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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거짓말을 낳는다. 그 거짓말은 'lie'이기도 하지만 'fiction'일 수도 있다. 서민층의 집단 창작인 전설과 야사는 사실을 말하는 일이 통제될 때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을 말하는 특유의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때의 거짓말(fiction)은 분명 사실(fact)은 아니지만, 어쩌면 사실보다 더 진실(truth)에 가까운 거짓일지도 모른다. p.38
사람이 있으니 사랑이 있다. 아무러한 시대 아무러한 제도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의 증명처럼 사랑한다. 존천리 멸인욕(存天理 滅人欲),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던 유학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교 예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경전인 『예기』에서는 무려 "혼인은 절대 축하할 일이 아니다"고 하여 사랑 때문에 효심이 시들 것을 경계했으니,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도리에 포박된 사랑은 엉뚱한 대용품을 찾기에 이르렀다. p.99-100
그런데 표석을 확인하고 돌아온 후 인터넷 검색을 통해 50년째 극장 앞에서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면서 30년 전부터 표석을 돌보았다는 '이순신 할머니' 이점임 씨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정임 씨는 "이순신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는데 시민들이 그가 태어난 자리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그냥 볼 수 없어" 표석을 청소하고 돌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리 알지 못해 할머니의 컨테이너박스를 찾아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래도 하나는 다시금 확인한다. 진정한 기억은 기념물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지켜진다는 사실. p.126-127
아픈 사람은 외롭다. 병자는 아픔으로 고독해진다. 고통은 어느 누구와도 나눠 가질 수 없는 자기만의 것이다. 사랑도 동정이나 연민도 고립된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같은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동병상련(同炳相憐)이야말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진실의 말이다. 크든 작든, 중하든 경하든, 나 자신이 겪었든 가족이나 친구가 겪었든 아프지 않고 일평생을 살 수는 없기에 아픔으로써 아픔을 이해해야 마땅하리라. p.238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순진성도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자신이 팔난봉인 형 양녕대군을 끌어안았듯 자식들도 호학(好學)과 애민(愛民)과 형제애로 순수하게 나랏일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는지 모른다. 믿음이야말로 강력할수록 교만해지고 교만할수록 단순해진다. 아버지와 삼촌들이 어떻게 혈투를 벌였는지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말이야. p.252
문학과 역사와 철학, 이른바 '문사철'로 통칭되는 인문학의 분과는 인간 조건을 탐구하고 인간 문제를 다룬다. 인간의 생애는 3무(無)라 했다. 공짜, 비밀, 정답이 없다고 그중에서도 세 번째, 정답이 없다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과 통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 진실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인가?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답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어쩌면 그것이 삶일 테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건 오직 푸르른 생명의 나무뿐"이라는 『파우스트』의 글귀가 통렬하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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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작머리님의 인생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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