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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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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저자의 글도 좋았고, 역자의 후기도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드링킹을 먼저 읽고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었는데, 이 에세이집은 그녀의 다른 책들에서 읽었던 내용들의 교집합적인 부분이 많았다.
자신의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는 담담하면서도 자기 연민을 드러내지 않고 상황 그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이야기해서 거부감보다는 객관성과 자기 성찰의 사례를 보았다.
작가의 생각들이 생활하는 모습과 습관들, 일화들을 통해 이야기 될때, 아 나도 이런데 하는 부분이 있을때는 왠지 모를 반가움의 감정이 들었다.
신변잡기 같은 소재들을 사회적 관점으로 말하는 작가의 생각의 연결고리들은 흔히 말하는 자각하는 혹은 지성이 있는 이의 글맛이 느껴져 계속 읽게 한다.
살아 있었다면 좋은 멘토 혹은 동시대성의 인물로서 많이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을 것 같다.
부모님들과의 관계나 상실에 대한 이야기도 중년이 넘어선 나이에서는 더 몰입도 있는 이야기였다.
표제작 '명랑한 은둔자'도 고독과 고립의 줄타기를 하는 지금의 '나'들에게 묘한 동질감과 만족감을 주었다.

19쪽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150쪽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깊이 동일시하는 건 드문 일일 것이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딸에게 수많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라는 사람, 딸이라는 사람, 서로 상대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 그 사이를 잇는 선들은 서로 교차하고 엉클어지고 겹쳐지기 일쑤다.
2022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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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출간 이후 작가들에게 입소문이 나서, 작가들이 추천하는 책으로 알게 된 책이다.
등단하지 않았고, 첫 책임에도 불구하고 글과 문장의 밀도에 많은 칭송의 말들이 들린다. 읽으면서 시선과 감성의 격이 시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탄사가 나오는 감성이 녹아든 문장과 표현들, 사색을 옮겨놓은 말들의 장들이 불쑥 들어온다.
낭독하기 좋고, 에피소드와 연관된 인용 시들의 단문들이 감성 문장들로 빛을 발한다.
작가의 도서관 북토크 영상을 보면서 하워드의 다중지능이론 중 감성지능이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습작을 하지 않았다고, 느낀 경험에 대한 감정을 글로 썼다는 말에서는 타고난 문학성이라고 해야 하나 선망의 시선이 갔다.
담백한듯하지만 또 담대한 글들은 아직은 높은(늙은) 연배가 아님에도 그 감성과 사유의 깊이에서는 나이라는 게 큰 의미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이 책의 작가의 글에서 마주친다.

행복을 믿으세요?편의 마음의 격이라는 어휘가 참 시인다운 언어의 향을 주는구나 싶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는 긍정에 대한 한 보 더 깊은 헤아림이 느껴졌다. 나는 저런 긍정의 사유를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담백한데 또 담대한 문장과 사람의 격이 전해지다고 할까.

과일이 둥근 것은 편에서는 외지인들끼리 혼자만 느낀 정서적 친밀감의 느낌을 엿본 느낌인데, 그 시선과 생각들이 따듯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일반적으로 타지에서 이성이고, 연배가 더 많다면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나 경계심의 추가 더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작가의 시선은 익명성의 거리감에서 오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구석의 목소리라는 문장이 시인의 문장으로 들어온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편은 늙음과 젊음에 대한 대비된 에피소드인듯하지만, ‘노인에게는 멈추는 힘이, 나에게는 나아가는 힘이 필요하다.’ 라는 문장에서는 아직은 중반쯤을 살아가고 있는 이의 다짐과 응시가 전해진다. 다소 슬픈 정서가 느껴지지만, 노년과 중년 사이에 삶의 가치관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곰곰이 되새겨 보게 하는 문장이다. 나는 작가가 말한 그 중년의 삶을 살고 있는데 작가의 말처럼 일흔, 여든의 나이를 통과한 노인의 삶에 대한 경외감 앞에서는 잊고 있던 삶의 지속성과 종결성을 가늠해 보게 된다.

영원 속의 하루 편은 영화 <영원과 하루>를 보고 느낀 감상들인데, 영화의 밀도와 작가의 사유의 밀도가 묵직하다. ‘사람은 매일 오늘을 잃고, 영원은 얻지 못한다.’ ‘내가 혼자라고 해도, 나의 시간에 동반하는 당신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같은 영원 속에 산다.’ 이 두 문장이 영화와 작가의 사유를 한데 엮어서 풀어내어 나와 당신,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환기가 들어온다.

잘 걷고 잘 넘어져요 편은 독서 모임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에피소드였다. 걷다가 다쳐서 병원엘 다니게 되고 치료를 하는 동안의 불안감과 의사와의 처방은 일반적인 의사들의 시선으로 대하는 일화였다. 그런데 다른 곳, 한의원에서는 한의사의 처방과 대화가 같은 상황에서의 다른 시선과 환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위로가 느껴지고, 제대로 걷기와 일상생활에 안착하기까지의 2여 년의 시간에 대한 소회를 길지 않은 문장 속에서도 어떤 마음이었을지 전해지는 까닭에, 각자의 경험에 기댄 공감과 의료인들과의 만남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구나 하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국경을 넘는 일 편은 마임배우 마르소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작가의 사유가 어떻게 번져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어떻게 해도 끝과 죽음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늘 속에 몸을 둔 채로 볕을 보는 사람, 내 몫의 볕이 있음을 아는 사람, 볕을 벗어나서도 온기를 믿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르소의 삶의 비극과 그 비극 속에서도 연약한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의 선함을 끝까지 실행하는 참된 인간의 정점을 본다. 그리고 이런 문장으로 발화된 작가의 문장은 계속 읊조리게 한다.

마지막 편인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부치지 않은 편지)는 성소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의미에 대한 사유가 실렸다.
하지만 후회를 간직하고도 나아가야 한다는 걸 지금은 근근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잃고 나서도, 실패하고 나서도, 다시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다는 걸요. 성소란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운명을 지키려는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요.
종교적 입장의 이야기이지만, 특정 종교를 넘어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또다시 꿈을, 다른 꿈을 꾸는 모습과 의지를 표현한 문장이 깊게 들어온다.

젊은 여자 소로우의 에세이라고 나름 정의해 본다. 시를 인용하고, 경험을 통해서 빗어낸 사유의 문장들이 소곤소곤 말하지만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는 에세이다.

시와 산책

한정원 지음
시간의흐름 펴냄

읽었어요
1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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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국어사전] 안부 (安否)
어떤 사람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그렇지 아니한지에 대한 소식. 또는 인사로 그것을 전하거나 묻는 일.

네이버 어학 사전에는 안부에 대해 이렇게 나와 있다.
안부가 눈부신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런 궁금증이 일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문구도 많은 공을 들여서 쓰여져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화자 해미와 우재와의 우연한 재회로 시작한다.
둘은 대학 동문으로 같은 동아리 활동을 했으며, 서로 사귈 듯 사귀지 않는 상태로 졸업 이후에도 동문들의 결혼식에 마주치면서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진 상태다.

그 시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독일 시절과 파독 간호사였던 시절의 이모 이야기의 한 자락을 기억하던 우재의 말로 해미는 묻어두었던 그 시절의 일들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의 소환은 그 시절 묻어두었던 일들과 그 일의 마무리를 짓기 위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자신의 상태와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과 자신과의 삶의 연결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가 완결로 가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생각지 못한 반전을 만나서, 다시 앞장들을 찾아서 읽게 했다. 추리 소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복선이 있었던가 싶어서 다시 앞장을 들추면서 그리고 마지막의 반전에서, 해미는 선자 이모와 kh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비로소 제대로 인식하고 발을 내딛게 된다.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서사는 해미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방사형 구조로 촘촘히 이야기들이 빠져들게 읽게 했다.

해미의 이모는 파독 간호사이고, 동생인 해미의 엄마는 힘든 가족의 불화를 극복하기 위해 언니가 있는 독일의 G시로 간다. 그곳에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파독 간호사들의 울타리로 들어선다.

파독 간호사인 선자 이모와 그녀의 아들 한수, 마리아 이모와 그녀의 딸 레나와 관계가 형성되는 이야기들의 교차점은 이 소설을 읽게 하는 주요 서사가 된다.

이미 상처를 입었기에 타인의 삶에 들어서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해미는 독일 시절 한수와의 관계와 현재 우재와의 관계를 통해서 알게 된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독일 시절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에야 깨닫게 된다. 한수와 레나와의 관계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아주려던 어린 날의 그들의 계획이 해미의 갑작스러운 귀국, 뇌종양의 진행으로 선자 이모의 죽음으로 어긋나 버리게 된다. 한수에게 엄마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았다며 거짓 편지를 써 보내게 된다. 선의로 이루어진 일이나 거짓이었고, 그 죄책감에 한수와 레나와의 연락을 피하게 되고 결국에는 연락이 끊기게 된다.

그렇게 그냥 잊고 살고 있던 그 일들이 해미에게 독일에 있던 이모의 방문으로 함께 지내게 되는 기간 동안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진짜로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러면서 독일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던 우재와의 관계도 조금씩 변하게 된다.

해미가 막 사춘기 시절에 접어들어서, 보지 못하던 당시의 단초들이 어른이 된 시점에서는 보인다는 문장 속에서는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날은 보이지 않던 혹은 인식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 나이가 들어서 보이고 알게 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기에.

선자 이모가 열심히 읽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나, 전혜린에 관한 이야기에서 20대에 읽었던 그 느낌과 독일에 대한 전혜린에 대한 뒤늦은 선망 같은 추억들이 함께 소환되었다. 루이제 린저의 생애가 그녀의 작품 속 니나 같지 않음을 후에 알게 되고 실망했던 기억들도.

20대의 최애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던 생의 한가운데, 전혜린, 독일에 대한 문학적 동경들이 선자 이모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갑기도 하고 멀어진 옛 시절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선자 이모가 한수와 해미의 소중한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거짓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는 동안 두 아이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첫사랑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통해 이루지 못한 사랑과 그럼에도 아름다웠던 시절과 삶에 대해 정리한다. 후반부에 kh의 정체가 밝혀지고 편지를 전달한 해미는 후에 kh가 보내준 이메일을 통해 선자 이모의 편지를 읽게 된다. 이 부분이 몹시 인상적이고 뭉클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해 준 존재들의 연결된 느낌.


다 읽고 나서 ‘눈부신 안부’라는 제목의 느낌이 들어왔다.
편지를 통해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마지막 선자 이모의 편지는 안부를 묻는다. 그 오랜 세월 죽어가면서 쓴 편지가 기어이 편지의 수신인 당사자에게 가닿아 안부를 나누는 것. 이처럼 눈부신 안부가 어디 있을까 싶다. 해미가 이 과정을 겪고 우재에게 가는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눈부신 안부의 결말이 아니었을까.

촘촘한 이야기들이 장편의 맛을 준다. 추리 소설 같은 부분도 있었고, 더없이 순정이 가득한 부분도 있었고, 당대 사회사가 보이면서, 그 속에서 성장하고 스스로 걸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시대에 휘둘려 살아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마주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실패한 삶처럼 보일지라도 스스로 선택한 온전한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말하던 선자 이모의 편지글이 기억에 남는다.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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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yijuyeonxm0c

길지 않은 분량의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다.
저자의 서문에서 ‘고마운 마음’에 대한 이렇게 적고 있다.
타인에게 빚지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빚은 소중한 관계의 형태로 여기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고마움에 대한 의미를 80대 미쉬카 할머니가 삶의 마지막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미쉬카가 전쟁통에 어머니와의 헤어짐에서 다른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절을 평생 잊지 않고, 노년에 이르러서도 도움을 준 그들을 계속 찾고자 했던 마음, 이웃인 어린 마리를 돌보았던 행동과 마음은 작가가 말하는 소중한 관계의 형태의 받음과 베풂의 순환이다.

소설은 80대 노인 미쉬카, 미쉬카의 보살핌으로 자란 이웃 마리, 요양원에서 언어치료를 하는 젊은 언어치료사 제롬. 이 세 명의 이야기이다.
미쉬카는 젊은 시절 신문사에서 교정교열업무를 하면서, 독신으로 살아온 할머니다.
언어를 다루던 직업의 그가 노년에 실어증에 걸리게 된다. 혼자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고 느낀 그녀는 요양원의 입소부터 이웃이면서 어릴 때부터 돌봤던 마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요양원에서 만난 언어치료사 제롬은 미쉬카에게 실어증 치료를 위한 일정을 갖게 된다.


미쉬카가 점점 단어를 잃어버리고 오류의 단어들을 내뱉는 문장들은 계속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는 문학에서 할 수 있는 언어적 말놀이의 흐름이 보인다. 어긋난 단어들의 진짜 단어들을 넣어보면 알 수 있다. 어긋난 문장의 진짜 단어들의 문장.

제롬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 탓에 절연의 상태로 지내고 있다. 언어치료를 하면서 던지는 미쉬카의 질문과 대화들은, 무지의 상태로 보이는 노인에게 나오는 인생의 지혜와 혜안이 그리하여 그런 마음이 제롬에게 마음의 물결을 준다. 흘러가는 방향에 다른 방향의 결이 생긴다.

마리는 어린 시절 미쉬카와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머니의 방임 속에서 미쉬카의 보살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마리는 그런 시절을 잊지 않고 미쉬카를 돌본다. 미쉬카의 발병, 요양원 입소, 정기적인 면회를 하면서 관계를 놓지 않는다.
임신과 싱글맘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리라 미쉬카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는 마리가 생각하는 미쉬카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나를 걱정하고 바라보는 존재가 있다는 마음이, 그 존재가 세상 잣대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상태일지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존재의 의미는 다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랑했던 존재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존재일 수 있다는 걸 새삼 마리의 모습 속에서 본다.

마리와 제롬의 노력으로 미쉬카는 도움을 주었던 부부 중 한 사람이 살아 있음과, 그들의 딸이 전쟁 당시의 진위를 확인해 주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도 고마움의 존재를 찾았다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음에 마쉬카는 눈물을 흘린다. 제롬의 제안으로 연필로 마쉬카에게 남겨져 있는 단어들로 편지를 쓴다. 자신의 마지막 단어들을 소진하면서 쓴 편지라는 문장에서 언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게 된다.

마쉬카는 자신의 편지를 주면서 제롬에게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라고 한다. 일견 사소한 에피소드 같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통한 치유의 장면처럼 읽힌다.

삶에서 마지막 할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일까.
마쉬카는 편지를 보내고 제롬과의 언어치료를 하는 일상을 지내다 잠을 자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전한다.
마리와 제롬이 처음으로 서로 마주치게 되면서, 그들이 나누는 마쉬카식 어긋난 단어들의 대화는 마쉬카를 통한 연결된 관계를 본다. 젊은 그들은 마쉬카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슬픔의 죽음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소설의 이야기는 무척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노년과 청년의 인물들이 서로 관계 맺고, 노년의 인물을 통한 ‘고마움’에 대한 주제를 드러낸다. 노년의 그림자의 상태에서도 타인에게 빚진 관계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 노년의 담대한 결을 보여주었다. 관계의 순환고리가 된 제롬과 마리 역시 소중한 관계의 형태로 연결되었다.

잊지 않고 표현하는 언어와 글에 대한 작가의 인물, 미쉬카의 삶을 되새겨 본다.
소중한 관계의 형태로 이어가는 것. 홀로인 듯싶지만 연결된 인간 삶. 빚짐을 소중한 관계로 확장해 가는 삶. 다가오는 오래된 미래. 노년의 삶에 대한 생각들을 살핀다.

고마운 마음

델핀 드 비강 지음
레모 펴냄

읽었어요
1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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