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1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이국적인 동네책방
〔 세화 영어서점 〕
동네책방 ㅣ 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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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길, 매일 지나는 성북동 언덕길이 있습니다. 109번 버스 창문으로 보는 서점은 언제나 언덕을 런던의 작은 골목으로 만드는데요.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복작복작 책을 고르고,영어 서점을 찾기 어려운 외국 친구들이 헌책을 물물교환 하기도 하는 곳.
그 언젠가 캐나다 친구가 주고 간 기타, 영국 친구의 손 편지들이, 전 세계에서 한 장씩 보내온 엽서가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성북길 노팅힐 서점 “세화 책방"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출근길에 항상 어떤 서점일지 정말 궁금했어요! 세화 서점은 어떤 곳인가요?
세화 서점은 영문학을 오랫동안 좋아해 온 제가, 저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작은 영어 서점입니다.
100% 직접 큐레이팅한 책만 들여놓고 있는데, 특히 동화책은 모두 읽고 마음에 드는 친구들만 데려오고 있어요.
중고 책 코너도 있는데, 물물교환 형식으로 두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시는 분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책장이기도 합니다.
정말 고르는 책 족족 모든 스토리를 설명해주는 서점은 처음 와본 것 같아요!
독립서점이라도 이렇게 세세히 큐레이팅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세화 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음, 기준이라기보단 더 나은 책장을 꾸리기 위해 하루 종일 읽는 것 같아요. 서점 운영이 굉장히 정적인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치열하게(?) 읽다 하루가 가는 편입니다. 영어를 쓰는 모든 영미권 나라의 이슈와 서평, 정기 잡지를 챙기다 보면 하루가 아니라 한 주가 얼떨떨 지나가기도 해요.
역시.. 엄청난 공수가 만들어낸 퀄리티였군요. 이런 취향 가득 담긴 서점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냥 좋아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서점을 열기 전엔 여군 장교로 3년간 군 생활을 해보기도 했고, 외국의 좋은 서적을 찾아 판권을 수입하는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는데요. 30살에 문득 '40살쯤엔 내가 좋아하는 영문학책들을 판매하는 서점을 갖고 싶다.'라는 소망을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나 싶더라고요. 동시에 항상 애정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용기를 내는 건 항상 당연하지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서점을 하시면서 뿌듯한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큐레이션에 공을 많이 들이는 만큼 추천한 책을 좋아해 주실 때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책을 함께 읽거나, 독서 토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요. (서점 주인으로 할 소리는 아니지만 (웃음)) '나의 책 취향이 확고한 만큼 다른 이들의 취향도 다양할 텐데, 함께 꼭 같은 책을 읽어야할까?'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추천 책을 좋아해 주셨다는 건, 취향의 텔레파시가 맞은 것 같아 참 뿌듯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독서 모임보다 더 다양한 모임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매주 언어교환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기적으로 클래식 공연을 열기도 합니다. 옛날 영화를 좋아해 1930-60년대 영화를 보며 와인을 마시는 모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와인을 마시며 뚱뚱한 티비로 상영하는 흑백 영화라니! 이런 따뜻한 공간을 만드는데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무조건 역세권! 이라는 조건을 1순위로 뒀어요. 희소성이 있는 서점 특성상 멀리서도 걸음을 해주시는데, 의외로 버스 타는 걸 어려워하는 외국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꼭! 지하철역 5분 이내의 위치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책 이외에도 타자기, 턴테이블 등 빈티지한 물건들이 많은데요!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는 것들이겠죠?
평소 옛날 영화, 노래 등 오래된 것들을 좋아합니다. 서점을 시작하기 전엔 SNS 계정도 없었어요. 수집하는 물건들도 있고, 고향으로 돌아간 외국 친구들이 보내준 선물, 엽서들도 모아두고 있어요. 영국 친구가 준 인형, 필리핀 친구의 기타 줄 등 랜덤하지만 추억이 많은 물건들입니다.
역세권에 희소성까지! 모든 걸 갖춘 세화 서점은 3년 뒤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요?
영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 문학과 논픽션 분야의 책들이 점진적인 자극의 길을 밟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더 많이 팔리기 위한 책만을 가진 서점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문학 특유의 슴슴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화 서점'다움이란 어떤 걸 의미할까요?
'다양성을 간직한 좋은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모든 도서를 외국 출판사와 직접 연락해 직수입 해오고 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보단 저의 취향과 세태를 반영한 책을 고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형서점을 방문하면 보통 판매량 순으로 책이 진열되어 있잖아요. 항상 '판매 부수와 관계 없이 좋은 책들이 많고, 모두가 잘 팔리는 책만 찾게 되면 도서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왔는데요. 작은 서점이지만 이곳에선 잘 팔리는 책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한 권의 책을 추천해주세요!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지넷 윈터슨 지음 | 민음사 펴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 입양되어 선교 교육을 받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어린 시절을 겪으며 16살에 집을 나와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옥스퍼드에 들어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에요.
젠더이슈와 함께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소설입니다. 원작의 영어 문체도 정말 훌륭해 기회가 되신다면 번역과 원작을 함께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해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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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바로 위 제로웨이스트 샵에서 재생 가죽에 이름을 각인한 노트를 선물해주셨어요.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가까운 시간을 “내가 옆집 언니네 놀러를 왔나?” 싶을 정도로 편하고 재미있는 대화였습니다. 많은 서점을 방문했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모든' 책을 설명할 수 있는 책방은 많지 않은데요. 어떤 책을 고르던 술술 설명해주시는 모습에서 책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대형 서점에서 만나기 힘든 그래픽 노블과 영문학책을 만나보고 싶으신 분,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의 작은 동네 서점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추천 드려요!
Editor
정재원
jaewon10455@flybook.kr
〔세화 영어서점〕
◦ 주소 | 서울 성북구 삼양로 15-2
◦ 운영시간 | 11:00-21:30 / 화요일 휴무
책방 인스타그램
책방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