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지는 사람들

셰리 터클 지음 | 청림출판 펴냄

외로워지는 사람들 (테크놀로지가 인간관계를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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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

출간일

2012.6.4

페이지

560쪽

이럴 때 추천!

외로울 때 , 고민이 있을 때 읽으면 좋아요.

#대화 #아바타 #연결 #인간관계

상세 정보

페이스북과 트위터 연결은 늘어나는데 왜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줄어들까? 문자와 이메일을 사용할수록 왜 대화가 서툴러질까? 아바타 꾸미기에 열중할 때 진짜 ‘나’는 어떻게 바뀔까? 사교 로봇과 함께 성장한 아이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을까?

이 책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심리학자로서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과학기술 전반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 온 셰리 터클이 지난 30년간 테크놀로지 영역에서의 삶을 탐구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테크놀로지에 열광한 이후 우리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 아동심리학적, 인류학적 등의 관점으로 진단한다. 수백 명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과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물론 인터뷰가 끝난 뒤 무심코 나오는 발언들까지 면밀히 탐색한 저자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재형성하는지를 낱낱이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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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

@ddvddn

[오덕인게 뭐 어때서?🤷‍♂️]

1.
한때 에반게리온을 열심히 봤던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미있었던 『열광금지, 에바로드』 (에바금지 아님 주의)

구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주인공 '박종현'의 삶의 궤적과 사건들이 에바 에피소드와 묘하게 겹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적절할 때 터져나오는 명대사 패러디까지, 동네 카페에서 혼자 읽으면서 얼마나 키득댔던지.

다만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전혀 웃을 수가 없는 주제들이다.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키워드는 '헬조선', 그리고 '88만원 세대'였다. 전자로 대표되는 구조적 모순 아래서 대다수 젊은 세대는 기성 세대의 논리에 염가로 팔려나갔고 실컷 휘둘리다 버려지기 일쑤였다. 박종현의 삶은 이런 88만원 세대의 전형이었다.

종현의 이야기는 나에게는 '형들', '선배들'의 일상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생동감이 있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게, 그저 안정된 생활을 바라는 게 무슨 잘못이냐는 종현 형의 일갈부터 종현이 동대문 새벽 시장에서 짐을 나르며 느꼈던 외로움과 고양감까지 생생했고, 급기야 몇몇 형, 누나들 얼굴이 떠올라 괜히 센치해졌었다.

2.
다만 이 작품이 MZ에게는 어떻게 소비될지는 모르겠다.

어린 놈들이 뭘 알겠어..따위의 씨알데 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88만원 세대의 삶과 대다수 MZ가 사는 세상이 너무 다르니까. 거창하게 얘기하자면 ‘구조적 문제로 인한 상호 이해 불능’에 관한 ‘염려’ 정도 되겠다.

요즘은 경제적 차이가 계급으로 고착화된 시대다. 학연, 지연, 심지어 통혼까지 유사한 계층 내에서만 벌어지는 세상이다. 대다수 MZ, 특히 수도권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는 사회적 불평등이니 88만원 세대니 하는 것들이 그저 소설 속 에피소드일 뿐일 것이다.

특별히 불행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은 MZ에게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의 일상인 - 이런 삶의 형태는 그들이 굳이 경험할 것도, 아니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 필요가 없다는 뜻도 되겠다.

MZ에게 박종현의 스토리는 아마 꿈과 열정,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하라’정도의 메시지가 아닐런지.

3.
심각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재미있는 지점은 또 있다.

박종현이 서드 임팩트에 버금가는 사건을 겪었을 때는 항상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부반장을 꼬시려고 했을 때도, 코스프레에 참가했을 때도, 일본 취업에 도전할 때도, 스탬프 완주 상품을 노리고 있을 때도, 다큐멘터리 만들려고 세션들을 모았을 때도 항상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수렁 속으로 빠진다. 그리고 종현의 마음 속에는 점점 분노와 원망이 쌓인다. (이 또한 에바의 오마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서 인류의 보완을 선택했던 신지와 달리, 종현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받아들이게 된다.

가정을 버리고 도망갔던 어머니에게는 신지가 레이에게 했던 것처럼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건넸다. 상품 따위 상관없이 그저 완주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우연히 에바 제작사 관계자와 조우한다. 도망간 세션의 빈자리는 홍대 관광객들로 채워졌고 이 모든 경험들이 촉매로 작용해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하청의 재하청 IT 개발자 박종현은 번듯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다시 태어난다.

4.
소설에서는 다큐멘터리로 성공한 것 마냥 그려지지만 아마도 종현의 앞날은 그다지 순탄치 않을 것이다. 감독이란 2023년 현재도 매우 고달픈 직업이니까.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감독으로 인정 못받았어도, 텀블벅이 망했어도, 다큐멘터리가 엎어지고 나이 먹고 아직 덕질한단 비웃음을 받더라도 ‘다시 태어난 박종현’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열정이나 노력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목표, 성공, 평판같은 외부적 요소와도 무관하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당당하다는 것. 이게 중요하다.

순간 순간에 진심을 쏟았던 경험과 그 감정만은 감히 누구도 평가하거나 빼앗아갈 수 없다. 굳이 잔망스럽게 자랑할 필요도 없다. 이건 오직 나만의 훈장이니까.

박종현이 에바 일러스트를 끝내 비밀로 남겨 놓은것 또한 이런 맥락일게다.

5.
장자는 말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으면서 물을 못 느끼고 사람은 도(道) 속에 살면서 도를 찾아다닌다”고.

그니까 시바, 오덕이면 뭐 어때. 지금 여기 자신의 순간에 충실하면 그걸로 된 것을. (알겠냐 이 머글들아)

열광금지, 에바로드

장강명 지음
연합뉴스 펴냄

1분 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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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

@ddvddn

[온전한 자신이 된다는 것]

📖
개인의 자아를 제거하여 참을 수 없는 허무감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피학적 충동의 일면일 뿐이다. 또 다른 일면은 자기 밖에 있는 더 크고 더 강력한 전체의 일부가 되어 그 속에 빠져들고 거기에 참여하려는 시도다.

이 외부의 힘은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제도나 신, 국가, 양심, 또는 정신적 충동일 수도 있다. (중략) 그러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고, 자아와 결부된 힘과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개인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잃고 자유를 포기한다.

하지만 그 대신 강한 힘 속에 빠져들고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안전과 새로운 자부심을 얻고 또한 회의의 고통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 (중략)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도 해방되고, 그리하여 내려진 결정에 대한 회의에서도 해방된다. 그는 또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서도 해방된다.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그가 달라붙은 강력한 힘과의 관계가 대답해준다. 삶의 의미와 그 자신의 정체성은 그의 자아가 빠져든 보다 큰 전체가 결정해준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中

1.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천착한 주제는 바로 ‘나치즘’이었다. 나치가 왜 발호했는지, 그리고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왜 사람들이 매료되었는지를 평생 연구했다.

그 원인이란 바로 ‘무력감’이었다. 애초부터 지위와 한계가 정해져 있었던 중세는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았지만 그만큼의 안정감을 줬다. 태어난 마을에서 평생을 살고 한 번 소속된 길드에서만 내내 일했다. 개인의 삶의 모습은 명확했고 기성세대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쉬웠다. 그 속에서 인적 유대가 생겼고 이런 틀 안에서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오히려 평온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중세 체제가 붕괴하면서 개인에게는 낯선 자유가 찾아왔다.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대신에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 내몰렸고 곧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벌어졌다.

그 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었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시민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삶과 개인으로서는 극복하기 힘든 사회 모순 속에서 만성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의식적/무의식적 무력감은 현대인의 질병이 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무력감 채워줄 것들을 찾아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달콤했던 것이 바로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다. 국가나 종교, 이데올로기 같은 크고 위대한 것들을 수용하고 그들이 지시하는 방향대로만 나아가면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주입된 것을 내 생각인양 외치며 지도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분주하게 내달리면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권위에 속한 타인과 하나가 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2.
여기까지가 100년 전 나치가 발호하던 시기에 관한 분석인데 요즘 상황에도 굉장히 부합하는 설명이라 조금은 씁쓸하다. 사이비 종교, 무당부터 시작해서 극우 세력은 물론, 일상적으로는 특정 브랜드나 개인에 관한 맹목적인 팬덤까지 말이다.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롯한 자기세계’를 구축하는 일일 게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무작정 감각적으로 매료될 것이 아니라 생각이 필요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왜 좋아하는지/싫어하는지, 나와 맞는/안맞는 부분은 무엇인지, 앞뒤 맥락은 무엇인지, 그 대상의 말과 실제 행동은 어떠한지. 한 걸음 떨어져서 관조하며 끊임없이 생각하자.

그리고 돌아보자. 주변을 살펴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밀자. 온전한 개인이 모여 서로를 감쌀 수 있다면 조금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모두 자신을 들여다보고 발견하는 시간 보내시길☺️🌿

𝗣.𝗦. 이와 관련해서는 1)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을 추천한다. 시기도 다르고 저자도 다르지만 두 책이 논하는 주제는 동일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분 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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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진

@ddvddn

  • 박동진님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게시물 이미지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읽었어요
6분 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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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트위터 연결은 늘어나는데 왜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줄어들까? 문자와 이메일을 사용할수록 왜 대화가 서툴러질까? 아바타 꾸미기에 열중할 때 진짜 ‘나’는 어떻게 바뀔까? 사교 로봇과 함께 성장한 아이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을까?

이 책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심리학자로서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과학기술 전반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 온 셰리 터클이 지난 30년간 테크놀로지 영역에서의 삶을 탐구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테크놀로지에 열광한 이후 우리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 아동심리학적, 인류학적 등의 관점으로 진단한다. 수백 명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과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물론 인터뷰가 끝난 뒤 무심코 나오는 발언들까지 면밀히 탐색한 저자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재형성하는지를 낱낱이 묘사한다.

출판사 책 소개

테크놀로지가 나와 내 인간관계를 조정한다!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가장 참신하고 심오한 탐구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연결은 늘어나는데 왜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줄어들까? 문자와 이메일을 사용할수록 왜 대화가 서툴러질까? 아바타 꾸미기에 열중할 때 진짜 ‘나’는 어떻게 바뀔까? 사교 로봇과 함께 성장한 아이들은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을까? 과학기술과 인간관계 분야의 독보적 사상가, MIT 사회심리학 교수 세리 터클이 디지털 시대에 점점 외로워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충격적 진단과 놀라운 통찰!


장례식 동안 내 주변의 사람들은 인쇄물의 날개 부분을 문자 메시지 보낼 때의 휴대폰 가리개로 사용했다. 식이 끝난 후 문자질 추모객들 중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와 “휴대폰이 없었으면 그렇게 오래 못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장례식의 취지는 애도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테크놀로지에 단련되었던 이 여성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본문_478쪽)

문제는 이러한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함께 있으나 따로따로’인 상황에 익숙하다.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저녁 풍경은 함께 모여 각자의 인터넷 세상으로 접속하는 풍경으로 대체되었다. ‘한 명은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앞에, 한 명은 모바일 기기를 들고 있는 식이다.’ 이러한 모습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나, 학생들의 수업시간, 심지어 연인들의 데이트 시간에서조차 다르지 않다. 대화 없이 각자의 디지털 기기로 문자를 보내거나 인터넷에 접속하기에 바쁘다. ‘바빠서 온라인을 이용한다지만 결국 서로 어울리는 시간은 적어지고 테크놀로지와 보내는 시간은 많아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이 책,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저자 셰리 터클은 ‘다함께 홀로(ALONE TOGETHER,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원제)’라 표현했다.
짐작대로다. 이 책은 최근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로 네트워크화된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더 나아가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친교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로봇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탐구한다. 그러나 이 책이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네크워크(SNS)가 소외감을 증가시킨다는 단순한 결론을 전달할 것이라는 짐작은 성급하다. 테크놀로지의 함정에 빠진 우리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과학기술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기 직전에 울리는 사이렌이다.

과학기술과 인간관계 분야의 독보적 사상가, MIT 사회심리학 교수 세리 터클이
디지털 시대에 점점 외로워지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충격적 진단과 놀라운 통찰!

MIT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연구자인 셰리 터클은 디지털 시대의 주도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2000년 [타임]은 셰리 터클을 인터넷 이노베이터로 선정하면서 ‘사이버 스페이스의 마거릿 미드’라고 격찬했다.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연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컴퓨터 시대가 개막되면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컴퓨터의 기술 연구에 몰두할 당시, 셰리 터클은 정신분석 훈련을 받은 심리학자로서 컴퓨터와 인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과학기술 전반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연구해왔다. 이 책은 셰리 터클이 지난 30년간 테크놀로지 영역에서의 삶을 탐구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테크놀로지에 열광한 이후 우리의 모습을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적, 아동심리학적, 인류학적 등의 관점으로 진단한다. 수백 명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과의 공식적인 인터뷰는 물론 인터뷰가 끝난 뒤 무심코 나오는 발언들까지 면밀히 탐색한 저자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재형성하는지를 낱낱이 묘사한다.
저자는 ‘우리가 건물을 지은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짓는다(We shape our buildings, then they shape us).’는 윈스턴 처칠의 말에 빌려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만들면 그 다음에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만든다.‘ 과연 테크놀로지는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을까?

소셜 네트워킹,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우리의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만드는 위험한 그물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문자를 주고받거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접속한다. 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언제나 작동 중’인 상태로 ‘네트워크에 묶여’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화가 위험한 이유는 우리의 자아를 ‘새로운 자아 상태로’ 다가가게 하고 우리의 인간관계를 단순화시켜버린다는 데에 있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과 네트워크화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페이스북의 프로필이나 세컨드 라이프의 아바타 꾸미기에 열중한 이들이 실제와 다른 자신을 ‘연기’하고 있음을 읽어낸다. 이러한 연기가 위험한 이유는 온라인 삶을 위해 작성한 내용과 자기 모습을 혼동하면서 진짜 나를 잃어버릴 위험성에 놓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삶이 진실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네트워크화는 정체성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상시 접속 커뮤니테이션은 청소년들이 이 모든 것들과 관계하는 규칙을 바꾸어놓았다. 문자로 빠른 답변이 오가는 세상에서는 자기반성이 불가능하진 않으나 이것이 촉진될 여지는 거의 없다. 생각은 작은 스크린에 맞도록 재구성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이 속기된다.’ 네트워크화로 청소년들은 독립적 자아를 형성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네트워크화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단순화시켜버린다. 효율성을 이유로 혹은 피하고 싶은 상대와 대화하지 않으면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전화대신 이메일과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서로에게서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물론 전화는 여전히 아주 친한 사람들과 연락하는 도구로 사용하긴 하지만, 그 사용 빈도는 매우 낮아졌다.) 문제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한 의사전달이 서로의 감정을 ‘축약’시켜버릴 뿐만 아니라 상대를 ’처리해야 할 물건‘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자와 인터뷰를 나눈 이들은 이메일을 보낼 때 '저 사람을 처리’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을 토로했다. 사람이 기계처럼 취급되는 순간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한 네트워크화는 우리를 ‘다 함께 홀로’인 상태로 만든다. 저자와 인터뷰를 나눈 한 학생은 나흘 만에 만난 자리에서 엄마가 휴대폰에 몰두했을 때의 서운함을 이렇게 전한다. “휴대폰이 훼방꾼이죠,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엄마는 그걸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흘 만에 엄마 얼굴을 보는 거라도, 차 안에 앉아서 엄마의 볼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이렇듯 ‘다 함께 홀로’인 상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장례식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네트워크화가 친밀성을 획책하고 인간관계를 단순한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것이다.

다가올 로봇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 위험에 놓여 있을까?

네트워크화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한 저자는 이제 곧 우리에게 새로운 친교의 대상이 될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이미 로봇을 생명체라 여기기 시작했으며 로봇의 존재를 ‘없는 것보단 낫다에서 어떤 것보다도 낫다’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진단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분석을 두고 과연 로봇을 생명체 여기는 사람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길만 하다. 그러나 저자의 연구 과정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실제로 로봇을 생명체로 여기고 있음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저자는 놀이방에서 아이들에게 퍼비(Furby), 아이보(AIBO), 키즈멧(Kismet) 등과 같은 사교 로봇을 건넨 후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아이들이 로봇의 애정을 얻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거나 로봇이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아이들이 로봇을 생명체로 여기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아직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일일까? 저자는 사람들이 로봇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탐색을 놀이방에서 요양원으로 이동시킨다. 저자가 요양원에서 만난 72세의 미리엄 할머니는 아기 하프물범 모양의 사교 로봇 파로를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 너도 슬프지? 사는 게 원래 힘든 거란다. 힘들고말고.” 로봇에게 하소연하는 할머니 역시 로봇을 ‘충분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로봇을 생명체로 여기며 로봇에 의존하는 것은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로봇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 요소가 전무한 것처럼 보이지만 ‘로봇을 친구로 여길 경우 제일 먼저 잃게 되는 것은 타자성, 즉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능력’이다. ‘요구 없는 로봇과의 교제’에 익숙해지면 사람들과의 삶이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우리에게 ‘한때는 사랑의 노동이었던 일을 로봇에게 위임하게 되면, 위임하는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보실핌의 짐을 내려놓은 경우, 우리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보살핀다는 불문율을 포기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만일 우리가 그런 것들을 벗어 던진다면, 거칠고 피폐해질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더 가까워질 권리가 있다.
더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위한, 더 행복한 삶을 위한 탐구!

저자는 네크워크화와 로봇을 통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접촉하는 행위의 대체물을 테크놀로지가 제공할 때 우리가 어떻게 변하느냐’를 분석한다. 저자의 면밀한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네트워크화된 공간에서는 사람을 사물 취급하면서 기계에 지나지 않은 로봇은 생명체로 여기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약해지면서 로봇과의 관계는 끈끈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끔찍한 대칭성이며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창조했지만, 테크놀로지로 인해 가능해진, 무엇에도 제한되거나 구속받지 않은 생활로 인해 우리는 너무도 자유로워진 나머지 어디를 가든 일을 해야 하는 동시에 어디를 가든 외로운 존재가 되었으며 고립과 단절에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 새로운 틈새가 생겨날 때마다 우리는 더 많은 테크놀로지로 그 틈새를 메우려고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인간의 나약함은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커져만 간다. 테크놀로지는 확대되고 발전하는데 우리의 감성적 삶은 붕괴되고 매몰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테크놀로지를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테크놀로지를 빚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시킬 뿐이다. ‘우리는 더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테크놀로지의 운영방식을 정하는 게 바로 우리 자신임을 상기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더 풍요로운 인간관계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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