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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이병률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읽었어요
책이 손에 집히질 않는다.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한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 없이 간다는 말 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을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47p.

다리
- 환한 대낮에 절고
저녁이 다 오면 편다
직업적으로 절고
인간적으로 편다

그사이 슬픈 마음이 돋아 저절로 펴지기도 하지만
절어야 할 때를 모르고 펴기도 한다

공처럼 구르다 활처럼 멈춰 서봐도
좀처럼 휜 허리가 펴지지 않는 어슬한 밤
종일 다정한 것이며 허풍으로 애쓴 다리를 뻗는다

사는 연습을 하느라
그것이 억울하여 편다
근황을 이을 것이 없어 절고
하루 일을 일러바치듯 편다

삶이 많은 것은
숱한 가지에 거짓을 매달 수 있기 때문
그러니 거짓을 따듯 마음을 절고
위험을 따서 치우듯 마음을 편다

삶을 줄이기 위해 다리의 힘을 쓴다
그러기 위해 사원의 바닥 한 평씩을 다리로 쓴다

세상도 내 다리에 긴요히 심부름을 시키나니
나는 낮에 다리를 절고 밤에 다리를 편다 51p.

다리를 절고 펴는 것에 인간의 삶이 스며있다.
슬픔이 밀물처럼 가슴 한 켠을 가득 채운다.
그냥 슬픈 시다.
2021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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