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펴냄

죽은 다음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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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6

페이지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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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다치고 병든 이들의 삶과 노동’을 이야기해온 기록노동자 희정이 이번엔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노동의 세계에 노동자로, 기록자로 선다. 직업병과 산업재해로 사라져간 사람들과 매해 치솟는 자살률, 거듭되는 참사 소식, 혼자 죽을 가능성을 걱정하게 된 비혼·비출산 가구의 증가로 우리 사회 ‘죽음’ 문제에 주목하게 된 저자는 타인의 죽음을 ‘관음’하는 마음을 경계하며 장례 노동자가 되기로 한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염습실에서 직접 고인을 마주하고, 의전관리사, 시신 복원사, 화장기사, 수의 제작자, 묘지 관리자, 상여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각 분야 장례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점차 산업화되어가는 장례 문화와 다변화된 가족 구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장례 제도를 경유해 이 시대의 죽음과 애도 문제를 탐구한다.

나아가 한국과 사뭇 다른 타국의 장례 문화와 ‘생전장례식’ ‘공영장례’ ‘여성 노동자가 이끄는 장례’ 등 국내에서 시도된 색다른 장례도 살펴본다. 우리 사회가 죽음과 애도를 대해온 방식을 탐구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장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장례업 노동자 개인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의 마지막 의례에서 고인이 소외되지 않을 방법이 있을지 등의 이야기를 장례 노동자와 예비 사별자, 예비 고인의 시점을 오가며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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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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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다치고 병든 이들의 삶과 노동’을 이야기해온 기록노동자 희정이 이번엔 죽음과 애도를 둘러싼 노동의 세계에 노동자로, 기록자로 선다. 직업병과 산업재해로 사라져간 사람들과 매해 치솟는 자살률, 거듭되는 참사 소식, 혼자 죽을 가능성을 걱정하게 된 비혼·비출산 가구의 증가로 우리 사회 ‘죽음’ 문제에 주목하게 된 저자는 타인의 죽음을 ‘관음’하는 마음을 경계하며 장례 노동자가 되기로 한다.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염습실에서 직접 고인을 마주하고, 의전관리사, 시신 복원사, 화장기사, 수의 제작자, 묘지 관리자, 상여꾼,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등 각 분야 장례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점차 산업화되어가는 장례 문화와 다변화된 가족 구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장례 제도를 경유해 이 시대의 죽음과 애도 문제를 탐구한다.

나아가 한국과 사뭇 다른 타국의 장례 문화와 ‘생전장례식’ ‘공영장례’ ‘여성 노동자가 이끄는 장례’ 등 국내에서 시도된 색다른 장례도 살펴본다. 우리 사회가 죽음과 애도를 대해온 방식을 탐구하는 것은 물론, 사회가 장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장례업 노동자 개인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의 마지막 의례에서 고인이 소외되지 않을 방법이 있을지 등의 이야기를 장례 노동자와 예비 사별자, 예비 고인의 시점을 오가며 풀어낸다.

출판사 책 소개

“죽음과 장례에 관한 혁신적이고 탁월한 시선” _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죽음까지 들여다보아야 삶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역설에 도달하는 책” _오은, 시인

사회는 죽은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돌보는가?
운명, 기술, 마음, 제도, 문화를 횡단하며
이 시대의 죽음과 삶을 탐구하다


작년 한 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 4439명이었다. 하루 평균 39.5명이 죽은 것이다. 1983년 자살 사망자 통계 조사를 시작한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치였다. 산업재해 사망률도 OECD 국가 내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독사 사망자 또한 최근 5년간 연평균 8.8퍼센트포인트로 증가율이 크다. 팬데믹 기간에는 감염으로 인한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참사 소식도 거듭된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이 없는, 스스로 정리하는,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죽음”(2020년 노인실태조사 중 ‘호상(好喪)’에 관한 응답, 29쪽)을 맞이하리라 자신하기 어려워졌다. 외롭지 않고 비참하지 않고 평온하게 죽기를 바라기엔 대다수는 병원에서 아프다 홀로 죽는다. 죽음이 흔해진 만큼, 죽음에 무감해지기도 했다. 10년 전 ‘일가족 사망 사고(“세 모녀 자살 사건”)’로 알려진 빈곤 자살 사망 사건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일을 상기하면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동적 변화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빈곤 자살은 훨씬 빈번해졌지만 그 죽음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참사 사별자들은 “슬픔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국가는 ‘참사’라는 용어를 ‘사고’로 고친다.
죽음이 만연해지고 사소해진 한편, 대다수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생애주기 내 많은 의례들이 외주화되듯 죽음 역시 그렇다. 모두 “병원에서 태어나 시설에서 늙다가 병원에서 죽는다”(232쪽). 죽음 이후는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이 주도한다. 사별자에게는 장례와 애도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평균 3일이 주어진다.
개인의 삶이 점점 더 “돌봄, 육아, 질병, 노화 등의 시간”(233쪽)에서 소외되고, 장례 풍토는 빠르게 시장화되는 와중에, 가부장제·혈연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장례 제도 또한 죽음 소외를 심화한다. 1인 가구, 제도로 결속되지 않은 관계, 자녀가 없는 가구, 원가족과 멀어져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게 된 이들은 현행 장사법(장사법상 시신을 인수할 연고자는 혈연 가족 중심으로 설정된다)과 의료법(사망진단서 발급을 직계가족으로 제한한다), 상속법(상속을 비롯한 사후 권리 이행 주체를 법적 가족으로 정한다) 등에 의해 장례를 수월히 치르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 구성이 이전보다 다양해진 오늘날, 무연고 사망자와 무연고 장례가 실제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숙명을 둘러싼 노동, 제도, 문화, 정동을 탐구하며 이 책은 ‘좋은 죽음(호상)’을 맞이하는 문제는 천운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법·제도·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반지하 방에 물이 들어차 세상을 떠난 가족은 지대가 낮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곳을 집으로 삼은 것이 아니”고, “재벌 기업이 모셔 온 지관이 지정한 명당에 건물을 올려도 건설 현장 작업자는 추락한다”.(165쪽) ‘죽으면 다 똑같다(죽음 앞에선 모두 평등하다)’는 말이 체념으로, 위안으로 통용되지만 장례식장 부고 알림판이 말해주는 가족 관계로, 화환과 일회용품 용기에 적힌 고인의 회사 이름으로, 대관하는 장례식장과 빈소의 크기로 죽음은 개별 ‘시민됨’의 각기 다른 위상을 공표한다. “죽음의 불평등으로부터 삶의 불평등을 샅샅이 살피는”(추천의 말, 5쪽) 이 책은 결국 죽는 문제는 사는 일과 동떨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 죽음을 둘러싼 자원과 삶의 자원, 애도의 자원을 결코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국가는 가족 구성원들의 노동과 재생산(노동)을 통제해왔다. 돈을 버는 ‘가장 아버지’와 재생산과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어머니’라는 환상과 그 실질적 수행이 자본주의 ‘시장’을 떠받들고 있다. 그 시장은 비정형 노동에 종사하는 딸과 아내를 만들어왔고,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오늘날의 ‘자녀 세대’를 낳았다. 우리는 그 ‘가족’에 갇혔고, 그리하여 지하에 자리한 안치실에는 연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가 홀로 썩어간다. 같은 건물 1층 빈소에서는 검은 상복 치마와 앞치마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육개장을 나르고, 완장을 찬 사람은 빈소 복도를 메운 화환 수를 헤아린다. 그 가족이 지급한 금액에 따라 가운뎃줄부터 가장자리 끝줄까지 봉안 위치가 정해진다. 무연고 유골이 있을 자리는 지하다. 이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지금의 가족 제도가 있었다. 출산, 양육, 부양, 연명, 의료 그리고 장례까지.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이 오직 (정상)가족 단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둔 사회는, 가족을 벗어난 관계를 보려 하지 않는다. 무연고자가 증가한다.(<당신은 혼자 죽을 수 있나요?>에서)

장례지도사, 화장기사, 시신 복원사, 수의 제작자…
장례 노동자가 되어 쓴 죽음 르포르타주


죽음을 뜻하는 한자 ‘사(死)’는 ‘부서진 뼈 알(歹)’ 자와 ‘사람 인(人)’ 자를 합쳐 만든 글자이다. 백골이 된 시신 앞에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이다. 죽는 이 옆에는 사람이 있다. 혈혈단신으로 살았거나 임종을 지킨 이가 없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시신은 수습되어야 하고, 죽은 이의 신변은 정리되어야 하며, 그 죽음은 알려지고 애도받아야 하기에.(<들어가며_없음의 노동> 중에서)

죽음이 삶을 반영하듯, 장례 문화도 세상의 문법을 반영한다. 도시화, 시장화 흐름에 따라 한 세대 만에 죽음은 아주 다른 풍경이 되었다. 불과 3~40년 전만 해도 의료 기관에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사망자 대비 약 25퍼센트에 불과했다(지금은 75퍼센트에 달한다). 당시만 해도 집에서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90년대 이후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아파트 셋집 살며 상 치르기 고역”이라는 민원에 정부는 장례식장 개설을 저리 대출로 지원한다. 이후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고, 같은 병원 지하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또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 가구로 가족 구성원 수 자체가 크게 줄어들면서 복잡한 제례 절차를 대리 수행하기 위해 상조회사가 등장한다. 갈수록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지는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224쪽)른다는 불안을 마케팅 삼아 상조회사는 금세 세를 넓힌다. 토지가 개발과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부터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매장 대신 화장으로 장법이 일반화되기도 했다.
장례에 관한 무지와 삼일장이라는 빠듯한 스케줄 안에서 상장례의 외주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사별자의 역할은 ‘상품 구매’에 한정되었다. 마찬가지로 장례업 노동자의 역할도 ‘상품 판매’ 이상이 되기 어렵게 됐다. 빡빡한 염습‧입관 시간에 쫓기는 일용 근로자 지위인 이들에겐 “사별자들이 흐느껴 울도록 기다려주는” 일, “고인을 충분히 보고 만지도록”(93쪽) 두는 일 정도도 커다란 마음 씀이라고, 장례지도사 실습생 신분으로 현장을 지켜본 저자는 설명한다. “앞사람의 입관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차례 장례지도사가 문 앞을 서성”이고 앞 차례 사별자들이 “문을 나서자마자 다음 팀은 안치대에 비닐을 깔며 분주하”(93쪽)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5~60대 중년 여성 블루칼라 일자리의 세계에서 저자는 “젊은 사람이 여길 왜 왔”냐는 말, “젊은 사람이 오니 좋다”는 말을 번갈아 들으며 염습을 돕고 빈소 음식을 나르며 장례 노동자를 인터뷰한다. 시신을 처리하는 일에 대한 오랜 터부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 “남의 불행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뿌리 깊은 오명에 이들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도, 아무나 할 순 없”(32쪽)는 일, “돈 보고 오면 오래 못 하는 일”(45쪽)이라고 직업적 자부심을 드러내다가도 스스로 “중요하지 않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걸어둔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같”(163쪽)을 때가 있다며 씁쓸해한다. ‘일하는 게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귀신보다는 시취가 무섭고 시취보다는 일자리 걱정이 더 크다고 답하면서도 “눈앞의 죽음을 두고 자기감정에 취하지 않”(157쪽)으려 경계하며, 입관식에서 고인과 마주할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밤을 새워 사고로 죽은 이의 얼굴을 복원하고, 고인의 메마른 입술이 마음에 걸려 자신의 립밤을 꺼내 고인의 입술에 바른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자 장례 노동자를 못 미더워하는 분위기에 맞서며 장례 절차와 장례 노동에서 이중으로 작동하는 성별 규범에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장례 노동을 둘러싼 낙인과 터부, 역사와 규범, 제도와 환경을 두루 살피며 이 책은 임종에서 빈소까지, 우리가 몰랐던 죽음 이야기를 다각도로 펼친다.

죽음이 상품이 된 시대
존엄하게 죽고 나답게 기억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실용적 정보들


혼자 죽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누구나 혼자 죽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산다. 인생에서 혼인과 출산이 필수였던 시절이 멀어지고 있다. 비혼, 비출산을 말하는 젊은 세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65세가 되면 셋 중 한 명은 혼자 살아야 했다. 혼자 산다는 건 혼자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들어가며_없음의 노동> 중에서)

이 책에는 상조 서비스 상품 가입만으로 안심하다 훗날 당황하게 될 예비 사별자, 예비 고인을 위한 실용적인 조언도 가득 담겨 있다. 삼일장의 절차와 그 과정에서 사별자가 해야 할 일들, 상조회사‧장례식장에 무엇을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는 물론 ‘생전장례식’ ‘무연고자 공영장례’ ‘장례협동조합’ 등의 대안 장례 사례도 소개한다. 또한 베트남 꽝응아이 마을의 시체 없는 무덤, 몽골인들의 풍장, 시신과 몇 년을 함께 지내는 인도네시아 토라자 지역의 장례, 죽은 이를 축제의 형태로 추억하는 멕시코 문화 등 타국의 이색적인 장례를 소개하며 죽음 관념과 애도 의례의 지평을 넓힌다.

장례식 음식은 냉면이면 좋겠네요. 어떤 계절이든 상관없이.
조문객들이 입고 올 의상은 파랑 아니면 초록이면 좋겠어요.
남겨진 저의 반려동물에게 꼭 새 가족을 찾아주세요.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은 거의 누군가 선물해준 것들입니다. 장례식 때 버려도 되냐고 일일이 물어봐주세요.
파트너에게 고양이 양육비가 제공되었으면 합니다.(<불온한 장례식> 중에서)

법적 가족에 구애받지 않고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면 어떨까? 평생 치마 입기를 불편해한 사람에게 치마 대신 다른 수의를 입히면 어떨까? 저자는 대안 장례 문화를 고민하는 이들을 만나 죽음 비즈니스 밖에서 장례 풍경을 그려온 이야기를 듣는다. 성별이나 가족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고인이 살아온 삶을 반영하는 ‘다른 장례’의 가능성에 다가가며 이 책은 (나로서) 애도받는 일과 (나로서) 사는 일을 다시 한번 연결한다.
전통 장례와 현대식 장례, ‘도리’와 ‘규범’을 넘어서는 새로운 장례를 두루 섭렵하며 이 책은 애도 행위의 보편성과 변화 또한 탐구한다. 각 부의 제목은 전통 상장례 절차명에서 따와 각각 고복, 반함, 성복, 발인, 반곡, 우제, 졸곡으로 이름 붙였다. 각각의 절차가 갖는 의미를 설명하고 그 밑에는 이에 대응하는 현대식 장례 절차명을 표기했다. 고인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지내는 제례인 ‘우제’ ‘졸곡’에는 대응하는 현대식 장례 절차가 없어 표기하지 못했다. 1969년에 처음 고안된 ‘건전가정의례준칙’은 구시대의 가부장적 유물이라는 비판에도 여전히 존속되고 있지만, 떠나보낸 고인을 긴 시간 애도해온 오랜 전통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달라진 죽음 풍경은 변화한 우리 삶의 양상을 새롭게 비춘다.
다른 의례와 마찬가지로 죽음에 관련된 의례 역시 그 사회의 존속에 기능하는 문화적 수단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실제 삶을 반영하기보다는 ‘건전하고 다복‧화목한 정상가족’ 등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반영한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 홀로 맞는 죽음, 가난한 죽음…”(259쪽)이 수치스러운 죽음, 숨겨야 할 죽음으로 인식되는 까닭이다. 죽음 풍경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환상과 필요를 현상하고 있는 것이라면, 거꾸로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필요와 기대를 개별 죽음에 반영해봄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관을 멜 필요가 어디서 오는지, 상주의 자리에 설 필요가 어디서 오는지. 필요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모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다. 아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싶은지다.(<남좌여우> 중에서)

죽음과 삶의 연속선에서 재정의하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죽음이 고인의 문화·경제·상징자본이 드러나는 “채점표”임을 짚은 이 책은 후반부에서는 국가가 그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 죽음에 관해 (공적) 애도를 수행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스탈린 집권기 강제 이주를 하게 된 고려인들은 “오늘은 네가 죽지만 내일은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입에 넣을 것조차 없던 황무지에서” “관을 짜고 묘지를 만드는 동안 논밭에 나갈 장정 손 하나가 줄어드는데도”(33쪽) 쉬지 않고 관을 짰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애도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죽음을 공동체 차원에서 기린 식민지 조선인의 역사와 바다로 떠내려 온 제주 4.3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애도한 일본인들,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결성된) 청계피복노조의 간부 신분으로 구속되어 이후 본래 일자리를 잃고 장례지도사가 된 박재익이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용산참사 철거민 5위, 노동자 김용균의 사회장(사회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여 거행하는 장례 의식)을 치른 이야기가 소개된다.
공동체의 승인을 받지 않는 애도는 때로 분투와 저항이 된다. 죽음은 채점표가 아니지만 남겨진 이들에게는 떠난 이의 생애를 의미화하고 소명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짚으며 이 책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오랜 격언을 재정의한다. 이 책에서 그 말은 죽은 사람을 기억에서 지우라는 말이 아니라, “내일 밥을 먹고 모레 잠을 자”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 이후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말이 된다. 우리 사회 죽음과 애도 자원에 대한 종합적이고 생생한 분석, 죽음을 대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와 태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너무 무겁게 다루지 않는 유머를 곁들이며 이 책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죽음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역설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정상과 비정상, 쓸모와 무용, 질서와 이탈이라는 이분법 속에 삶이 익명화되거나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 자신이 설명될 수 없다면, 그것은 존엄과는 무관한 일이다.(<죽은 자들의 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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