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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지은이) 지음
창비 펴냄
하늘과 초원뿐이다.
하늘은 별들로 가득하고 초원은
가슴에 자잘한 꽃들을 품은 풀로 덮였다.
낮에는 별이 피하고 밤에는 꽃이 숨어
멀리서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새벽이면
밤새 하늘을 지키느라 지친 별들이
눈을 비비며 은하를 타고 달려내려온다.
순간 자잘한 꽃들도 자리를 박차고 함성과 함께 뛰쳐나와
마침내 초원에서는 화려한 윤무가 벌어진다.
언제가 될까, 내가 그 황홀한 윤무에 끼여
빙빙 돌아갈 날은.
- ‘윤무(輪舞), 신경림
달빛은 뛰어난 예술가다
온갖 예사로운 것들을 다 불러모아
아름답고 애틋하게 치장해 내놓는구나
나도 그늘에만 숨어 있지 말고
주저 말고 나가 서야지
달빛 아래서라면 나도 저렇게
아름답고 애틋하게 바뀔 수 있겠지
그러다 문득 멈춰 선다
난감한 표정의 달빛을 볼 것이 민망하다
아무래도 너만은 안되겠는걸
달빛은 느릿느릿 도리질을 치겠지
- ‘달빛’, 신경림
이쯤에서 돌아갈까보다
차를 타고 달려온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보지 못한 꽃도 구경하고,
듣지 못한 새소리도 들으면서
찻집도 기웃대고 술집도 들러야지
낯익은 얼굴들 나를 보고는
다들 외면하겠지
나는 노여워하지 않을 테다.
너무 오래 혼자 달려왔으니까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테다.
내 손에 들린 가방이 텅 비었더라도
그동안 내가 모으고 쌓은 것이
한 줌의 모래밖에 안된다고
새삼 알게 되더라도
- ‘이쯤에서’,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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