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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은행나무 펴냄

"그럼, 대답해주지, 간단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어떤 기분이냐는 거지? 아마도 성욕."
"성욕?"
"그래. 그것뿐이야."
"하지만 성욕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잖아." 다카노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식 참, 노골적으로 말하네. 하긴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거겠지. 성욕을 느끼는 와중에도 제일 예쁜 애한테 느끼는 기분 아닌가? ......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다이라도 대답하면서 헷갈리기 시작했는지, 고기만두를 베어 먹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아, 그래, 지금 료타랑 이노랑 사귀지."
다이라가 문득 생각이 떠오른 듯이 말했다.
"어, 사귀지."
"그 애들, 매일 질리지도 않고 같이 집에 가잖아. 오토바이 세워둔 곳까지 손잡고 가고, 그러고는 둘이 같이 타고."
"그렇지."
"그래서 내가 전에 료타한테 물어봤어. '그렇게 매일 붙어 다니는 거 질리지도 않냐?'라고. 그랬더니 그 녀석이 '전혀 안 질려'라는 거야. 매일 같이 다녀도 '시간이 너무 부족해'라고."
"어째서?" 다카노가 무심코 물었다.
"그치? 나도 '무슨 시간이 부족해?'라고 물었지. 그랬더니 '얘기할 시간'이라고 해서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냐?'고 물었더니 '내 얘기 해'라더라."
"내 얘기?"
"그래. 료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재는 뭐든 상관없나 봐. 예를 들면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이든, 어릴 적 얘기든, 학교 얘기든, 뭐든 좋은 모양인데, 자기 생각은 이렇다고 얘기하는 게 즐겁데. 그리고 이노도 똑같이 자기 생각은 어떻다고 얘기하는데, 료타는 그 얘기를 듣는 것도 즐겁대. ...... 정말 그럴까?"
다이라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다카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다카노도 그게 뭐가 즐거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짧은 침묵 후, "근데, 역시 성욕 아닐까?"라고 다이라가 결론을 내렸다. "...... 료타 자식, 괜히 폼 잡는 것뿐이겠지."
2021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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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지음
래빗홀 펴냄

읽었어요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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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난다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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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문

@yiseomoon

"아, 나 이분이 하시던 빵집 아는데."
매지가 탄식했다.
"깜빠뉴가 맛있는 집이었어. 안에 마른 과일이 콕콕 들어 있는. 다른 직원 없이 혼자 하셔서 힘들 것 같긴 했지만...... 가게를 옮기거나 잠시 쉬려고 닫은 줄 알았어. 돌아가신 줄은 몰랐네."
"회사에 속해 있지 않았던 사람들도 죽는구나. 뭐가 그 사람들을 몰아붙인 거지?"
규진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생계?"
매지가 약간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회사는 악독하지만, 어떨 때는 갑옷이기도 하잖아. 조직 밖의 사람들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혼자 세상이랑 싸운다고."
그건 아마 매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었다. 매지는 공연을 하기 위해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입시무용학원에서 일해야 했다. 작업과 생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곁에서 보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한번은 발목을 다쳐서 강사 자리를 잃은 적도 있었는데, 후유증이 남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장기적인 문제가 되었더라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근데 이렇게까지 다 없앨 필요 있나? 혼자 살아도 필요한 물건이지 않아?"
지원이 물었다. 그 물음에 불안해진 네 사람이 동시에 이재를 쳐다보았다.
"사실은...... 내가 보여줄 게 있어."
이재는 친구들을 지하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곤 아주 작은 캠핑 카라반 앞에 섰다. 카라반은 아직 차에 연결되어 있지는 않았다. 거짓말, 하고 아영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했다.
"이걸 끌고 어디로 가게?"
"일단 좀 다녀보게."
친구들은 드디어 이재가 이혼의 충격을 드러내는구나 생각했다.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라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
성린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지 않을까?"
경윤이 너무 염려를 담아 말하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야, 여자는 어디서나 위험해. 어떻게 살아도 항상 위험해."
성린이 이재 대신 대답했다.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창비 펴냄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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