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잘린, 손

클레이븐 외 1명 지음 | 텍스티(TXTY)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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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5.5.30

페이지

288쪽

상세 정보

매드앤미러는 ‘매력적인 한 문장이 각기 다른 작가를 만날 때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에서 시작한 텍스티(TXTY)의 프로젝트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호러 전문 창작 집단 ‘매드클럽’과 환상문학 웹진 ‘거울’을 모았다. 같은 한 줄에서 출발했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다채로운 매드앤미러의 이야기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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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잘린, 손

클레이븐 외 1명 지음
텍스티(TXTY)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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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매드앤미러는 ‘매력적인 한 문장이 각기 다른 작가를 만날 때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에서 시작한 텍스티(TXTY)의 프로젝트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호러 전문 창작 집단 ‘매드클럽’과 환상문학 웹진 ‘거울’을 모았다. 같은 한 줄에서 출발했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다채로운 매드앤미러의 이야기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출판사 책 소개

같은 한 줄, 다른 두 편의 이야기. 매드앤미러 프로젝트.
매드앤미러는 ‘매력적인 한 문장이 각기 다른 작가를 만날 때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재미있는 상상에서 시작한 텍스티(TXTY)의 프로젝트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호러 전문 창작 집단 ‘매드클럽’과 환상문학 웹진 ‘거울’을 모았다.
같은 한 줄에서 출발했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다채로운 매드앤미러의 이야기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공통 한 줄:

바다에서 거대한 손이 올라왔다.

「무악의 손님」 배예람
20년 전, 무악을 뒤덮은 해일과 함께 나타난 거대한 ‘손’.
붙잡지 못했던 그때 그 손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떠났던 무악 여행. 부모님과 떨어져 해변을 거닐던 언니 희령과 동생 희수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해일에 휩쓸려 버린다. 희령은 단단히 박힌 무언가를 붙들며 희수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해일을 견디기에 어린 자매의 손은 너무 작았고, 결국 희령은 희수의 손을 놓쳐 버리고 만다. 희수는 사라지고 희령은 살아남는다.
그 후 20년의 세월 동안 희령은 희수의 그림자 속에, 쉼 없이 자신을 짓밟는 죄책감 속에 몸을 맡긴 채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20년 후, 희령은 다시 무악의 바다 앞에 돌아온다. 참사 이후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난 ‘손’은 누군가의 악몽이자 누군가의 희망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손’을 ‘손님’이라고 부르는 신흥 종교까지 생겨난 상황. 희령은 무악으로부터, ‘손님’으로부터 달아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연이어 끔직한 일들이 벌어진다.
바로 그때, 너무나도 그립고 익숙한 목소리가 희령에게 말을 건네고, 잠들어 있던 손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언니, 나 여기에 있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손」 클레이븐
어느 날 고요하던 섬마을로 떠내려온 거대한 ‘손’.
손끝이 스친 자리마다 이름과 온기가 사라진다.

태평양의 작은 외딴섬 세인트 데리. 그 앞바다에 거대한 ‘손’ 하나가 떠오른다. 조사를 자원해 현장에 도착한 해양생물학자 에바 영은 조심스럽게 괴생명체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손의 표면은 미지근한 온기를 지니고 있었고 부패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표본 채취를 위해 잘라낸 단단한 피부 단층이 순식간에 재생하는 광경을 보고 탐사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순간 에바는 직감한다.
이 손은 죽지 않았으며, 어떤 이유에선지 잠들어 있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에바가 보고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건이 발생한다. 작고 조용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양팔이 잘린 채 정신이 붕괴된 것처럼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에바가 데려온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머지않아 발행된 한 신문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LA에 상륙한 거대 팔뚝의 공포.’

에바는 새로운 연구팀을 꾸려 핵 잠수정 ‘씨데빌’에 올라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손의 근원지로 파악되는 ‘포인트 니모’로 향한다. 그러나 극에 달한 인간의 이기심은 결국 스스로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그 재앙의 틈새로 수많은 손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측할 수 없는 속도로. 설명할 수 없는 방향으로.

[출판사 서평]


배예람의 「무악의 손님」과 클레이븐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손」에는 모두 ‘손’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등장한다. 세부적으로는 다를 수 있으나 ‘코스믹 호러’라는 장르를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두 작품은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 또한 명확하다. 그것은 작품의 눈, 세계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에서 나온다. 이 두 시점, 정확히는 시야의 용도는 명백하다.
「무악의 손님」은 ‘희령’이라는 인물의 내면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독자는 확대된 시야를 통해 인물의 내면으로 내려앉는다. 인물이 가진 비극적 기억과 인물이 느끼는 정확한 감정에 대한 절대적 공감은 ‘손’이라는 우주적 공포조차 현미경 밖으로 밀려나게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닿았을 때 ‘희령’을 비추던 현미경 렌즈는 어느새 독자의 내면을 비추고 있다.
반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손」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미지의 존재가 세계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망원렌즈로 조망하는 형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바다처럼 광활한 시야는 인간을 벗어나,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분명한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이 시야에서 ‘손’은 훨씬 더 실재적이고 절대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문장과 장면을 공유하고, 장르를 공유하고, 절대적 이미지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서사적 지향점을 가진 두 이야기가 조화롭게 뒤섞인 ‘책’. ‘매드앤미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는 본 시리즈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했던 책으로서의 매력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의심할 여지 없는 수작이다.

손을 놓은 순간 무너진 세계,
그곳에 남아 삶을 지키는 우리의 이야기

배예람의 「무악의 손님」은 재난 이후에도 그날 그 시간을 벗어나지 못한 채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희령’은 가족 여행으로 떠난 ‘무악’의 해변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해일에 휩쓸린다. 기적적으로 살아남긴 했지만 당시 함께 있던 동생 ‘희수’는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희수의 손을 끝까지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희령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검색창을 켜고” “바다, 시체, 초등학생” 등의 단어를 입력하는 사람이 된다. 20년 전, 활기차고 당당하며 심지어 괴팍하기까지 했던 희령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다. 껍데기는 그대로인 채 “여덟 살 주제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소심하고 우유부단했”던 희수의 조각처럼, 그저 남아 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희령에게 남은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령은 자신의 애인 ‘석후’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예기치 못하게 무악으로 향한다. 20년 만에 찾은 무악은 이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희령은 솟아오르며 해일을 일으켰던 재난의 상징 ‘무악의 손’과 마주한다. 무악의 손은 그 자체로 무악이라는 도시를 지탱하는 경제적 기둥이었다. 나아가 그것을 ‘손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종교 집단까지 존재하는 상황에서 희령은 여러 사건을 통해 손님, 나아가 ‘무악’이라는 공간 그 자체와 대립한다.
우리 주위에는 무수한 슬픔이 존재한다. 동일한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슬픔이라 해도 슬픔의 정도, 슬픔의 길이, 슬픔의 대상은 각기 다르다. 사회적 위치, 경제적 여건, 타고난 천성. 그 어떤 이유에서든 세상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보다 더 많은 슬픔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곁을 서성인다. 당신 곁에 언제든 붙잡을 수 있는 손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에게 슬픔을 떠넘기며” 살아와 “슬픔을 모르는” 누군가는 타인의 슬픔을 견디지 못한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그 정도면 됐다고, 그것이 너의 “약점”이 되기 전에 슬픔을 멈추라고 말하기도 한다. 배예람은 「무악의 손님」을 통해 그들에게 반격한다.
슬픔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불가침의 믿음,
그것을 짓누르는 ‘절대적 공포’

‘손’은 인간을 인간 아닌 것들과 구분하는 가장 ‘인간다운’ 신체 기관이다. 매일 수천 가지 이상의 복잡한 작업을 수행한다. 인간 아닌 그 어떤 생명체의 앞발도 인간의 손이 가진 정교함을 따라갈 수 없다. 인간 문명이 이루어 낸 거의 모든 업적은 손의 업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매일 무언가를 만지고, 어딘가를 가리키고, 누군가를 붙잡고, ‘나’를 지키는 데 쓰는, 경이로운 존재. 이것이 돌연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 우리를 향해 적의를 드러낸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도 우리는 그 경이로운 힘 앞에 맞서 스스로를 ‘인간’이고 ‘영장’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클레이븐의 「바다 위를 떠다니는 손」은 바로 그 질문을 독자 앞에 던져 놓는다. 태평양의 외딴섬 세인트 데리, 그 앞바다에 어느 날 거대한 손 하나가 솟아오른다. 처음엔 난파선의 파편이나 고래의 사체처럼 보였지만, 이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은 따뜻한 체온을 지녔고, 날카로운 도구로 표면을 자르면 순식간에 재생되며, 인류가 보유한 그 어떤 장비로도 내부를 분석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존재였다. 해양생물학자 ‘에바 영’은 탐사팀과 함께 이 손을 조사하기 위해 세인트 데리로 향한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낯설고 경이로운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로 변해간다.
사건은 에바가 조사 보고를 위해 잠시 마을을 떠난 사이에 일어난다. 에바와 함께 탐사를 위해 방문했던 대학원생들을 비롯해 세인트 데리에 있던 사람들은 양팔이 잘린 채 정신을 잃기 시작하고, 잘려 나간 손은 의지를 가진 채 인간을 향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온전했던 일상은 빠르게 붕괴한다. 비슷한 시기 LA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되었고 국제적인 연구팀이 꾸려진다. 에바를 비롯한 연구진들은 손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포인트 니모’로 가기 위해 핵 잠수함 ‘씨데빌호’에 올라 해저로 향한다. 그러나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처럼, 절대적 존재 앞에서 인간 문명의 나약함만을 뼈저리게 깨달을 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이 이 세상의 유일한 문명이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힘이, 우리의 사회와 문명이 어디서 왔는지는 설명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클레이븐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손’이 동시에 가장 취약한 약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한다. 우리가 다른 동물과 다른, 만물의 영장이자 세계의 주인일 수 있게 기능했던 그 손이, 애초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질문 앞에서 말없이 서 있는 일밖에 없을지 모른다.
이 소설은 세계가 인간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우리의 눈에 깊이 각인한다. 독자는 텍스트로 나열된 무거운 진실 앞에 어느새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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