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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한승혜 지음
바틀비 펴냄

우리나라의 독서가는 거의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베스트셀러만 읽는 사람, 아니면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경멸하고 보는 사람. 나는 좀 부끄럽지만 후자였다. '까더라도 읽고 까야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좋은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한데 별로일 것 같은 책들까지 일일이 다 읽어보기는 힘들었는데, 운 좋게 이 책을 발견했다.

일단 자기계발서와 힐링 에세이는 단순히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일관성, 설득력, 책의 완성도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줘서 좋았다. <언어의 온도> 요약은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웃겼고, 최근에 유행하는 '힐링' 책들은 시집도 그림책도 수필집도 아닌 애매한 갈래인 책이 많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을 다룬 부분은 좀 충격적이었다. 괜찮은 책들도 몇 개 있었지만 아니 정말 저 정도로 허접한데 출판을 해준다고? 심지어 잘 팔린다고? 싶은 게 많았다.

뭐 저자가 요약한 게 무조건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나도 전에 카드뉴스나 광고에서는 재미있어 보였는데 자극적이기만 하고 결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그런 허접한 추리 스릴러에 몇 번이나 낚여봤기 때문에 절절히 공감이 되었다. 문체도 잘 읽히고 은근히 웃겨서 거의 하루만에 다 읽었다.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괜찮은, '상상력'과 '배움'을 말하는 책으로는 <사피엔스>, <라틴어 수업> 등을 추천하고 있는데 나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반가웠다.

또 본문만큼이나 닫는 글의 메시지가 좋았다. 저자는 베스트셀러 위주로만 읽는 사람을 '초보 독서가' 라고 한다. 무식하거나 수준이 낮다는 뜻이 아니라 일단 책의 세계에 막 발을 담가서 이것저것 읽어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려운 책, 덜 유명한 책에도 손을 댈 수 있게 되고 자기에게 맞는 책 고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 나가는 게 바로 책 읽는 즐거움 아닐까.
2021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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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러는 건 아닌데, 평소에 최신 한국소설은 잘 안 읽는다. 이 책은 소개가 흥미로워서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가출하고, 방황하고,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는 세 명의 여중생이 나온다. 명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지만 결국은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강이의 상황을 은유하는 여러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인상깊은 건 화단의 꽃과 투어(鬪魚)에 관한 내용이다. 화단의 꽃이 병들면 ‘병신’이지만, 모두 다 병들어버리면 병신이 아니게 된다. 투어는 죽도록 싸우지 않으면 지느러미가 병들어서 병신이 되고 만다.

강이도 마찬가지다. 집이 못 견디게 싫은 건 아니지만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길 수도 없지만 소영에게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병신이라면 ‘최악의 병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멀리 나가다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다다르더라도 더 멀리 나아가야한 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 곳에서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걸,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이에게 수족관은 다신 없을 것이다. 강이의 끝은 수족관이 아니었다. 죽음 직전에나 잠시 퍼드덕거리는 광어들과는 달랐다. 강이는 나아갔다. 이 폐수는 강물로 이어질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죽음이든, 아니든.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최선의 삶, 삶은 방황을 통해서 딱히 나아지지도 않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모든 사람은 각자 최선을 다해 자기 삶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삶이고 생명이니까. 병신이 되었다가, 최악의 병신이 되었다가, 모두가 병신이라 아무도 병신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가 하면서. 어두운 이야기지만 작가는 마냥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담담이 적어 내려간다. 그러나 죽어가던 투어 ‘강이’가 펄떡거리며 강으로 흘러가는 장면에서는 나름대로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이 소설이 말하려고 했던 생명력, 그 속의 작은 아름다움 같은 것이다.

그동안 읽은 소설 중에서는 김사과의 <미나>와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가 생각났다. 현대 사회에서 억눌린 생명력을 폭력으로 분출하는 십대들의 이야기지만 대전, 서울, 도쿄라는 배경에 따라 이야기의 스타일은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 재미있다. 생각난 김에 그 두 권도 조만간 다시 읽어보는 걸로.

최선의 삶

임솔아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22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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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한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가 말했듯이, 평가어는 해당 사회의 의식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어떤 단어에 단순히 변화를 준다고 해서, 해당 사회가 곧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의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공부보다는 연구하는 단계의 공부를 의미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대학 연구생이나 학자들이 읽으면 더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가볍게 잘 읽히고, 생각하던 것을 시원하게 짚어주는 좋은 표현들이 많았다. 다만 몇몇 글은 신문에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개그 욕심이 과했다. 담백하게 쓰인 글들이 더 좋은 것 같다.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어크로스 펴냄

2022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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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위주로 편성한 단편 역사 소설집. 세상을 뒤집어놓은 사건 이상으로, 그 문턱에서 실패한 사건은 예술적인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유한한 인간이 땅과 바다, 한 사회를 소유하려 든다는 것, 그러니까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제일 좋았던 건 키케로의 마지막 연설. 키케로가 정치가에서 학자로, 공화국의 마지막 대변자로, 명예로운 패배자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절절하게 잘 썼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022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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