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쥐'인 만화책이다. 보통 만화책이라고 하면 재밌고 신나고 모험이 가득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상상하곤 하는데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다소 어두운 내용이다.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인 블라덱 슈피겔만이 겪은 전쟁을, 아우슈비츠에서의 수용소 생활을 그리고 전쟁이 끝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을 아들에게 풀어놓았고 그는 그것을 정리해서 만화로 그려냈다.
사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와 책은 이미 너무나 많이 나와있고 히틀러와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는 모두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언급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책을 보면서 특히 눈에 띈 부분에 대해 집중해 보려 한다.
일단 주인공을 동물인 '쥐'로 그렸다는 것. 제목 그대로 정말 쥐다. 유태인들은 모두 쥐로 표현되고 나치는 고양이로(왜 하필 고양이인가!), 폴란드인은 돼지로, 미국인은 개, 소련인은 곰,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그렸다. 동물 선정에 무슨 의미같은게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고양이는 너무 귀여우니까.(???)
열한살인 아티가 친구들에게 버려져 울고있자 아버지는 말한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어린 아티가 저 문장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야 그 의미를 깨달아 책의 처음을 장식하지 않았나 싶다.
전체적으로 블라덱의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 진행이 되는데, 춥고 배고프고 먹을 것이 없었다,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와 같은 문장의 나열이 아닌 실제 그림으로, 아버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니까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 겪은 일처럼 느껴진다.
아우슈비츠에서 건네받은 옷의 상의, 하의, 그리고 신발의 양쪽도 사이즈가 전부 다른 것을 전달받아 한참을 고생한 친구의 복장을 묘사한 부분은 읽으면서 실제로 내 발이 시려운 것 같았다.
'그의 바지는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컸는데 허리띠로 쓸 끈 하나 없었다. 하루 종일 한 손으로 바지를 잡고 있어야 했단다. 게다가 신발 한 짝은 너무 작았지. 하는 수 없이 바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이걸 들고 다녔다. 다른 한 짝은 배처럼 컸지만 그래도 신고 다닐 만은 했어. 어쨌든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어딜 가든 한쪽 맨발로 눈 위를 밟아야 했지.'
홀로코스트의 참상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저자와 아버지의 관계, 블라덱의 편집증적인 증상들, 밤마다 비명을 질러서 가족들을 깨우던 아버지의 모습을 당연하게 보고 자라온 저자가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모든 부모가 밤에 비명을 지르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일들. 모두 '그 일'을 겪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블라덱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 국제시장의 황정민 배우가 맡은 덕수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저렇게까지 해야돼?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하는 생각을 노인들을 보면서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겪은 전쟁, 배고픔,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 세대들은 아마 죽을때까지 많은 부분을 감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저자는 이런 아버지와의 갈등 조차도 조금의 덜어냄도 없이 그대로 표현했다. 그런 솔직함이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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