황모과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황시운의 작품은 문학이 동시대의 거울이어야 하는 이유를 몸소 증명한다.
책의 제목은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조승리의 단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 이 땅 위의 근로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렸을 법한 자조 섞인 한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내가 꿈꾸는 일터는 어떤 곳인지를 말이다. 쉬이 답을 찾기 어려운 이 물음 앞에서 여덟 편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이런 데’를 그린다. 그들은 연차가 쌓여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계약직을 전전하고,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의 몫으로 여겨지는 일을 수행하며, 머지않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업무를 반복한다. 허울 좋은 일자리 정책 아래에, 플랫폼 업체의 별점 뒷면에, 때론 대한민국 땅 바깥에 벌어지는 그 낯설고도 익숙한 이야기들에서 체념과 불만을 걷어내고 나면, 매일 마주하는 일터에서 온 힘을 다해 지켜내고 있는 오늘의 마음이 보인다. 일다운 일을 하는 것조차 벅찬 소망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조금 더 나은 곳으로 향해가고자 하는 희망이 반짝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넘어지고 버티고 돌파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이 책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 맞추어 발행된다.

*

김동식, 「쌀먹: 키보드 농사꾼」
‘김남우’의 직업은 게임 머니를 팔아 먹고사는, 소위 ‘쌀먹’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각종 질병과 인간 혐오만 얻고 퇴사한 후 ‘덜 벌더라도 고통받지 않는 하찮은 일’을 찾아낸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그는 번듯한 직장을 잡고 그녀에게 고백하기 위해 다시금 취업 시장의 문을 두드리지만 쌀먹의 굴레를 벗어나기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대형 게임사에서 유저 간 현금 거래를 막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울분에 찬 김남우는 대기업의 무자비한 조치에 대응해 쌀먹을 변호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는데, 그 글이 큰 화제를 모으자 해당 게임사는 ‘쌀먹을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보도한다. 김남우는 역사상 최초의 쌀먹 정직원이 되는 핑크빛 미래를 그리기 시작한다.

김남우는 그렇게 돌아설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게임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해서 먹고사니까. 이걸 설명할 방법도, 용기도 없어서 이리저리 둘러대다보니 게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였다. (……) 이런 대화들이 김남우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게 하고 심장이 쿵쾅거리도록 만들었지만, 차마 사실을 고백할 순 없었다. 그는 언젠가 들통날 이 일의 끝이 파멸이란 걸 알면서도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는 중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벌써 몇 년 동안이나 말이다.(14~15쪽)

서수진, 「올바른 크리스마스」
호주 점유율 1위인 대형 슈퍼마켓 체인의 삼 년 차 파트타이머인 ‘주미’는 11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니저 승진을 꿈꾸는 주미는 이 시기를 틈타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리라 다짐하고, 때마침 새 유니폼 모델로 발탁되며 자신이야말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새 얼굴이라는 심증을 굳혀간다. 한인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진짜 호주’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호주에서 ‘먹히는’ 외모라는 자신감은, 그러나 회사가 주미의 동양적인 얼굴을 필요로 했던 이유를 눈치채고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했던 동료의 승진 소식을 듣는 순간 산산이 흩어진다. 모두가 들뜨고 즐거워 보이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주미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자, 이제 찍는다. 웃어!”
화가 난데다 생얼이었지만 주미는 프로 의식을 발휘해 활짝 웃어 보였다. 방금 분무기로 물을 뿌린 브로콜리니와 콜리플라워보다 더 프레시하게.
“아, 웃지 말아봐. 웃으니까 눈이 너무 작네.”
주미는 그 말에 즉각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눈이 작다는 말은 한국에서도 많이 들어서 익숙했지만 영어로 들으니 왠지 불쾌했다.
(……)
주미가 눈이 작은 건 (인종을 망라하고) 자타 공인하는 특성이니 그는 객관적 사실을 말한 셈인가?(65~66쪽)

예소연, 「아무 사이」
시니어시터로 일하는 ‘희지’는 온라인 중개 업체 ‘시터닷컴’에서 손꼽히는 베스트 시터다. 높은 별점과 좋은 후기의 비결이라면 자신이 돌보는 할머니들에게 진심을 다하면서도 주어지지 않은 업무까지 꼼꼼하게 해내는 책임감이랄까. 회사원 시절 짧은 기간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자괴감을 느꼈던 그는 드디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데 돌보는 할머니의 집을 방문한 날, 잠깐 화장실에서 통화를 하고 나온 사이 할머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희지에게 주어진 말미는 단 두 시간. 퇴근 전까지 보호자 몰래 할머니를 찾아오기 위해 온 동네를 헤매고 휘젓는 고단한 하루가 시작된다.

속상하고 화도 나지만 노인네들 앞에서는 입을 다물게 되기 마련이었다. 사는 방식이 그거 하나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니까. 어지간한 일은 참고 견뎠고 애써 모른 척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완전히 잊히진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일하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선뜻 다정해지는 것이 어려웠고 가볍게 웃어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돌보는 할머니들을 사랑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그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이 일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94~95쪽)

윤치규, 「일괄 비일괄」
‘선미’와 ‘지선’은 사무지원 계약직으로 함께 일하며 친해진 옛 동료 사이다. 지선은 입사 동기 중 가장 특출났지만 결혼 후 육아휴직을 두 번 연장한 끝에 퇴직을 택한다. 이와 달리 선미는 지선의 몫까지 떠맡아 고군분투한 끝에 칠 년 만에 정규직 전환을 이뤄낸다. 그후 정규직 일괄 전환 정책이 시행되고, 두 친구는 추억이 담긴 와인을 함께 마시며 직원들을 ‘일괄’ ‘비일괄’로 구분 짓는 사내 분위기와 이름뿐인 정규직 처우에 대해 얘기하던 중, 속마음 깊이 묻어두었던 원망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빚어낸 오해를 끄집어낸다. 선미와 지선의 삶은 어디서부터 두 갈래로 갈라진 건지, 그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보이지 않는 적은 누구였는지, 멀어진 틈을 메우는 솔직한 대화에서 그 실마리가 풀려나온다.

“선미야, 노부장이 옛날에 회식 자리에서 다 타버린 삼겹살 골라내면서 나한테 전환 못 할 거면 빨리 결혼이나 하라고 했던 거 기억나? 타이밍 놓치면 이 꼴 난다면서 말이야.”
“노부장은 지금도 똑같아.”
“요즘도 그런 가스라이팅이 먹혀?”
“신입들한테는 안 먹히지. 근데 나한테는 먹혀. 노부장이 요즘 뭐라고 하는지 알아? 일괄 전환된 사람들한테 무임승차했다고 난리야. 자격도 없는데 전환됐다고. 무임승차하면 벌금이 삼십 배니까, 삼십 배로 일하라고.”(121쪽)

이은규, 「기획은 좋으나」
방송국 탐사보도팀에서 시사교양 PD로 일하는 ‘나’의 업무는 8주를 주기로 돌아간다. 하나의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그림을 만들고, 편집을 거쳐 스토리를 엮는다. 방송이 무사히 송출된 후에는 같이 고생한 팀원들과 맥주를 들이켜며 그간의 고생을 털어버리고 새 아이템에 돌입한다. 재벌 3세의 음주운전 사건을 취재한 방송이 열띤 반향을 일으킨 뒤, 2년 차 신입인 ‘소연’이 탐사보도팀에 합류한다. ‘돌파력’을 무기로 팀 에이스에서 메인 PD가 된 ‘나’는 위장 촬영을 거부하고 화제성이 떨어지는 노동자 파업 현장을 취재하고 싶다는 소연이 묘하게 불편하다. 그러나 소연이 조심스레 내비친 합당한 고민이 마음에 눌어붙을수록, 8주라는 시간 너머, 카메라 프레임 밖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진실이 눈에 밟힌다.

우리가 세상을 바꾼 것까진 아니어도 조금 흔든 건 아닐까. 내가 잠 안 자고 붙인 컷 아래서 불붙는 댓글창을 보니 조금 우쭐해졌다. (……) 다들 팔 주 동안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조금씩 펴고 한마디씩 더했다. 나는 말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내가 엉덩이 붙인 이곳이 남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자리여서 참 좋다, 정직하고 무해하게 월급을 벌 수 있는 자리라서 참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몇 안 되는 귀한 날이었다.(140쪽)

조승리,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나’는 백화점 지하 삼층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고용된 헬스 키퍼로 일한다. 백화점 직원들이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일은 부지기수, 마사지하는 중에 말을 걸지 말라거나, 어차피 안 보이는데 불을 끄라는 식의 갑질도 익숙하다. 한때는 정성과 열정을 다해 일하기도 했으나, 층층이 계층화된 공간에서 직업적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어느덧 최소한의 원칙만 지키며 일하는 사람이 된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식단표에서 맛있는 메뉴를 찾는 것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약 시간에 늦은 직원에게 원칙대로 남은 시간 삼 분간만 마사지를 해주고 내보냈는데, 그 직원이 인사과장을 대동하고 나타나 조용한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내가 이긴 거나 다름없지만 사는 게 지겹고 내 운명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도, 월셋집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도, 어설프게 보이는 시력도.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지하실에서 손가락 부러지도록 남의 몸을 주물러대고 있는데 내 머리 위에서는 몇백만원짜리 가방을 척척 계산하는 이들이 있다. (……) 세상은 불공평하고 나는 영원히 지하실이나 전전하며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야 한다. 이런 내 미래가 가엾고 불쌍해서 울었다.(180쪽)

황모과, 「둘이라면 유니온」
‘부진’은 한국에서 여러 중소기업을 전전하다 만화가의 꿈을 품고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왔으나, 여러 현실적인 여건으로 일본 테크 기업 제이케이콥에 취업한다. AI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한일 협업 팀에 투입된 그는 거창한 팀명과 달리 포르노를 필터링하거나, 챗봇 자동 응답 서비스의 답변을 직접 입력하는 등 인공지능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업무를 수행한다. 갖가지 모멸을 마주해야만 하는 회사 생활의 유일한 위안은 사내 한국인 동료 ‘리안’과의 ‘긴급 수혈 커피 타임’. 그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나날, 세심하게 맥락을 읽어야 하는 해외지사의 근무 환경에서 경험치는 ‘에누리’당하고, 자신이 학습시킨 인공지능에게 생계를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며 커피 타임만으론 버티기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회사에서 일할 때면 가족보다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있다. 기간 한정일지 몰라도 함께 일하는 동안엔 딱풀같이 달라붙는 인연. 친하긴 하지만 반말은 나오지 않는다. 간혹 경조사를 챙기기도 하지만 옛 친구 같진 않으니 의무에 가깝다. 주말이나 휴일에 따로 만나자 요구할 정도로 무례하진 않으면서도, 미친 듯이 바빠도 잠깐 같이 나가 캔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스스럼없는 사이. (……) 같이 웃는 날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때가 잦고 눈물을 보이는 날엔 억울해서 울 때가 많다.(211쪽)

황시운, 「일일업무 보고서」
14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입은 중증장애인 ‘세진’은 위탁업체에 소속된 장애인 재택근무자로 일한다. 장애인의무고용할당제를 따르기 위해 채용된 그의 업무는 주어진 키워드로 검색한 기사를 스크랩해 업무용으로 개설된 비공개 카페에 올리는 것. 하루 네 시간의 근무가 끝나면 게시물 링크를 보고서에 붙여넣은 뒤 총 다섯 명의 수신인에게 일일업무 보고서를 보낸다. 게시글 조회 수는 하나같이 ‘0’이고, 업무 보고 메일은 늘 ‘읽지 않음’ 상태이다. 신체 감정에서 받은 기대수명은 62.6세, 전 재산은 사고 보상금에서 집을 구할 때 쓴 돈을 제한 1억5천만원. 화장실조차 혼자 갈 수 없는 몸으로 자기 자신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이 일을 지속해야만 한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어째서 급여를 주며 고용해놓고 회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일을 시키는가 하는 점이었다. 아무리 사소해도, 찾아보면 회사에 보탬 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물론, 장애인 재택근무 팀들이 장애인의무고용제도 때문에 꾸려졌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분담금을 내는 것보다는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편이 더 유리하기에 우리들을 고용했을 뿐 그 밖의 나머지는 다 귀찮은 일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어디에라도 쓸모가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241쪽)

■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이런 시대에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느냐’ ‘문학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문학계에 한 발 걸친 사람이라면 요즘 다들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 문학의 힘이 잘 보이지 않으니 나오는 질문이다. 돈의 힘이 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 귀에는 궤변처럼 들리는 답이 있다. ‘문학의 힘은 무력함에서 나옵니다’ ‘문학은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 공허한 말장난 같다. 나는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 아닌가 의심한다.
(……)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위로의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뭔지, 거기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잘 모르겠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몇몇 천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부동산에 매겨지는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한다.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을 흔든다.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찾는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현상들을 ‘자본가 대 노동계급’이라는 과거의 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저 현상들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현상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고통에 대해서는 쓸 수 있다. 후대 작가들은 알 수 없는 것, 동시대 작가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있다. 스타인벡도 통화 긴축이 대공황을 불러왔다거나 재정지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를 소설에 쓴 것은 아니었다. 이런 마음으로 기획안을 쓰고 작가들을 모았다. _장강명,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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