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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 (생각의 잡음,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의 표지 이미지

노이즈

대니얼 카너먼, 올리비에 시보니, 캐스 R. 선스타인 (지은이), 장진영 (옮긴이), 안서원 (감수) 지음
김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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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개소리에 더 수용적이었다. 그들은 “진실되고 의미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멍청한 인상적인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렇게 잘 속는 성향은 그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질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다. 좋은 기분을 유발시키면, 사람들은 개소리를 더 잘 받아들이고 전반적으로 더 잘 속는다. 다시 말해 기분이 좋으면, 사기를 감지하거나 허위 정보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무뎌진다. 반대로 허위 정보에 노출된 목격자들은 기분이 나쁠 때 허위 정보를 더 잘 묵살하고 거짓 증언을 더 잘 피한다.

인도교 문제에는 개인적인 감정이란 요소가 분명히 수반된다. 제어가 안 되는 전차가 달려오는 길 위로 누군가를 밀어서 떨어뜨리면,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가하는 신체적 폭력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해야 한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통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험 참가자들이 5분 정도 짧은 영상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을 때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재차 묻자, 이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남자를 희생시키겠다고 말했다. 성서의 가르침인 ‘살인하지 말라’를 절대 원칙으로 삼을지, 아니면 기꺼이 한 명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구할지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가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방금 본 동영상 클립에 좌우되는 듯하다.
‘나’라는 사람이 늘 똑같은 건 아니다. 이 중요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기분에 대한 연구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기분이 바뀌며, 뇌의 어느 부분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기분이 바뀐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지만, 뇌의 어떤 영역에서 변화가 나타나는지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 복잡한 판단의 문제에 직면하면, 그 순간의 기분이 문제에 대한 접근법과 결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설령 자신의 기분이 그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스스로의 답변을 자신 있게 정당화시킬 수 있을 때라도 말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우리에게 잡음이 있다.

경영 의사결정의 직관에 관한 어느 연구에서는 직관을 “옳다거나 타당하다는 후광 내지 확신은 있지만 명확한 이유나 근거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 정해진 행동 방침에 관한 판단, 즉 알고는 있지만 그 이유는 모르는 판단”으로 정의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옳은지 안다는 느낌이 곡 판단 완료에 대한 내재적 신호다.
이 내재적 신호는 자기 자신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다. 판단을 내릴 때, 사람들은 이 내재적 신호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가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내재적 신호가 느껴지는 때도 있다.) 이것은 만족스러운 감정적 경험, 즉 기분 좋은 일관된 감각이다. 내재적 신호를 느끼는 동안 판단자는 자신이 검토한 증거와 그 증거를 토대로 내린 판단이 옳다고 느낀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인 것이다.(판단자는 주로 최종 판단에 맞지 않는 증거를 숨기거나 무시하여 일관된 감각을 강화한다.)
내재적 신호가 중요한 것으로, 또 판단을 호도하는 것으로 부각되는 까닭은 이것이 느낌이 아닌 믿음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감정적 경험(증거가 맞는 것 같아)은 자기 판단의 타당성에 대한 합리적인 확신(이유는 모르지만, 그게 맞다는 건 알아)으로 둔갑한다.
확신은 예측의 정확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확신에 찬 많은 예측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곤 한다. 편향과 잡음은 예측 오류를 유발하지만, 이러한 오류의 가장 큰 원천은 예측적 판단의 제한된 정확도가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확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제한이다.

일반적으로 예측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객관적 무지를 과소평가한다. 과신은 많은 증거가 있는 인지적 편향이다. 특히 심지어 제한된 정보로 정확한 예측을 내리는 자신의 능력을 판단할 때는 끔찍할 정도의 자기 과신이 나타난다. 예측적 판단에 나타나는 잡음은 객과적 무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예측이 있는 곳에 무지가 있고, 그러한 무지는 생각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테틀록은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전문가들에게 각각의 이슈에 대해 현상 유지가 될 지, 현상에서 더 나아갈지, 현상에서 더 물러설지 등 세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침팬지라면 세 구역으로 나뉜 다트판을 향해서 다트를 던졌을 것이다. 확률을 3분의 1이다. 테틀록이 조사했던 전문가들은 최저 기준을 간신히 넘겼다. 평균적으로 그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보다 일어날 일에 조금 더 높은 확률을 부여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그들이 자신의 예측에 대해 보인 과도한 확신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명료한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자신의 예측에 대해 가장 큰 자신감을 보였고, 가장 정확하지 않은 예측을 했다.

스스로 꽤 정확한 예측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단지 과신에만 빠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에 잡음과 편향의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부정한다. 단순히 자기를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게 아니라, 사실상 예즉 불가능한 사건들을 예측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불확실성을 암암리에 부인하는 행위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런 태도는 무지의 부정에 해당한다.

왜 의사결정자들은 계속 자신들의 직감에 의지하는 것일까? 의사결정자들은 직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내재적 신호를 듣고 그에 따른 감정적 보상을 느낀다. 좋은 판단에 이르렀다는 내재적 신호는 ‘이유는 모르지만 알고 있다’는 확신의 목소리다. 하지만 증거를 가지고 실제 예측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그런 지나친 확신은 정당화되지 않을 것이다.
직관적인 확신이 주는 감정적 보상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조직 리더들은 특히나 본인들이 매우 불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자기 직관에 의지해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강조했다. 주어진 사실을 이해할 수 없고 그토록 원하는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 그들은 이해와 확신을 제공하는 자신들의 직관에 의존한다. 무지가 클수록, 그런 무지를 부인하고픈 유혹도 커지기 마련이다.

조지 루카스처럼, 우리는 주로 특정 결론에 도달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판단 과정을 시작한다. 이렇게 할 때,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1 사고가 작동하여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속단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는 과정을 우회하거나 예단을 지지하는 주장을 제시하기 위해서 의도적 사고에 개입된 시스템2 사고를 동원한다. 이런 경우 증거는 선택적으로 수집되고 분석되어 왜곡된다. 확증 편향과 바람직성 편향 때문에 우리는 이미 믿고 있거나 사실이길 바라는 판단에 우호적인 증거를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하게 된다.
사람들은 곧장 자신의 판단을 그럴듯하게 합리화하고, 그러한 합리적인 이유를 근거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예단이 판단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려면,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갑자기 타당성을 잃어버렸다고 상상해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강한 반박에도 루카스의 마음이 바뀌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른 주장을 내세웠을 것이다.

예단의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지 루카스의 반응처럼, 예단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있다. 심리학자 폴 스로빅은 이것을 감정 어림짐작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참고해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싫어하는 정치인에 관해서라면 그의 생김새나 목소리마저 싫어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자기 브랜드와 긍정적인 감정을 연관 짓기 위해 노력하고, 교수들은 강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해에는 강의 자료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때에도 같은 기제가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 무언가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됐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수용한다. 설령 그게 이치에 맞지 않을 때조차도 말이다.

대체로 우리는 성급히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고수한다. 증거에 근거해서 의견을 개진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감안하는 증거와 그에 대한 해석은 처음의 속단에 맞게끔 적어도 어느 정도로는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머릿속에 떠올랐던 전반적인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물론 결론이 옳다면 이 과정도 괜찮다. 하지만 처음의 평가가 잘못됐을 때, 모순된 증거가 있음에도 그 결론을 고수하려는 경향은 오류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듣거나 본 정보를 무시하기란 불가능하고 떨쳐내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 영향은 통제하기 어렵다.

과도한 일관성은 정보가 제공되는 순서와 그 의미가 모든 (또는 대다수) 판단자에게 동일한지, 그 여부에 따라 편향이나 잡음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사 지원자의 외적 매력이 모든 채용 담당자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고 생각해보자. 외모가 그 사람이 지원한 자리와 무관하다면, 외모 때문에 생긴 긍정적인 후광은 공유된 오류, 즉 편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어떤 판단은 예측적이다. 또 어떤 예측적인 판단은 입증 가능하다. 그래서 그 판단이 정확했는지 여부를 끝내는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의약품의 효과, 전 세계적인 유행병의 경과, 선거 결과 같은 단기 예측에 해당한다. 하지만 장기 예측이라든지 가상의 질문에 대한 답 등 확인할 수 없는 판단도 많다. 이러한 판단의 질은 그 판단에 이르게 된 사고 과정을 통해서만 평가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판단이 예측적이지 않고 평가적이다. 판사의 형량 선고나 대회에 출품된 그림의 순위는 객관적인 참값에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 마치 모든 판단에 참값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놓쳐서는 안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표적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결정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과 그 판단이 제한적일 것이란 기대를 내포한다. 판단 문제는 제한된 의견 불일치에 대한 기대를 특징으로 한다. 판단 문제는 의견 불일치가 허용되지 않는 ‘연산의 문제’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취향의 문제’ 사이에 존재한다.
2022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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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맙습니다. 저같이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면을 후루룩거리며 머리를 숙이자, 남자는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난 쓰레기라는 말은 별로 안 좋아하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은 자기가 쓰레기라고 한탄하지 않거든. 그리고 허접쓰레기 같은 놈도 뻔뻔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자책할 줄 아는 사람은 충분히 살 가치가 있어."

"네 신념을 타인에게 반드시 인정받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그걸 옳다고 믿는 네 마음이지. 네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단다. 너는 네가 야요이에게 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면, 그게 정답이야."
"...그렇지만, 위선자 소리를 듣는 건 정말 끔찍해요."
할머니의 얘기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편으로 그것 그냥 허울 좋은 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도 야요이와 친하게 지내면 점점 더 외톨이가 될 거 같아요..."
"가령 그게 진정한 고립이라면, 나는 그렇게 돼도 좋다고 생각해."

“난 서예교실에서 정성을 다하면 예쁜 글씨를 쓸 수 있다고 가르쳤단다. 그런데 어느날 한 남자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자기가 쓰고 싶은 글씨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쓰는 글씨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내가 시범을 보여준 대로 쓴 글씨에는 자기 진심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구나.”
할머니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아이한테 네가 쓰고 싶은 글씨를 자유롭게 써 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며칠 후에 그 아이가 감정과 의지를 담아 쓴 글씨를 들고 왔단다. 기술적으로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그 글씨에는 그 아이의 진심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어. 나는 그때 깨달았단다. 글씨를 잘 쓰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중요한 건 참된 마음과 의지를 담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거라는 것을.”
“...”
“그때부터 서예 교실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자신을 속이지 않는 마음가짐이란다. 남의 시선만 신경 쓰고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게 되면, 글씨를 아무리 잘 쓰더라도 그걸로 진심을 표현할 수는 없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내버리게 되면, 정말 절망적인 외로움을 맛보게 된단다.”
그 말을 듣자, 내 마음을 가리고 있던 불안감이 조금씩 옅어졌다.
“만일 네가 소신을 지켜 나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현혹될 거 없단다. 좀 외로울 수는 있지만 고독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 시간이 반드시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거야. 인생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가는 자세보다 더 강한 건 없다고 나는 믿어.”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

무라세 다케시 지음
모모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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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저씨의 책상 앞에 앉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저씨는 가게 카운터로 쓰이던 이 연갈색 나무 책상에서 매일 두껍고 큰 책의 내용을 옮겨 적었다. 처음엔 그 책이 큰 글자 성경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스페인 소설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라고 하면 풍차로 돌진하는 미치광이 늙은 기사로만 알던 나는 실제 책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걸 언제 다 베껴요?”
“필사를 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왜 필사하는 거예요?”
“그건 말이다. 음…… 돈키호테의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 누구도 『돈키호테』를 필사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건 한국어로 된 최초의 『돈키호테』 필사본이지.”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줘요? 스페인 사람들이 알아주려 해도 한국어로 된 거면 알아보지도 못하지 않나요?”
“누가 알아준다고 모험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나만의 길을 가는 데 남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아. 안 그러니 솔아?”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나무옆의자 펴냄

읽었어요
2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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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 불빛이 켜졌다고 꼭 된다는 건 아니야."
"될거야."
마이클이 말했다.
"둘 다 도와줘서 고마워."
"네가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걸 우리가 알 방법은 없을까?"
"그런 건 없어."
기비 물음에 리지가 말했다.
"모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지."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책읽는곰 펴냄

읽었어요
3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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