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3
〔 로코북스 〕
동네책방 ㅣ 경기 수원시
❝밤이 깊어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문장들이 있어요.
로코북스는 그 조용한 결을 품은 채, 오래된 책들이 제 빛을 되찾는 곳입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리듬으로 읽어야 한다.”는 믿음 아래,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밤을 건네는 서점.
로코북스를 소개합니다.
1. 로코북스를 소개해주세요!
로코북스는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도시가 잠든 뒤에 열리는 예약제 심야 헌책방입니다. 판매 서가는 1980~90년대의 초판·절판본으로 큐레이션되어 있어요. 판매책 외에도 편하게 꺼내볼 수 있는 다양한 열람책이 준비되어 있으니, 꼭 책을 사지 않아도 편히 머물 수 있는 서점이에요.
2. ‘로코북스’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특별한 뜻이 있는 이름은 아니에요. 기억에 쉽게 남고 ‘로코’라는 소리가 주는 부드러움과 개성 있는 느낌이 책방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3. 서점, 특히 심야서점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퇴근 후 갈 수 있는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대부분의 서점은 저녁이면 문이 닫히잖아요. 마침 로코북스가 자리한 공간이 5층이라, 도시의 불빛과 야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특별한 풍경이 있었고요. 그 밤의 순간에서 책을 여는 경험이 너무 좋아서,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녁부터 새벽까지’ 문을 여는 책방이 되었습니다.
또, 로코북스는 정해진 시간 동안 머무르며 공간과 책을 즐기는 예약제 서점이다 보니, 경험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한 분 한 분이 방해받지 않고 편안하게 머무르실 수 있도록 시간과 인원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입장료 기반의 예약제가 되었어요. 입장료는 단순한 요금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나만의 속도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해요. 조용한 집중, 깊은 독서 경험, 그리고 편안한 휴식을 드리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4. ‘로코북스’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지금은 잊혔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책들을 고르고 있습니다. 1980~90년대 초판·절판본을 주로 선정하고, 한때 누군가의 시간이 스며든 책들 위주예요. 책의 내용뿐 아니라, 디자인과 종이 질감, 표지의 시대감까지 함께 보고 큐레이션합니다.
5. 공간을 만드실 때 어떤 점을 많이 고려하셨나요?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손님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머물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전체 조명과 가구는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조성했고, 컬러는 자연에서 온 색감을 참고해 차분하고 편안한 톤으로 맞췄습니다.
로코북스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대부분 지금은 구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서가에 꽂아두는 대신 표지를 전면으로 전시해 책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이 더 잘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모든 책에는 직접 정리한 큐레이션 카드를 함께 두어, 책을 고르는 과정도 경험이 되도록 구성했고요.
공간은 크게 두 결로 나누었어요. 한쪽은 암체어나 2인용 테이블을 두어 차분히 집중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자리로 꾸몄고, 다른 한쪽은 소파와 넓은 유리 테이블을 배치해 호텔 라운지처럼 조금 더 개방감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소통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꾸몄어요. 각자 원하는 속도와 방식으로 경험하는 책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6. 로코북스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로코북스에서는 계절과 분위기에 맞춰 정기 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손님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담아, 책방에 머무는 시간이 더 재미있어지도록요.
지금은 〈사랑 아카이브: 가을 한정판〉 기획전이 12월까지 진행 중이에요.
사랑에 관한 문장으로 만든 책갈피, 직접 만드는 하트 십자수, 사랑 Q&A 카드, 사랑 그림 그리기 대회 등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했어요. 방문하신 분들이 자신만의 ‘사랑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기획전을 이어가며 로코북스만의 작은 경험들을 꾸준히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7. 로코북스를 더 재밌게 이용할 수 있는 책방지기님만의 팁이 있다면?!
로코북스를 가장 재밌게 이용하시는 방법은, 기획전 콘텐츠를 한 번씩 다 경험해보시는 거예요. 참여형 요소가 많아서, 천천히 경험하다 보면 예상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이 됩니다. 책은 꼭 구매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편하게 머무르시다가 마음이 가는 순간이 오면 그때 사셔도 충분해요. 사진도 마음껏 찍어 보세요. 손님분들이 공간을 담아가시는 게 저희에게는 아주 큰 칭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8.공간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한 손님이 ‘여기서 살고 싶다,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예요. 단순히 예쁘다거나 좋다는 말보다 더 기억에 남고 감사했습니다. 로코북스가 누군가에게 그런 편안함과 애정을 줄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어요.
9. ‘로코북스’ 다움이란 어떤 걸 의미할까요?
로코북스다움은 ‘느긋함’이라고 생각해요. 화려하게 시선을 끄는 공간이 아니라, 천천히 머물고 싶어지는 분위기, 그리고 오래된 책이 가진 질감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느긋함이 있어요. 저희가 큐레이션 하는 1980~90년대의 옛날 책들과 아주 잘 어울리죠. 그 시기의 책들은 종이 질감, 활자 간격, 표지 디자인까지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어요. 한 시대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차분한 밤의 분위기와 무척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밤에 읽으면 더 깊게 빠져드는 책들, 여백 많은 문장들,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만나는 이야기들. 이 모든 게 로코북스다움이라고 생각해요.
10.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로코북스’는 어떤 공간이 되고 싶으신가요?
'오래가는 서점'이었으면 좋겠어요. 잠깐 화제를 모았다가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이 복잡할 때 떠올릴 수 있고, 문득 밤에 걷다가 ‘저기 아직 불 켜 있겠지?’ 하고 생각나는 그런 장소요. 오래된 책이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사라지지 않듯, 로코북스도 꾸준히 제 속도로 유지되며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조용한 휴식과 작은 여유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11. 마지막으로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책방지기님의 인생책을 소개해주세요!
나목
박완서 지음 | 출판사 세계사
늦은 밤에는 책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렵잖아요. 로코북스는 그 빈자리를 채우고 싶어요. 도시의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밤 시간대에, 좋아하는 책을 펼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곳.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느끼는 갈증을 로코북스에서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나목』입니다. 옛날 책이라고 해서 낯설고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지만, 『나목』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에요. 오히려 오래된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라 로코북스를 찾는 분들께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ditor
정재원
jaewon10455@flyboo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